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안주(미야베 미유키)

2012.09.1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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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 l 미야베 월드 2막 11

미야베 미유키 (지은이) | 김소연 (옮긴이) | 북스피어 | 2012-08-20 | 원제 あんじゅう (2010년)



 북스피어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물 [안주](미야베 미유키, 북스피어, 2012년 8월)가 출간되었다. 미야베 미유키는 [모방범](미야베 미유키, 문학동네, 2012년 3월), [화차](미야베 미유키, 문학동네, 2012년 2월), [외딴집](미야베 미유키, 북스피어, 2007년 10월)으로 유명한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로 국내에도 많은 팬층을 가지고 있으며 올해 초 영화 [화차]가 개봉함에 따라 인지도가 더 상승한 작가이다. 때마침 북스피어에서는 야심차게 마케팅 비용만을 충당하는 독특한 독자 펀드를 기획하여 열흘 만에 오천 만원이라는 비용을 모았다. 따라서 미야베 미유키의 신간 [안주]가 더욱 주목되는 것은 당연하다.
 [안주]는 올해 3월에 출간되었던 [흑백](미야베 미유키,북스피어, 2012년 3월)의 후속작이다. 즉, 부제로 미야시먀 변조괴담 두 번째 이야기라고 적혀 있다. 그렇지만 [흑백]을 굳이 먼저 읽지 않아도 된다. 소설 자체가 하나의 장편이 아니라 여러 에피소드가 이어져 있는 옴니버스 형식이기 때문이다. [안주]에서는 [흑백]에서 벌어진 사건을 초반에 간략하게 설명해주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도 그때그때 부족한 설명을 보충해주기 때문에 읽는데 무리가 없다.
 이야기는 어떠한가. 이 소설은 괴담을 다루고 있다. 으스스하고 무서운 괴담 이야기가 실려 있지는 않다. 그런데 이것이 단점이라기보다는 장점이다. 개성있고 독특한 괴담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에도 간다에 있는 미야시마라는 장신구와 주머니를 파는 가게가 배경이다. 요즘으로 치자면 악세서리 숍이라고 할까. 이 미야시마 가게에는 주인이 특이한 일을 벌이는데 바로 괴담을 모으는 "괴담 대회"이다. 미시마야 한 켠에는 흑백의 방이라고 불리는 주인이 손님과 바둑을 두는 방이 있는데, 그곳에서 아름다운 조카딸 열일곱 소녀 오치카가 괴담을 들어주는 일을 한다. 이것은 마치 한 예능 프로그램인 힐링캠프를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 자기가 겪은 힘든 일을 얘기하고 치유를 받는다. 에도 시대의 힐링캠프 같은 흑백의 방에서 오치카와 독자는 함께 기묘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야기를 하는 자는 누군가에게 가슴 속 깊은 괴이한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을 얻기도 한다. 그리고 동시에 오치카와 독자 역시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반추하며 위안을 얻는다. 그럴 수 있는 것은 괴담이 단순히 무서운 상황 이야기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 혹은 사물과 사람, 요괴와 사람 사이의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것. 거기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마음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같은 울림을 전할 수 있다. 고독한 존재에 대해서 연민을 느끼기도 하고, 시기와 질투로 나타난 현상에 대해서 서늘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미야베 미유키의 뛰어난 필력으로 현장감 있게 묘사된 에도를 배경으로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것처럼 독자에게 다가간다. 아무리 기이한 이야기도 설득력있게 독자를 사로잡는 것이다. 대단한 필력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공들여 쓴 작품이기도 하거니와, 이야기를 듣고 이해한다는 행위 자체가 주는 공감이 소설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이리라. 이야기가 치료가 될 수 있고 독서가 치료가 될 수 있듯이.
 첫 번째 실려 있는 {서序 별난 괴담 대회}는 앞선 [흑백]을 안 읽은 독자를 배려한다고 할 수 있다. 짧은 분량의 글인데, [안주]부터 읽는 독자들을 배려하여 간단히 앞의 상황을 소개한다.
 두 번째 {달아나는 물}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 소년 주위에서 물이 달아나는 현상이 일어난다. 화분의 물은 순식간에 마를 정도이고, 우물까지 마르게 한다. 기이하면서도 곤란한 일이다. 어째서일까. 흑백의 방에서 이야기가 펼쳐지기 전까지 소년은 골치거리로 혼만 날뿐, 누구도 소년에게 자세한 사정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오치카는 소년과 소통하면서 모든 이야기를 듣는다. 인간들에게 도움을 주었다가 배척받는 귀여운 소녀 모습의 산신 이야기를. 이야기 자체도, 등장인물들도, 해결책도 귀엽다.
