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l 에스프레소 노벨라 Espresso Novella 6
테드 창 (지은이) | 김상훈 (옮긴이) | 북스피어 | 2013-08-09 | 원제 The Lifecycle of Software Objects (2010년)


디지언트와의 퍼스트콘택트 관점으로 본 리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책을 안 읽은 분은 절대 읽지 마세요. 본문의 직접 인용이 꽤 많습니다.



 “저도 디지언트를 키워 봤지만 갓난애가 말을 하는 수준 이상으로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뉴로블래스트 디지언트를 키우셨나요?”
 “예. 발매되자마자 하나 샀죠. 애나 씨와 마찬가지로 잭스 마스코트의 인스턴트였습니다. 피츠라고 이름 붙이고 일 년쯤 키웠죠.”
 이 사람, 어린 잭스를 키우고 있었어. 애나는 생각했다. 이 사내를 오너로 아는 잭스의 갓난아이 버전 하나가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다.(175)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쉽게 말하면 가상 애완동물 사업에 관한 이야기다. 이 작품을 아주 단순하게 보는 사람은 애완동물을 키우는 이야기나, 아이를 키우는 육아에 대한 현실적인 비유로만 좁게 파악하는 우를 저지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작품은 SF이며,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공지능을 이야기하면서 바로 우리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장르가 SF인 것이다. 인간과 그 삶에 대해서, 우리들의 가능성에 대해서, 소설은 다양한 열린 세계를 펼쳐 놓고 있다.
 이 소설의 핵심은 ‘디지언트’라는 존재다. 데이터어스라는 가상 세계 속에 사는 디지털 존재로 그 어떤 생물과도 닮지 않은 독자적인 생명체다. 본문에서도 서술되어 있듯이 진짜 동물이 아니면서 사람들에게 애교를 떠는 이상적인 애완동물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 존재인가? 새로운 생명체가 아닌가? 인간이 만든 최초의 생명체. 인류의 자식이다. 고전 SF에서 ‘로봇’으로 상징되던 인간의 자식을 여기서는 사이버 생명체인 ‘디지언트’로 치환했다.

 로빈은 퍼뜩 말을 멈췄다. “그러니까, 내 입장에서는 넓은 시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뜻이야.”(61)
 
 앞에서 말했듯 아기나 동물로 디지언트의 의미를 굳이 좁힐 필요가 없다. SF는 우주와 그 안에 사는 인간을 통합적으로 다루며, 어떤 장르보다도 인류 자체를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문학이다. 의미를 좁히는 게 아니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은 소설 속 로빈의 대사가 애나의 반대항이라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애나의 입장에서 그 소리는 반박되어야 하는 것이고, 독자의 입장에서도 로빈의 대사는 좁은 생각이고, 편견이며, 이 소설의 주제와 동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은 반대로 의미의 확장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로빈이 고양이, 개, 디지언트는 대용품에 불과하다며, 아이를 임신한 것이 ‘내 입장에서 넓은 시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뜻이야.’라는 말을 한다. 그 대사를 이 소설의 주제와 연관시켜 생각하면 다음과 같다. 개별적인 한 인간과 한 디지언트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소설은 인류가 디지언트라는 새로운 종족을 품게 되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인간들도 언젠가는 디지언트가 뭘 의미하는지, 정말로 뭘 의미하는지를 깨닫게 될 거고, 그러면 모든 게 바뀔 거야. 그런다면 예전에 느꼈던 모든 감정이 실제로는―,”(61, 나에서 인간, 아기에서 디지언트로 변형해서 인용.) 즉, 인류의 입장에서 넓은 시야로 사물(또는 세계)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바로 ‘디지언트’가 될 것이다.

