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 베자위덴하우트 

더 플린트 컬렉션 2월 10일, 2013년, TheBarn at Flintwoods, DE 


Johann Kasper Kerll (1627-1693) 

Toccata in g minor 

Passacaglia in d minor 


Louis Couperin (c. 1626 – 1661) 

Allemande – Courante – Sarabande in e minor 


Johann Jakob Froberger (1616 – 1667) 

Toccata n. 16. in C major Allemande – Gigue – Courante - Sarabande 


George Frideric Handel (1685 – 1759) 

Allemande (from Suite n. 3 in d minor HWV 428) 

Courante (from Suite n. 11 in d minor HWV 437) 

Aria and Variations from HWV 428 


Johann Sebastian Bach (1685 – 1750) 

Toccata in d minor, BWV 913 

Partita in a minor BWV 1004 (transcription for solo harpsichord by Lars Ulrik Mortensen) 



음악을 듣는다는 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가 된 것이 언제부터인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만, 음반이나 연주회로부터 마치 오늘 처음 음악을 듣는 것 같은 그런 경험을 한다는 것은 말이나 글로는 쉽게 옮겨지지 않는 그러한 경험입니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일어나기는 일어납니다. 


사실 이번 연주회는 트위터의 모님의 제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가 없었더라면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쳤을 그런 기회였습니다. 크리스티언 베자위덴하우트가 델라웨어에서 연주회를 갖는다니, 델라웨어에 그런 연주회장이 있기나 한 건가 그렇다면 우리 집에서는 얼마나 먼 것인가 그런 의문에서부터 시작되어 검색해 보니 입장료는 일괄 30달러이고, 집에서는 2시간 정도 운전하면 닿을 만한 거리라고 하니 일요일에 딱히 잡아 놓은 계획도 없고 그럼 한 번 다녀올까 뭐 그렇게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동부에 허리케인에 맞먹는 기록적인 눈 폭풍이 몰아쳐서 특히 보스턴에 있는 제 친구들은 전기가 나가고 난리도 아닌 그런 주말이었습니다만, 제가 살고 있는 D.C. 외곽 매릴랜드는 오랫만에 청명하고 깨끗한 그런 겨울 날씨였습니다. 길도 별로 막히지 않고, 볼티모어를 지나쳐서 뉴저지로 가는 이 95번길은 제가 꽤 좋아하는 코스이기도 하고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올라갔습니다. 가는 길에는 노 극음악을 들으면서 갔죠. 언제 한번 제대로 하루 날 잡아서 하루종일 노 공연을 보는 것도 제 꿈 중의 하나입니다. 뭐 언젠가는 이루어지겠죠. 


공연이 있은 The Barn at Flintwoods 는 윌밍턴과 필라델피아에서 그다지 멀지 않는 델라웨어 교외의 한적한 농가 지역이었습니다. 굽이굽이 좁은 길을 들어가면서도 과연 GPS 가 제대로 길을 찾아주고 있는 것인지 확신지 들지 않는 그런 외떨어진 곳이었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곳은 음악 애호가인 Flint 부부가 소유하고 있는 농장 건물을 연주회장으로 개조해서, 그들이 수집해 놓은 건반 악기들 – 주로 하프시코드 – 을 가지고 연주회를 여는 개인 음악회장이었습니다. 농장 한 켠에 약 70석 정도의 의자를 놓을 수 있는 리사이틀 홀이 있고, 홀의 네 구석에는 부부가 모아 놓은 하프시코드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이 건물 바로 옆에 있는 저택에서 두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하더군요.



 

(농장 건물) 


크리스티안 베자위덴하우트는 이 부부와도 꽤 친한 사이이고, 여기 와서 그들의 악기를 연주한 것도 몇 차례 된다고 합니다. 요즘은 포르테피아노 연주로 거의 대부분의 경력을 보내고 있지만, 굳이 이 먼 곳까지 와서 하프시코드를 연주하고 간 것도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죠. 그는 이틀 후에 뉴욕으로 올라가서 카네기 홀의 바일 리사이틀 홀에서 같은 프로그램으로 연주합니다.



