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영화가 이번 달 중순으로 개봉이 잡혔졌기에 2008년에 쓴 리뷰를 좀 다듬어서 올렸습니다.


트랜스 시베리아 (Transsiberian, 2008) ☆☆☆1/2



 [트랜스 시베리아]는 추워져가는 11월 날씨에 걸맞은 좋은 스릴러 영화입니다. 영화 속에서 캐릭터들과 상황들이 정립되어지는 동안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은 서서히 높아지고 기차가 지나가는 눈이 가득히 덮인 시베리아 벌판이 자아내는 써늘한 흰색 분위기는 더욱 더 이를 부채질합니다. 드디어 일은 터지지만, 결코 우리가 예상했던 일은 아니고 주인공은 발버둥 쳐도 계속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기만 합니다. 처음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일은 후에 불행이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정도로 상황은 통제 불능으로 되어갑니다.


 일단 블라디보스톡에서 일어난 한 사건을 도입부에 소개해서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을 것임을 예고한 후, 영화는 즉시 한 미국인 커플 로이와 제시에게 관심을 맞춥니다. 막 중국에서 교회 자선 활동을 마친 이들은 곧 시베리아횡단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갈 예정인데, 8일 동안의 여정은 시작부터 그리 순탄치 않습니다. 침대칸 열차는 그리 편하지 않고, 승무원은 불친절하고, 화장실은 형편없으니, 이 영화를 보는 동안 시베리아횡단 열차 탈 생각이 별로 나지 않더군요. 이러다가 로이와 제시는 다른 커플인 카를로스와 애비와 같은 침대칸에서 자리를 나누게 됩니다.


 이 두 커플들 간의 교류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이들에 대한 것을 하나씩 하나씩 알아가게 됩니다. 로이는 겉과 속이 같은 선량한 사람이고, 제시는 비록 알콜과 약물들로 얼룩진 험한 과거를 살았지만 이젠 과거를 뒤로 두고 좋은 아내가 되려고 합니다. 이들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소원해진 그들 관계를 위해 교회 사람들을 따라 봉사 활동을 갔었던 것입니다. 이에 반해, 집을 뛰쳐나왔다는 애비는 제시와 금세 말문이 트이지만 그녀는 그리 솔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녀의 남자친구 카를로스는 세상 곳곳을 돌아다녔고 로이와 제시에게 새 여권은 경찰들에게 그리 좋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 등을 말해주지만, 겉으로 보기만 해도 그는 수상쩍은 인간입니다. 순진하고 사람 잘 믿는 로이와 달리 제시는 점차 카를로스와 애비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게 되지만, 이 불한당 타입의 카를로스에서 서서히 끌리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과거를 뒤로 둔다고 해도 완전 인연을 끊을 수 없는 법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역에서 기차가 잠시 정차한 후 출발할 때 로이가 기차에 타지 않게 되는 일이 생깁니다. 로이가 뒤따라올 다음 기차를 타고 올 것이기 때문에 제시는 다음 정차 역에서 기다리기로 결정하는데, 카를로스와 애비도 같이 기다려주겠다고 하면서 기차에서 내립니다. 여기서 영화는 낯선 곳을 여행하다가 친절함을 가장한 낯선 이들 때문에 봉변당한다는 이야기들의 선로를 따라 운행할 것 같지만, 사실 그게 아닙니다. 자세히 말하기 힘든 상황이 터진 가운데, 기차는 계속 달리고 여기에 마약반 형사 그링코(벤 킹슬리)가 탑승하게 되면서 상황은 더욱 더 난처해지고 주인공들이 과연 모스크바에 다다를 수 있는지는 미지수입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이 달리는 기차를 무대로 실종과 그 뒤의 음모를 다룬 [사라진 여인]과 같은 명작을 내놓았으니 [트랜스 시베리아]는 이미 시작부터 히치콕의 영향권에 놓여있는데, [머시니스트]로 우리에게 알려진 각본가 겸 감독인 브래드 앤더슨은 히치콕처럼 관객들을 능란하게 조종하면서 긴장감을 쌓아갑니다. 도입부에서 불운한 일이 곧 일어날 것임을 예고하고 나서 전반부 동안에는 캐릭터들을 차분히 그려내면서 영화는 딱히 집어낼 수 없는 두려움을 쌓아갑니다. 무엇이 일어날 지에 대해서 힌트들을 주지만 일은 우리 예상대로 돌아가지 않고, 후반부에서 이야기는 액션과 함께 전속력으로 질주하면서 우리를 몰아붙입니다.


 믿음직한 배우들이 포진한 가운데 에밀리 모티머의 연기가 특히 인상적인데, 서서히 무너져가면서도 필사적으로 거짓말로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치는 제시의 모습을 묘사할 때 그녀의 연기는 더욱 더 빛납니다  애비와 카를로스를 통해 서서히 자신의 오랜 다른 모습이 벗겨져 나오는 것도 그런데, 제시는 벗어날 가능성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빠져나오려고 애를 쓰지만 그녀는 계속 더 안 좋은 상황으로 굴러들어갑니다(그링코는 그녀에게 경고를 합니다: "러시아에서는, 거짓말로 앞서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다시는 되돌아가지 못합니다."). 우디 해럴슨은 기차를 좋아하는 순둥이 남편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고,  카를로스를 맡은 에두아르도 노리에가는 보기만 해도 질이 안 좋은 사람이란 것을 느끼게 해주고, 케이트 마라는 이 소동에서 속내를 잘 안 드러내는 애비를 능숙하게 연기합니다. 마이크 마이어스의 그 끔찍한 코메디 영화에 출연한 것을 보완하려고 했는지 같은 해 나온 세 영화들 각각에서 벤 킹슬리는 좋은 연기를 선사했는데 이 영화는 그 중 하나입니다.


 처음에 [트랜스 시베리아]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도입부에서는 약간의 실망을 전 느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이야기를 진행되는 동안 이 영화에 몰입되었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지에 대해 불안감을 느꼈고 일이 제 예상대로 돌아가지 않아가는 것에 재미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극장 개봉한다면 정말 다시 봐야 할 정도로 영화 속의 눈덮힌 공간과 기차는 좋은 볼거리인 동시에 훌륭한 분위기 조성용 도구입니다. 그런 점들이 [트랜스 시베리아]를 [호스텔] 같은 영화들 보다 훨씬 더 낫게 보이게 만드는 것이지요. 정식 개봉한다면 다시 한 번 볼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P.S. 로케이션 장소는 리투아니아입니다. 하긴 시베리아에 찍기는 불편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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