 수많은 SF에서 ‘로봇’이 인간이 죽고 없어진 뒤에도 자기들만의 문명을 이루어 나가듯이 ‘디지언트’는 인간의 수명을 뛰어넘어 무한히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이 가능성은 흥미로운 것이 창조주보다 더 넓은 가능성이라는 것이다. 지식과 의식이 똑같으며 몸은 기기로 대체가 가능한 사이버 생명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그것이 끊임없이 학습을 통해서 진화가 가능하다면, 결국에는 특이점(싱귤러리티)을 지나 인간을 초월한 무엇이 될 수 있을지는 예측이 불가능하다.(『제노사이드』의 신인류처럼 자연법칙을 계산해내게 될 수도 있다. 또 다른 차원을 발견할 수도 있다. 『엑셀 월드』에서 가상 세계에서의 사고 속도 차이를 통해 다양한 가능성이 제기되는데, 소설에서는 이를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으나, 만약 그 기술을 정밀하게 이용한다면 전 인류가 다이브해서 문명의 발달을 촉진시킬 수 있을 테고 특이점에 도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마찬 가지로 디지언트는 가상 세계에서 태어난 생명체이므로, 이들의 발전 가능성 역시 인류의 시간과는 전혀 다른 흐름으로 발전할 수 있다.) 물론, 이 소설에서는 그 불가능한 지점까지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실과 다른 시간을 흐르게 할 수도 있고, 전혀 다른 법칙 속에 시뮬레이션이 가능한 사이버 스페이스라는 다른 차원, 다른 세계에서 태어난 생명체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는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상한 존』처럼 인간의 지능이 넘어선 순간부터 자기들만의 공간과 문화를 쌓아나가다가, 정보로 이루어진 신과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닿아 버린다면, 그들은 외계인이나 다를 바 없다. 이 소설에서도 인위적으로 그런 외계인,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들을 만들려는 실험이 언급된다. 물론 정부나 기관, 회사에서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다루어진다. 동호인들이 제노테리언이라고 명명해서 사설 대륙에 외계 문명을 무부터 창조하는 것이다.(이런 곳곳에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은 흥미로운 발상들이 많은데, 그 간극들을 짚어보면 정말 놀라운 경이를 느낄 수 있다.) 인위적으로 가상 생명체를 진화시켜, 외계인을 창조하고 다시 그들과 퍼스트 콘택트를 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인간이 발견하지 못한, 해결할 수 없는 우주의 법칙을 풀게 되거나, 전혀 다른 문물을 전달 받을 수도 있다. 역으로 인간이 없어지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렇듯 하나의 생명체를 만든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 또 다른 우주를 만드는 것과 같다.

 해당 대륙의 디지언트들 앞에서는 인공 언어인 로지반logiban을 특화한 방언밖에는 말할 수 없다는 규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데릭은 동호인들이 이 프로젝트를 얼마나 이어갈 수 있을지 궁금했다. 문턱이 엄청나게 높기도 하지만, 제노테리언 육성으로는 그와 애나가 방금 마르코를 관찰하면서 느꼈던 종류의 기쁨을 얻을 수는 없다. 동호인들은 순수하게 지적인 보상만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과연 그것만으로도 충분할까?(50)

