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카펜터의 괴물 The Thing

 

미국, 1982. ☆☆☆★★★

 

A Universal Pictures Release. 1 시간 49 분, 화면비 2.20: 1

 

Directed by: John Carpenter

Screenplay: Bill Lancaster

Based on a John W. Campbell story "Who Goes There?"

Cinematography: Dean Cundey

Music: Ennio Morricone

Editing: Todd Ramsay

Production Design: John L. Lloyd

Special Effects Makeup Design: Rob Bottin

Visual Effects: Roy Arbogast, Albert Whitlock

Stop Motion Animation Effects: Randall William Cook

 

CAST: Kurt Russell (마크레디), Wilford Brimley (블레어), Keith David (차일즈), Donald Moffat (개리 대장), Richard Dysart (카퍼 의사), David Clennon (파머), Richard Hallahan (노리스), Thomas Waites (윈도우스), Richard Masur (클라크), Joel Polis (퓨크스), Peter Maloney (베닝스), T.K. Carter (노울스)

 

더 씽 The Thing

 

미국-캐나다, 2011. ☆☆☆

 

A Morgan Creek/Strike Entertainment Production. Released by Universal Pictures. 1 시간 43 분, 화면비 2.35: 1

 

Directed by: Matthijs Van Heijningen Jr.

Screenplay: Eric Heisserer

Cinematography: Michel Abramowicz

Music: Marco Beltrami

Production Design: Sean Haworth

Special Effects Makeup: Paul Jones, Tom Woodruff Jr.

Creature Design: Michael Broom

 

CAST: Mary Elizabeth Winstead (케이트 로이드),Joel Edgerton (샘 카터), Ulwrich Thomsen (할보르손 박사), Adewale Akinnuoye-Agbaje (제임슨), Kim Bubbs (줄리엣), Jorgen Langhelle (라르스), Stig Henrik Hoff (페더)

 

[존 카펜터의 괴물] (앞에 붙은 '존 카펜터의' 는 별 의미가 없는 군더더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영화를 보면 'John Carpenter's The Thing' 이라고 타이틀에 박혀나옵니다.그러니 한국의 수입사에서 괜히 첨가한 것은 아닙니다)은 디븨디와 블루레이로 일년에도 한번 이상을 반드시 보고 케이블 티비에서 틀어줄 때마다 처음부터 끝까지 방청하게 되는 몇 안되는 작품 중의 하나인데도 여지껏 제대로 된 품평을 쓴 적이 없습니다. 의외스럽게도 [괴물]의 리메이크 (라기보다는 프리퀄: 여기에 대해서는 밑에 후술) 가 작년에 공개되는 바람에 몰아서 리뷰를 쓸 기회가 돌아오긴 했구먼요. 사실은 존 W. 캠벨의 원작소설 및 하워드 호크스가 제작한 40 년대작품 [외계에서 온 물체] 와 이 현대적 재해석들을 비교 분석하는것이 더 재미있고 SF 팬들에게도 더 흥미있는 작업이 되겠지만 건강 문제때문에 (한숨...) 그 일은 뒤로 미룰 수 밖에 없겠습니다. 일단 비교적 손쉽게 구해 볼 수 있는 1982년판과 2011년판을 같이 다뤄 보기로 하겠습니다.

 

[존 카펜터의 괴물]은 80년대 초반의 특수메이크업효과 융성기를 배경으로, 저예산 호러로 큰돈을 벌어들이면서 효자 노릇을 하던 존 카펜터 감독에게 유니버설이 의례적인 수준의 컨트롤을 허용해서 만들어진 A급 프로젝트입니다. 카펜터가 왜 이 기획에 관심을 가졌는가 하는 점은 호크스/크리스천 나이비버젼을 보면 금방 납득이 갑니다. 남성적인 프로페셔널 캐릭터들이 외부의 적에 맞서서 대립각을 세우면서 문제 해결을 해나가는 구도 (카펜터의 출세작 [13번지서 습격사건 -- 한국제명은 '분노의 13번가'] 이 이 취향을 가장 온전하게 보여줍니다) 는 원래 이 감독이 선호하는 것이고, 원작 [거기 가는 것은 누구냐?] 는 여기에 '외부의 적' 과 '내부의 같은편' 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는 반공동체적인 설정을 더하고 있지만, 이 부분도 카펜터의 도회적이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습죠. 지금 시점에서 보면 1982년 당시의 거의 대부분의 평론가들과 상당수의 관객들이 [괴물] 을 "징그럽고 끈적끈적한 특수효과에 잡혀먹힌 실패작" 이라는 식의 박정한 평가를 내렸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해 보입니다. 자칭 SF 팬이라고 주장하는 로저 이버트도 별 두개 반 준것이 고작이었고, [뉴스위크] 의 데이빗 앤슨은 "[할로윈] 의 예에서 보듯이 신고전주의적인 영화작가인 카펜터가 이러한 특수효과에 넋을 빼앗긴 영화를 만들다니 유감이다" 라는 투의 저는 전혀 찬성할 수 없지만 흥미있는 평론을 썼었죠.

