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일대종사

2013.08.23 09:19

menaceT 조회 수:3611

 

 

http://blog.naver.com/cerclerouge/40195692332

 

一代宗師 (2012)

 

8월 22일, CGV 신촌아트레온.

 

(스포일러)

 

  오프닝 크레딧이 지나면, 영화는 엽문이 빗속에서 펼치는 일대다 액션 시퀀스로 그 시작을 알린다. 이 시퀀스에서는 슬로우모션이 빈번하게 등장하지만, 느려지는 그 순간마다 화면을 가득 메우는 것은 대부분 맞부딪치는 살과 뼈의 모습들이 아니라 고인 빗물이 격투 중의 충격으로 방울져 튀어오르는 모습들이다. 비는 끝없이 내리고 바닥 혹은 몸에 부딪친 빗물 방울들이 다시 튀어오르는, 정적인 것들이 부르르 떨며 요동치는 순간들을, 왕가위는 엽문의 영춘권 동작들 못지 않게 중시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핵심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영화에는 세 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영춘권의 엽문, 궁가 64수의 궁이, 팔극권의 일선천이 그 세 명이다. 영화 내에서 가장 비중이 큰 인물은 아무래도 엽문이다. 비록 철저히 자신의 이야기 안에만 머물며 타인의 이야기에는 끼어드는 법이 없지만, 어찌 되었든 엽문의 나레이션이 영화 내내 적잖이 등장하는 것만 보아도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한 편, 궁이와 일선천은 이 엽문이란 캐릭터에게 있어 어떤 길을 제시하기 위해, 다시 말해, 왕가위가 엽문이라는 과거 속 인물을 굳이 현실로 끌어오는 과정에 있어 그 고여 있는, 박제된 시간과 공간과 인물을 부르르 떨며 요동치도록 하기 위해 끌어온 인물이라 볼 수 있다(동사서독에서,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이야기를 지배하는 위치에서 장국영이 물러나고 다른 인물들이 등장함으로써 이야기의 시간축 자체를 뒤틀고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뻗어나가도록 했던 점과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바가 있다.).

 

  작중에서 엽문의 이야기는 전쟁으로 두 딸을 잃는 시점까지는 다른 인물에 크게 방해받는 일 없이 이어진다. 당연히 그때까지는 엽문의 나레이션도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이때까지 전개되는 엽문의 이야기는 작중에서 두 장의 사진으로 요약된다. 일련의 테스트를 거쳐 궁가의 고수에게 인정받은 뒤 여타 고수들과 함께 찍는 단체 사진, 그리고 가족 사진.

 

