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BBC Sherlock 2, 7-1, 7-2.

2012.02.04 13:04

lonegunman 조회 수: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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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전주곡 prelude


어느 것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이 어느덧 내 의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존 왓슨 (마지막 문제)



기다리는 사람은 없지만 제 혼자 돌아온 BBC 셜록 리뷰입니다. 작성하기 전 복기해보니, 지난 시즌1의 리뷰는 원전과 헐리웃판 셜록 홈즈와의 비교로 시작했더군요. 시즌2를 이야기함에 있어 그 비교대상이 원전과 시즌1이 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 겁니다. 이유랄 게 있겠습니까. 지난 리뷰에도 썼듯 융통성없는 원전팬으로서 헐리웃판 1편을 보며 참기 힘들었습니다. 그런 고로, 안티질하느라 헐리웃판 그림자 게임을 안 봤거든요. (꽤 재미있게 뽑혀져 나왔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조금은 궁금하더군요. 보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이 얼마나 비뚤어진 팬심입니까!)


시즌1은 광범위하고도 정확한 - 어거지로 갖다 붙이자면 어느 씬이든 그에 대응하는 원전의 씬을 찾아낼 수 있을 정도의 - 원전 인용을 통해 큰 반발없이, 아니 거의 환영의 수준으로 원전 팬들을 포섭하는데 성공한 작품이었습니다. 지난 리뷰에서도 강조했지만, 마치 원전의 글자들이 눈 앞에 살아 움직이는 듯이 정확하고 섬세하게 연기되고 연출된 셜록 홈즈의 캐릭터는 다시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런데 하물며 캐릭터 해석에 있어서 가장 칭찬하고 싶었던 부분은 셜록 홈즈가 아닌 존 왓슨이었습니다. 셜록 홈즈의 뛰어남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심지어 우스꽝스러워 보이리만치 어리석고 순진하게 묘사해온 무수한 판본들의 전례를 따르지 않고, 현명하고 선량하며 진중하게- 아마도 원전과 조금 더 가깝게 톤다운 시킨 존 왓슨의 캐릭터는 성공, 성공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그 '어리석고 순진한' 캐릭터에 딱 들어맞는 마틴 프리먼을 캐스팅하고도 많은 리메이크작들이 범한 오류-어리석은 왓슨-를 따르지 않았다는 건 참으로 대단하고 대담하지 않느냔 말입니다.


스토리를 엮어가는 씬들을 원전에서 광범위하게 차용해왔듯, 정확하고 재치있게 업데이트된 소품과 설정들, 등장 인물들은 원전 팬들에게 다양한 즐길거리를 선사해주었지요. 무수한 대조와 비교, 발견과 발굴이 이어지며 1년이 넘는 시즌과 시즌 사이의 공백기조차 공백기가 아닐만큼 팬덤의 온도도 식을 줄을 몰랐습니다. 원전의 단순한 리메이크가 아닌 현대판이라는 사소한 설정이 낳은, 그 한 꺼풀 포장을 벗겨내는 재미라는 게 얼마나 무시하지 못할 저력을 가지고 있는지가 저절로 증명이 되고도 남을 시간이었습니다. 하운드는 차치하고라도, 더 우먼과 모리아티가 등장하는- 셜록 홈즈 최대의 사건들이 한꺼번에 실린 시즌2라니. 관전 포인트 역시 그 안에서 원전이 얼마나 깨알같이, 충실히 인용되고 패러디되고 업데이트될 것인가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또한 예상치 못하게도 시즌2는 시즌1과 노선을 달리하는 듯 보입니다. 원전의 충실한 하이퍼텍스트 역할을 했던 것은 명백한 시즌1의 성공 비결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즌2는 원전의 패러디, 주석, 팬덤을 이리저리 들쑤시며 원전 안에 없는, 혹은 원전으로부터 파생된 세계로 발을 옮기고, 그 결과 때로는 원전을 배반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것이 방향의 전환인지 세계의 확장인지는 시청자 각각의 판단이 될 것입니다. 저는 기분이 좋을 때는 BBC 셜록 세계관의 확장이라고, 수틀릴 때는 방향의 전환이라고 주장할 생각이라 여기서 미리 결론을 내진 않겠습니다


좀 더 작품 안으로 들어가보면 그러한 확장 혹은 전환이 조금 더 명백해집니다. 귀추법을 전면에 내세운 채 이미 벌어진 사건 주변을 돌며 두뇌로 사건의 전말을 밝히고 그 끝에 범인을 드러내던 시즌1의 추리 방식 역시 단순히 고수되진 않지요. 추리와 사건 해결의 과정은 셜록과 주변 인물들에게 좀 더 사적으로 파고들어, 좀 더 계략을 필요로 하며, 그 결과 좀 더 적극적인 방식의 해법으로 확장되고 변형됩니다. 대략적으로 그러한데, 자세한 얘기는 역시 차후에 더 하게 될 겁니다. 


