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금환식 金環蝕 1975

2012.02.25 03:12

Le Rhig 조회 수:1361

호시노 관방장관

이시하라는 정계 비리를 고발한 선박사건을 가능케 한 이시하라 메모로 유명한 사채업자로, 어느 날 호시노 관방장관으로부터 2억 엔을 빌려달라는 청탁을 받게 됩니다. 이시하라는 이를 거절하고 호시노 관방장관을 조사하게 되는데, 와중에 토건업체와의 비리를 알게 되어 선박사건을 함께한 가미야 의원과 함께 이를 고발하려 합니다.

야마모토 사츠오는 장르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동시에 좌파 영화감독으로도 유명합니다. 오늘 본 금환식은 정계와 재계 사이의 비리 현실을 고발하는 것을 주제 의식으로 가진 영화로, 이번 특별전을 통해 본 하얀 거탑과 같은 맥락의 영화이지요. 하얀 거탑에서 폭로의 대상이 하얀 의사가운을 입은 괴물들이었다면 이번엔 검은 정장을 입은 괴물들입니다. 영화는 이들이 높은 건물에서 저지르는 부조리를 묘사하고, 그것이 지면 위에 사는 우리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영화의 내러티브는 일종의 탐정물로 시작합니다. 이시하라는 돈으로 매수한 사람들로부터 정보를 얻고 그 정보를 조합하여 호시노 관방장관과 민정당의 비리에 접근해갑니다. 탐정물 장르의 사용은 여타 고발 영화에서 사용된 전형적인 내러티브로, 관객의 흥미를 자극해 그 시선을 이야기에 묶어놓는 장점이 있지요. 이 시도는 매우 매끄럽게 이어지는 정보의 연결고리 덕분에 성공적입니다만, 페이스 조절을 하였음에도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에 관객의 집중을 요하게 하기도 합니다.

가미야 의원이 활약하는 중반 이후로는 내러티브가 탐정물에서 정치물로 그 장르를 갈아탑니다. 괴물들과 그들이 저지르는 부조리에 대해 본격적인 질타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이 부분에서의 카타르시스는 상당합니다. 하얀 거탑에서와 마찬가지로 비관론적인 결말은 이 카타르시스를 끊어먹는데, 이는 효과적인 선택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이 명확히 전달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마땅히 서스펜스물이어야 할 것 같은 내러티브이지만, 영화는 블랙코미디입니다. 하얀 거탑에서와 마찬가지로 장르가 크게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노골적인 블랙코미디로 만들었다면 주제 의식이 오도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당연한 선택이었겠죠. 서스펜스물 대신에 블랙코미디를 선택한 것은 단순히 야마모토 감독의 취향 때문이거나 동시대 관객의 취향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타협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서스펜스를 일으키기 위한 분위기 조성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그것을 잘하는 전문가도 드뭅니다. 또한, 러닝타임을 많이 잡아먹는 일이기도 하지요. 서스펜스물이었다면 주제 의식이 더 또렷이 전달되었을 거예요.

이러한 영화의 기본 골격 위에 영화의 살을 맡은 것은 영화의 캐릭터입니다. 노골적인 캐리커처이지만, 이들은 재미있는 캐리커처로 이들이 맡은 선입견을 대변하는 동시에 흥미로운 공백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호시노의 캐릭터는 이상적인 영화 악당으로, 그 무게감으로 영화를 완성하고 있다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시하라와의 대비는 거의 완벽하여 둘을 한 장소에 몰아넣는 것만으로도 흥미와 서스펜스를 불러일으킵니다. 후시노 역의 나카다이 타츠야와 이시하라 역의 우노 쥬키치의 상반되는 연기와 외모 또한 그것에 한몫하겠지만요. 물론, 모든 면에서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후루카키의 이야기와 캐릭터는 뻔하고, 그렇기에 뻣뻣하여 지루합니다. 그 이야기와 캐릭터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너무 전형적인 것이어서 아예 언급할 가치조차 없고요. 그러나 쿄 마치코의 놀라운 캐스팅과 그 흥미로운 '마담' 캐릭터라는 기대치 않은 수확이 있었으므로, 후루카키가 그러거나 말거나, 캐릭터나 배우에 대해서는 큰 불만이 없습니다.

야마모토 사츠오의 역작이라거나, 마스터피스는 아닙니다. 영화의 스타일은 주제를 위해 봉사하는 것에 만족해하는 걸로 보이고, 내러티브와 장르는 완벽한 조합이라기보다 타협으로 보이거든요. 그러나 주제 의식의 전달은 유효하고, 재미 또한 있습니다. 종종 반짝거리는 장면들도 있는데, 주제와 주제 의식을 함축하는 오프닝과 클로징은 특히 정확하고 아름답습니다. 좋은 영화에요.

2012.2.24
르 뤼그

가지가지.
1. 오니바바와 하얀거탑을 발로 감상하여 그 리뷰를 망쳤다 생각했기 때문에, 영화를 집중하며 감상하고, 분석하며 감상했습니다. 좀 나아진 것 같기도 하고.
2. 쿄 마치코가 나오는 영화를 보고 싶군요. 추천해주실 영화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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