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인베이젼 (world invasion : Battlefield L.A.)

 

 
 

조나단 리브스만

 

앞서 개봉한 영화 '스카이라인'과 얽힌 가십, 인상적인 예고편 그리고 아론 에크하트, 미셸 로드리게즈라는 캐스팅 때문에 기다려오던 영화를 개봉일 관람했다.

 

1942년 LA UFO공습 사건에서 착안했다는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해병대 교관으로서 수많은 전장을 거쳐왔지만 마지막 파병에서 (아마도 이라크인듯) 부하들이 전멸한 가운데 홀로 살아남은 마이클 낸츠 하사는 20년 근속을 채운 시점에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해병으로서 유통기한이 지났다면 전역을 신청한다. 그리고 바로 그때에 맞추어 다수의 유성이 세계 주요도시 인근 해안으로 떨어지기 시작하고 뒤늦게야 그것이 유성이 아닌 지구를 침략하려는 외계종족의 강습부대란 사실이 밝혀진다. LA 해안 지역 주민들의 대피와 저지선 구축 임무를 맡은 낸츠하사의 부대, 전역신청서류절차를 끝냈음에도 랜츠 하사는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인력으로 징집된다. 그가 속한 소대의 지휘관은 이제 갓 임관한 ROTC출신 소위, 게다가 지난번 파병에서 전사한 낸츠의 부대원중 하나가 자신의 친동생인 병사도 있다. 이들은 민간인이 대피해 있는 것으로 파악된 경찰서 건물까지 진입해 3시간 후로 예정된 대규모 폭격 이전에 피폭지역에서 벗어나야 한다.

 

영화에 대한 간단한 정보와 예고편 만으로 예상한 건 인디펜던스 데이나 우주전쟁 같은 영화였다. 그리고 예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일단 외계인 나오는 SF영화를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사람들은 어떤 부분에선 적잖이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기본적인 스토리 얼개는 기존의 외계침략물을 따르지만 (대규모 공습 - 절망적인 상황 - 영웅의 활약 - 대역전) 그 중에서도  '전투'라는 부분에 그보다 더 방점을 찍음으로서 이전 작들과는 차별화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소리야. 외계인 침공인데 당연히 전투를 하지라는 반문을 한다면 여기에 '사실적인 전투 묘사'라는 첨언을 해야겠다. 이야기의 중심엔 해병대 소대가 있고 외계공습 이후 전투를 준비하고 전선에 투입되는 모습은 소소한 부분까지 상당히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미군은 커녕 한국 해병대도 구경한 적 없는 공군 보급병과로서 얼마나 현실에 충실한 지는 모르겠지만 보기엔 그럴듯 하더란 이야기다) 이전 영화에서의 군인들이 외계인들에게 당하는 멍청한 조직이나 아니면 관료주의나 전체주의의 상징적인 모습으로 우르르 몰려나와 무작정 불꽃놀이 벌이는 단편적인 모습으로 보여졌다면 이 영화에서의 군인들 그리고 그들이 벌이는 전투의 모습은 외계인이란 적의 모습만 다를 뿐. '블랙 호크 다운'이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 '밴드 오브 브라더스' '허트 로커'같은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정말 외계인이 침공해 온다면 어떤 식의 전투가 벌어질까?'라는 질문에 지금 시점에서 가장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까? 극적 긴장과 재미를 위한 설정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적절한 정도로 조율되고 전술이나 장비, 소소하 대사들에도 '그럴듯함'을 부여하기 위한 노력의 흔적들이 보인다.

 

탈출의 순간 다시 적진으로 뛰어드는 낸츠 하사와 그를 따르는 부하들이라던가 대역전을 이루고 나서 귀환하자마자 다시 적들을 조지겠다며 (아침은 이미 먹었당게롱) 탄약을 채우는 모습 등은 80년대 반공영화를 보는 것 같아 오글거렸지만 장교, 부사관, 병사들 간의 갈등구조. 영웅적인 행동을 벌이고서도 덜덜 떠는 손을 제어하지 못하는 군인, 뛰어난 전투력을 보이다가 어느 순간 너무도 허무하게 죽어버리는 병사의 모습 그리고 후반부 갈등이 해소되는 낸츠 하사의 '군번 외우기' 장면 같은 것들은 인상적이다.