 

앤슨의 의견과 관련해서 한가지 제가 인정할 수 있는 것은 [괴물] 은 고전 헐리웃 영화가 지닌 유머 감각과 관객들의 감성에 맞추어주는 서비스 정신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같은 카펜터 작품이라도 [스타맨] 이나 [빅 트러블 인 리틀 차이나] 의 경우는 좀 더 옛적 미국 활동사진의 모델에 가깝고 그런 일편에서 얻을 수 있는 "재미" 가 있지요. [괴물]은 그런 면에서 소위 말하는 "뜨거운 가슴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로 만든" 영화입니다. 다시 말해서 "웰메이드 상업영화" 가 아니고 당시 관객들의 기대수준을 확 뛰어넘어 버리는 "전위적이고 예술적인 장르영화"다 이 말입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 이 (원작자 스티븐 킹의 "엔진이 없어서 굴러가지도 못하는 빨간색 롤스 로이스 같다" 라는 비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예술작품이라고 거품을 물고 찬양하는 평론가분들은 응당 [괴물] 의 가치도 무시해서는 안되는 것이거늘, 세상일이 그렇게 순리대로 돌아가지는 않거든요. 전형적인 예술영화-상업영화 분류법을 따르자면 "관객들이 보기에는 알쏭달쏭하고 난해하지만 뭔가 있어보이는 스타일" = "예술" 이고 "특수효과나 새로운 촬영기법이나 하여튼 기술적인 수단을 통해 우리가 여지껏 보지 못했던 그리고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사상 (事象) 을 발현해 보이는것" = "그냥 돈벌려고 하는 짓거리" 인 거니까요. 이러니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는 영원히 위대한 예술가 소리를 듣고 마리오 바바는 기특하게도 화면빨을 고급으로 찍어낼 줄 알았던 싸구려 호러영화 감독으로 인식되는 현실이 지속되는 겁니다 (실제로 안토니오니가-- 마카로니 웨스턴의 각본부터 시작해서 온갖 장르의 작품에 연루되고 그랬던 베르톨루치 같은 생존하는 거장들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생전 바바 그런 천박한 상업영화 감독 얘기는 내 앞에서 하지 말라 라는 식의 거만한 인식을 하고 살았을 가능성은 전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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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괴물] 은 서사를 전개하는 기술에 있어서나, 영상언어를 통해 관객에게 의미를 전달하는 능력에서 있어서나, 호러-SF 장르의 공식을 따라가면서 변주하고 때로는 해체하는 방식에 있어서나 일류 장인-작가들이 제대로 자기 실력들을 과시하는 한 편입니다. 버트 랑카스터의 아들 빌 랑카스터가 쓴 각본은 원작의 길게 늘어지는 설명적인 대사들을 경제적으로 축약하고, 노르웨이 캠프처럼 원작에는 없는 설정들을 선택적으로 추가함으로써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외계생물의 위협을 묘사하는 작극법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평론가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추잡한 특수효과 벌어지는 장면으로 넘어가고 싶어서 안달하는” 얍살한 영화가 전혀 아닌 겁니다. 그리고 배역들에게서 장르적인 규범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는 방식으로 뛰어나게 자연스러운 연기를 추출해내는 능력 (흔히 언급되는 편견과는 달리 카펜터의 이런 능력이 남성연기자들에게만 발휘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런 식 주장하시는 분들은 아마도 하워드 호크스의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 같은 영화가 '남성중심적'이라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겠군요) 은 뭐 카펜터 감독의 주된 강점이니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괴물] 은 앙상블 연기가 압도적으로 중요한 일편이고 연기자들과 감독의 뛰어난 실력은 영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으면 누가 외계생물이 탈바꿈하고 있는 것인지 절대로 알 수 없지만 나중에 서너번 정도 보게 되면 확실히 그 인물이 수상하다! 라고 주목할 수 있는 단서가 주도면밀하게 미리 주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는 사실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한마디 부연하자면 두 번 정도 볼때까지는 커트 러셀이 연기한 주인공 마크레디가 상대적으로 시시하다고 여겨졌습니다만 두 번 이상을 보고 나니 전통 서부극의 보안관 같은 (10갤론 해트를 쓰고 등장한다던지) 존재로 부각되는 것은 겉보기고 그 내실에 있어서는 오히려 악인에 가까운, 상당히 어둡고 비관적인 캐릭터라는 것이 파악됩니다 (사실은 이러한 캐릭터 설정도 "수정주의" 서부극 말고-- 이 용어는 폐지되어야 마땅합니다-- "고전" 서부극에 이미 상당수의 전범 [典範] 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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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 컨디의 촬영과 엔니오 모리코네옹의 음악도 뛰어납니다. 어떤 분들은 모리코네옹의 스코어가 제대로 쓰이지 않았다라고 비판을 합니다만 모리코네옹은 이 영화의 음악을 그냥 분위기 및 감독의 영어에서 이탈리아어로 번역된 짧은 설명만 듣고 이탈리아에서 작곡해서 미국으로 공수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필수적으로 영화의 어느 부분에 어떤 음악이 들어가느냐 하는 복잡한 결정에는 작곡가의 의향이 반영되기 힘들었을 수 밖에 없고, 또 영화와 음악을 철저하게 비교하면 스코어에서 가장 효율적인 부분은 거의 빠짐없이 전자에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자음악이라고 해서 그냥 키보드를 여기저기 누르고 우웅~ 하는 신음소리 빽뮤직을 삼입하는 수준의 음악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2010년]의 데이빗 샤이어, [트론]의 웬디 카를로스 같은 훌륭한 사례가 존재하니까요. [괴물]의 모리코네 스코어도 예외가 아닙니다. 혹자는 존 카펜터 자신이 작곡하는 세미아마추어적인 스코어의 스타일과 지나치게 닮았다고 또 비판을 하기도 하는데 아니 누가 작곡을 했던지 간에 존 카펜터 감독작품에 "존 카펜터 스타일" 의 음악이 달리는 게 무어가 문제가 된다는 것인지.

