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기 Maggie 


미국-스위스, 2014.     


A Roadside Attractions/Grindstone Entertainment Group/Lotus Entertainment/Sly Predator Films/Gold Star Films Production, in association with Silver Reel Productions. 

Distributed by Lionsgate Films. 1시간 35분. 화면비 2.35:1. 


Director: Henry Hobson 

Screenplay: John Scott 3 [sic] 

Cinematography: Lukas Ettlin 

Editing: Jane Rizzo 

Music: David Wingo 

Special Makeup Effects: Elvis Jones, Matthew O'Toole, Bailey Domke, Marcos Gonzalez 


CAST: Arnold Schwarzenegger (웨이드 보겔), Abigail Breslin (매기 보겔), Joley Richardson (캐롤라인 보겔), Jodie Moore (카플란 의사), Douglas M. Griffin (레이), Bryce Romero (트렌트), J.D. Evermore (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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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많은 수의 영화를 보다 보면 간혹, 그냥 재미가 없다거나, 이미 수없이 봐온 내용을 되풀이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에 지루하기 짝이 없다거나, 그러한 보편적인 불평의 수위를 훌쩍 넘어서는 그런 "좋지 못한 영화"에 부닥뜨리게 된다. 의무적으로 극장에 걸리는 영화들을 보고 매체에 리뷰나 분석을 기고해야만 하는 프로페셔널 평론가들과 달리, 나는 내 쌩돈을 내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아마추어 영화 연구가다 (물론 돈을 받고, 설사 돈을 받지 않는다 해도, 프로의 입장에서 글을 써야 할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나는 내가 보기 싫은 영화는 안 볼 수가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웬만큼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꼭 시네필이나 영화팬으로 본인을 규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인정하실 수밖에 없듯이, "좋지 못한 영화"를 항상 피해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입소문, 다른 평론가들의 비평, 예고편의 인상, 여러가지 텍스트 외부에서 입수할 수 있는 객관적인 정보들, 이런 데이터들을 굴려서 어느 정도까지는 어떤 한편의 퀄리티를 사전에 "짐작"을 할 수 있고, 사실 나의 경우 이러한 짐작이 상당히 잘 맞아들어가는 편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내 "짐작"을 처절히 짓밟음과 동시에, 의자에 푹 가라앉은 자세로 "허억, 어떻게 이런 한편을 돈 주고 보는 상황까지 굴러왔단 말인가!" 라고 나로 하여금 뇌까리게 만드는 처참한 영화를 완전히 피해 갈 수는 없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후진 영화를 보는 것도 필요한 과정이다. 항상 일정 수준 이상의 영화만 보는 사람은 마치 병원균에 감염이 되어서 면역 체계가 튼튼해질 경험이 없었던 신체처럼, 영화 자체에 대한 시각이 협소해져 버릴 위험성을 감수해야만 한다. 또한, 왜 어떤 특정한 영화가, 객관적으로는 분명히 퀄리티를 보장해줄 수 있다고 여겨졌을 스탭과 캐스트의 참여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안 좋은 결과에 도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분석이 필요하다. 사실 "나쁜 영화" 가 왜 "나쁜가" 라는 질문에 대해 만족스러운 답을 던져주는 평론가나 글쓴이들은 "좋은 영화" 가 왜 "좋은지" 에 대해 그냥 사회적인 합의를 정리해서 알려주는 평론가나 글쓴이들보다 훨씬 그 수가 적다. 


 [매기] 의 경우, 제작진의 사상적, 예술적 의도를 미루어 짐작하건대, 또 출연진의 역량으로 보아서도, 이렇게 끔직할 정도로 지루하고, 맨숭맨숭하고, 답답한 결과물이 나오리라고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혹자는 기획의 불합리함을 논하는데, "말이 안되는" 걸로 따지자면 [웜 바디스] 나 [인간지네] 가 이 한편보다 낫다고는 주장할 수 없을 것이고, "뻔한 설정" 이라는 시비로 걸고 넘어지더라도, [팔로우] 처럼 뻔하디 뻔한 설정으로 근사하고 멋진 재해석을 해놓은 최근작들이 존재한다. 문제는 기획 또는 설정의 "불합리성" 이 아니고 그 장르적 성격에 대한 균형감각이다. 그런 최소한의 균형감각이 [매기] 에는 부재한다.  


존 스코트 3세 (… 인지 뭔지 사실은 나도 모른다. 크레딧에도 "존 스콧 3" 이라고만 써있을 뿐.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찍어낸 각본일까?) 가 쓴 각본과 주로 메인 타이틀 디자이너로 일해온 데뷔 감독 헨리 홉슨의 연출은 지나칠 정도로 평이하고, 솔직히 까놓고 말하자면 아무런 특색도 없는 "불치병에 걸린 소녀와 그의 아버지" 서사를 종말론 좀비 장르 세계에 끼워넣고 있는데, 여기서 벌써 첫 단추를 잘못 끼우고 있다. 즉 이 각본-감독 팀은 관객들이 좀비영화에서 기대할 만한 상황과 전개를 극력 무시한다는 이해할 수 없는 선택지를 택한 것이다. 그럴 생각이었으면 아예 좀비가 등장하는 장면을 아예 다 없애고 좀비라는 존재는 등장인물들의 화자를 통해서만 존재하는 불치병에 대한 "문학적인 은유"로 치환해 버렸더라면 더 나았을 뻔 했다. 그랬다면 최후에 매기가 발병하는 장면이 강렬한 임팩트를 가지고 관객들에게 다가왔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한편에서는 마치 모든 캐릭터들이-- 경찰이 되었건 의사가 되었건-- 관객들이 뻔하게 벌어지리라고 예상하고 있는 일들을 애써서 에둘러 말하고 미적거리면서 이야기의 전개를 훼방놓기만 한다. 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해고 머리가 다 아파진다. 


