[소설] 브라더 - 나혁진

2013.07.23 07:17

herbart 조회 수:3573

한국형 갱스터 엔터테인먼트의 걸음.

-나혁진의 브라더-

 

  작가 나혁진씨는 재미있는 사람이다.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실제로 그가 만나면 무척이나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추리소설, 무협소설, 갱스터 물, 홍콩 영화, 야구, 격투기, 걸그룹 등 다방면에 대한 지식을 그처럼 구수하게 풀어내는 입담꾼을 난 아직 만나지 못했다(그리고 아마 만나지 못할 것 같다). 또 하나는 그가 살아온 인생사가 소설 못지않게 드라마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태어나서 인천 외에는 한 번도 다른 곳에 적을 둔 적이 없는 인천 토박이인 그는 대학 졸업 후 대학교 때 다시금 빠져들었던 추리소설을 직접 만들고파 돈 몇 푼 주지 않던 출판사에 입사해 장르 전문 편집자로 승승장구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소설을 쓰겠다는 결심 후 퇴사. 이후 몇 작품을 여러 공모전에 출품 후 낙선을 거듭하다 천신만고 끝에 이 작품 “브라더”를 펴내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브라더”를 처음 쓴 게 2009년도였다고 하니, 실로 4년 만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름을 올리기에도 민망한 작품들이 심심찮게 쏟아지는 요즘, 어째 이 정도의 필력을 지닌 작품이 이렇게 빛을 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는 의문이다.) 작가로서 등단한다는 꿈 하나만으로 불안정한 생계를 몇 년이나 감수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재능에 대한 반쯤의 믿음과 그 나머지 반을 채울 수 있는 부단한 노력으로 결국 작가라는 위치를 얻어냈다. 그리고 한국 추리 문학 문단계에 미스터리 독자에서, 미스터리 전문 편집자로, 미스터리 전문 편집자에서 미스터리 소설가로의 변신이라는 꽤 의의 있는 족적을 남기게 되었다.

 

  사실 아는 지인의 책을 읽고 감상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누이좋고 매부좋고’라는 정 문화가 팽배한 이 사회에서 괜히 지인의 책에 호들갑을 떨었다가는 주례사 비평으로 오해받기 쉽고(내가 쓴 글이 무슨 비평정도로까지 취급받겠는냐만), 객관적인 입장에서 따뜻한 위로보다는 혹독한 채찍질을 가했을 경우 어떻게 아는 사람이 그럴 수 있냐고 원망스런 눈총을 받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만약에 책을 다 읽고 장점보다는 단점이 눈에 들어오면 글을 쓰지 않겠다고.

그런 까닭에 지금 이렇게 “브라더”에 대한 글을 올릴 수 있는 상황이 매우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 유일의 대기업형 조직 범죄 집단인 대흥그룹(이는 영화 “신세계”를 연상케 하지만, 이 작품은 신세계보다 훨씬 먼저 쓰였고, 작가의 말로는 마리오 푸조의 "대부"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한다)을 배경으로 자기 자신의 꼬리를 무는 뱀을 연상시키는 네 남녀의 인생이 펼쳐진다. 조직 내 라이벌의 함정에 빠져 동생을 잃고 조직에서 버림받은 성민, 성민과 성민의 라이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성민을 배신하고 끔찍한 댓가를 치르게 된 여진, 여진이 성민에 대한 복수를 위해 끌어들인 부산출신 고아 미옥, 그리고 미옥에게 빠져 조직까지 배신할 각오를 하게 된 성민의 옛 동료 완기의 이야기가 연작 중편의 형태로 전개되다 다시 이야기를 마무리 하는 것은 성민이다.

 

  출판사는 이 작품을 한 남자의 집요한 복수극과 거친 쌈마이들의 세계를 그린 형님 소설로 포장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마 출판사의 입김에서 새어나왔을 듯한 “브라더”라는 제목만큼 독자들의 오독을 이끄는 함정도 없을 것이다(이건 작가에게 물어보지 못했는데, 내가 아는 혁진씨는 절대 이런 제목을 붙일 만큼 감각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이는 분명히 성민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여진의 이야기이도 하고, 완기의 이야기이도 하고, 미옥의 이야기이도 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이 네 인물의 인생사와 이들의 욕망과 그 욕망을 성취하려는 이들 각각의 계략을 모두 다 포함하지 않고서야 온전히 말할 수가 없다.