 

마지막으로 롭 보틴의 “징그럽고 끈적끈적한 특수효과” 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만 [타임] 지인가 어디에서 “관객들과 아무런 정서적인 연결관계가 없이 벌어지는 보틴의 특수효과는 거의 추상미술에 가깝다” 라는 비판을 한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특수효과들이 관객들과 정서적 연결관계가 없다는 주장 자체도 문제입니다만, 무엇보다도 “추상미술에 가깝다” 라는 게 어째서 보틴의 작업에 대한 비판으로 인식되어져야 하는지도 납득하기 힘들어요. 맞습니다. 보틴 디자인은 "메이크업" 이 아니고 "추상조형미술" 에 후얼씬 가까운 그 무엇이죠. 쏘 왓? 아니 그런 방식을 취하지 않고 어떻게 “자신의 육체를 자유 자재로 변환시킬 수 있고 인간의 육체를 해체해서 재구성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존재” 를 이러한 입체감과 임팩트를 구비한 형태로 만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불타는 동체에서 떨어져나간 사람의 목이 책상 밑으로 기어가서 두개의 뿔눈이 달린 꽃게같은 “생명체” 로 변신하는 장면 등에 대해 무슨 "리얼리티가 부족하다" 라는 식의 비판을 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그럼 무슨 핑퐁볼을 눈두덩에 끼고 타이츠 입은 배우, 아니면 집게손에 개미머리가 달린 50년대식 외계인 꼬라지를 하고 등장을 했어야 된다는 얘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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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틴의 디자인은 SF적, 물리적인 개연성이라는 이슈와 관계없이 그 자체로서 내재된 미적 일관성에 의해 창조된 예술적 감성의 결과물입니다. 이제는 대한민국 영화계도 세계 기준으로 볼때 상위 수준의 특수메이크업 전문인력을 구비하는 곳이 되었으니 저의 이런 코멘트가 해부학적인 디테일이 모자란다는 식의 기술적 비판을 겨냥하고 있지 않다는 점은 따로 부연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습니다.

 

[존 카펜터의 괴물]은 딴얘기 할것없이 [싸이코], [샤이닝] 등의 역작들과 마찬가지로 극장에서 관객들과 같이 보면 그 파괴적인 공력을 가감없이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한편입니다. 당시의 많은 관객들이 이 작품의 진땀나는 가공할 파워를 "엔터테인먼트" 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혼쭐나는 경험을 “불쾌감” 으로 해석하는 (박찬욱의 [박쥐] 가 일부에서 그런 대접을 받았듯이) 바람에 공개 당시에는 실패작으로 분류되었었지만, 제작된 지 30년이란 세월이 지난 오늘에 봐도 "픽셀만 보고 그림은 보지 못하는" 컴퓨터 그래픽에 매달려 사는 최근 SF-호러들이 면전에서 까불댈 수 있는 그런 류의 작품은 아니올습니다. "현대의 고전"으로서 존경의 대상이 될 자격이 충분합니다.

