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멜랑콜리아

2012.08.30 09:16

menaceT 조회 수:2750

 

 

  전작 `안티크라이스트`에서 여성 살인의 테마 하에 첫 인류의 이야기를 새로이 썼던 라스 폰 트리에가, `멜랑콜리아`에서는 여성의 심리적 종말을 지구의 멸망과 병치시키는 시도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 영화는 종말을 2막에 걸쳐 그리고 있으며, 1막의 제목은 `저스틴`이요 2막의 제목은 `클레어`, 즉 두 자매의 이름을 따 서로 다른 성향의 자매들의 세계가 무너짐을 지구 종말로 형상화하고 있다(프롤로그에서 미리 요약식으로 보여지는 종말의 장면은, 1막과 2막의 내용을 모두 담고 있다. 따라서 직접적으로 지구 멸망이 그려지는 2막의 내용 뿐 아니라 1막에서 보여지는 내용 역시 라스 폰 트리에에게 있어선 멸망의 현상이라는 암시임을 알 수 있다.).

  1막 `저스틴`에서는 저스틴이 종말을 맞는다. 그녀의 멜랑콜리아(우울)는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 그들과의 관계로 인해 자신의 존재가 위협받을까 하는 불안에서 오며, 쉴 새 없이 흔들리는 카메라는 그런 우울과 불안 증세를 관객에까지 전염시켜 온다. 그녀는 극도의 불안으로 결혼식을 망치고 내적 종말에 이르는데, 그 순간 그녀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나체로 숲속에 누워 웃는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클레어가 지켜본다.

  2막 `클레어`에서는 클레어가 종말을 맞는다. 클레어의 멜랑콜리아는 일견 지구의 멸망 그 자체의 공포에서 오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토록 아들의 존재를 강조하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면, 클레어의 종말에 있어 아들 이야기를 빼먹어선 안 될 것 같다(저스틴이 지구의 생명들은 악하기 때문에 다 죽어도 괜찮다고 이야기했을 때 클레어의 대답은 자기 아들은 아직 어리다는 말이었다. 의미심장하다.). 사실 그녀의 멜랑콜리아는 가정의 붕괴에 대한 공포에서 온다고 볼 수 있다. 저스틴의 종말을 그린 1막에선 사람이 북적였다면, 클레어의 종말을 그린 2막에선 등장인물들이 그녀의 가족들과 집사 뿐이다. 그마저도 셋으로 줄어드는 시점엔, 이미 클레어의 불안이 극에 달해 있다. 그리고 그녀의 종말은, 그녀의 가정이 통째로 소멸할 수 밖에 없는 지구의 멸망과 함께 이루어진다. 그 순간 클레어의 종말이 덜 혼란스럽도록 돕는 역할은 저스틴이 맡는다.

  이러한 종말을 그리는 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다른 이들은 저택과 그 근처 숲 너머의 공간을 넘나드는 모습이 보이는 반면, 저스틴과 클레어는 일단 그 곳에 발들인 후로는 그 너머로 넘어가는 모습이 직접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1막 마지막 부분에선 저스틴과 클레어의 말들이 다리를 건너려 하지 않는데, 그때 마침 저스틴이 지구 멸망의 징후를 보게 된다. 예외적으로 2막 초반부에 저스틴이 외부에서 저택으로 들어오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저스틴은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다. 마치 저택의 외부 세계에서는 죽은 존재가 되기라도 하는 양. 그녀는 저택 안에서 비로소 생기를 되찾는데, 이때 다시 말을 타고 다리를 건너는 시도를 하나 말은 심하게 맞으면서도 다리를 건너지 않는다(그러나 나중에 저스틴을 태우지 않았을 때 클레어가 풀어주자 이 말은 아무렇지 않게 그 공간을 떠난다.). 한 편 이 때는 클레어의 경우 말을 타고 다리를 건널 수 있었던 반면(이 때 클레어는 멜랑콜리아가 지구 곁을 지나쳐 갈 거라 믿고 있었다), 지구와 멜랑콜리아의 충돌이 확실시되고 존이 자살한 순간부터는, 즉 클레어의 종말이 확실시된 이후로는 클레어 역시 그 공간을 나갈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때 아들을 안은 클레어가 지나는 골프장 홀 넘버는 19이다. 저택의 골프장이 18홀까지 있다던 존의 언급에 따르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는 그 공간이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으로 그려진 건 아닐까 생각해 보게 하는 지점이다. 1막에서는 저스틴의 죽음과 클레어의 삶이 공존하고, 2막에서는 클레어의 죽음과 저스틴의 사후의 삶이 공존하는 공간.

