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케빈에 대하여

2012.08.30 09:42

menaceT 조회 수:4409

 

  '케빈에 대하여'는 틸다 스윈튼, 에즈라 밀러의 소름끼치는 연기를 바탕으로, 여러 시점을 오가면서도 결코 리듬이 늘어지지 않는 날선 연출이 더해져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음악 감독 조니 그린우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작중 내용과 연관성을 지니면서도 분위기는 전혀 다른 가사와 멜로디의 컨트리 음악들이 줄줄이 이어지는데, 겉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가정 속에서 오직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서만 드러나는 그 깊고 깊은 갈등의 골, 영화의 핵심이랄 수도 있는 그 이질성을, 영화 분위기와 정반대의 지나치도록 훈훈한 그 컨트리 음악들이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드물게 삽입된, 거슬리는 소리들로 이루어진 오리지널 스코어들도 그 이질성을 강조한다.
 
  케빈이 날 때부터 악마였는가 아니면 에바가 케빈을 그렇게 만들었는가,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이 꽤 분분한 모양이던데, 왜 사람들이 여기다 그렇게 열을 올리는지 모르겠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그 논쟁에 확답을 남기기를 꺼린다. 케빈이 특정 성향을 애초부터 지니고 있었다는 뉘앙스의 씬들과 에바가 그러한 성향들을 발현시켰으리라는 뉘앙스의 씬들이 꽤 균등한 비율로 분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영화는 선천적, 후천적 원인 모두를 긍정하는 듯 보인다.
 
  아니, 오히려 영화가 집중하고자 하는 부분은 '케빈이 왜 그렇게 되었는가'가 아니라 '그렇게 되어버린 케빈을 에바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이기에 애초에 위의 논쟁 자체가 소모적이지 않나 싶다. 그렇다면 이제 후자의 질문에만 집중할 필요가 있겠다.
  
  영화는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 장면에서 시작한다. 붉은색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주인공 에바의 모습이 보이는데, 그녀를 저주하는 듯한 목소리들이 그 위에 깔린다. 그 뒤엔, 피와 같이 붉은 물감이 집에 흩뿌려진 것을 본 에바가 그 물감들을 긁어내는 과정을 기둥 삼아, 그녀가 남편과 사랑을 속삭이던 시점, 그녀와 케빈이 갈등을 겪어온 과거 시점, 케빈이 모종의 사건을 벌인 직후 시점, 그 이후 에바가 홀로 그 후폭풍을 감내하는 시점의 이야기들이 잔가지처럼 뻗어나오며 전개된다. 이렇게 여러 덩어리의 이야기들이 정신없이 뒤섞이다가 영화의 말미에 이르면 케빈이 사건을 벌이는 그 지점에 이르러 과거의 시점에서 전개되던 세 덩어리의 이야기가 매듭지어지고, 물감 자국을 다 벗겨낸 에바가 작중 마지막 면회를 가는 지점에서 비교적 최근 시점의 두 이야기 덩어리가 매듭지어진다. 그 마지막 면회 장면에서 어머니 에바의 질문은 '왜'이며 아들 케빈의 대답은 '이제는 모르겠다'이다. 그 대답을 들은 어머니는 아들을 껴안은 뒤 그 곳을 나선다. 그것이 영화의 결말이다. 
 
  여기서 질문을 던져 보자. 영화의 맨 처음을 장식한 스페인 축제 장면은 무엇을 의미하며 그것은 왜 영화의 '처음'을 담당해야 했을까? 케빈이 일으킨 사건 이후 참담한 현실 아래 놓인 에바가 도피하고 싶은 마음에 꾸는 꿈 장면일 수도, 혹은 에바가 자유롭던 과거의 장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 장면이라기엔 에바의 표정의 변화, 토마토가 주는 이미지의 반전 등을 설명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이를 단순히 현실에서 도피하고픈 에바의 꿈 장면으로 보아야 하는가? 또 하나, 스페인 축제 장면 이후 영화는 왜 물감을 긁어내는 과정을 큰 기둥 삼아 여러 시점의 이야기들을 잔가지마냥 붙여 두었는가? 이 질문들은 어쩌면 영화가 케빈과 에바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는 그 핵심을 담고 있는지 모른다.
 