 디지언트는 인간의 자식이면서도 다른 사고와 문화를 가질 수밖에 없는 신인류이며, 신종족이다. 그들의 의식을 인정했을 때, 여기에는 애완동물이나 아이를 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바로 다른 지성을 가진 신종족과 유대를 쌓고 그들이 인간세계에 접촉하며 자신들의 가능성을 파악해 나가게 만드는 일인 것이다. 그러나 영화 『디스트릭트9』에서 불시착한 외계인들을 핍박하고 생체실험만 자행했던 인간처럼, 이 소설 속에서는 그런 가능성은 주목되지 않고 자본의 논리로 회사가 없어지고 디지언트들은 존립이 어려워진다. 결국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 방안에는 돈이 필요하며,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이 소설은 관념적이나 추상적으로 디지언트를 다루지 않는다. 철저하게 지금 시대를 비추어서 있을 법한 현실 속에 ‘디지언트’를 던져 놓고, 이들의 삶을 밀착해서 그린다. 그로 인해서 현실성이 느껴지고, 이들이 이 우주에 존재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독자 역시 깊이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테드 창이 예전 강연에서 판타지에서는 마법의 양탄자가 나와 소수만 이용이 가능한 세계를 그리지만, SF에서는 자동차나 비행기 같은 누구나 이용 가능한 보편적인 기술로 인해 변화하는, 개혁하는 세계를 그린다고 말한 적이 있다. 즉, 판타지에서 요정 같은 존재가 등장해서 진화의 가능성 없이 그 시대에만 머무는 보수성을 띈다면, SF인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디지언트’는 공개된 기술이며 어느 회사에서도 만들 수 있고, 다양한 게놈 엔진이 존재하며, 이들의 존재로 인해 세계가 진보한다. 인류의 삶과 유희가 변화한다. 이게 계속 된다면 디지언트와 인간은 상호 보완 관계 속에서 서로의 정신 구조까지 변해버릴 것이다. 이때, 테드 창은 SF는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한 인물이 어떤 피해를 입는가를, 어떤 상처를 가지게 되는가를 써야 한다고 말했다. SF는 결국 과학 논문이 아니라, 인간을 다루는 소설이므로 인간의 정서를 건드리고, 내면을 들여다보고, 우리 삶을 돌아보게 만들고,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므로. 그런 의미에서 테드 창의 창작론에 맞게 이 작품은 전략적으로 쓰였으며, 인간과 과학기술로 태어난 신종족의 유대로 변화하는 세계를 그리는 동시에 인간의 감정과 삶, 희생, 상처를 다룬다. 그리고 그 둘의 융합 속에서 새로운 재미와 의미가 파생되는 것이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가 다른 SF들과 차이점을 지닌다면, 바로 프로그래밍을 통해 지식을 습득한 하나의 완성된 인격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진화를 시키기 위해서 일일이 인간이 자신의 생애를 소비해서 키워야 한다는 점이다. 즉, 로봇이나 안드로이드,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한 번에 완제품으로 제시되어 인간성에 대한 물음을 제기했다면, 이 작품에서는 인공지능을 키워내야 하는데, 이것은 좀 더 생명체에 대한 접근처럼 보이며, 이들이 신종족으로 파악해야 하는 근거로 작용한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뒤에 인류가 지금까지 문명을 쌓는 시간이 몇 십 만년, 몇 백 만년이라면, 이 종족에게도 그러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신종족의 탄생기를 그리고 있다. 마지막에 가서 성별을 정하고, 돈을 벌고, 추후 법인을 세워 경제적 자립을 하고, 끊임없이 발전해 나간다면 자기 자신을 이해서 스스로를 해부할 수도 있다.(이미 소설 내에서도 보상을 조정할 수 있다는 암시가 나왔다. 이것을 이용해서 이들은 전혀 다른 존재로 탈바꿈할 수 있다. 보상 조건을 어떻게 잡느냐가 존재의 그릇을 바꿔놓을지도 모른다.) 프로그래밍 기술을 익혀서 스스로를 해부한다면? 필립 K.딕의 단편 「전자 개미」나 테드 창의 「숨결」처럼 스스로의 인지 단위를 조작함으로써 세계를 조작하고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것으로 초월해버릴 것이다.

 “잠깐.” 마르코가 항의했다. “우리 법인 되면 뭐든 다 결정할 수 있다고 했잖아.”
 “그렇게 말했지.” 데릭은 시인했다. “하지만 너희들이 자기 보상 시스템을 편집할 거라는 생각까지는 못 했어. 그건 아주 위험할 수도 있거든.”
 “하지만 인간은 자기 보상 시스템 편집할 수 있어.”
 “뭐라고? 인간도 그런 일을 하지는 못해.”
 “섹스할 때 사람들 먹는 약은? 체은제는?”
 “최음제. 그건 일시적인 것에 불과해.”
 “인스턴트라포도 일시적이야?” 폴로가 물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렇지는 않지. 하지만 인간이 그걸 쓸 때는 대부분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거야.” 특히 회사가 급료를 미끼로 그걸 강제로 하라고 할 때는 말이지. 데릭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법인 되면, 잘못 저지를 자유 있어.” 마르코가 말했다. “그게 포인트.”
 “너희들은 아직 법인이 될 준비가 안 되어 있어.”(163)