  `도그빌`에서의 도그빌을,`안티크라이스트`의 에덴을 떠올려 보자. 트리에는 실험 혹은 재현을 위한 공간의 설정에 능한 양반이다. 이 영화에서의 저택과 그 주변 숲도 그러한 공간이다. 자매가 맞이하는 여성의 두 가지 종말(하나는 사회에 속함으로써 겪는 종말, 다른 하나는 자신을 감싸고 있는 가정의 소멸로 인해 겪는 종말)을 한 공간 안에 제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직조한 공간인 것이다.

  그렇다면 두 가지 종말을 굳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서로 번갈아가며 진행시킨 것에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닐까? 라스 폰 트리에의 전작 `안티크라이스트`에서 그 힌트를 찾아볼 수 있다.

  `안티크라이스트`에서 트리에는 여성 살인이 에덴 신화에서부터 내려온 기독교적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사회에 뿌리박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여성은 사회에 속함으로 필연적으로 직간접적으로 여성 살인을, 종말을 겪게 되는 것이며, 이를 `멜랑콜리아`의 1막이 저스틴의 이야기를 통해 미시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저스틴은 1막에서 결혼식,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성대한 결혼식의 신부 입장이다. 아내라는 또 다른 역할의 부여, 후에 말하겠지만 `안티크라이스트`나 `멜랑콜리아` 2막의 경우를 보면, 라스 폰 트리에에게 있어 여성의 결혼이란 여성 살인으로 대표되는 여성 억압 이데올로기를 여성 스스로 내재화하게 만드는 도구로 인식되는 듯하다. 게다가 2막에서 엿보이듯 이미 그 이데올로기를 체화한 클레어의 주도 하에, 일가친척과 지인들이 잔뜩 모여 성대하게 벌이는 그 결혼식은 그러한 인상을 더욱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예민한 저스틴은 한 명의 여성으로서 그러한 상황에 극도의 혼란을 느끼지만, 누구도 그녀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이들은 신부, 가족의 일원, 회사의 직원 등의 역할을 강조하며 은연 중에 저스틴을 타자화해 그녀의 혼란을 가중시킨다(`안티크라이스트`에서 남편이 아내를 지속적으로 타자화하며 아내를 극단으로 몰았던 상황과 유사하다.).

  다만 차이를 보이는 인물이 하나 있으니 그는 바로 저스틴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자신은 결혼 제도 따위는 믿지 않는다며 결혼식에서의 격식을 차리는 것조차 거부하며 훼방을 놓는가 하면, 극도의 혼란 속에 눈물을 보이는 저스틴에게도 너만 힘든 것 아니니 칭얼거리지 말라는 투로 차갑게 말한다. 그런데 영화는 저스틴과 어머니 간의 유대감은 철저히 단절시키되 그들 간의 묘한 공통점을 드러낸다. 결혼식이 한창 진행되는 중에 어머니와 저스틴은 동시에 태연히 목욕을 하는 것. 또한 결혼으로 이루어진 가족 자체에 크게 애정을 두지 않고, 혼란을 느끼는 상대에게 냉정한 태도를 보이는 모습은 2막의 저스틴과 1막의 어머니 사이의 유사점이다(물론 저스틴은 2막에서 클레어와 조카에게 연민을 보이긴 한다.). 저스틴의 어머니는 결혼의 실패 경험이 있고, 그녀의 냉소적인 태도를 통해 저스틴이 1막에서 결혼식 중 겪은 내적 종말을 어머니는 이미 겪었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녀는 저스틴이 간 길을 완벽하게 같게는 아니어도 비슷하게나마 이미 걸은 바 있는 존재이며, 2막에서의 저스틴을 예고하는 존재라 볼 수 있다.

