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피에타

2012.12.25 02:44

menaceT 조회 수:3144


'피에타',

9월 7일, 메가박스 신촌.

 

  김기덕 영화를 중학생 때 케이블 TV에서 본 이후 처음 봤으니 굉장히 오랜만이다. 극장에서 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니 김기덕 영화의 특징이랄 만한 것들을 거의 모르고 본 셈이다.

 

  김기덕 특유의 연기 지도 스타일인지 몰라도 어딘가 뻣뻣하고 굳어 있는 듯한 연기가 처음에는 거슬렸다. 군데군데 상당히 낯간지러운 대사나 상황들도 꽤 있었다. 그래도 어느샌가 집중해서 보게 되더라.

 

  생각보다 굉장히 친절한 영화라 놀랐다. 김기덕 영화가 원래 이런지 새삼 궁금하더라. 편견인지는 몰라도 난 김기덕 영화가 굉장히 극단적이고 불친절하며 난해할 거라고 생각했던지라... 그런데 거의 핵심 상황들에 밑줄 쫙쫙 그어가며 떠먹여 주는 식이었다. 보통 그런 영화를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피에타'는 상당히 좋았다.

 

 

(스포일러)

 

 

  영화는 강도와 미선이 점차 가까워지는 과정을 강도가 채무자들을 찾아다니는 과정과 병치시키며 주제를 전달하고자 한다. 따라서 영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 필수적일 것이다.

 

  강도가 처음 찾아간 채무자는 아내와 함께 있다. 단순히 함께 있는 것도 아니고 성교 중인 상태에서 강도가 들이닥친다. 이전 장면에서 강도는 여성과 섹스하는 꿈을 꾸며 사정한 바 있다. 강도는 혼자 성욕을 해결한 반면 그들은 함께이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셔터문을 사이에 두고 남녀가 번갈아가며 강도와 마주하게 한다. 강도는 여자와 셔터 안쪽에 있다가 남자 쪽으로 여자의 브라를 던진다. 그 뒤 남자가 들어오자 강도는 남자의 팔을 망가뜨리곤 셔터를 올려둔 채 여자가 남자의 그 꼴을 마주하게 한다. 자신이 혼자인 것처럼 그들 남녀 역시도 혼자여야 한다는 양 의도적으로 갈라 두었다가 하나하나씩 괴롭힌 뒤에 그 흔적을 진열하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강도는 처음 미선을 마주하게 된다. 성교 중이던 남녀의 사이를 의도적으로 갈라두고 해를 끼쳤던 강도, 그의 옆에 미선이 '어머니'라 주장하며 다가온다. 이젠 강도가 있는 그 자리가 남녀가 함께 있는 자리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강도는 난데없이 어머니임을 주장하는 그 여자가 그저 미쳐보일 뿐이며, 영화 역시 그들 사이의 거리감을 드러내듯 일부러 강도와 미선 사이를 뚝뚝 끊어둔 샷들을 늘어놓는다.

 

  강도가 두 번째로 찾아간 채무자는 어머니와 한 방 안에 있다. 이번에는 강도가 문지방을 사이에 두고 어머니와 아들을 갈라두더니 일부러 어머니 앞에서 아들을 때린다. '어머니'라 주장하는 미선으로 인해 '어머니의 부재'를 더욱 실감한 그는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한다. 이 때 강도와 아들을 사이에 둔 채 두 어머니가 마주 서서 이 상황을 지켜본다. 그리고 강도는 아들을 멀리 폐건물로 데려가 일을 마무리짓는다. 강도를 저주하는 남자, 미선은 그 남자의 다리를 다시 한 번 돌로 찍는다. 둘 사이에 처음으로 동질감이 형성되는 순간이다.