 


물론 클라비생 같은 악기에 비해서 음량이 크고 화려한 것이 사실이긴 합니다만, 여전히 스타인웨이 피아노 같은 악기에 비교하자면 하프시코드는 개인적으고 내밀한 악기라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런 수십 명 정도의 인원으로 이미 꽉 차는, 농장 건물의 한쪽을 개조한 연주회장에서, 연주자를 바로 앞에 두고 하는 연주야 말로 이 악기에게는 최적의 조건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건물 안쪽의 마감이 모두 나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음향으로서도 최상의 조건이었습니다. 카네기 홀의 바일 리사이틀 홀이 음향이 훌륭한 작은 홀이기는 해도, 여기서 들었던 이런 효과는 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농장 주변 풍경들) 


 

(리사이틀 홀 내부) 


95번 도로가 얼마나 막힐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약 한 시간 일찍 도착한 관계로 건물들도 충분히 둘러 보고, 악기들고 구경하고, 무엇보다도 연주자를 바로 앞에 둔 위치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그런 공연이었습니다. 겨우 몇 발자국 앞에서 이 우리 세대 최고의 시대 악기 건반 연주자가 들려주는 공연을 두시간 남짓 듣는다는 경험은, 시카고 심퍼니 홀에서 피에르 불레즈의 바르톡 공연을 봤고, 바이로이트에서 바렌보임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비할 수 없는 황홀한 경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아마도 그 경험의 내밀함과 개인적인 체험 때문에 그렇다면 음악 이외의 아우라의 효과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런 것이 없다면 실황 연주를 가는 의미란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크리스티안 베자위덴하우트는 사진이나 영상물에서 본 것보다 엄청 살을 뺐고, 스타일도 굉장히 좋아졌습니다. 검은 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고 날렵하게 등장하는 모습은 마치 잘 나가는 재즈 피아니스트 같은 그런 느낌이기도 했으니까요.


 

(연주 전에 나란이 사이 좋게 놓여 있는 하프시코드들) 


레퍼토리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17세기 후반 프레스코발디의 영향을 심대하게 받은 케를의 토카타와 파사칼리아로부터 시작해서, 당시 건반 악기 음악의 이탈리아와 양대 산맥을 이루는 프랑스의 쿠프랭, 그리고 그들의 변증법적 종합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프로베르거의 작품들로부터 18세기의 보다 유연한 통합의 완성자들인 두 거장들 (핸델과 바흐)로 이어지는 일종의 역사적 궤적을 따라가는 그런 연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개인 공간에서의 개인 연주회였던 만큼, 플린트 여사가 처음 나와서 연주자의 약력, 연주자와 자신과의 관계, 그가 오늘 연주할 악기등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했고, 베자위덴하우트 자신이 쿠프랭의 작품이 끝난 이후와 인터미션 (핸델과 바흐 사이에 인터미션이 있었습니다) 이후에 나와서 레퍼토리들의 의미, 자신의 그 작곡가들에 대한 인상등에 대해서 미니 렉쳐 비슷하게 이야기하는 장면들이 이어졌습니다. 이 분 런던에 사신다더니 사우스 아프리칸 액센트는 거의 희미한 자취만 남은 듯 하고 코크니 액센트가 상당히 두드러지더군요. 


저는 차근차근 클라이맥스를 구축해 가는 솜씨가 바흐 못지 않았던 케를의 파사칼리아가 인상적이었고, 프로베르거의 대담한 화성과 기교를 결합한 작품들, 그리고 핸델의 환상적인 상상력이 무한히 뻗어 나가는 아리아와 변주곡 등이 모두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2부 마지막 곡이었던 파르티타는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을 역시 시대 악기 연주자로 잘 알려진 덴마크의 라스 울릭 모르텐센이 하프시코드 용으로 편곡한 것이었는데, 악기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는 시대 악기 연주자의 편곡인 만큼 처음 듣는 사람이었다면 그냥 하프시코드 곡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쿠랑트 같은 경우는 저도 원곡을 잘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더라고요. 이 작품은 아무튼 이 날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기에 손색이 없었고, 마지막 샤콘느에서는, 악기와 연주자, 그리고 악기 뒤로 보이는 황량한 2월의 델라웨어의 숲 등이 공감각적으로 합치되어 가는 그런 이루 말할 수 없는 ‘시간-공간의 여행’의 순간이었습니다. 음악을 듣는 것은, 그리고 실황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인 것이지요. 