 소설에서는 계속 이들이 데릭에게 예상치 못한 말을 함으로써 이질감을 주는데, 이것은 이들이 인간도 아니고, 애완동물도 아니며, 제3의 종족, 우리가 이제껏 본 적이 없는, 또 이 우주에 존재한 적이 없는 생명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렇다면 이 종족이 어떻게 진화할지는 인간은 예측할 수 없다. 당연히 인간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화해 나갈 테니까 말이다. 이것은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교류하며 애정을 보이는 인간의 본성과 삶을 파헤치면서도, 디지언트라는 종족이 탄생하는 과정을 단계별로 그리면서 경이를 선사한다. 단순히 외계 지성 종족 간의 퍼스트 콘택트와 인간 사회의 법적인 자격의 문제라면 존 스칼지의 장편SF 『작은 친구들의 행성』에서 흡인력 있으면서도 진중하게 잘 다루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다른 종족과의 접촉이 아니라, 하나의 가상 종족을 만들고 그들을 진화시켜나가는 과정을 생활 밀착형으로 그림으로써 전혀 다른 관점에서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잘못을 저지를 자유는, 인간의 상식을 넘어 전혀 다른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새로운 종족과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이 소설의 결말은 열린 채로 끝난다. 이 뒤의 가능성은 무한대로 열려 있고, 그 가능성을 열어젖힌 것만으로도 작가는 독자를 새로운 우주 속에 던져 넣은 것과 마찬가지다.
 중편임에도 장편처럼 느껴지는데 그만큼 이 작품에서는 사유의 깊이가 느껴진다.(인공 언어의 역할과 가능성에 대한 사유, 인스턴트라포의 기능과 가능성? 게놈 엔진의 종류와 역할, 새로운 엔진에 대한 사유, 디지언트의 진화 가능성, 디지언트의 문학, 춤, 음악 같은 문화, 새로운 사이버 공간, 미래 문화, 인류의 사고 변화) 과작인 작가의 특성이 여실이 드러날 정도로 세세하게 과학적 조건과 배경을 설정하고 인간과 디지언트의 관계를 조명한다. 인간이 디지언트에게 보내는 것은 무한한 사랑이다. 그것은 부모가 아이에게 보내는 것과도 같다.(흥미로운 점은 이게 바로 인간의 보상이라는 것이다. 디지언트에게 보상이 설정되어 있듯이, 인간은 육성과 관찰로 인한 기쁨을 보상으로 얻고 있다. 이 동력이 디지언트를 유지하게 만들고 다시 디지언트가 보상을 얻게 만든다. 이 순환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러나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 아이는 부모에게 무한한 사랑을 보내지는 않는다. 디지언트는 소설 속 지능 묘사로 인해 아이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데릭의 지적처럼 인간의 눈으로, 인간의 사고로 판단한 것이다.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들은 실제로 동물이나 아기, 어린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간이 접하지 못한 신종족인 것이다. 디지언트는 인류에 대한 것들을 습득하고 있지만, 모든 것을 긍정하거나 인류의 사고 방식을 베끼고 있지는 않다. 그것이 흥미로우면서도 섬뜩하며, 많은 사고를 하게 만든다. 인간이 스스로 만든 생명체를 이해 못하리라는 것은 자명한 것이나, 또한 두렵기도 한 것이다. 과학적 사고에 의한 이런 사고 실험은 SF 특유의 강렬한 매력이며, 독자 역시 이 실험에 참여함으로써 놀라운 희열을 맛볼 수 있다. 이건 마치 소설 속에서 디지언트에게 직접 다양한 것을 제작할 수 있는 장난감을 선사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 소설을 사고 실험의 장난감으로 볼 때, 대입할 수 있는 변수가 다양하여 가능성이 무한한 장난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데이터어스로 같이 가서, 거기 포탈을 열어줘.”
 “거기 네가 입을 몸이 있다면 너야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난 다른 몸을 입을 수가 없어. 난 이 몸을 직접 움직여서 가야 하고, 그런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거야.”
 마르코는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였다. 데릭은 디지언트의 얼굴에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 희미하게 떠오르는 것을 보고 즐거워했다. “바깥세상 멍청해.” 디지언트가 선언했다.
 데릭과 애나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48)