  케빈은 늘 가족들 중 유일하게 에바에게만 자신의 본 모습을 보인다. 선천적인 것 때문인지 아니면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을 지나치게 드러내며 잘못된 육아를 해 온 에바 때문인지 영화는 그 대답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으나, 어쨌든 케빈은 에바에게 노골적인 악의를 보이며, 이는 때로는 애정과 관심을 갈구하는 몸부림으로 보이는가 하면(좋아하는 것과 익숙해지는 것은 다르다며 에바는 자신에게 그저 익숙해진 것일 뿐이라 말하는 케빈의 태도는 꽤 인상적이다.), 때로는 순수하게 그녀를 괴롭히기 위한 행위로 보이기도 한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와중에 하나만은 확실하다. 그의 행위가 모두 에바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 케빈이 마지막에 벌이는 살육은 그것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다. 케빈은 에바가 케빈과 자신 간의 관계 회복의 신호라 이해했던 '로빈 훗'을 살인의 방식으로 의도적으로 '인용'하며, 가족 중 자신의 행위의 결과를 보고 그 이후 자신을 대면할 유일한 사람으로 에바를 남겨둔다. 경찰차에 태워져 끌려가는 순간까지도 그는 에바를 응시한다.
 
  그 마지막 살육에 이르면 에바는 질문을 피할 수 없다. 그가 그런 성향을 지니게 된 원인이 무엇이든, 그 살육을 벌인 기저의 동기가 무엇이든(결말의 문답을 보면 영화는 이조차도 명확히 표현하길 꺼리는 듯하다.), 오로지 자신만을 향한 악의를 품고 행동하는 케빈에 대해 에바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가? 사랑할 수 없었던 아이, 자신을 증오하고 그 악의를 숨기지 않아 더더욱 혐오스러워진 그 아이는 마지막 살육을 통해 이제 에바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반응'을 보일 것을 강요한다.
 
  그녀의 반응은 그녀가 붉은 물감을 집에서 지워내는 과정으로 형상화된다. 아들의 악행에 원한을 품은 이들이 에바의 집과 차에 흩뿌린 붉은 물감, 마치 아들의 악행이 흩뿌렸을 피와 같이 붉은 그 물감을 에바는 벗겨내려 한다. 이 때 위에서 했던 질문 중 하나를 상기해 보자. 물감을 지워내는 과정을 큰 기둥 삼아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 덩어리들을 잔가지처럼 덧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에바가 물감을 벗겨내는 과정을 영화가 꽤 성실하게 쫓는 와중에, 에바와 케빈을 둘러싼 과거의 이야기들이, 그리고 케빈의 살육 뒤에 에바가 홀로 짐을 짊어지고 견뎌야 했던 시점들의 이야기들이 뒤섞여 파편처럼 그려진다. 이는 마치 그녀 스스로 물감을 벗겨내며 지난 날을 반추하고 동시에 현재를 끈덕지게 살아내고 있음을 영화가 반증하는 듯하다. 즉, 영화는 이 복잡한 구조를 통해, 어떠한 '반응'을 강요받은 에바의 심리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관객은 영화가 끝나가는 시점에서야 에바가 그 '반응'을 강요받았던 사건을 목도하게 되고, 이 '반응'을 핵심으로 영화의 구조를 처음부터 다시 구성하게 된다.
 
