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메리칸 사이코 속의 크리스찬 베일이 맡은 패트릭 베이트만은 미친 놈이다. 사이코 맞다. 그걸 설마 스포일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스포일러에 민감한 영화 안 본 분들은 그냥 이런 글 찾아 보지 않았음 좋겠다. 이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패트릭이 또라이고 미친 놈이며 환상 속에 빠져 자위하는 놈이라는 걸 밝히지 않는다면 그건 붕어빵에 팥을 안 넣은 느낌이랄까나.

 

    분명하게 말하건대, 패트릭 베이트만은 잘난 놈이다. 무한 자유와 무한 경쟁을 사랑하며 개천절에 연설할 때도 승리한 대한민국이라니 어쩌느니 패배와 승부라는 자극적인 프레임 속에 사람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이 사회에서 (으하하 미국이라고 뭐 큰 차이 있겠는가?) 충분히 승리한 놈이다. 하버드대에 아버지가 무슨 사장? 약혼녀는 이봐 무슨 리즈 위더스푼 얼굴에 섹스도 원할 때 하며 마약도 즐거이 한다. 그런데 뭔가 허하다. 그가 아메리칸 사이코가 되어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여대는 상상을 하는 것부터가 괴랄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나는 그가 이상하게 공감이 간다! 그는 잘난 존재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자기보다 조금 더 잘난 애송이를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난다. 솔직히 제3자가 보기에는 구분도 잘 안 가는 명함 보면서 졌다고 식은 땀 흘려대는 그 모습이라니, 으하하하. 그 풍자와 냉소에 나는 정말 도대체 이거 누가 각본을 쓴 거지, 감탄만 할 뿐이었다.


     허하고, 빈곤하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그가 느낀 것일까? 왜 나는 달리고 또 달리는데 이렇게 씁쓸하고 행복하지 못한 것일까? 네이버를 키면 바로 뜨는 게 자살소식들이다. 오늘은 누가 자살하고 내일은 또 누가 자살하고 어제는 웬 친척이 자살하고. 이 사회의 승자라고 불릴만한 (수많은 학생들이 부러워 할) 서울대, 카이스트대 같은 명문대생들이 자살하는 숫자가 심상치 않다는 풍문이 들린다. 그 풍문이 진실이라면, 왜 그들은 행복하지 않는가? 이 사회가 원하는 요구치에 충실히 도달했고 그에 따른 찬사를 받는데. 우리 모두는 불완전함을 느끼고 지극히 허한다. 폭식증과 거식증, 우울증과 히스테리는 흔하다. 베이트만 역시 도달했다. 그런데 패트릭 베이트만은 미쳐버렸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이 영화가 왜 나의 감정을 자극하는지, 이 영화가 어떤 방식으로 나를 자극하는지가 불쾌했다. 왜 내 현실, 주위의 현실 같지? 레이스의 작은 쥐들이 되어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궁둥이를 팡팡 때려댄다. 달려! 달리라고! 또 달려! 노화하지 않기 위해 아이크림을 바르고 피부를 위해 수분공급 해주고 살 안 찌려고 운동하고 학벌 위해 하버드대 가고 일하고 또 일하고 남들한테 보여지는 모습이 중요하니까 아버지가 사장이라도 일하고.

 

    김승옥의 '역사'라는 소설에 나오는 괴기한 집안이 있다. 그 집안은 질서 정신에 집착하는데, 정해진 시간에 딱딱 움직인다. 그것은 효율과 능률을 위해서이다. 잡담도 딱 십분만 한다. 그 규칙은 네 살짜리한테도 지켜진다.  

 

     왜 우리는 쉴 틈이 없는가? 왜 우리는 이 사회에서 불행한가?

 
    패트릭 베이트만은 아메리칸 사이코다. 즉 미친 놈이다. 그럼 우리나 이 사회도 코리안 사이코다. 적어도 내 느낌엔 다들 좀 괴랄하다.

 

<네이버 블로그, 이글루스에도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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