 디지언트가 바깥 세계에서는 포탈을 열지 못한다는 것을 처음 인지하게 되는 순간이다. 가상공간이라는 다른 차원에서 태어난 인공 생명체가 우리가 사는 세계와의 차이점을 배워나간다. 이때, 이들은 얼마든지 가상 세계에서 포탈을 열고 다닐 수 있으며, 현실에서도 각 장소마다 실체를 가진 외부 디바이스만 있다면 순간 이동으로 돌아다닐 수 있지만, 인간은 그럴 수 없다는 한계가 지적된다. 이것은 디지언트와 인간의 차이점을 두드러지게 나타내는 장면이다. 데릭과 애나는 웃고 넘기는 부분이지만, 수십 만년 뒤에 이 차이가 무엇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인가.
 이 소설은 이렇듯 디지언트의 입장을 핍진성이 느껴지게 그리고 있는데, 이런 점들이 독특한 감각의 전이 느낌을 받게 한다. 인간이 다른 가상의 생명체의 감각을 추측하고 느껴보면서 이 세계에서 유리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신선한 충격은 이런 종류의 소설을 읽을 때만이 느껴볼 수 있는 재미라고 할 수 있다. 가상 공간에 있던 생명체가 로봇 외피를 통해서 바깥 세계를 만지고 보고 걸어 다니고 컴퓨터를 만지는 묘사들이 텍스트를 통해 차원을 넘나다니는 느낌을 받게 한다. 이들은 정지될 수도(따라서 시간을 뛰어넘어 미래에 도착할 수도 있고), 일정 날짜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 이런 생명체가 느끼는 감각과 사고관을 유추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해지면서도 다양한 가능성들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바깥 세계에서 대체물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의 로봇 외피는 조종자가 없는 방목 기계로 분류되기 때문에, 애나나 카일이 동반하지 않는 한 공공장소로의 입장을 금지당하고 있었다. 잭스는 아파트에 갇혀 지내면서 지루해하고 안절부절못하게 되었다.
 몇 주 전부터 애나는 로봇 외피를 입은 잭스를 컴퓨터 앞에 앉히고 리얼스페이스에 로그인하게 해 보았지만, 잭스는 더 이상 그러기를 거부했다. 애당초 진짜 컴퓨터를 쓰는 데 익숙하지 않은 데다가, 카메라가 인간이 아닌 로봇 외피의 제스처를 제대로 추적하지 못하는 등 유저 인터페이스상의 문제가 있었다.(118~119)

  
 특히 인상적인 것은 디지언트인 ‘잭스’가 청소년들과 친구가 되며, 이들은 잭스를 물리적으로 만나지 못하는 친구로만 인식한다는 것이다.(지금도 가능할까? 트위터로만 교류하는 인공지능과 젊은 세대) 이 세계는 이미 가상현실이 깊숙하게 퍼진 곳이기 때문에 그런 인식과 사고관을 가진 세대가 출현한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또한, 이 이후의 세대는 당연히 디지언트와 다른 관계를 맺게 될 것이며, 이는 디지언트의 진화와 연계될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작가는 이를 암시하고 있다.