 

  인생의 파고에 휩쓸리고 각자의 욕망을 쫓아 나아가기보다는 흘러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상당히 매끈한 리듬과 모난 곳 없는 전개와 맞물려 매우 탁월한 가독성을 창출하고 있다. 실제로 이 작품이 북퀘스트에서 나오기 전에도 몇몇의 출판사에서 이 작품의 가독성만큼은 인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 작품이 ‘조폭 소설’이란 이유로 거절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약간 허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조폭 영화나 이원호 소설로 대변되는 조폭 물에는 한 가지 뚜렷한 패턴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공부도 못하고 집안도 가난하지만 의리와 주먹하나만큼은 제대로 있는 남자가 조직을 접수해 나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혁진의 ‘브라더’는 이와는 전혀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데, 조폭 물의 배경을 빌려오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위험에 처하고 이를 주먹보다는 머리로 해결하려는 인물의 지략싸움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범죄 소설에 당당히 이름을 차지하는 한 장르로써, “대부” 이전에 도널드 웨스트레이크가 데뷔작 “고용인들(Mercenaries)”에서 본격적으로 태동을 알렸고, 엘모어 레너드가 이 장르의 절대자이며, 일본에서는 "불야성" 같은 작품이 이름을 떨쳤다. 개인적으로는 갱스터 엔터테인먼트라고 이름붙인 이 장르가, “브라더”로 우리나라에서는 이제야 잰 걸음을 하기 시작한 것이고, 아마 제대로 인정받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한국형 갱스터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작품의 재미를 제쳐두고 이 작품을 좋아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취향과 그에 따른 체취가 작품 속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1부에서 성민이 여진의 배신을 눈치채는 것은 다분히 명탐정 추리물의 공식을 따르고 있고, 2부에서 여진이 미옥을 길러내어 자신의 뒤를 따르는 텐프로 아가씨로 잠입시키는 과정은 다분히 무협소설에서 보는 사제 관계 유형을 타 장르에 이식시킨 것처럼 보인다. 완기의 장에서 읽은 이들이 가장 감탄했다고 한 인간 투견(순전히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한다)은 바닥을 넘어서 끝을 보고 만 UFC 격투기가 아닐까 한다. 이렇듯 작가가 흥에 젖어 개인적으로 반영한 취향이 자칫 일방적인 패턴으로 흘러갈 수 있는 작품의 구도에 큰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이 작품에 나타난 현실 묘사 때문이다. 우리나라 소설에 나타난 끈적끈적하고 눅눅한 현실 묘사 대신에, 삶의 일상적이고 애잔한 단면을 밀착해서 그린 부박한 인생살이의 모습들이 담담하고 정갈하게 그려진다. 호들갑스럽지만 속은 텅 빈 육순 잔치를 그린 부분이나, 돈 몇 푼 벌려고 대리 번역을 사주했다가 이것이 드러나 치욕을 면치 못하는 장면 등 이를 잘 드러내는 장면은 많지만, 특히 이는 미옥의 장에서 특출나다. 나는 미옥이 고생하며 첫 월급을 타 구한 월세방과 부산 남포동 거리를 잊지 못한다. 또 성민이 미옥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콘돔을 씹는 장면은 터무니없으면서도 그 순간에 가장 그럴듯하지 않던가.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마지막 장에서 이들 네 인물에 대한 공간을 충분히 마련해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시 성민의 장'으로라고 이름 붙여진 이 마지막 장은 지나치게 급하게 마무리된 느낌이 없지 않다. 마지막 장 이전에 여진, 완기, 미옥에게 할당된 역할을 생각해서라도 이들의 운명에 이 정도의 지면만을 할애한 것은 부당하다. 혹시라도 이 책이 나중에 개정 증보판이라도 나올 가능성이 있다면 작가는 이 마지막 장을 다시 한 번 고려했으면 한다.

 

  아는 작가가 생겼다는 기쁨에 혁진씨에게 이 후속 작품은 어떻게 나올 것인지 물었다. "브라더"의 프리퀄인지 시퀄인지. 그런데 엉뚱하게도 그의 대답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다음 작품은 ‘브라더’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미리 한 편 써둔 작가 나혁진의 또 다른 작품은 대학생들을 주인공으로 한 캠퍼스 미스터리라고 한다.

 아, 그는 정말로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 궁금하게 만든다. 작가로서도, 인간으로서도.

 

 

 

기타등등 

 

1) 작가에게 속편으로 대부 2편처럼 프리퀄 +시퀄을 만들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박준우 사장과 성민과 완기가 합심하여 서울을 공략하다가 실패한 이야기를 프리퀄로 하고, 성민이 미국에 있는 박준우 사장을 다시 한국에 불러와 대흥그룹과 맞선다는 이야기를 시퀄로 담아 한 편에 그리는 것이었다. 작가의 말은 ‘그런데 우선 이 작품이 팔려야 말이죠...’

 

2) 읽은 이들 모두 "브라더"란 제목과 작품과 어울리지 않는 표지에 불만을 품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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