  한 편, `멜랑콜리아` 2막은 `안티크라이스트`에서 다룬 바 있는 또 다른 종말의 양상을 심화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안티크라이스트`에서 트리에는 기독교가 여성이 스스로 여성 살인의 논리를 내재화하게까지 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안티크라이스트`에서 에덴의 영향을 받은 여자는 여성 안에 악이 있으며 여성은 스스로 그것을 제어할 수 없다고 자기 입으로 말하며, 아들의 죽음 이후 서서히 미쳐가더니 클라이막스에선 남편마저 자신을 떠날까 두려워 광기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이처럼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태동하여 남편에 대한 집착으로 구체화되는 그녀의 자기 파괴 양상으로 보아, 여성은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다던 그녀의 말은 어쩌면 여성은 남편과 아이가 있는 가정이란 공간 안에서만 내면의 악이 제어되는 존재라는 의미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아들과 둘이서 에덴에 갔을 때는 남편의 부재가, 아들의 죽음 이후 남편과 에덴에 갔을 때는 아들의 부재 및 남편마저 떠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그녀 내부의 악을 표출케 했다는 것이, 에덴이 그녀 안에 불어넣은 생각인 것이다. (`안티크라이스트`에 따르면) 기독교와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대물림된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여성이 스스로 내재화함에 따라, 가정의 파괴가 곧 여성에게 있어 내적 종말로 받아들여지는 사태가 일어나게 된 것은 아닐까? 라스 폰 트리에는 이러한 의문을 `멜랑콜리아`의 클레어를 통해 다시 한 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남편이 자살한 뒤, 클레어에게 있어 가정이란 공간은 연옥이 되어 그녀를 가두고 그녀를 종말로 이끈다. 그 과정에서 그녀의 불안은 자기 자신의 죽음보다는 자신의 아들이 죽을 수 있다는 데서 더 크게 찾아온다. 이는 곧 사회에 뿌리박힌 여성의 `domestic angel`(예전에 영문학 수업 시간 때 들은 거 써먹기)로서의 역할을 그대로 세뇌당한 여성이, 가정이 깨어지는 것을 자신의 종말과 동일시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안티크라이스트`의 아내의 모습의 또다른 판본이다(공교롭게도 `안티크라이스트`의 여자도, `멜랑콜리아` 2막에서 종말을 맞는 클레어도 모두 같은 배우, 샤를로뜨 갱스부르가 연기한다.).

  이렇게 보면 영화 내에서 종말이 구현되는 방식이 내적, 외적인 차이는 있지만, 실상 저스틴과 클레어의 죽음 모두 사회에 의해 강요받은 종말임이 더욱 명확해진다. 1막의 마지막 부분에 저스틴이 모든 것을 벗어던진 뒤에야 안정을 찾는 모습을 클레어가 지켜보고, 또 2막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클레어의 종말에 저스틴이 함께 한다는 데서, 영화는 이 둘의 종말이 결국엔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음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전에, 1막과 2막이 서로 다른 양상의 끝맺음을 하고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1막의 저스틴은 결국 파혼하고, 모든 것을 벗어던진 채 드러누워 평안을 찾는다. 그러나 2막의 클레어는 불안과 공포 속에 결국 종말을 맞이한다.

