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링 인 러브 (The Other End of the Line, 2008) ☆☆

 

[콜링 인 러브]는 결말을 지구 반대편에 두었지만, 그 결말은 웬만한 관객들이라면 러닝 타임 절반도 지나기도 전에 굳이 그 반대편으로 비행기 타고 가지 않아도 이미 훤히 다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이야 대부분의 기성품 로맨틱 코미디에 해당해도 되는 것이니 개인적으로 불만은 없지만, 영화는 처음부터 가능성을 죄다 쇠진해 버리기 때문에 늘어진 인상을 가져다주고 이는 로맨틱 코미디에겐 치명타나 다름없습니다. 이야기는 우리의 두 주인공들이 결국엔 행복하게 맺어질 까 말까에만 매달리고 그런 동안 좋은 웃음을 자아내지 않습니다.

 

그 옛날에 만들어진 [84번 가의 연인들]에서 나오는 더 옛날의 연인들은 머나먼 거리를 사이에 두고 편지만 주고받으면서 서로에 대한 애정을 키워갔고 그들의 서신 교류는 주인공들은 우리를 정면으로 쳐다보면서 상대방에게 말을 거는 양 보여 졌습니다. [콜링 인 러브]의 남녀 주인공들도 우리를 정면으로 쳐다보면서 상대방에게 말을 걸지만, 시대는 달라졌고 21세기 첨단 통신 기술과 아웃소싱 덕분에 그 영화보다 훨씬 더 많이 떨어져 있는 그들은 실사 간으로 상대방과 대화를 나눕니다.

 

둘이 맺어지게 되는 건 신용 카드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뉴욕의 광고 회사에서 일하는 그레인저 우드러프(제시 멧칼프)에게 제니퍼라는 여성이 전화를 거는데, 그녀는 최근 사용정지 된 그의 신용 카드 문제로 인해 그와 연락하려고 하는 신용 카드 상담원입니다. 누군가 그의 신용 카드를 도용하고 있는 지의 여부 조사를 위해(이는 영화 내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습니다) 전화로 그녀와 교류하는 동안 그레인저는 제니퍼를 마음에 들어 합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산다는 그녀도 그가 감기 걸려서 하루 쉴 때 생강차 처방으로 도와주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녀는 샌프란시스코에 살지 않았고, 그레인저는 자신의 친구가 지적해도 그녀의 처방으로부터 힌트를 얻지 못했고 아웃소싱에 대해서도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제니퍼는 사실 뭄바이에 살고 있는 프리야 세티(슈리야)이고 그녀는 밤마다 출근해서 지구 반대편의 고객들을 다른 동료들과 함께 처리하곤 합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한 장면에서 보여 지다시피 고객들에게 이질감을 주지 않기 위해 그들은 문화 교육도 받으면서 실생활과 다른 억양으로 사용해서 상담하고, 뉴저지가 최하 부서인 가운데 프리야는 뉴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레인저에 대한 신용 정보를 살짝 보기도 하면서 프리야에겐 그레인저에 대한 감정이 생기지만 그녀는 곧 결혼하기로 되어 있고 그녀의 부모님은 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두 주인공들 간의 장벽으로 충분하겠지만 영화는 그 장벽을 너무 성급하게 허뭅니다. 광고 관련 일로 인해 그레인저는 고객이 운영하는 호텔의 샌프란시스코 지점에 가게 되기 프리야에게 한 번 만나자고 하고, 이러니 프리야는 모은 돈 탈탈 털어서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갑니다. 하지만 아직 영화 상영 시간이 많이 남았고 그 나머지를 채워야 하니 프리야는 자신의 정체를 상대방에게 감추어야 하지만, 누군가 자신을 애타게 바라보고 있고 더군다나 슈리야만큼이나 예쁨에도 불구하고 그 대신 곁에서 등 돌리고 있는 여성에게 간다는 건 믿기지 않습니다.

 

이와 함께 이야기가 자동 기어로 전환하고 그리하여 우리는 아주 뻔한 것들과 아주 거슬리는 것들이 연이어 등장하는 걸 지켜봐야 합니다. 갈라져 있으면 할 건 많지만 같이 있으면 할 게 적고 식상한 법입니다. 제니퍼가 연락을 끊은 뒤 등장한 인도 여성의 목소리가 억양만 빼고 비슷한 감이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그레인저는 프리야와 함께 샌프란시스코를 돌아다니는 동안 로맨틱 코미디의 두 연인으로써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들이 사귀는 동안 그레인저의 일은 당연히 잘 풀리고, 말 한마디나 혹은 각본상 도구인 캐릭터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갈등을 만드는 얼간이 줄거리 때문에 그들의 관계는 흔들리기도 합니다.

 

영화에 코미디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나쁘거나 혹은 예상할 법한 종류의 것들입니다. [뉴욕은 지금 사랑 중]이나 [발렌타인 데이]처럼 본 영화도 인도인 캐릭터들을 로맨틱 코미디 안에 버무려 넣으려고 하고 있는데, 프리야가 다른 목적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것을 알고 히스테리컬해지는 프리야의 부모들은 너무 우스꽝스러워서 나중에 그들이 무게 잡는 게 상당히 어색했습니다. 그들이 만일 보통 사람들만큼이나 상식적으로 행동하면 이야기는 한 20-30분 정도 짧아졌을 것입니다. 래리 밀러는 호텔 경영주로써 재미있긴 하지만, 그의 말없는 보좌관이 결국엔 입을 열거란 것과 어느 순간에 이를 기대해야 할지는 삼척동자도 다 알 것입니다.

 

제시 멧칼프와 슈리야는 얼굴 좋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 주인공들로써 적합하지만 영화는 그들을 충분히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특히 슈리야는 언젠가 이보다 더 나은 로맨틱 코미디로 대접받아야 할 거란 생각이 들지요. 아웃소싱이란 좋은 소재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인도 향신료만 치기만 하지 이를 제대로 조리하지 않았고 덕분에 우린 이미 20분 전에 예상했던 게 그대로 나오는 걸 지켜봐야 하고 목요일 오후의 유달리 썰렁한 상영관에서 저는 지루함을 고독하게 씹었습니다. 그리고 인도 아웃소싱에 대한 더 사랑스럽고 재미있는 코미디인 [아웃소시드]가 있음을 기억했습니다. 그 작품이 국내 소개되지 않은 게 유감입니다.

 

[아웃소시드]의 제 리뷰

http://kaist455.egloos.com/157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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