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리턴즈 리뷰를 쓰며 말했듯 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3부작이 꽤 괜찮았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내 취향엔 팀 버튼의 두 편이 더 좋았다. 그리고 그 평가의 일정부분엔 놀란감독의 3부작의 완결편인 본작 다크나이트 라이즈에 대한 실망감이 기여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좀 실망스러웠다. 3부작의 완결편이었다는 관점에서 보면 더할나위 없이 괜찮은 마무리였다고까지 볼 수 있겠지만, 다크 나이트 라이즈라는 개별의 한편으로 볼 경우엔 실망스러운 면이 꽤 있었다.

 

사실 이 영화는 썩 괜찮은 작품이다. 실망스러웠다는 것 역시 전편으로 인해 지나치게 높아진 기대치로 인한 역효과가 상당 부분 기인하는 것이고 개별 작품으로 보더라도 별 다섯개 만점에 세개 반이나 네개 정도는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는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대해 찬사를 바치는 리뷰들은 꽤나 많은 편이니 난 좀 삐딱한 관점에서 비판을 주로 쓰도록 하겠다.

 

일단 본편에서 지적하고 싶은 첫번째 아쉬움은 개연성 부족한 이야기 구조이다. 특히 감독이 크리스토퍼 놀란이었음을 고려하면 더욱.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이야기 구조는 나쁘지 않은데 그 묘사가 좀 충분치 못했다고 할까? 본편에서 베인은 배트맨을 제압하고 경찰들마저 고립시킨 뒤 고담시를 무정부 상태로 이끈다. 대외적으로는 "빼앗겼던 도시를 너희 시민의 손에 돌려주겠다"지만 본심은 그들에게 헛된 희망을 줌으로써 다가올 절망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드려는 의도이다.(원작 코믹스에서의 노 맨스 랜드[No Man's Land] - 여전히 남아있는 부패와 최악의 범죄율로 몸살을 앓던 고담시에 대규모 지진까지 발생하고, 미국 정부조차 더이상 구제할 방도가 없다며 고담시를 아예 봉쇄해버린 설정이다. 무정부 상태에 각자 구역을 차지한 슈퍼빌런들의 땅따먹기 싸움터로 전락한 고담시에 돌아온 배트맨이 도시를 되찾는 내용 - 를 연상시키는 부분이기도 하다.) 비긴즈의 라스 알굴과 마찬가지로 어둠의 사도로써 타락한 고담시를 심판하려는 게 베인의 목적인데, 그냥 핵폭탄 터뜨리면 될 걸 굳이 5개월 씩이나 시간을 줘가며 일을 복잡하게 만들었다면 여기에 대해 좀 더 설명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진짜 혁명이 일어난 줄 알고 기뻐했지만 점점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 아비규환으로 타락해가는 고담시의 모습을 좀 더 보여준다든지, 아니면 명분만 그럴싸하지 독재세력이나 다름없는 베인에 누구 하나 저항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일상으로 받아들여가는 시민들의 비겁함을 꼬집는다든지... 무정부상태에 놓인 고담의 5개월은 작품의 주제면에서나 정치적인 메시지 면에서나 상당히 중요한 부분임에도, 영화에서는 별다른 묘사 없이 굉장히 얼렁뚱땅 넘어가버린다.(그나마 베인의 부조리함이 드러나는 부분은 인민재판 씬인데 솔직히 놀란 감독치곤 많이 진부했다.) 오히려 경찰차 대신 장갑차가 돌아다는다는 것을 빼면 너무나도 평온해보이는 고담시의 모습에서 그냥 핵폭탄 안 터뜨리고 베인이 계속 시장노릇해도 꽤 괜찮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_-;; 런닝타임에 쫓긴건지 탈리아 알굴이 지나치게 늦은 시간대에 정체를 드러내고 또 활당할만큼 조기퇴장한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두번째 아쉬움은 몇몇 형편없는 액션 시퀀스들이다. 사실 놀란의 배트맨 3부작에서 배트맨은 단 한번도 악당에 맞서 시원한 액션을 선보인 적이 없긴 하다. 비긴즈에서 가장 뛰어난 액션 시퀀스는 경찰과 도심 추격전을 벌이며 수많은 경관에게 부상을 입히고 고담시민들에게 막대한 재산피해를 초래하는 장면이었고, 다크 나이트에서도 트레일러 전복 씬은 매우 인상적이지만 그전의 길고 긴 차량 추격전은 지루하며, 최첨단 초음파 장비는 SWAT팀을 진압하는데 써먹은 채 막상 조커와는 아무 장비 없이 주먹싸움을 벌인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도 배트맨은 첨단 장비들 어디다 팔아먹은 건지 베인을 맞아 답답할만큼 주먹싸움에 집착한다. 사실 배트맨은 온갖 장비와 전술로 끊임없이 상대를 기만하고 상대의 신체적 약점이나 심리적 공포 등 취약한 부분이 있으면 거기만 집중공략할만큼 치사한 면도 있는데, 본편의 배트맨은 베인에게 한번 패한 뒤 죽음의 공포까지 뛰어넘고 돌아와서는 마지막 싸움에서도 여전히 변함없이 베인과 입식격투기를 하려고 한다. 더구나 이 싸움에서는 배트맨이 정정당당하게 베인을 꺾어 자신을 증명하는 것보다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든 베인을 신속하게 제압하고 폭탄의 소재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나?