  전자의 사진으로 요약되는 이야기 덩어리부터 보자. 엽문은 실력을 인정받기 위해 처음에는 팔괘권 고수, 그 뒤에는 형의권 고수, 뒤이어서 그 두 권법을 비롯해 여러 권법을 혼합해 사용하는 고수와 무공을 겨룬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궁가를 이끌며 팔괘권과 형의권을 결합하고 궁가 64수를 창시한 고수와 맞붙는데 이때 그 고수는 오히려 엽문에게 '생각'으로 대련할 것을 제의한다. 궁가 64수의 축을 이루는 각각의 무술, 그 뒤에는 혼합 무술로 엽문의 무도를 시험한 뒤, 최종적으로는 그 기반에 깔려 있는 정신을 들여다 보려 하는 이 시점에서, 그 고수는 무공은 남북으로 나뉘어 있으나 대륙을 남북으로 나눌 수 있느냐며 자기 손에 들린 전병을 찢을 수 있겠느냐 묻는다. 팔괘와 형의를 혼합한 것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켜가며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의 자세가 엿보인다. 그러나 엽문은 오히려 각각 다른 것들을 그 자체로 인정해야 된다는 태도로 그를 압도하더니 그의 전병을 찢어내고, 고수는 패배를 인정한다. 이러한 엽문의 태도는 궁가의 패배를 인정할 수 없어 바로 도전을 걸어 온 궁이와의 대련에서도 엿보인다. 그는 패배를 감수하면서 떨어지는 궁이를 붙잡고, 그 뒤엔 씩 웃어보이는 그런 사람이다. 그는 이러한 점을 인정받아 남부의 무림을 이끌 새로운 지도자 감으로 인정받으며, 그 기념으로 고수들은 단체 사진을 찍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 단체 사진을 보여주기 무섭게 그 사진이 급격히 빛이 바래고 훼손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족 사진의 경우는 어떠한가? 엽문의 아내는 말수가 적으며 엽문을 기다리며 켜 놓는 '등불'로 그 존재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엽문은 그녀의 발을 '물'로 씻겨준다. 등불과 물, 서로 대비되는 속성의 상징물들이 어우러지듯 그들은 그렇게 조화로운 가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가족 사진을 찍을 때,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이상한 느낌을 받도록 한다. 사진을 찍는 순간, 엽문과 아내와 딸은 서로 붙어 있지만 그들과 아들 사이에는 의자 하나의 빈 공간이 놓인다. 이상한 공백. 그런데 바로 뒤이어 그 결과물로 등장하는 사진에는 그 빈 의자라는 공백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며, 의도적으로 실제 그들의 과거와 사진으로 박제된 과거 사이의 연속성을 끊어버린다. 그리고 그 불안감을 확정짓듯 전쟁의 포화가 그 사진을 불태운다.

 

  순식간에 훼손된 단체 사진, 이상한 공백과 실제 과거와의 분리로 불안감을 품고 있더니 이내 불타버린 가족 사진. 이 두 사진이 그런 것처럼, 전쟁은 그 두 사진이 요약해 낸 엽문의 인생을 통째로 무화시킨다. 전쟁으로 그의 무공은 아무 쓸모가 없어져,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고산으로 향하던 그는 생활고라는 다른 의미의 고산에 가로막히고, 그의 두 딸의 죽음으로 그의 조화롭던 가정은 붕괴되고 만다. 떨어진 단추는 이를 다시 한 번 응축해 드러내는 상징물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영화는 엽문의 이야기(나레이션 역시)를 잠시 접어두고, 궁이와 일선천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옮겨온다.

 

  궁이는 자신의 아버지가 패배를 인정한 상대인 엽문에게 바로 다시 도전하는 데서 엿볼 수 있듯 자신의 가문에 집착하는 인물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엽문을 인정한 바와 같이 변화를 수용할 줄 알고, 일제에 순응한 마삼을 꾸짖은 것처럼 옳지 않은 변화에는 대항하려는 의지도 가졌으며, 마삼에게 그간 알려주지 않은 권법은 핵심이라며 일러준 바와 같이 과거를 반추하며 미래로 나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인물이다(물론 그런 그도 별 수 없이 시대에 도태되어 박제된 과거의 영역으로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이에 반해 궁이는 철저히 과거 그대로의 것들에 천착한다. 끝없이 '궁가의 것을 돌려받는' 데 집착하는 것이다. 때문에 아버지의 결정에 반해 엽문에게 도전하고, 또한 '복수하지 말라'던 아버지의 유언도 어기고 마삼에게 복수할 것을 다짐한다.

 

  일선천은 궁이와 두 번 마주치며 영화에 등장한다. 첫 만남에서는 피를 흘리며 쫓기는 그를 궁이가 감싸 보호해 준다. 두 번째 만남은 한 식당에서 이루어지는데, 일선천은 그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데 궁이는 예전에 그곳에서 팔던 메뉴가 더 이상 없음을 알고는 그곳을 떠난다. 이 두 장면에서 우리는 두 인물을 추상화해 볼 필요가 있다. 궁이는 '과거에의 천착'을 드러내는 인물임을 이미 확인한 바 있고, 일선천은 어떠한 사연도 언급되는 바 없이 궁이와의 두 번의 마주침으로만 등장한 상태이니 추상화가 더 용이할 것이다. 그럴 경우 우리는 일선천을 과거의 품에 의해 보호받아 살아남았으나, 과거에 천착하지 않고 나아가는(바뀐 메뉴에 적응하는) 인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엽문, 궁이, 일선천이 모두 홍콩이라는 공간에 모이는 후반부에서 우리는 궁이와 일선천이 엽문이라는 인물의 자장 아래서 상징하는 바를 더욱 명료히 알 수 있다.