 세 번째 {덤불 속에서 바늘 천 개}는 앞선 이야기와 다르게 좀 섬뜩하다. 시어머니의 원망에 찬 저주가 등장하고, 죽은 이를 대신해서 만든 인형과 그 인형에 박히는 바늘까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오치카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위화감을 느끼고 이는 독자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후에 해석되는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게 만든다. [흑백]부터 [안주]까지 작가가 줄기차게 말하는 것은 괴담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다. 이 이야기는 그 점을 다시 상기시킨다.(소설 [화차]에서 잠깐의 전화통화 장면에서도 인간의 심리를 잘 짚었던 그 솜씨를 떠올리게 한다.)
 네 번째 {안주}는 표제작이면서 작품을 다 읽고 나서도 가장 인상에 깊이 남고 재미있는 에피소드였다. 왜 이 이야기가 표제작인지 알 수 있다고 할까. {달아나는 물}이 따스하고 귀여운 느낌을 주긴 했지만, 소소하고 평이한 에피소드라는 느낌도 있어서 아쉬웠고, {덤불 속에서 바늘 천 개}도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라는 느낌을 주지는 못했다면, {안주}는 미야베 미유키의 괴담은 이런 것이다, 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일단 따스하면서도 처연하다. 괴담 역시 평범한 요괴나 귀신을 등장시키는 게 아니라서 새롭다. 저택과 연간되었다는 점 때문에 [흑백]과 대비된 면이 있어서 흥미롭다. [흑백]은 사람을 잡아먹거나 죽고 죽이는 끔찍한 이야기라면 [안주]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이 떠오르는 아기자기한 요괴와 괴담으로 채워져 있다.(북트레일러나 리뷰에도 언급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 속 정령들을 연상케 하는 생물이나 산신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을 봤다면 상상이 그쪽을 쏠린다.) 그렇기 때문에 [흑백]과 [안주]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보인다.
 '수국 저택'이라고 불리는 흉가가 있다. 한 부부가 그곳에 들어가 살게 되고, 곧 기묘한 존재의 인기척을 느낀다. 그건 사람들이 말한 저택에서 죽은 부인의 귀신일까. 아니면 짐승의 원령일까. 인간을 해하는 요괴일까. 너구리일까. 앞서 실린 에피소드에 비해 추리를 하는 재미가 있다. 게다가 관찰을 하고, 실험을 하면서 가설을 세우고 이것이 맞아떨어지는 전개에서는 재미를 느꼈다. 마침내 밝혀지는 진실은 예정된 결말과 절묘하게 이어지면서 독자의 가슴을 저릿하게 한다. 그야말로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매력적인 미야베 미유키식 괴담이다. 고독한 생물과 타인과 소통하지 않은 인간과의 교류. 거기서 느껴지는 정. 만남으로 변화하는 마음. 그것이 겉으로 눈에 띄지 않아도 마음과 마음의 부딪힘으로 이어져가는 우리의 삶의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마음은 때론 이야기의 형태로 이어지기도 한다.
 {으르렁거리는 부처}는 고립된 산간 마을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비극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립된 산간 마을에는 외부 사람들이 용납할 수 없는, 아니 마을 안의 사람들도 용납해서는 안 되는 관습이 존재한다. 마침내 관습이 비극을 일으키고, 이야기는 파국을 맞는다.
 마지막은 {별난 괴담 대회, 그 후}가 장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사건이 벌어지고 이야기는 요란스럽게 끝을 맺는다. 하지만 백 가지 괴담을 들으려고 시작한 괴담 대회인 만큼 고작 몇 개 밖에 듣지 않은 괴담 대회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작가가 필생의 사업으로 생각한다는 말에 기대를 걸어보면 좋을까. 괴담을 듣는 소녀 오치카가 나이를 먹어도, 흑백의 방에서 그대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리란 믿음이 앞으로 나올 책들도 기대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어째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힐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극복하고 나아가는 것. 그 방법 중 하나는 이야기를 하고 듣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야기하지 않으면 전달되지 않는 사실들이 있다. 또한 상처가 아물 수 없는 법이다.
 [흑백]은 잘 구성된 연작소설답게 에피소드의 연결이 잘 되어 있고 마지막에 하나로 합치는 솜씨도 뛰어났다. 에피소드가 나뉘어져 있지만, 한 편의 장편소설다운 구성을 갖추고 있다. 그에 반해 [안주]는 이야기들이 독립적인 느낌이다. 어떻게 보면 [흑백]이라는 장편소설 다음에 나온 외전 형식 또는 후일담 같은 느낌도 있다. 그만큼 마음 편하게 따스한 괴담이라는 특이한 이야기들을 감상할 수 있다. [흑백]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은 '신타' 같은 소년이 부각되고, 주인공인 '오치카'는 [흑백]보다 훨씬 성장해서 강건해지고 밖에도 나가면서 변화된 모습을 선보인다. 새로운 등장인물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인물들에게 전부 애정이 생긴다. 앞으로도 이 인물들이 얽힌 다양한 괴담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혹은 흑과 백으로 나눌 수 없는 수 백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은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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