 

자 그러면 2011년도판 [더 씽] 으로 논의를 옮겨보겠습니다. 이 한편의 질과 별로 관계가 없이 순전히 헐리웃 장르 영화의 트렌드 분석이라는 측면에서 흥미있는 것은 [더 씽] 은 스토리 상으로 보면 [존 카펜터의 괴물] 의 리메이크가 아니고 프리퀄인데도 불구하고 작품 자체의 전개 양상은 카펜터버젼을 의식하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고, 분명히 같은 시퀜스와 대사와 서사 전개 방식을 재현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강력하게 준다는 점입니다. 즉 겉보기는 프리퀄인데 실질적 내용은 리메이크인 좀 분열증적인 한 편입니다.

 

보통 프리퀄이라는 전략은 본편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상황에 어떤 재미있는 전사 (前史) 가 존재하지 않는가 하는 궁금증이 제기되었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기능하는 것이죠. [대부]와 [대부 2]를 시대적 순서대로 편집한 특별판 버젼을 혹시 보신 분들은 [대부]를 먼저 보고 그 프리퀄인 (정확하게 말하자면[대부 2]의 경우는 반만 프리퀄이지만) [대부 2]를 보는 것이 제대로 된 순서라는 것을 실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돈 코를레오네라는 캐릭터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말론 브란도가 연기하는 그런 거물의 위치에 올라갔나 하는 의문은 본편을 봐야지 비로소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고, 그런 전사가 있어야지 젊은 시절의 코를레오네를 로버트 드 니로와 같은 전혀 다른 생김새와 스타일의 연기자가 맡아도 이질감이 없이 영화 자체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상대적으로 [괴물] 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노르웨이 캠프에 무슨 일이 있었나 하는 질문은 그렇게 흥미를 유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보면 [더 씽]은 네덜란드 출신의 신인감독 마티어스 판 헤이닝엔 주도아래 잘 만들어져있습니다. 유럽사람이라서 그런 건 아니겠지만 하여간에 무조건 껌을 딱딱 씹고 마초틱한 저질 대사를 남발하는 머절한 캐릭터들이 바보 같은 짓을 하다가 하나씩 혹은 다발로 외계생물에 잡아 먹히는 그런 현대 슬래셔영화적 구조를 방기하고 비교적 차분하게 스토리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면에서 [괴물] 보다도 더 강하게 50-60년대 SF영화의 공식을 따라간다고 느낄 정도입니다. 프리퀄의 강점을 사용해서 카펜터버젼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리고 그 일부는 존 캠벨의 원작에는 묘사된) 장면들을 새롭게 보여주는 부분도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얼음속에 갇힌 오리지널 외계생물을 팀원들이 발견하고 나중에 얼음덩어리속에서 이 생물이 부활하는 씬이라던지, 외계생물이 타고 온 거대한 우주선의 내부와 내비게이션 시스템의 구체적인 묘사 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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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가 연기하는 여성 과학자를 주인공으로 한 것은 다분히 시류에 영합하는 시도라는 것이 뻔합니다만 (영화는 본편과 아귀를 맞추느라 여전히 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팀원들과 로맨스를 하고 어쩌구 하는 쓸데없는 짓거리를 벌이는 것도 아니니 그냥 넘어가 줄 수 있습니다. 노르웨이, 영국 등의 국적이 섞인 팀원들의 행동거지나 프로덕션 디자인 등의 요소에도 그렇게 큰 문제점은 없고 무난하게 처리되고 있는데요.