그가 연주한 악기는 두 대였는데, 1부에서는 1627년에 요하네스 러커스가 제작한 플랑드르제 악기였고 2부에서는 1707년 니콜라스 뒤몽의 악기를 연주했습니다. 특히 러커스 복제가 아닌 오리지널의 연주를 듣기란 심지어 녹음으로도 흔히 접할 수 없는 경험인데, 이 악기는 보존과 개보수가 잘 이루어졌는지 수줍으면서도 우아하고 서정적인 음색이 잘 살아있더군요. 이에 비해서 니콜라스 뒤몽의 것은 보다 화려하면서도 세련되고 정교한 음색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인터미션과 연주 후에 악기들을 자세히 살펴 볼 기회가 있었는데, 두 악기 모두 정말 숨이 막히게 아름다웠습니다. 특히 두 악기 모두 사운드 보드에 아름다운 채색 장식이 되어 있는데, 정말 한참을 들여다 봐도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더라고요. 두 악기 모두 이단 키보드에, upper register 를 움직여서 때리는 현의 수를 조정하게 되어 있는데, 연주 도중에 upper register 로 손가락을 옮겼다가 이 부분을 잡아 당겼다 뺐다 하면서 터치하는 스트링의 수를 조절하면서 미묘하게 음색을 바꿔 나가는 부분들이 연주자가 악기들을 다루는 데 능숙하다는 면을 보여줄 뿐 아니라, 다채로운 음색이 마치 만화경처럼 펼쳐지는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요하네스 러커스의 악기) 


 

(니콜라스 뒤몽의 악기. 방금까지 연주하던 바흐의 악보가 고대로 놓여 있습니다) 


 


 

(뒤몽 악기의 사운드 보드. 환상적으로 아름답지요...) 


베자위덴하우트는 터치가 명확하고, 리듬이 잘 잡혀있고, 기교가 안정되어 있는 시대 악기 연주자로서 필요한 장점들은 모두 갖추고 있는 훌륭한 연주자였습니다. 복잡한 패시지가 가득 찬 호흡이 긴 작품들 (가령 핸델의 아리아와 변주, 혹은 바흐의 토카타 같은) 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전체적인 구조를 조망하면서도 세부를 깔끔하게 다듬어 나가는 나무랄 데 없는 연주를 들려줬습니다. 


당연히 기립 박수가 이어졌고, 앵콜은 바흐의 사라방드였습니다만, 이 곡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스 조곡의 그 사라방드는 아니더라고요. 같은 d 단조이긴 했습니다만. 


연주가 끝나고 리셉션 홀 (이라고 해도 그냥 현관과 연주홀 사이의 복도 비슷한 공간입니다만) 에서 다과가 이루어진 것도 훌륭했습니다. 간단한 과일과 와인을 비롯한 음료, 쿠키와 치즈 크래커 등이 준비된 것이 연주회를 주최하는 부부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습니다. 물론 이 친밀한 분위기 속에서 플린트 부부, 그리고 베자위덴하우트와 즐거운 담소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유럽에서 하프시코드를 델라웨어의 시골까지 운반해 오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진진했고, 저는 가져간 얀 코보우와의 슈베르트 [백조의 노래]의 음반에 사인을 받아 왔습니다만, 그 사진의 머리 스타일과 체구에 엄청 민망해 하시는 베자위덴하우트였습니다.







 

(플린트 부부의 건반 악기 컬렉션들) 


가끔씩 음악을 듣는 것에 회의가 들 때가 있고, 음악 감상에 대한 강박적인 성향 때문에 스스로 지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만, 그럴 때마다 이런 음악회가 있어서 다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최근에 안 그래도 좀 그런 슬럼프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일종의 구원으로 다가온 그런 음악회였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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