 

 

베테랑 상관인 낸츠는 백인이지만 경력이 길지 않은 (최근에 입대했을) 병사들은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계 이민자들이다. 물론 극의 주인공은 낸츠지만 처음 소대를 이끈 지휘관은 남미계의 신임 소위다. 애국을 위해 또는 사회적 책임을 위한 자원보다는 급여나 시민권 같은 보다 현실적인 목적으로 군을 선택한 자원들의 비중이 높아진 현대의 미군 인력 상황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니 전체적으로 보자면 이제 미국을 구할 영웅은 시민권 획득을 위해 입대한 유색인 이민자들이다. (하긴 따지고 보면 미국 건국의 영웅들입네 하는 사람도 다들 이민족이긴 하다)

 

 

전투 중 '나 탄약 떨어졌어!'를 가장 많이 외치는 건 미셸 로드리게즈가 연기한 엘레나 산토스 하사다. 작전 중 합류한 생존병으로 공군 기술하사 (technical sergeant)인 그녀가 그런 대사를 자주 외치는 것도 아마 설정일 것이다. 맨날 천날 전투훈련만 하고 특등사수도 많은 해병들은 그만큼 적은 탄약으로도 적을 명중시키지만 전투병과가 아닌 산토스는 거기다 성격만큼은 화끈해서 탄소모가 많을 것이 확연히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는 중간에 합류했고 전투가 아닌 정찰,정보 수집 임무였기 때문에 초기지급탄약량도 적었을 것이다.

 

외계인들의 장비도 다른 영화와는 차별된다. 보통 이 정도 스케일의 영화에 나오는 외계인들이라면 보통 어마무시하고 그 구조를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무기들을 휘둘러대기 마련인데(광선무기나 나노테크놀러지 같은...) 이 영화에 나오는 외계인들의 화력은 비교적 소박하다. 이 역시 실감나는 전투 묘사를 위해서일 것이다. 소규모의 국지전에서 양방간 화력 차이가 너무 나면 전투가 아니라 학살이다. 드론 전투정 역시 필요 이상의 오버테크놀러지가 아니라 근래 보이는 개인비행장치들의 컨셉을 확장한 느낌이다.

외계인이나 그들이 다루는 장비의 디자인도 모두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다. 문제가 되었던 스카이라인의 영향도 있겠지만 비단 그 때문은 아니다. 외계인 병사들은 헬보이의 이빨요정, 그들의 콘트롤 타워나 휴대 무기는 디스트릭트9의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식이다. 외계의 것이라는 그럴듯함과 동시에 어디선가 본 듯 익숙한 느낌을 줌으로서 SF적 설정과 밀리터리적 성격의 줄타기를 하기 위해서였을까?

 

아직도 이런 영화를 보면 미국만세라며 험담하는 시선들이 넷상엔 많은 것 같다. 이게 난 불만이다. 미국에서 제작한 영화의 배경이 미국인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고 그럴 경우 자연스럽게 미국의 힘으로 침략자를 물리칠 수 밖에 없다. 그들이 주인공이 된 이상 일반적 서사구조를 따르는 상업영화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그러니까 대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도) 그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만세 문제라고 투덜거리는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려면 외계인에게 떡이 되도록 두드려 맞은 미국을 멕시코 특공대가 구해주고 막판에 라디오 방송으로 '중국애들이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따라하세요...'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얘긴데... 뭐 웃기긴 하겠다.

만약 한국에서 이런 영화 만들었다면 뭐라고 그럴까. 한국 만세? 배달의 기수? 아님 허접 국군 병력으로 무슨 외계인과 전투냐.. 미군이 도와주러 와야지? (잠깐 이거야 말로 미국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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