  위에서 말했듯, 케빈이 벌인 마지막 살육은 에바를 타깃 삼아 에바에게 어떠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다. 그 살육의 피, 그에 대해 원한처럼 흩뿌려진 물감, 그 모든 붉은 것들을 에바는 꾸역꾸역 지워낸다. 과거를 돌이키며, 그리고 현재를 견뎌내며. 이는 어떻게 보면 그 모든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케빈을 포용하려는 움직임이라 할 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그 피들을 지워냄으로써 케빈을 자신에게서 부정하려는 움직임이라 할 수도 있다. 나의 경우, 처음에는 이것이 포용의 신호라 보았으나 다시 생각해 보니 꽤 다른 답이 나왔다.
 
  다시 한 번 마지막 면회 장면을 보자. 물감을 다 지워낸 어머니의 질문은 '왜'이며 아들의 대답은 '모르겠다'이다. 영화 전반적으로 면회 장면은 여러 번 등장하나, 그때마다 에바와 케빈 사이에는 이렇다 할 소통이 존재하지 않는다. 에바에게 늘 케빈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면회 장면에서는 어떠한가? 아들은 곧 성인 교도소로 옮겨질 것이고 아들의 말에 따르면 어머니는 그 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채로 되도 않는 위로를 하고 있다. 어머니는 '왜'라고 물으며 아들은 '모른다'고 답한다. 여전히 서로를 '모르는' 둘, 그 둘 사이에 소통은 없다. 아들과의 포옹 뒤에 교도소를 빠져 나오는 에바에게 또 다른 죄수가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며 울부짖는데 에바는 이 울부짖음마저 외면하며 도망치듯 그 곳을 빠져나온다. 그때 새하얀 빛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 일종의 해방. 에바에겐 아들이 성인 교도소로 떠나고 자신이 그 곳을 벗어나는 것이 곧 해방인 것이다. 에바가 교도소를 나서기 직전 케빈과 했던 포옹은 '사랑의 포옹'이 아니었음이 명확해지는 순간이다.
 
  에바가 아들의 악행으로 인해 자신이 해꼬지를 받는 것까지도 다 감내해 가며 물감을 벗겨내는 과정은, 아들에게 어미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의무를 다한다는 나름의 핑계이자 동시에 아들을 부정하기 위한 마지막 준비이다. '왜 그랬냐'는 질문에 케빈이 '모르겠다'고 답했다는 것, 그것은 에바에게 있어 자신이 할 때까지 해 보았으나 아들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 자신이 포용할 수 없는 존재라는 일종의 확증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며, 때문에 에바는 형식적인 포옹 뒤에 케빈을 그대로 버린 셈이다.
 
    자, 이제 토마토 축제 장면으로 돌아가자. 아까 위에서 던졌던 질문 중 아직 답을 하지 않는 질문을 되새기자. 토마토 축제 장면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단순히 꿈 장면으로 볼 수도 있지만 위에서 언급한 '후반부에 이르러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를 처음부터 재구성하도록 하는 영화의 구조'를 떠올려 보면 또 다른 해석도 가능할 것 같다. 다시 말해, 단순한 꿈 장면으로 보였던 그 스페인 토마토 축제 장면이 어쩌면 시간 상으로 가장 뒤에 위치한 사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스페인 장면에서 에바가 여전히 그녀를 저주하는 환청을 듣고 있다는 점, 그녀가 근무하는 여행 회사에 그 토마토 축제가 있는 스페인 특정 지역의 홍보 포스터가 있다는 점 등이 그 가능성이 영 허무맹랑한 것은 아님을 뒷받침한다.

 