 

제가 보기에는 [더 씽]이 훨씬 더 좋게 빠질 수 있었던 것을 훼방놓는 두가지 부정적인 요소가 존재합니다. 첫번째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프리퀄로서 기획이 된 것이 확실해 보이는데도 카펜터 버젼을 고대로 베끼려는 것처럼, 다시 말하면 리메이크 (정확하게 계보를 따지자면 리메이크의 리메이크) 처럼 굴고 있다는 점입니다. 덕택에 [괴물]에서 쓰지 않았던 아이디어들 (정말 이런 아이디어들이 기발한지는 차치하고 어쨌던 나름대로 독창성을 부여해줄 수 있는) — 예를 들자면 혈액검사나 그런 의학적인 방법을 쓰지 않고 육안으로만 관찰해서 어떻게 인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괴물을 식별하는가 하는 방법— 을 집어넣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나름의 독특한 전개로 발전시키지를 못하고, 카펜터 버젼에 대비되는 세트피스를 집어넣는 데에만 정신이 팔린 것처럼 보이게 돼요. 그런 식으로 일을 하다 보니 짙은 여운을 남기는 서부극 대결구도의 [괴물]의 엔딩을 흉내낸 [더 씽]의 클라이맥스도 보고 나면 “아니 그럼 살아남은 쪽은 어떻게 된 건데?” 라는 의문 밖에는 남는 게 없습니다. 프리퀄, 리메이크 다 해봤으니 이제는 명실공히 “속편”을 만들려고 작정한 무리수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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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본편에 충실한 프리퀄로 만들기 위해 억지를 부리는 것으로 보이는 개소도 있습니다. [괴물]의 초반부에 등장해서 강렬한 인상을 주는 “둘로 갈라지는 남자” 시체의 경우 [더 씽]에서 어떠한 경로로 그런 모습이 되었는지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만 아무리 봐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왜 우주생물이 굳이 그런 식으로 두개로 합쳐져서 행동해야 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가요. 불에 타기 직전에 둘로 분열해서 도망치려 했다가 미처 못 한 것이라면 차라리 그럴 수 있겠다 하고 생각하겠는데 말이죠.

 

그리고 두번째 문제는 외계생물의 디자인입니다. 사실 존 캠벨의 원작이나 [괴물]의 보틴 디자인이 없었더라면 그냥 전통적인 6-70년대식 “눈도 없고 입만 거대한 여성 성기를 닮은” 괴물 디자인으로 적당히 칭찬을 받았을 수도 있었을 꼴을 하고 나옵니다만, 솔직히 말해서 상당히 심심합니다. 물론 [7광구]의 혓바닥 기다란 곰팡이 슨 강아지나 [코난]리메이크의 클라이맥스에 나오는, 삼성 갤럭시에다 찍찍 그어서 그린 것 같은 머저리 크툴루 모조품따위의 대놓고 챙피한 예보다는 낫지만, [괴물]에서 결국 원래 종족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로 결정하기 전에 테스트 디자인으로 고려 대상이었던 여러 디자인보다도 (30년 전의 작업이었는데도 불구하고)—그 중 하나는 뇌를 불가사리가 조개를 먹듯이 먹어치워서 인간의 정체성을 흡수하는 거대한 외눈박이 벼룩같이 생긴 곤충계 외계인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한참 떨어집니다. 롭 보틴의 압승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네요 (정 외계생명체의 원래 종족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설정을 고집할 거면 왜 존 캠벨의 원작에 나오는 붉은 눈 세개 달린 녹아버린 고무인간 같은 모습을 차용하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최소한 제가 보기에는 이쪽이 더 임팩트가 클 것 같은데 말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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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힛처] 같은 조잡한 리메이크에는 비할 바 아니고 이정도면 상상력과 마력이 부족할 따름이지 SF-호러팬분들을 노린 시간때우기의 엔터테이먼트로서는 별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보아하니 아예 기획 단계부터 [괴물]을 넘어보겠다는 (무모한) 기도는 생각해 보지도 않은 것 같은데 뭐 그걸 가지고 책임추궁을 할 필요도 없겠죠. 그런데 사실 “인간으로 변신해서 인간 행세를 할 수 있는 외계생명체” 라는 아이디어만 가지고 아예 리부팅을 한다는 야심적인 방향으로 나갔었더라면 재미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존 카펜터의 괴물]에서도 사실 논리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SF적 이슈가 상당수 있는데 (심지어는 [기생수] 같은 데서 더 논리적으로 다룬 적도 있는 한 의문점도 포함해서) 이런 문제들도 좀 제대로 건드려주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있거든요.

 

그러나 어차피 오리지널의 좋은 SF적 아이디어를 살려서 영화화해보자는 것이 아니고 과거에 [괴물] 이라는 기괴하고 기똥찬 영화가 있으니 이걸 다시 우려먹자라는 동기에서 리메이크가 나오고 프리퀄이 나오고 하는 것이니, 장차 또 리부팅이 된다고 해도 북극의 기지에서 어쩌구 저쩌구하는 기본설정에서 벗어나기는 힘들겠죠? 하기사 이 모두가 캠벨의 원작에서 시작된 것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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