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너무나도 화려한 출연진 때문이다. 거장이란 칭호가 결코 어색하지 않은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요즘은 CSI :NY로 친숙한 게리 시니즈, 팀 로빈스, 돈 치들까지 그 면면이 참으로 화려하다. 게다가 단순한 흥행배우들이 아닌 연기력을 겸비한 배우들이고... 이런 쟁쟁한 면면들이 모여 NASA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만든 본격 SF 영화라니!


폭력과 관능적인 표현에 일가견이 있는 스타일리스트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지만, 이 영화는 뜻밖에도 아무런 기교를 부리지 않은 매우 정석적인 하드 SF물이다. 인류의 외계인 창조설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화성 탐사 중 조난당한 루크(돈 치들)을 구하기 위한 구출대의 여정과 화성에서 조우하게 된 외계유적 탐사라는 꽤 단순한 구조의 이야기를 113분 동안 뚝심있게 끌고 나간다. 이 영화에서는 화려한 카메라워크도, 빠른 교차편집도, 박진감 넘치는 시퀀스도 없다. 대부분의 장면들(특히 우주선 안에서는 더욱)은 지루할만큼 느리며, 배경음아이나 효과음도 별로 쓰이지 않아 가끔은 무성영화를 보는게 아닌가 착각마저 들만큼 조용하다. 마치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후반부를 보는 느낌이랄까? 영화의 템포 역시 한가로울만큼 느려, 하다못해 조난당해 긴박한 상황에 놓인 동료를 구하러 갈 때조차 6개월이 걸린다! 이 영화의 흥행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느린 템포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지닌 하드 SF적인 성격을 고려했을 때 이런 결점들은 오히려 현실성에 바탕을 둔 것이기에 마냥 탓할 수만은 없다. 우주에선 실제로 모든 것이 느리고 조용하니까... 대신 이 영화는 인류의 기원을 고찰하는 진지한 주제와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정교하게 재현된 우주선 내부와 우주복, 현실적인 우주 유영 장면, 화성에서 온실 식물재배를 통한 식량 및 산소 자급자족 체계 등 SF 중 "픽션"보다 "사이언스"에 비중을 둔 설정과 장면들을 통해 하드 SF 팬들의 구미를 끌어당긴다. 


처음 화성의 모래폭풍 속에서 얼굴의 형상을 한 외계유적이 모습을 드러낼 때만 해도 거의 공포스러운 위압감을 느꼈는데, 막상 유적 안의 외계인(이라기보다는 그들이 남긴 홀로그램 AI인 듯 싶다.)의 모습이 거의 아동용 애니메이션에나 등장할법한 모습이라 꽤 김빠지게 하지만(조금만 더 신비로운 분위기였다면 좋았을텐데... 차라리 A.I.처럼 빛으로 처리하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적에 도착한 탐사대가 홀로그램을 통해 인류 기원의 비밀을 알게 되는 모습, 짐 맥코넬(게리 시니즈)이 지구로 돌아가는 대신, 선조들의 우주선을 이용해 그들에게 향하기로 결정하는 모습(집으로 돌아가자는 동료들의 설득에 "나도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라고 대답하는 장면은 상당히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혼자 남은 짐이 사별한 부인, 친구들과의 즐거웠던 순간들을 추억하는 장면 등은 잔잔한 음악과 어우러지며 깊은 울림을 준다. 


참 요즘(이라고 해도 벌써 10년도 더 전이지만) 보기 드문 영화다. 주로 스릴러나 느와르 장르에서 감각적인 스타일을 뽐내왔던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지만 그의 커리어에서 유일한 SF인 이 영화에서만큼은 영화를 처음 찍는 모범생 초심자마냥 일체의 기교를 배제한 채 시종일관 뚝심있는 정공법으로 묵묵히 나아가며, 이런 거장의 우직한 발걸음은 과학에 대한 성찰이 배제된 채 'CG로 떡칠된 유치한 장르'로 변질되어가는 SF 씬에서 차라리 신선하게까지 느껴진다. 이 영화는 느리고 조용하지만 묵직하다. 그리고 그 묵직함이 주는 충격은 머리와 가슴을 울리며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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