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감독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시작해야 겠지요.  감독인 김창호(Kuanoni Kim)은 전형적인 하와이 사람입니다. 아버지는 식민지 조선에서 영화 감독을 하던 일본인(쓰모리 슈이치 혹은 김창선)이었는데, 이차대전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전쟁 이전에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로 와서 자리를 잡았던 삼촌을 찾아서 하와이로 오게 됩니다. 무슨 이유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김창선은 하와이에서 한국계 이름을 사용하며 일본인 커뮤니티와 거의 교류를 갖지 않았던 것으로 보여요. 그는 물론 한국 커뮤니티와도 별 다른 교류를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는 영화 감독이었던 전력을 살려서 당시 갑자기 헐리우드의 대체지로 급부상을 받게 된 하와이에서 티비 시리즈 및 영화 제작에 간간히 스태프로 참여하게 됩니다. 당시 엔딩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린 작품들만 해도, From Here to Eternity (1953), The Old Man and the Sea (1958), South Pacific (1958), Blue Hawaii (1961),  Tora Tora Tora (1970)가 있고, 티비 시리즈 Magnum PI와 Hawaii Five-0의 4시즌까지의 에피소드 들에도 간간히 이름이 보여요. 


하와이에 오자마자 만났던 여인(김창호 감독의 어머니에 대해서도 알려진 것이 거의 없어요.)과의 사이에 난 아들이 바로 김창호 감독이지요. 당시 영화와 티비 시리즈 제작이 많이 되던 할레이바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세 살 때부터 서핑을 했고, 고등학교 다닐 무렵부터는 사탕수수 농장의 일꾼과 노스쇼어의 라이프가드로 아르바이트를 했지요. 틈틈히 아버지 작업이 있을 때에는 엑스트라로도 스태프로도 역할을 바꾸어 가며 도와주기도 했구요. 그의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가 부재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당시 아버지가 영화일을 하던 현장에서 여러 사람에 의해 공동 양육되었던 김창호를 기억했어요. 그는 영화인으로 활동할 때는 김창호라는 한국식 이름을 사용했고 그 밖의 모든 관계에서는 하와이식 이름인 쿠아노니 킴을 사용했어요. 그 이유에 대해서도 많은 추측이 있지만 아무도 그럴듯한 답변을 제시해주지 못했지요. 


2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만든 이 영화는 나왔을 당시에는 당연히 큰 주목을 받지 못했어요. 당시 하와이는 미국에 있어서는 제국의 새로운 신천지 쯤으로 생각되는 곳이었고, 그 당시 제작되는 많은 영화들이 지상낙원에 찾아간 백인들의 꿈과 좌절에 대한 영화를 만들 때였으니까요. 그 때 하와이 영화판에서 자란 한 청년이 만든 하와이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누구도 주목을 하지 않았지요. 영화가 만들어진 것 자체가 기적적이기는 한데, 당시에 하와이에는 영화와 티비 시리즈들이 많이 만들어지면서 중복투자가 되고 있었고, 영화판에서 자랐던 김창호에게도 기회가 왔던 거지요. 다만 그에게 찾아온 기회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었어요. 다른 영화나 티비에서 쓰던 조연과 엑스트라들이 잠시 촬영하지 않을 때 장비도 대부분 대여해서 잠깐씩 찍었다고 하니까요. 


주인공 칼레아칼라


탈식민지 문화 연구를 하던 사람들에게 이 영화가 발견된 것이 90년대 초반이니 벌써 이 영화에 대한 다양한 독해가 이루어진 게 20년이 되었네요. 잘 알려졌지만 줄거리는 지상에서 영원으로의 하와이 버전이에요.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의 주요 인물은 모두 외부인으로 하와이에 주둔하는 백인들의 이야기를 그린다면, 할레이바의 여인들은 그 외부인들을 만나야 하는 하와이의 여인들을 주목하지요. 특히 지상에서 영원으로에서 로맨스의 대상인 여인들 모두 본토에서 무언가를 찾아서 하와이를 찾은 여성들이고, 하와이의 여인들은 단지 그들의 일회적 만남의 대상으로 밖에 다루어지지 않는데 비해서, 김창호의 영화는 이들 여인의 눈으로 외부인들을 바라봐요. 그들의 시각에서 미군은 그저 외부인들에 불과해요. 그리고 그들은 그 외부인들의 욕망을 위해 그들이 상상하는 하와이를 만들어서 제공해주지요. 오히려 그들의 가족들과 지역 공동체는 하와이 원주민과 각 동양계 이민자들의 고향과 가족들에게로 끈끈히 연결되어 있고 서로 갈등 경쟁하는 사이였고 그들의 눈앞에 벌어진 전쟁은 그러한 과거의 끈과 갈등과 경쟁이 새롭게 재편되어야 하는 악몽의 시작에 불과했다는 거지요. 


전쟁을 앞둔 진주만


이 젊은 천재는 안타깝게도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영화판을 떠나요. 물론 완전히 떠난 건 아니고 엔딩 크레디트에 간간히 이름을 남기기는 하지만, 장편 영화를 감독했던 사람의 필모치고는 초라한게 사실이지요. 이후에 그는 서핑과 라이프가드 일을 더 사랑하게 되었고, 하와이의 전설이 된 Eddie Aikau의 마지막 항해를 함께 했던 사람 중 하나가 되어요. 물론 그의 이름은 생존자의 이름에서 빠져 있지요. 그의 죽음은 아직까지도 미궁에 빠져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그가 에디 아이카우와 함께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바다에 뛰어들었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에디 아이카우가 먼저 뛰어든 사람이 아니라 쿠아노니 킴이 먼저 뛰어들고 그가 돌아오지 않자 에디가 찾으러 갔다는 사람도 있어요. 많은 사람들은 생존자들이 어떤 이유로 하나씩 희생을 시키기로 결정했고, 운이 나쁘게 쿠아노니 킴이 그 첫번째 희생자라고 믿고 있기도 하지만요. 


그의 영화는 문화적 텍스트로는 많은 독해의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영화 테크닉적으로는 문제도 많아요. 그의 작업 환경이 주는 제약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겠고, 아니면 그냥 그게 그의 한계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런 미숙함이나 제약들이 영화에 독특함을 부여해주기도 해요. 그가 시간에 쫓겼기 때문에 그렇다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과도하게 사용된 석양에서의 롱테이크 장면들은 그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지요.  도입부의 롱테이크는 로버트 알트만 같은 사람들이 그대로 차용하기도 했구요. 


Directed by Changho Kim (Kuanoni Kim)

Cast: Sandy Suzuki (칼레아칼라 (레아) 사토), Ricardo Montalbal (윈터보톰 대령), Morgan Harada (레이 노엘라니), Cam Fong (쿠히오 총), Maggie Frimpong (Suzan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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