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맨발의 꿈](감독 김태균)은 실화다. 실화를 다루는 영화는 많지만 단순히 실화를 소재로 했다는 것만으로 모두 같은 카테고리로 묶을 수는 없다. 엄밀히 따져 보자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와 실화를 '발견한' 영화로 나눌 수 있다. 이 영화는 후자다.
 
실화를 다루는 많은 영화들이 우리에게 이미 익숙하게 잘 알려진 사건을 다룬다. 어떤 영화들은 성공하고 어떤 영화들은 실패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의 숙명이다. 감독은 실화와 허구 사이에서 재해석과 재창조의 과정을 거친다.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과 스크린 속 사실들의 긴장관계를 즐기거나, 혹은 비웃는다.
 
[맨발의 꿈]은 실화에 기대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실화를 '발견한' 영화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미디어가 다룰 수는 없다. 어떤 일들은 필요이상으로 많이 보도되는 반면 어떤 일들은 필요이상으로 조용히 지나가게 된다. 가끔 저널리즘의 한계를 극복하는 예술가의 빛나는 발견이 우리의 시야를 극적으로 넓힐 때가 있다. 영화 속 아이들의 밝은 웃음을 보는 순간, 우리는 1년에 한번 들을까 말까한 나라 '동티모르'로 초대된다.
 
가끔 9시 뉴스에서 비극적 내전을 통해서만 존재감을 알린 나라 '동티모르'. 이 나라가 21세기 최초의 독립국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동티모르는 16세기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된 후, 1975년까지 4백년의 지배를 받았고 이후 25년간 인도네시아의 식민지였다. 언젠가 한번쯤은 들어봤을 동티모르의 그 내전이 20만명의 목숨을 앗아 갔다는 비극적 사실 또한 우리에겐 생소한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 영화는 단지 동티모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동티모르를 발견한다. 제작팀이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어려움을 무릅쓰고 동티모르로 직접 뛰어들기로 결심한 순간, 영화는 존재의 가치를 증명한 셈이다. 이 영화의 스토리와 캐릭터는 허구가 섞여 있지만 스크린이 보여주는 동티모르 땅과 사람들은 진실로써만 존재한다. 영화 속 성인팀 아이들이 바로 실제 이야기의 주인공 들이다.
 
이들은 좀 더 존중받을 이유가 있었지만, 우리는 이들을 알지 못했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땅 동티모르 아이들이 히로시마 국제유소년 축구대회에서 우승을 거뒀다. 우승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이들을 가르친 감독이 한국인 김신환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들은 꿈꿨고 도전했고 이겨냈다. 좀 더 축복받고 격려 받아야 할 승리다. 아이들이 스크린 속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즐기는 것 역시 큰 격려가 될 것이다.

 

김태균 감독은 아픔의 땅 동티모르 아이들의 이야기를 시종일관 유쾌한 필치로 터치해 나간다. 특히 아이들의 축구시합 장면들은 속도감과 긴장감을 잃지 않은 채 스포츠가 가지는 묘미를 뽐낸다. 무엇보다 동티모르 아이들과 영화 카메라 사이의 간극을 절묘하게 뛰어 넘은 연출이 돋보인다. 평생 연기를 처음 해본다는 이 아이들의 표정과 몸짓은 잘 훈련된 전문 아역배우의 그것보다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원광역을 맡은 박휘순 역시 이런 아이들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성숙한 연기를 보여준다.
 
사실 대한민국 역시 50여년 전에는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불모의 땅 동티모르와 다를 바 없었다. '그때에 비하면 우리는 정말 많은 발전과 진보를 이룩했다'고들 한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해졌을까? 과연 맨발의 동티모르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 중 누가 더 행복해 보이는지 직접 확인해 보길 바란다.

6월 2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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