 

  집으로 돌아온 강도는 여전히 미선을 받아주려 하지 않는데, 미선은 집밖에서'섬집 아기'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 노래를 들은 강도는 마치 홀린 듯 그녀를 집에 데려온다. 정말 자신의 어머니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 이제 그는 그녀를 시험하려 든다. 강도는 미선의 입에 자신의 살을 '삽입'하고 여자의 성기에 자신의 성기를 다시 한 번 '삽입'한다. 강도는 지금까지 늘 혼자 일을 처리했고 일이 끝날 때마다 고기를 사서는 여자의 나체를 그린 그림에 꽂아두었던 칼로 그 고기를 손질해 먹고 다시 그림 속 여자의 살에 칼을 꽂아 두곤 했다. 어머니 혹은 아내 등의 여성과 함께 가정을 이룬 남자들을 해한 뒤, 그들처럼 되지 못한 외로운 남성인 자신 속의 허함을 채우듯 고기를 먹고, 자신에게 부재한 여성의 상징에 칼을 꽂는 습관이 그의 몸에 그렇게 배어 있었다. 그는 그녀의 어머니에게 자신의 살을 먹임으로써 자신의 습관을 어머니로 하여금 재현케 해 동질감을 형성하고, 나아가 성기를 삽입함으로써 여성으로서의 그녀의 존재를 확인하며 동시에 일체감을 느끼려 한다. 자신의 피붙이임을, 자신의 가족임을, 자신의 어머니임을 강도는 그렇게 동질감을 느낌으로써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미선과 그렇게 동질감을 형성한 뒤, 강도는 슬슬 변화의 양상을 보인다. 그가 세 번째로 찾아간 채무자는 혼자'였던' 남자이다. 강도가 찾아갔을 때 그는 이미 자살한 뒤이다. 강도는 자살한 그의 사진을 찍더니 집에 홀로 있던 그의 어머니를 찾아가 그 사진을 보여준다. 여전히 위악적으로 굴지만 이제 강도의 행동에는 나름의 배려가 묻어나기 시작한다.

 

  첫 채무자는 아내와 성교 중이던, 즉, 여성과 일체 상태에 있던 남자였고, 강도는 셔터문을 사이에 두고 그와 아내를 갈라둔 뒤 일을 처리했다. 두 번째 채무자는 어머니와 한 방 안에 있던 남자였고, 강도는 그를 멀리 폐건물로 데려가 일을 처리했다. 이제 세 번째 채무자는 홀로 죽어 있는 남자인데, 이전까지는 여자와의 사이를 떨어뜨리곤 했던 강도가 이번에는 오히려 그와 여성의 존재를 사진으로서 이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는 이 점에서 두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첫 번째, 강도와 미선의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강도가 찾아가는 채무자 남성과 그들의 여성 사이의 관계는 점차 멀어지고 있는 양상. 두 번째, 미선을 어머니로 받아들이게 된 뒤 강도가 보이는 역할의 반전. 지금까지는 강도에게 부재한 것들이 주는 상실감을 강조시켰던 그 과정이 어느새 강도가 동질감과 연민을 느끼는 과정으로 변해 있다. 다만 그 변화는 왠지 채무자들이 그들의 여자들과 멀어짐을 담보로 한 변화 같아 불편함을 자아낸다. 이 불편함이 영화를 관통해서 큰 주제를 형성하는데, 그 주제는 조금 뒤에 이야기하도록 하자.

 

  강도의 변화와 더불어 영화는 슬슬 또 한 번의 반전을 준비하는 듯 보인다. 영화가 마련한 몇 가지 복선이 그 증거이다. 강도는 세 번째 채무자의 어머니인 할머니를 찾아갔을 때, 그녀의 유일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토끼를 그 집에서 데려온다. 나중에 미선이 그 토끼를 풀어주고 그 토끼는 차에 치여 죽는데, 이는 뒤에 이어지는 '미선에 의한 가족의 죽음'의 복선이라 할 수 있겠다. 더불어 미선이 강도에게 먹으라 준 장어(미선의 이름과 핸드폰 번호가 태그로 붙어 있다.)를 강도는 어항에 넣어 키우는데, 미선이 오히려 이를 죽여 요리하고 강도는 먹지 않는데도 혼자서 먹는 것 역시 앞으로 일어날 반전의 복선이라 볼 수 있다.

 

  강도는 이제 네 번째 채무자를 찾아간다. 이번에도 역시 남자가 혼자 있다. 여성은 그의 곁에 있지 않고, 강도가 그의 여성을 찾아가는 장면이 나오지도 않는다. 이제 여성의 존재는 남자의 전화 통화를 통해 단지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남자의 경우, 비록 채무자와 여성 간 물리적 거리는 더욱 멀어졌지만, 이전 채무자들에서 보이던 요소들(부부, 어머니와 아들)이 합쳐져 아버지-어머니-아이의 구도로 이루어진, 아마 강도가 무의식 중에 바랐을 가장 온전한 가정의 형태를 띄고 있다. 강도는 이제 해를 가하기를 포기하고 그에게 부럽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는 위악적으로 구는 것조차 포기한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채무자는 가정을 위해 스스로를 해한다.