 

  엽문은 전쟁 뒤 홍콩에서 도장의 사부가 되어, 앞서 첫 번째 사진이 훼손되어 버리고 그의 무공 역시 무용지물이 되었던 것과 반대로, 다시 자신의 무공을 바탕으로 삶을 꾸려나간다. 비록 가족이라는 또다른 축은 회복되지 않았으나(그 사진은 단순히 훼손된 것이 아니라 불타 버렸다.) 그는 마치 궁이의 아버지가 말한 그 비법처럼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미래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홍콩에서 엽문은 궁이와 재회하게 되는데, 이미 무도에 뜻을 접어버린 그녀는 엽문에게 자신의 10년 전의 복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화는 홍콩으로 무대를 옮겨오기 전에 이미 궁이가 복수를 다짐한 것까지 보여준 바 있으나 복수 자체는 보여주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10년의 세월을 지나 홍콩이라는 공간에서 그 복수를 '플래시백', '회상'의 형식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그녀의 복수 자체가 이미 박제되어 버린 과거에의 집착 때문이었음을 드러내는 장치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과거에 집착하는 궁이와 이제 곧 몰락할 일제라는 끈만을 붙잡고 있던 또다른 시대착오적 인물인 마삼은 눈 내리는 열차 플랫폼에서 결투를 벌인다. 엽문과 일선천의 핵심 액션 시퀀스인 일대다 액션 시퀀스가 모두 '물'의 영역에서 이루어진 반면, 이들의 액션은 '물이 이미 응고된 상태인 눈과 얼음'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이미 박제되어 버린 과거에, 혹은 그릇된 현재에 머무는 이들의 현실 인식을 그대로 형상화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옆으로 열차는 '달리고' 있는데, 그 자리에 서서 싸우는 두 인물은 서로를 달리는 열차에 밀침으로써 승리를 거두려 한다. 머물고자 하는 그 두 인물은 그처럼 앞으로 돌진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 할 수밖에 없다. 결국 궁이는 마삼을 열차로 밀쳐 승리를 거두고 '궁가의 것을 되찾는' 듯하나 자신도 피를 토하며 사실상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에 놓인다. 아마 그 뒤로 그녀는 무도의 길을 포기했을지 모른다.

 

  엽문은 자신이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로 나아가려 하는 것처럼 궁이 역시 궁가 64수와 더불어 그렇게 하기를 바라는 듯 실패한 과거의 흔적인 단추를 건네지만 궁이는 그것을 엽문에게 돌려준다. 무너져 가는 건물 간판을 바라보며 '무예도 결국 이런 것 아니냐' 물을 만큼 현실 혹은 미래에 있어 자신이 없는 궁이는, 아편에 취한 채 그저 자신의 유년 시절에만 머물 뿐이다. 그 회상 속에서만 그녀는 유일하게 자신의 목소리로 나레이션을 한다. 마치 그 안에서만 자신이 살아있을 수 있는 것처럼. 회상의 마지막 부분에 그녀는 자신이 남자아이가 아니었음을 한탄한다. 어쩌면 아버지에게 자신의 존재 증명을 하기 위해 그녀는 그토록 과거와 가문에 매달려 왔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는 홍콩에서 생을 마감한다(홍콩이 영국의 손으로 넘어가기까지의 과정에 있어 아편이 큰 역할을 했던 것을 고려하면, 아편에 취하고 홍콩과 본토 간 국경이 막히기 직전 사망한 궁이의 운명은 더더욱 아픈 과거로 향해 있는 듯해 서글프다.).