인물 묘사 역시 시즌1의 성공 비법을 답습하지 않고, 배우들을 감싸고 있던 원전의 활자와 기호들을 조금씩 털어내고 있는 듯 합니다. 순간순간 어라? 싶은 캐릭터의 변화나 재해석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지요. 심지어 재창조되거나 아예 새로 창조된 캐릭터조차 눈에 띌 정도입니다.


그러니 무어라 하겠습니까. 시즌2는 확실히 제작진의 모험입니다. 뉘앙스를 달리한다면, 욕심이라고 표현해도 좋겠지요. 원전의 충성스런 팬을 자청하고 딱 그만큼의 포지션을 고수하던 시즌1때의 태도를 거의 배반한다고 말해도 좋을만큼, 참으로 야심만만한 작품을 들고 나온 것입니다. 


그러한 야심은 단지 내러티브와 설정, 해석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연출, 카메라웍, 타이포그라피, 음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그야말로 야심만만할 따름입니다. 무성영화나 고전극에서처럼 화면 뒤에 흐르며 장면 전환과 캐릭터의 심경 변화를 반영하며 유영하는 스코어 음악은 시즌1때처럼 튼튼하게 극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시즌1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요소 중 하나였던, 거의 극 전반에 걸쳐 흐르는 이 BBC 오케스트라의 절묘한 스코어는 (때로는 지나치리만큼) 말초적인 영상 연출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주며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지요. 그 고전적인 스코어 사이사이로 인용된 팝, 클래식의 활용은 시즌1 때 시도되지 않은 새로운 방식으로 극의 분위기를 환기시킵니다. 


카메라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극단적인 클로즈업에서 멀찌감치 풍광을 훑는 부감숏으로 예고없이 휙휙 도약합니다. 시리즈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타이포그라피의 활용은 한층 더 대담하고 빈번해졌습니다. 주인공들이 221B에 머무는 시간은 점점 더 짧아지고 극은 영국의 곳곳을 누비며 무수한 풍경과 색채를 담습니다. 거기에 거의 구겨넣다시피 한 속사포 대사들의 향연이 더해진 시즌2 1화 벨그레이비어 스캔들같은 경우는 발단-절정-절정-절정-결말의 '다크나이트'적 흐름을 연상시킬 정도입니다. 


신기한 볼거리이며, 굉장한 자극적 재미이기도 합니다만, 굳이 나쁘게 말하자면 가히 과잉이라 할만도 하지요. 지나친 세련미는 오히려 더욱 쉬이 고루해지기 마련이니까요. 통통 튀는 연출 뒤에서 점잖스레 자리 잡고 있던 원전의 묵직한 무게감이 시즌2에선 약간 희미해진 탓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시즌2는 시즌1으로부터도, 셜록 홈즈 원전으로부터도 야심찬 발걸음을 옮겨 나름의 방향으로, 나름의 세계로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물론 리뷰는 이제 시작이고 어떠한 결론을 내리기엔 한참 이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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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독주 solo


그는 마치 많은 사람들의 박수에 답하듯 가슴에 손을 얹더니 인사를 해보였다

나는 홈즈가 그토록 즐거워하는 모습에 놀라며 나도 모르게 축하한다고 말했다

-존 왓슨 (주홍색 연구)


애초부터 시즌2는 셜록 홈즈의 사랑(1화), 공포(2화), 추락(3화)이 예고된 시즌이었지요. '감정이 없는 기계'의 모습으로 존 왓슨의 삶에 충격적으로 등장하여 그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주였던 시즌1을 생각한다면, 캐릭터의 변화는 불가피한 겁니다. 영웅의 탄생-몰락-부활의 수순을 따르는 무수한 히어로물의 전례를 따라, 시즌1의 탄생에 이어 시즌2는 예고된 몰락을 향해 나아가지요. 그렇게 모든 것이 예고되었다고는 하나, 1화의 셜록 홈즈 캐릭터는 시즌1의 그와 지나친 간극을 보입니다. 소위 '셜록 홈즈 인간화 프로젝트'라 불리우던 시즌2의 감정적인 셜록 홈즈의 초상은, 스토리를 따라 저절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 단순히 이미 변화된 상태로 '제시'된다는 거죠. '그 후 1년'이란 식의 시점 도약 없이 시즌1 3화로부터 연결되는 스토리라인을 택했음에도 감정선의 연결이 이러하다는 건, 확실히 작가의 방기라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시즌2 이야기 전개를 위해 캐릭터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작가의 필요를 위해 기능적으로 감정을 추가해놓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으니까요.