  영화 중반부의 마트 장면에서도 이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에바가 마트에서 피해자 어머니를 맞닥뜨리자 도망치는 곳이 하필이면 토마토 소스 통조림이 잔뜩 쌓인 곳이다. 에바는 그곳에서 그녀를 피했다고 생각하나 카트를 들고 계산대로 가서야 카트 안에 담겨있던 계란이 다 깨져 있음을 발견한다. 이 장면에서 '토마토'는 에바가 선택하는 도피의 수단으로 은유되며, 동시에 그것이 실패하게 된다는 암시도 담겨 있다. 이 장면을 축제 장면과 비교해 보자. 피해자 어머니를 피하기 위해 마트의 토마토 통조림들 뒤로 숨는 것, 그리고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스페인 토마토 축제로 도피하는 것, 후자는 전자의 확장이다. 즉, 축제 장면은 마트 장면을 더 확장한 장면이며 따라서 마트 장면의 뒤에 오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축제 장면이 영화의 맨 뒤에 위치해야 함을 전제한다면, 영화는 왜 시간순으로 배열할 때 가장 뒤쪽이어야 할 토마토 축제 장면을 맨앞에 두었는지가 의문으로 남는다. 어떠한 컨텍스트도 없는 상태에서 토마토 축제는 말 그대로 '축제'이며, 이 장면에서의 붉은색은 '피'보다는 긍정적 의미의 붉은색으로 받아들여지게 마련이다. 더불어 이 장면에서 처음 등장할 때 에바의 표정은 매우 밝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우리는 이때의 에바의 표정이, 케빈을 부정한 뒤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여행을 떠나 온 에바가 해방감으로 가득 찬 채로 짓는 표정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곧 그녀를 저주하는 말들이 보이스오버로 깔리고, 에바의 표정이 굳는다. 곧 그 자리엔 해방감에 젖어있던 에바의 얼굴은 사라지고, 불쾌한 이미지, '피'의 이미지로 돌변한 토마토의 잔해만이 남아 화면을 메울 뿐이다. 마트 장면에서 에바가 통조림들 뒤로 숨어 피해자 어머니를 피하려 하나 결국 실패하는 그 과정이 다시 한 번 확장된 형태로 되풀이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뭉그러진 토마토의 잔해와 꺠진 계란 잔해들의 이미지 상 유사성이 떠오르기도 한다(이 영화는 이미지의 유사성으로 섬뜩함을 주는 지점이 꽤 여러 군데 있다. 대표적으로 동생의 눈을 다치게 한 뒤 케빈이 눈을 연상시키는 새하얀 리치를 까서 게걸스레 먹는 장면이 있다.). 이렇게 확장된 양상으로 나타난 실패는 마을 안에서 불가능했던 도피가 마을 밖에서 역시 불가능함을 드러내며, 케빈을 부정하고 에바가 악마의 어머니로서의 그 길고 길었던 고통의 나날들을 벗어나 해방감에 젖는 듯 했으나 결국 영영 '케빈의 어머니'로서의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없음을 드러내는 의미심장한 장면이다. 

 
  에바가 물감을 지워가는 과정에 여러 가지 잔가지를 쳐 가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함으로써 영화는 이미 관객으로 하여금 결말부에 '살육'이 일어나는 시점에 영화의 구조를 처음부터 다시 짜도록 시도하게 한 바 있다. 그러나 영화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마지막 면회 장면, 그 문답과 형식적인 포옹과 해방감을 주는 듯한 그 하얀 빛을 마주한 뒤에 관객이 영화의 첫 장면과 연계해 영화를 총체적으로 재구성하게끔 다시 한 번 종용하는 것이다.
 
  아들을 사랑하지 않음에도 자신이 그의 어머니이기에 어머니의 역할을 해 보려 노력했던 여자, 그녀가 특정 사건에 이르러 더 이상의 시도를 포기하고 철저한 자기 변명의 준비 끝에 그를 부정하기에 이르지만 결국 영영 그의 어머니라는 굴레를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영화는 관객이 두 번씩 자신의 기존의 감상을 번복하고 재구성해 가며 따라오게 한다. 구조 자체를 통째로 뒤집는 반전을 두 번이나 시도하며 적극적 감상을 유도하는 이 영화의 복잡한 서사 구조는, 혹시 촉망받는 여성 감독 린 램지가 관객으로 하여금 능동적으로 '모성애', '가족', '모자 관계', '여자'에 대한 사회 통념을 해체, 재구성할 것을 촉구하기 위해 짜둔 일종의 모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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