 

  이처럼 궁이는 철저히 과거에만 머무르는 인물로 그려짐으로써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나아가고자 하는 엽문의 이야기에 있어 커다란 하나의 축을 구성한다. 엽문은 궁이가 죽은 뒤 자신의 나레이션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나아가 그 뒤 자신의 아내와 한 약속에도 불구하고 다신 불산으로 향하지 않았다며 자신의 과거와 완벽하게 작별을 고한다. 엽문이 궁이에게 단추를 건넨 순간, 그리고 궁이가 엽문에게 연정을 품었음을 고백한 순간, 오랫동안 영화 내에 등장하지 않던 엽문의 아내의 상징적 자리는 이미 궁이에 의해 대체된 셈이었다. 따라서 궁이의 죽음 이후 엽문이 두 번의 연이은 나레이션을 통해 궁이와, 아내와 연이어 확실히 작별한 것은 과거를 돌아본 엽문이 이제 본격적으로 미래로 나아갈 준비를 마쳤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 과정이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으며 오히려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길임을 암시해 보인다. 그렇다면 영화 속 또다른 주요 인물인 일선천의 경우는 어떨까?

 

  일선천은 조직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직과 일대다 혈투를 벌이고 홍콩으로 향한다. 말 그대로의 '혈투'이다. 그는 빗속에서 일대다 결투를 벌인다는 점에서 과거로 향하는 궁이와는 차별되면서 동시에 엽문과 닮아 있다. 그러나 진짜 '피'가 튀는 혈투를 벌인다는 점에서 그는 궁이(궁이가 마삼과 결투를 벌이기 전, 궁이의 수행원 격인 남성이 마삼의 졸개들과 결투를 벌이는데, 이때 그 남성이 칼을 휘두르는데 졸개들의 몸에서 피가 튀는 대신 옷 속 솜 같은 것들이 흩날린다.), 엽문과 모두 다르다. 그 '피가 튀는' 시점에 있어선 가장 관객에게 그 정보가 덜 드러나 있음에도, 일선천이야말로 이 영화 안에서 가장 '살아있는' 존재처럼 보인다.

 

  한 편, 궁이의 경우 엽문과 몇 번의 교류가 있고 심지어 궁이가 죽은 뒤에도 엽문의 나레이션이 그녀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것과는 달리, 극중에서 엽문과 일선천은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으며 엽문의 나레이션 역시 일선천의 영역은 단 한 번도 침범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에 비추어 볼 때 특이한 점 이 있다. 일선천이 홍콩에 이르러 제자를 키우면서 팔극권을 전파하기 시작하는 시점에 일선천과 그 제자들이 사진을 찍는데, 영화의 결말에 이르면 엽문이 그와 비슷하게, 그러나 그보다 늦은 시점에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다.

 

  엽문이 이소룡임이 명확해 보이는 소년을 비롯해 여러 제자를 본격적으로 양성하기 시작하고 그들과 '사진을 찍는' 이 영화의 결말은, 엽문이 미래로 분명히 발돋움하기 시작하는 확증과도 같다. 영화 초중반의 두 장의 사진은 명백한 '과거'의 싸인이었던 반면, 이 사진은 분명 '미래'를 향해 있다. 그런데 이에 앞서, 그러니까 엽문의 두 가지 갈래의 과거와 미래 사이 시점에, 엽문의 미래를 예견하듯 유사한 상황에서 일선천이 또 한 장의 사진을 남긴 것이다. 이는 마치 일선천이 미리 미래에서 엽문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한 인상을 준다.