  1막의 저스틴은 위에서 말했듯 2막 처음에 거의 죽어가는 몰골로 저택에 돌아온다. 사회에 둘러싸이는 것으로 인해 여성 살인의 종말을 겪었던 그녀가 그 저택을 떠나 사람들로 가득한 곳으로 갔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그녀는 2막에서 저택으로 돌아온 뒤 점점 회복하기 시작하고, 멜랑콜리아가 충돌할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 급격하게 호전되는 모습을 보인다. 그녀는 `행성 따위로 겁먹을 만큼 약하지 않다`고 말하는가 하면, `이 세상의 생명들은 악하므로 죽어도 된다`고 말하며 지구 멸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저스틴은 비록 1막에서 사회에 의한 여성 살인으로 내적 종말을 겪었지만, 1막 마지막에 파혼을 선택하고 알몸으로 숲 속에 드러누움으로써, 즉, 남편과 아이를 중심 삼은 새 가정을 꾸리길 거부하고 사회에서 여성에 대해 규정하는 그 어떤 이미지도 거부함으로써, 사회가 여성에게 덧씌우는 이미지를 스스로 내재화할 때 겪게 되는 2막에서의 클레어의 종말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그녀에게는 자신에게 계속 여성 살인의 굴레를 덧씌우려는 사회가 멸망하는 것이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삶을 찾는 길일지 모른다. 저스틴과 달리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내면화한 클레어가 1막의 상황에서 저스틴과 달리 전혀 불안과 우울에 빠지지 않았으나(그저 어머니나 저스틴 같은 사람들 때문에 짜증이 났을 뿐.), 2막에서 극도로 공포에 떨다 종말을 겪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삶과 죽음 사이의 연옥과도 같은 저택에서, 1막의 경우 저스틴은 죽음으로 떨어지는 반면 클레어는 영향을 받지 않고 삶의 공간에 남아 있고, 2막의 경우에는 저스틴은 오히려 사회에서 벗어나 이 공간으로 돌아옴으로써 다시 부활을 겪는 반면 클레어는 죽음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두 여자의 종말은 한 덩어리이지만 각각 정반대의 면에 위치해 있다. `안티크라이스트`에서 한 쌍의 남녀의 경우로 응축적으로 그려낸 여성 살인의 역사, 그 가운데 여성이 내적으로 또 외적으로 겪었던 두 번의 죽음(`안티크라이스트`에서 여성 살인은 여성 스스로 자신의 클리토리스를 제거하는 순간 한 번, 남성이 목을 졸라 살해하는 순간 또 한 번, 이렇게 두 번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을, 라스 폰 트리에는 이번 영화에서 두 갈래로 쪼개어 각각의 경우를 심화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여태까지 여러 편의 영화로 여성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동안 그의 안에 자리잡았던 일종의 커다란 숙제, 아마도 그것을 `안티크라이스트` 한 편으로 마무리짓기에는 모자라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따라서 그는 `안티크라이스트`에서 그 시초가 되는 성경의 사건을 재현함으로써 `시작`에 초점을 맞추어 숙제를 해결해 나갔다면, `멜랑콜리아`에서 같은 숙제를 여성의 종말과 지구의 종말을 병치함으로써 `끝`에 초점을 맞추어 다시금 풀어나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지구의 종말이 외부로부터 날아오는 멜랑콜리아(우울)로 인해 벌어진다는 것은 다만 이의 은유일 뿐이다. 그 동안 여성의 이야기를 그려오는 데 주력해 온 트리에에게 자신의 영화는 곧 여성의 세계나 다름없다. 따라서 여성의 내적 세계가 지구로, 사회에 의해 강요된 불안감이 멜랑콜리아라는 행성으로, 여성 개인의 종말이 멜랑콜리아로 인한 지구 멸망으로 치환되는 것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단순히 그러한 주제 의식을 `담는` 데 그치지 않는다. 라스 폰 트리에는 `안티크라이스트`에서 암시되었던 여성의 종말에 관한 확장판이자 미시적 심화 연구인 이 영화의 주제를 기획하는 데 있어선 철저히 이성적이었을지 몰라도, 이를 스크린에 옮겨낸 그의 터치는 더없이 섬세해, 관객이 그 종말의 심상에 온전히 젖어들게끔 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였다. 관객들을 옥죄어 오는 긴장감, 그리고 마지막, 그 어느 영화에도 섣불리 비교하기 힘든 그 숨막히도록 장엄한 압도감, 이 모든 것을 낳은 미친 듯한 연출력은 그가 준비한 메시지를 아예 다른 차원으로까지 끌고 올라갔다. 정말이지 천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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