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가 다음 주에 개봉하기 때문에 2008년에 쓴 리뷰를 살짝 수정해서 올립니다. 

비지터 (The Visitor, 2007) ☆☆☆1/2

코네티컷의 어느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월터 베일의 삶은 단조롭고 변화가 없고 그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을 세 권 쓴 경제학 교수인 그는 지금 네 번째 책 준비한다면서 한 강의만 변함없이 맡고 있는데, 사정 있다고 하면서 늦게 제출하는 학생을 매정하게 되돌려 보내는 것만 봐도 베일은 남들에게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냥 이름만 빌려준 논문의 공동 저자가 사정상 뉴욕에 열리는 모임에 가지 못하게 되자, 별로 내키지 않은 기분으로 그녀 대신 가게 된 월터는 뉴욕 맨하탄의 오랫동안 비워둔 그의 아파트에 들어가지요. 

 그런데 거기엔 젊은 커플이 들어와 살고 있어 왔습니다. 이들은 시리아인 타렉과 그의 여자친구 세네갈인 자이납인데, 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다른 사람에게 속아서 그 집을 임대해서 살아왔던 것이지요. 그들이 당장 머물 곳이 없다는 것을 안 월터는 일단 이들을 집에 머물도록 허락해줍니다.

영화는 월터가 이 두 낯선 이들과 가까워지게 되는 과정을 잔잔하고 따뜻하게 그립니다. 오랫동안 피아노 연주를 배우려고 했지만 성과가 없던 월터에게 실력 있는 아프리카 드럼 연주자인 타렉은 다른 방향의 길을 제시하고 덕분에 타렉과 월터는 무척 의미 있는 순간들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는 동안 타렉과 자이납은 월터에게 낯선 손님들 그 이상이 되지요. 

 하지만 그 다정한 순간도 잠시, 지하철역에서의 불심검문으로 타렉이 체포되면서 냉엄한 현실이 그들 앞에 등장합니다. 타렉과 자이납은 불법체류자들이였고, 따라서 타렉은 강제추방을 당하게 당할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변호사를 고용하는 등으로 월터는 타렉을 도와주려고 하고 이러는 동안에 소식을 듣고 미시간에서 온 타렉의 어머니 모나([레몬 트리]의 히암 압바스입니다)와도 가까워지기 시작합니다.

영화 [비지터]는 익숙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위에 별 관심 없이 살아가온 주인공에게 어느 날 낯선 이들이 등장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야기이지요. 이런 익숙한 줄거리엔 이야기를 잘 풀어나가는 능력과 뭔가 특별한 것이 요구되기 마련인데, [비지터]는 이 둘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야기를 차분하고 섬세하게 펼쳐나가는 가운데 미국의 불법체류자들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비판을 굳이 강조하기 보다는 캐릭터들의 감정을 통해 전달하고, 그 중심엔 오랫동안 주변에서 활약해 온 중견배우 리처드 젠킨스의 훌륭한 연기가 있습니다.

TV와 영화를 넘나들면서 꾸준히 출연해 온 리처드 젠킨스는 이 영화에서 잊지 못할 연기를 선사해서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영화들을 꾸준히 보는 동안 이 중견 배우가 정말 많은 영화들의 주변부에서 활약해왔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는데, [메리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를 다시 볼 때 주인공 테드에게 전혀 신경 안 쓰는 상담의가 바로 리처드 젠킨스였다는 것을 발견했고, [노스 컨트리]에서는 딸의 입장을 이해해가는 아버지로 좋은 모습을 보였고, HBO TV 시리즈 [식스 핏 언더]에서는 죽은 아버지로 나왔습니다. 거의 조연이었던 그가 주연을 맡게 된 [비지터]에서의 연기는 묵직한 여운을 남깁니다. 영화 내내 월터의 얼굴표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지만, 낯선 이들의 등장을 통해 뭔가를 얻었다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고, 그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손을 뻗치는 그의 모습은 조용하지만 감정이 물씬 느껴집니다. 

월터의 삶에 들어온 낯선 이들을 맡은 배우들도 좋은 조연 연기를 선사합니다. 하즈 슬레이만은 타렉을 보기만 해도 호감이 가는 생생한 캐릭터로 만들고, 타렉의 다정함과 음악은 월터의 굳은 장벽을 무너뜨립니다. 다나이 거리라는 낙천적인 타렉을 보완해주는 현실적인 여자친구 자이납을 맡았고, 히암 압바스가 리처드 젠킨스와 함께 하는 장면들에선 훈훈함과 함께 두 주인공들 간의 애정이 굳이 말 안 해도 느껴집니다. 이야기가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월터와 모나는 자신들의 상황에서 각자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감독/각본가인 톰 맥카시의 전작 [스테이션 에이전트]에서 주인공인 난쟁이 핀은 남들 눈길이 싫어서 그냥 혼자 조용히 지내려고 하지만 결국엔 자신의 인생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게 되고 그의 인생은 전보다 나아집니다. 월터 베일도 자신의 삶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혼자 사는 삶에 너무나 익숙해져 왔습니다. 하지만, 우연한 낯선 이들의 방문으로 월터의 인생에 새 경로가 트이게 되고 그는 전보다 더 나아집니다. 익숙해도 어느 새 받아들이게 만드는 좋은 이야기와 리처드 젠킨스의 탁월한 연기가 있기 때문에 말하지도 않아도 우린 그걸 느낄 수 있고 그와 동감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카메라가 멀리서 그를 바라다보는 마지막 순간은 상반된 감정들이 넘치는 가운데 감동적입니다. 변화는 결코 늦지 않았고 기회는 언젠가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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