 

  다섯 번째 경우에는 남자가 혼자 있을 뿐 아니라 그 어떠한 여성의 존재를 그 어떠한 형태로도 유추할 수 없다. 그 역시 스스로 생을 포기한다. 강도가 미선과 가까워질수록 채무자들은 점차 어머니와, 아내와 멀어지고, 강도가 위악을 걷어내고 선하게 변해갈수록 오히려 채무자들이 스스로를 해하는 이 과정의 끝에 거의 다다른 이 시점에, 다섯 번째 채무자는 강도에게 청계천이라는 공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 비로소 지금까지의 과정을 통해 영화가 보여주려던 주제가 명확히 떠오른다.

 

  자본은 청계천이라는 공간을 그대로 제로섬 게임에 따른 하나의 경기장으로 만든다. 고층 빌딩이 들어서기 위해선 기존의 상인들이 나가야 하는 공간이자, 누구 하나 나을 것 없이 부족한 사람들이 서로 빼앗고 빼앗겨야 하는 공간. '가족'이 주는 그런 정신적인 위안조차도 모두 자본의 논리로 변질시켜 버리는 그 가공할 공간. 강도가 여태껏 사람들에게 행해 온 일들은, '가족', 그 가족의 핵심인 '어머니', '아내', '여성'의 부재로 인해 허한 내면을 사람들의 살과 뼈를 해함으로써 위로하고 고기로 채우는 행위였다. 그 역시 자신의 내적 결핍을 전형적인 자본 논리, 제로섬 게임의 방식으로 해소해 온 것이다. 그 뒤에 그는 '어머니'를 되찾음으로써 그 자본 논리에서 벗어나 정신적 가치의 길로 향하나 싶지만, 그러나 자본은 여전히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그가 어머니와 가까워질수록 그의 대척점에 선 채무자들은 점차 그들의 여성들과 멀어지는 그 양상 자체가, 그가 어머니를 되찾는 방식 역시 제로섬 게임의 논리를 담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강도가 세 번째 채무자를 만나러 가서 그와 어머니의 관계에 동질감을 느끼고, 네 번째 채무자에게서 이상적인 가정의 형태를 엿보고 부러움까지 느끼던 찰나, 영화가 늘어놓는 복선들과 다섯 번째 채무자가 들려주는 청계천의 이야기는 이제 그 철저한 자본주의의 공포가 그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올 것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미선의 복수'로 구현된다. 미선은 아들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해 강도에게 가족을 잃은 슬픔을 고스란히 안겨주려 했고, 그래서 그에게 '어머니'를 만들어 주고 그 '어머니'를 죽이고자 한 것이다(이 반전이 드러나기 전에 시계가 거꾸로 잡힌 장면이 한 번 나오는데, 반전이 드러난 뒤엔 시계가 제대로 선 모양으로 다시 한 번 등장한다.).

 

  미선이 아들의 생일날 강도를 떠나자 강도는 그녀를 찾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해했던 채무자들을 하나씩 찾아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그는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나아가 여태껏 강도에게 긍정적인 방식으로 기능하던 제로섬 게임의 룰이 이제 서서히 역방향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그 과정의 한가운데에서, 강도는 미선의 아들이 죽었던 바로 그 휠체어에 앉아 눈물을 흘린다. 그때 미선이 강도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며 경고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영화의 뒷부분을 보면 쉽게 유추 가능하듯 일종의 환상 장면이다. 그런데 이 환상 장면이 꽤나 의미심장하다. 강도가 그 휠체어에 앉는 장면이 나오기 전에 미선이 그 휠체어에 앉아 '섬집 아기'를 부르는 장면이 먼저 나온다. 이전에 '섬집 아기'는 강도가 미선을 집에 들여오게 되는 일종의 계기가 된 바 있다. 그 '섬집 아기'가 다시 나오고, 둘은 같은 휠체어에 번갈아 앉고, 그때 실제라면 불가능한 둘의 대면이 이루어진다. 강도와 미선이 이미 어떤 의미에서 완전한 동질화를 이뤘음이 드러나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나중에 미선이 자살 직전에 아들에게 하는 고백에서 언급하듯, 미선은 복수의 과정 중 강도가 자신에게 부재한 것들 때문에 더욱더 악하게 자신을 포장해 왔음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자본 논리가 지배하는 그 공간에서 '이해'는 아무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녀는 복수의 완성을 위해 그대로 죽는다.