 

  '피'를 통해 가장 '살아있는' 존재로서 그 위치를 점하고 엽문의 '미래'에 미리 도달해 기다리는 일선천은, 과거의 축을 이루는 궁이와 정반대의 위치인, 가장 살아있는 시간으로서의 미래에서 엽문의 이야기의 또다른 축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다가올 시간이기에 이를 향해 다가가고 있는 엽문과는 소통할 수 없고, 다만 또다른 축은 '과거'와만 소통할 수 있었다. 궁이의 아버지의 비기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미래는 과거를 돌아보아야만 이를 수 있기에, '미래'로서의 일선천은 '과거'로서의 궁이의 품에서 보호되며 그녀와만 소통하고 결국 그녀와 다른 길로 향해 그곳에서 그 비기대로 행한 엽문을 기다린 것이다.

 

  이처럼 영화는 과거와 미래를 상징하는 두 인물로 축을 이룬 뒤, 두 장의 과거의 사진, 그리고 두 장의 미래의 사진으로 짜여진 구성 아래에서 엽문이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해 내는 과정을 담아낸다. 그리고 영화는 그 마무리를, 중국이란 뿌리를 지녔으나 동시에 무국적의 성격도 품어야 했던, 때문에 뿌리를 그리워 하게 만드는 과거와 조금은 불안한 미래를 함께 품고 있던,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 혼합적인 느낌을 주는 당시의 홍콩에서 이루어냄으로써 (이 선택이 의도적이었든 아니었든) 이야기의 매력을 한 층 더 살리고 있다. 왕가위는 늘 홍콩으로 대표되는 공간의 문제와 시간의 문제를 영화 안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곤 했다. 이 영화 역시 홍콩이라는 공간을 완벽히 이야기 안에 녹여내는 한 편, 인물들을 시간으로 치환시키며 이야기를 구성했던 '동사서독'을 연상시키는 구성으로써 그 자신의 시간에 대한 관심도 담아냈으니, 왕가위의 향취도 분명 살아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뒤에, 이 영화는 어딘가 찜찜한 구석을 남긴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이 영화의 조금은 부족한 완성도를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기존에 네 시간 분량으로 나온 편집본을 다시 왕가위 자신이 두 시간 분량으로 줄인 것이다. 그 재편집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던 것인지, 아니면 네 시간 분량이 이 영화가 온전한 형태를 갖출 수 있는 최소한의 분량이기라도 했던 것인지 몰라도, 영화는 군데군데 이가 빠진 것처럼 미완성의 느낌을 준다. 이 영화를 그럭저럭 재미있게 본 나 역시 이 영화를 왕가위의 필모에서 상위권에 두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영화가 마지막에 품는 그 불안은 그와는 별개의 원인에서 일부 기인한 듯 보인다. 나는 그 불안을 크레딧이 조금 흐른 뒤 사족처럼 따라붙는 장면에서 극대화되는 것을 느꼈다. 영화는 엽문이 이르게 된 미래를 완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끝내더니, 잠깐의 크레딧 이후 엽문의 다양한 액션들을 엽문의 들뜬 대사, 과시적인 클로즈업과 함께 얼기설기 빠르게 묶어 제시하고는 '너는 어느 문파냐?'고 엽문이 관객을 향해 질문하도록 한다. 엽문의 이야기를 그대로 영화 밖의 현재로 이어놓으려 하는 듯한 이 사족은, 그 질이 본편에 비해 졸렬해 보이기까지 하며 그 안의 엽문도 본편의 그 엽문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경박스러워 보인다. 왕가위는 왜 굳이 이러한 사족을 넣어야만 했는가?

 

  중국이 다시 중화를 부르짖으며 지금은 박제되어 버린 과거의 찬란했던 흔적들을 애써 복기하려 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러오고 있다. 중국의 영화판도 예외에는 아니었는데, 첸카이거나 장이모우 등이 그 기치 아래 변절에 가까운 시대극들을 찍어낸 뒤, 바로 그 지점에 불려 온 과거의 영웅이 바로 '엽문'이었다. 2013년 현재까지 엽문을 소재로 중국에서 얼마나 많은 영화들을 만들어 냈는가? 왕가위의 이 신작은 이미 엽문 열풍이 휩쓸고 지나간 그 자리에 조금은 뒤늦게 엽문의 이름을 호명하며 등장했다.