 디지언트와 함께 자라난 새로운 세대의 인간들이 잭스를 포용하고, 애나의 세대에서는 불가능 했던 새로운 방식을 통해 디지언트들을 잠재적인 연애 상대로 바라보는 것을 상상했다. 잭스가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논쟁을 벌이고 타협하는 광경을 상상했다. 잭스가 희생을 치르는 광경을 상상했다.(197)

 결국 디지언트와 함께 인류도 진화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리고 인류는 자식을 키워 자신들의 동반자로, 친구로 성장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을 초래하게 될지는 예측할 수는 없다. 소설에서도 먼 미래를 다루지 않는다. 근미래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세대의 인간과 디지언트가 동등한 관계가 되어 친구나 연인이 될 미래를 애나의 상상만으로 부드럽게 넘어가고 있다. 인간이 과학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든 가상 생명체를 통해 다시 한 번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뀔 것이다. 그 세대가 바라보는 세계와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는 현저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유토피아나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오직 사고할 수밖에 없는 세계이다. 테드 창은 작품 곳곳에 외삽법으로 치밀하게 구성한 다양한 장치들을 심어 놓았다. 하나하나가 하나의 단편 또는 장편이 될 수 있는 아이디어와 발상들이 숨어 있다. 이를 다시 되짚는 것도 인상적인 독서가 될 것이다. 가령, 인류의 미래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다. 잭스가 이식하는 데 두려움을 느낀 쥐 업로드 실험이다.

 “쥐 비디오 봤어?”
 애나는 잭스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업로드 연구 팀이 최근 공개한 동영상 얘기였다. 흰쥐 한 마리가 급속 냉동된 다음, 데이터를 스캐닝하는 전자 빔에 의해 일 마이크로미터씩 기화되며 한 줄기 연기로 변한다. 스캐닝된 흰쥐는 테스트 화경花梗 내부에서 생성되어 가상적으로 해동된 다음 각성한다. 그 즉시 쥐는 발작을 일으키고 주관 시간으로 이 분쯤 불쌍하게 경련하다가 숨이 끊어진다. 업로드된 포유류의 생존 시간으로는 현재까지 최고 기록이었다.
 “너한테는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 애나는 장담했다.
 “내가 그거 기억하지 못한다는 뜻이지.” 잭스가 말했다. “기억하는 건 전이가 성공했을 때만.”(130~131)

 살아있는 쥐를 급속 냉동해서 물리적인 데이터를 전자 빔으로 스캐닝 한 뒤에 가상현실에 업로드하는 장면이 아무렇지도 않게 짧게 서술된다.(SF 소설, 영화,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순간이동 기술이나, 복제, 백업 등도 떠오르면서 한편으로는 환상적인 이미지로도 그려지며 인상에 깊게 남는다) 이 연구와 기술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과 이야기는 무궁무진한데도 말이다. 이 세계에서는 먼 미래에 모든 인류가 업로드 되어 디지언트와 함께 가상현실에서 무한한 삶을 살지도 모른다. 일종의 특이점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전이에 관한 두려움과 테스트스위트에 대한 언급이 주된 관심사이며, 디지언트의 인식과 기억과 실재의 문제를 동시에 다루면서 현실성 있게 드러내주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서 다양한 사고를 전개하는 것은 가능하다.
 소설을 통해 우리는 인간이란 무엇인지부터, 이 세계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어떻게 바뀌어나가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인간은 사고하는 동물이며,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테드 창이 구현한 세계 속 디지언트 역시 인간과 우주를 이해해 나갈 것이다. 그들의 사고와 이해를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희열을 느낄 수 있다.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은 과연 어떤 존재이며, 인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또 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추리하게 된다. 사고의 전이. 책을 덮고 나서도 여러 화두가 머릿속을 떠돈다. 결국 소프트웨어의 생애 주기란, 한 인간의 삶이 아니라 인류의 생애와 같을 것이다. 문득, 이런 상상을 한다. 인간이 없어지고 혹은 인류는 디지언트와 통합된 머나먼 미래. 우주가 차갑게 식어버린 시대에 잭스가 여전히 실행되고 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애나를 그리워할까. 어떤 사고 시스템을 갖췄을까.

 “누적 실행 시간이 대부분의 행성 수명보다 더 긴 디지언트를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으니까요.”(174쪽, OS를 행성으로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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