'사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왜, 어쩌다, 어떻게-는 없고 단순히 '그러하다'를 제시해놓은, 필요에 의한 기능적 추가는 여기서도 드러나지요. 지난 시즌1의 리뷰 끄트머리에서 '애들러와 홈즈를 연애시키리라 걱정하지 않는다, 시즌1을 이 정도로 원전에 충실하게 만들었으니 제작진을 신뢰해도 좋을 것 같다'고 밝혔던 제 예상은 산산조각이 나버렸습니다. 셜록 홈즈는 아이린 애들러를 사랑했고, 아이린 애들러 역시 홈즈에게 '셜록드' 당했지요. 고드프리 노튼경은 삭제되었고, 러브라인은 셜록과 아이린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작품 밖에서 작가 스티븐 모팻이 '셜록 홈즈가 추론에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여성을 멀리한다는 것은, 여성을 가까이하면 셜록 홈즈가 감정적 동요를 느낌을 뜻하고, 그러므로 셜록 홈즈는 무성애자가 아닌 금욕적 이성애자일 뿐이다'라고 밝힌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참으로 그럴듯한 해석입니다. 무성애자도 사랑을 한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간과했다는 점만 빼면 말이지요.


이 '감정의 추가'가 설득의 과정을 생략하고 단순 제시되었다는 오류를 제한다면, 그 이후의 캐릭터 설정은 훨씬 긍정할만한 방향을 향합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감정적으로 개조되어 제 2의 무엇이 되는 식으로 셜록을 변화시키지 않고, 기존의 '셜록 홈즈'라는 인간상은 그대로 둔 채 '감정'이라는 탈착식 무기를 득템하여 한층 업그레이드된 플레이어로 변모시킨 점이 그렇죠. 이 점에 대해서는 계속되는 리뷰에서 더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이러한 변화를 동반하여 셜록 홈즈는 시즌1의 인물로부터 한 발 벗어납니다. 시즌2의 전반적인 전개와 더불어 셜록 홈즈 역시 'BBC 셜록'이라는 드라마의 오리지널 캐릭터화된 것입니다. 그러자 오히려 원전의 인용이 일종의 농담이나 패러디가 됩니다. 셜록이 우연찮게 원전 홈즈의 코스프레를 하게되는 씬을 보십시오, 더이상 그것은 시즌1이 원전을 인용하던 톤이 아니지요. 긍정하자면, BBC 셜록은 자체적인 생명력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는 원전을 제멋대로 해석한 헐리웃판을 비롯한 많은 판본들과는 명백히 다릅니다. 시즌1이 원전에 철저히 머물러 있었기에, 원전으로부터 시작하여 나름의 방향을 따라 걸음을 옮기는 이 '자생'은 어쩌면 독자적인 작품으로써 BBC판이 필연적으로 거쳐야할 노선이었는지도 모를 것입니다.


배우 이야기를 해봅시다. 지난 시즌1에서 '셜록같은 인물을 연기하는 것은 훈련된 배우에게 있어서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겁니다. 가이드라인 확실하지, 성격 심플하지, 현실감 제로여도 오케이지. 그러므로 연기의 작은 디테일들에 지나친 찬사를 늘어놓는 것은 정당한 일이 아닌지도 모릅니다'라고 쿨하게 넘어가긴 했지만, 내심 꽤나 감탄했던 게 사실입니다. 굳이 지적할 필요도 없는 캐스팅의 승리였지요. 


시즌2는 앞에서도 밝혔듯, 사랑-공포-추락으로 감정의 다양한 진폭을 보여줄 기회의 장입니다. 캐릭터는 드라마판 특유의 독자적인 생명력을 얻었고, 그 새로운 해석에 힘입어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자유도가 부여된 것입니다. 그러나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기는 예측 가능한 바운더리 안에 머무는 것으로 그칩니다. 개인적으로 '이걸 이렇게 표현하다니!'하는 새삼스런 감탄을 내뱉을 기회는 많지 않거나 거의 없었습니다. 연기가 나빴다거나 해석이 틀렸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시즌1에서 보여줬던 (일견 감탄스럽고 섬세한) 연기의 진폭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캐릭터들이 창조 및 재창조되고, 연출이 활개를 치고, 해석과 재해석이 난무한, 이 과잉의 시즌 속에서 정작 셜록 홈즈의 캐릭터는 조금 심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이것은 공정한 평가가 아닌지도 모릅니다. 셜록 홈즈는 기본적으로 논리 기계와 같은 자이니까요. 비교적 해석의 자유가 열린 연기를 펼칠 기회이긴 하지만, 아무리 셜록 홈즈가 거대한 감정적 동요를 겪는다 해도 그 표현은 보통의 존재를 연기할 때만큼 정말로 자유롭진 않을테니까요. 


여전히 약간의 아쉬움은 남습니다. 스토리 전개상 시즌2에서 셜록 홈즈라는 캐릭터가 훨씬 더 흥미롭게 묘사될, 배우의 해석과 연기가 좀 더 재미있게 표현될만한 여지는 틀림없이 있었으니까요. 지나치게 흠을 잡는 게 아니라면, 배우의 체중 증가로 보이는 외모의 변화가 시즌1 때의 샤프함을 훼손한 아쉬움도 지적하고 싶고요. 들창코 말고는 원전을 빼다 박은 것 같았던 외관조차 시즌1에 비해 싱크가 떨어지게 됐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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