 

  왕가위는 영화의 시작과 끝 부분에 '수직과 수평'을 강조하는 엽문의 대사를 등장시킨다. 쓰러진 자들이 수평을 이룰 때 수직으로 서는 것이 무예의 핵심이라는 것, 즉, '실존'의 문제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영화가 끝난 뒤 화면을 메우는, 이소룡이 남긴 격언 역시 비슷한 점을 지적한다. 때문에 이 영화는 기존의 엽문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각도로 그를 조명하는 영화인 듯 보인다. 실제로 영화 본편의 내용은, 자신이 지탱해 오던 과거의 삶이 통째로 무너진 시점, 본토로부터 유리된 '홍콩'이라는 공간에서, 시대의 흐름 아래 점차 퇴색해 가는 무예라는 소재를 빌어, 머무는 자와 미리 나아가 기다리는 자, 이를 관통하는 자의 이야기를 통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그런데 결말 부분과 그 사족에 이르면, 이 영화가 엽문을 단순히 한 명의 인간으로 바라보며 무예와 실존의 문제를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향하는 미래를 중국의 현재와 연결지음으로써, 위대했던 중국의 과거를 애써 복원하려 발버둥치는 듯한, 중화의 기치 아래 불려나온 기존 영화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태도가 물씬 묻어나오는 것이다. 이 영화는 엽문의 이야기야말로 현재의 중국이 '돌아보아야' 할 바로 그 지점의 과거라 보고 있다는 말인가?(그렇지만 엽문이 관객에게 '너는 어느 문파냐?'라며 현재형으로 질문할 때, 이는 오히려 현재의 중국을 과거에 천착하도록 하는, 오히려 극중 궁이와 비슷한 태도로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의 태도는 그렇게 확언하기에도 묘한 구석이 있다.

 

  영화는 엽문의 미래를 엽문과 일선천의 두 장의 사진으로 묶어낸다. 하지만 영화는 이미 과거를 다룬 두 장의 사진을 훼손시킨 바 있다. 영화는 엽문의 미래 역시도 그와 같은 '사진'이라는 도구 아래 가두어 두었다.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던 그 미래가 어쩌면 그 순간 다시 '박제화'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는 영화 속에서 다루는 엽문의 과거, 현재, 미래가 영화 밖 현재의 시점에 이르면 결국 모두 과거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더욱 '박제'의 느낌을 준다. 또한 영화가 결말부에 이르러 궁이의 죽음 이후 엽문의 두 번의 나레이션으로 그를 급하게 그의 과거와 격리시킬 때, 그리고 바로 뒤이어 그를 급하게 사진 아래서 미래와 손잡게 할 때, 나아가 그 사족을 너무나도 성의 없는 편집으로 제시할 때, 왕가위는 이 영화에서 엽문이 향한 미래와 영화 밖의 현실을 연결시키려는 표면적인 의지(이 과거에 머무르려는 영화 속 궁이의 의지)와 둘을 절연시키려는 듯한 내적인 의지(이 과거에 천착하지 않고 앞을 보아야 한다는 영화 속 엽문과 일선천의 의지) 사이에서 갈등하는 듯 보이기까지 한다.

 

  전체적으로 미완성에 가까운 영화의 만듦새와 더불어 마지막에 격렬히 부딪히는 이 혼란스러운 태도는, 이 영화가 품고 있는 매력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영화에 대해 무어라 확언하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조금은 어정쩡하게 끝나버린 이 감상은 언젠가 이 영화의 완전판을 보게 되는 날 보충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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