 

  미선이 죽기 이전에 미선 외의 사람들 역시 강도에게 복수를 시도한 바 있다. 두 번째 채무자는 미선을 강도의 어머니로 알고 그녀를 인질 삼고서 강도에게 자살을 요구한다. 강도가 어머니를 찾아 헤매던 과정에서 만난 첫 번째 채무자의 아내는 강도가 또 다시 자신의 남편을 해하려 하는 줄 알고 소주병으로 맞서는가 하면, 또 다른 채무자의 아들은 연필로 강도를 찌른다. 또한 미선이 자살하려는 순간에 나타난 두 번째 채무자의 어머니는 강도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미선을 떨어뜨려 죽임으로써 강도에게 복수하고자 한다. 이처럼 이 영화 속에서 복수는 모두 '가족'이란 테두리 하에서 '청계천의 사람들'이 자본 논리를 그대로 빼닮은 강도의 횡포에 대항해 시도하는 복수이며, 이를 최종적으로 종합해 성공한 것이 바로 미선의 복수라 볼 수 있다. 

 

  강도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어머니를 주었다가 다시 빼앗는 과정, 그 과정에서 미선은 '자신의 진짜 아들'에게서 어머니를 빼앗아 강도에게 어머니를 선사하고 자살 과정에서는 다시금 강도에게서 어머니를 빼앗아 자신의 진짜 아들에게 다시 어머니를 돌려준다(아들의 시체를 묻은 그 자리로 몸을 던진다.). 한 쪽이 빼앗기지 않으면 한 쪽이 얻을 수 없는 이 철저한 자본주의의 공포, 강도가 타인에게 들이댔던 그 무시무시한 공포를 강도에게 돌려주는 것, 복수는 이런 식으로 찾아온 것이다.

 

  어머니가 죽는 커다란 큰 충격에 뒤이어 강도는 어머니를 묻기 위해 땅을 파던 중 미선의 아들의 시체를,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강도는 미선의 아들의 옷을 입은 채 미선과 그 아들의 시체 옆에 나란히 눕는다. 미선과 그 죽은 아들이 이어진 것처럼 강도는 이미 미선과 거의 하나라 해도 될 정도의 교감을 나눈 뒤이며, 그렇게 '또 다른 아들'이 된 채 그 옆에 나란히 눕고자 한다. 그러나 자본 논리에 따르는 그 공간 하에서 무언가를 버리지 않으면 그는 어머니를 얻을 수 없다. 강도는 결국 어머니에게로 돌아가기 위해 자살을 택한다. 강도는 미선의 아들이 목을 걸어 죽은 그 갈고리를 자신의 목에 건 채, 자신이 해했던 이들의 손을 빌려 자살한다. 자신의 행위에 대해 벌을 받고, 동시에 자신에게 없었던 그러나 새로 생기게 된 가족에게로 돌아가는, 이중적 의미의 죽음이다. 그때까지 아무런 의미도 지닐 수 없던 그들 사이의 '이해'가 비로소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이처럼 그야말로 모두가 죽고 난 그 이후에서나 가능하다.

 

  김기덕은 한 남자와 그의 어머니를 자처하는 여인, 청계천의 상인들의 이야기를 엮어내며, 청계천이란 공간을 철저한 제로섬 게임하에서 착취당하는 자들이 서로를 물어뜯는 이전투구의 장으로 그려낸다. 그 한복판에서도 그는 기어코 복수와 참회와 구원의 극을 완성시키지만, 자본주의가 뿌리내린 이 저주받은 땅 위에서 구원은 죽음을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다는 그의 메시지는 마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는 빨간 피의 선처럼 씁쓸하고도 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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