 

본편에서 한낮 정복차림으로 시청 앞 도로를 가득 메운 채 "날 죽여주슈"하고 질서정연하게 중화기로 무장한 적들에게 돌진하는 경찰들의 모습이라든지, 적당히 엄폐한 채 일제사격만 해도 대학살이 가능한데 굳이 그 유리함을 포기하고 총 몇 발 쏘다가 함께 돌진해 육박전을 벌여주는 베인 부하들의 모습은, 영화의 클라이막스임에도 정말 이 영화의 감독이 놀란이 맞았나 싶을 정도로 최악이었던 장면이다. 더구나 그 싸움 와중에 배트맨과 베인이 조무래기들을 제압하며 서로에게 다가가 맞장뜨는 장면은 내가 배트맨 옷을 입은 야인시대를 보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일으킬 정도였고... 차라리 어둠을 이용해 배트맨이 배트에 탄 채 휘젓고 다니며 적의 중화기 제압 & 혼란 유도를 맡고, 경찰들은 적들이 배트맨에 정신이 팔린 것을 틈타 사방에서 기습하는 장면이 훨씬 현실적이고 배트맨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았을까? 뭐 불리한 상황에서도 베인에 맞서려는 경찰들의 용기를 보여주려 한 장면이었다는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내 기억 속의 놀란 감독은 꽤 보수적이긴 할지언정 그런 걸 꼭 찢어진 성조기가 나부끼는 시청 앞에서 정복 차려입은 경찰들이 질서정연하게 행진하는 장면으로 표현할만큼 진부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이외에도 폭탄이 실린 차량을 추적하던 배트가 유도미사일과 긴 숨바꼭질 벌이는 장면(당연한 얘기지만 유도미사일은 그저 방향을 최대 30도 쯤 바꾸는 정도지 90도 커브를 수십차례 돌진 못한다.)은 현실성을 추구하는 놀란 감독 스타일답지 않은 연출이기도 했고, 초를 다투는 긴박한 이야기전개와도 어울리지 않게 시퀀스가 너무 길었다. 인근 10km를 초토화시킬 핵폭탄의 폭발시간이 2분도 남지 않았고 이걸 한시 바삐 도시 밖까지 옮겨야 할 긴박한 상황에서 캣 우먼과의 딥키스로 10초를 까먹는 장면 역시 좀 뜨악했고...

 

뭐 실망스러운 점 위주로 쓰긴 했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는 꽤 괜찮은 영화다. 다만 필자에게 있어 원래 액션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주특기가 아니란 점과(인셉션에서도 무중력 앨리베이터 시퀀스는 굉장했지만, 마지막 설원기지에서의 총격전은 분명 볼거리가 풍성하고 사방에서 총알이 날아옴에도 기이할 정도로 지루하기까지 한 장면이었다), 코믹스에서 보여주는 철두철미함도, 탐정으로서의 면모도 보여주지 못한 채 시종일관 악당에게 속고 그의 계획에 끌려다니기만 하는 나이브한 배트맨의 캐릭터가 불만스러웠을 뿐이다. 적어도 한번 쯤은 적을 지리게 만들만큼 철저하게 몰아붙이는, 공포스러운 배트맨의 모습을 볼 수 있길 바랬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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