그러면 최소한 불치병에 걸린 소녀의 슬픔을 진솔하게 전달해 주기라도 하는가? 유감스럽게도 그것도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 배우들을 찔끔찔끔 울리기만 할 뿐이지 아무런 의미있는 드라마적인 긴장이나 서사의 굴곡이 전무하다. 그나마 "매기가 안됐다 쯧쯧" 이라는 정도의 공감이라도 할 수 있는 에피소드는 혈관이 검은색으로 변색된 채 거미줄처럼 흰색 피부에 퍼진 불쾌한 메이크업을 한 매기가 고등학교의 절친의 초대로 파티 (아무도 내색은 하지 않지만 사실상 작별파티) 에서 자신처럼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소년과 만나는 대목 정도이다. 그러나 이 장면을 비롯한 거의 모든 대화 장면에서 스콧의 각본은 범용한 TV 드라마를 넘어서는 수준의 대화와 캐릭터들의 상호관계를 제시해 주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핸드헬드 카메라와 자연스러운 음향을 차단하고 특정 소음을 증폭하거나 에코효과를 넣어서 들려주는 사운드 기법을 남용하는 홉슨의 연출은 관객을 불편하고 짜증나게만 할 뿐, 감동을 주지 못한다. 


아마도 이 한편을 보러 오게 될 관객들은 (극소수의 좀비 장르 광팬 내지는 완벽주의자를 제외하면)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평범한 아버지" 역할을 맡아서 어떻게 요리해내었는지에 대한 궁금함이 가장 큰 동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유감스럽게도 전 (前) 캘리포니아 지사님의 이 한편에서의 연기에 대해서는 한마디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무미건조. 심지어는 "우와 주지사님 연기 되게 못하시네요" 라고 비난할 만한 건덕지도 없는데 말을 해 무엇하랴. 이럴 거면 도대체 왜 돈까지 내셔가면서 제작자에 이름을 올리셨는지. 미국의 평론가들은 아직까지도 "남부의 농장 일을 하면서 살았다는 사람이 저 액센트가 뭐냐" 라는 식의 비판을 슈워제네거 아저씨한테 줄기차게 퍼붓고 있는데, 솔직히 아저씨가 연기하는 웨이드 보겔이라는 캐릭터는 오스트리아산 액센트에다가 아저씨가 평생동안 갈고 닦은 근육질 카리스마라도 있으니까 다른 캐릭터들과 차별이 되는 거지, 아니면 그냥 통나무 하나 떡 갖다놓고 다른 배우들보고 같이 연기하라고 해도 차이를 못 느낄 정도다. 에비게일 브레슬린의 경우는 요즘 여러 종류의 영화에 분주하게 출연하고 있는데 프로파일의 확충이라는 점에서는 아마도 좋은 전략이겠지만, 각본 좀 잘 읽어보고 이런 한편은 피해갔으면 좋겠다. 매기는 브레슬린이 아니었어도, 어떤 십대 여자배우가 연기를 했어도 좋은 인상을 남기기 힘든 그런 캐릭터다. 그냥 "불치병에 걸린 소녀" 라는 전형에서 머리카락 한 오락도 발전된 부분이 없으니… 좀비화 특수 메이크업 때문에 눈은 항상 흐릿하게 나오지… 도무지 연기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다. 


제작진이 들었다면 기분이 상할 수도 있을 코멘트지만, 막판에 매기가 좀비화 되어서 가족들을 풍비박산 다 잡아먹고 장총이나 도끼로 무장한 아빠 슈와제네거와 한판 대결을 벌이는 그런 "사악한" "익스트림 무비" 적인 클라이맥스를 선보였다면, 아마도 [배틀 로얄] 등에서 맛볼 수 있는 "반양식적 (反良識的)"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으로서 (학부모들한테서 욕은 먹었겠지만) 컬트적 가치를 획득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매기] 의 경우에는 눈살을 찌프린 오프닝 몽타주부터, 애잔함이라는 정서를 관객들 눈물샘에서 짜내려고 아주 발악을 하는 엔딩에 이르기까지, 애초에 그런 방향으로 나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너무나 명백하다. 


아니 그럴 생각이었으면 애초에 왜 좀비영화를 만드셨소? 라고 이제사 물어본들, 이미 배는 물 건너갔다. 


슈워제네거 아저씨와 브레슬린양의 커리어에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 확실한 한편이고, 오로지 브레슬린양처럼 귀여운 소녀가 좀비로 변하게 되어 가족들이 시름에 빠진다는 설정을 말로만 들어도 눈물이 나려고 하는, 각별히 섬세한 감수성, 혹은 천사처럼 여린 영혼의 소유자분들 에게만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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