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헝거 게임 (2012)

2012.04.09 01:12

Jade 조회 수:4091

 
스포일러 많습니다.





생각보다 크게 만족스런 관람이었습니다. 아울러 저의 만족감과는 별도로 호불호가 갈릴 수 밖에 없다는 사실도 인정해야겠고요. 영화관 엘리베이터에서 몇몇 젊은이들이 그러더군요.

"배틀로얄에 비해선 아주 쓰레기네. 싸우는 장면도 별로 안나오고.. 주인공은 계속 도망만 다니고..."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설정하나 때문에 죽도록 따라가는 배틀로얄 꼬리표이지만, 그로 인한 비교 역시 어쩔 수 없죠. 하지만 둘은 아주 다른 영화입니다. 살육과 전투에 무게가 실린 [배틀 로얄]과는 달리 [헝거 게임]은 미디어에 대한 비판과 전체 주의에 대한 반란의 큰 그림을 다룬 일부의 이야기니까요. 

소설이나 영화 모두 '헝거 게임' 본 시작으로 들어가도 서로 간의 싸움보다는 서바이벌 생존 방식에 무게가 더 실립니다. 영화에서 이런 대사가 나오죠. "사실상 참가자의 대부분은 상대의 칼보다는, 자연에 의해 죽는다" 순딩이 같은 아이들이 악마로 변하며 서로를 도륙하는 처참한 지옥도를 보여주었던 [배틀 로얄]을 기대하고 들어간 사람들이 이 영화에 만족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게다가 많은 분들이 지적하다시피 '배틀 로얄' 이벤트가 영화의 골격이 되었던 [배틀 로얄]에 비해 [헝거 게임]에서 '헝거 게임'은 상징성이 있는 이벤트, 그러니까 일부의 이야기이고 사실상 영화의 클라이막스에 해당됩니다. 야생에서 활을 쏘고 지뢰를 터뜨리는 것만큼이나, 티비쇼에 나와서 예쁜 모습 보이며 스폰서를 모으는 것 역시 중요한 스토리에요.  '싸우는게 좀 많이 나왔으면'하는 기대와는 어긋날 수 밖에 없죠.


대상이 10대 아이들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묶이지만, 사실 [헝거 게임]보다는... 뭐시냐 그 WWF에서 만들었다는 서바이벌 게임 영화가 [배틀 로얄]에 더 가까울 겁니다.






반면 제 아내처럼 [배틀 로얄]같은 영화는 정말 싫은데...하며 걱정하고 들어갔다가 재밌게 보고 나온 경우도 있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원작을 읽어봐야겠다고 하네요.

저는 원작을 워낙 재밌게 본편입니다. 다만 소설 역시 뭔가 좀 '과잉'스럽다는 부분도 있긴 했고, 영화에서 이 부분을 잘 매만지지 못하면 이거 엄청난 코메디가 되겠는걸... 이런 생각으로 봤습니다. 

영화 버젼은 과잉 부분을 일부 극복은 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 보는 눈이 있으니 스폰서들 위해서 더욱 무드 잡아야 한다는 헤이미치의 충고 때문에 캣니스와 피타가 키스하는 장면이 좀 어색하다 느끼시는 분들도 계셨을 겁니다. 근데 소설에선 키스 장면이 영화에서보다 어림잡아 10번도 더 넘게 나옵니다. 영화에서 좀 자중을 한거죠. 마지막 유전자 짐승 장면에서도 캐피톨의 과학자들이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짐승들의 얼굴을 참가자 얼굴로 이식하는 설정으로 나옵니다. 으엑, 곰같은 짐승에 사람의 얼굴? 다행히 영화에선 그냥 짐승스런 모습으로 나오더군요. 

심지어 몇몇 과감한 변용은 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캐피톨의 화려한 모습과 원색적인 컬러, 그리고 12구역의 우중충한 분위기의 대비는 더욱 분위기를 고조했고요. 사실 이 부분은 감독 보다는 미술팀의 공로겠네요. 헝거 게임의 야생의 분위기와 통제실의 미래 분위기의 대조도 좋았습니다. 루의 죽음 이후 11구역의 폭동이 더 상세히 묘사된 것도 오히려 원작보다 더 이후 시리즈의 떡밥 역할을 할 듯 합니다. 

무엇보다도 소설에선 등장하지 않았던 게임 마스터인 세네카 크레인을 영화에서 만들어낸 것은 제일 감탄스러운 부분이었습니다. 미디어를 통한 통제가 실패했고, 그것이 절대 권력에 의해 진행된 것이라면 그 중간에 책임을 떠맡는 'PD'에 해당하는 인물이 나올법 했죠. 원래 세네카 크레인은 소설 2부에서 스노우 대통령의 이야기에서만 살짝 등장하는데, 이렇게 제대로 된 캐릭터로 등장한 것이 더 효과가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얼굴 보는 웨스 벤틀리가 그 역할도 잘했고요. (수염 수염!)


그렇다고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일단 호흡이 늘어지네요. 뭔가 강렬한 순간이 좀 결실될라치면 더 그렇고요. 1인칭이기 때문에 페이지마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캣니스의 생각이 빼곡히 묘사되었던 소설과는 달리, 영화는 약간 지리했습니다. 

영화의 러닝 타임이 긴 편임에도 소설이 워낙 두꺼운지라 잘라낸 이야기가 많은데, 이 때문에 뚝뚝 끊어지는 느낌이 들면서, 거기에 중간중간 지리함까지 더해지니 뭔가 말끔하지는 않았습니다. 또, 원작의 무리수를 극복하지 못했던 부분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장면이 마차 퍼레이드때 의상에 불 붙이는 장면. 사실 극적이어야 했던 그 장면은 소설로도 웃겼는데, 영화에선 폭소 수준이었습니다. 네, 개인적으로요 개인적으로.)

 

좋았던 부분과 아쉬웠던 부분을 따지자면 결국 영화가 괜찮았던 것의 큰 부분은 캐스팅과 프로덕션이요, 아쉬운 부분은 (비교적 선방했지만) 감독이 아닐까 싶습니다.

캐스팅은 더 바랄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제니퍼 로렌스는 [윈터스 본]의 캐릭터가 총대신 활을 잡은 거나 다름 없지만 설득력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고요, 성인 배우들도 좋았습니다. 출연 분량이 많지는 않지만, 엘리자베스 뱅크스, 스탠리 투치, 도날드 서덜랜드 모두 소설에서 툭 튀어나온거 같았고요. 전문 배우도 아닌 레니 크래비츠도 멋졌고요, 특히 헤이미치 역의 우디 해럴슨은 제대로 무게중심 잡아주었습니다. 미래가 배경인지라 이래저래 뭔가 설정이 요상스럽고 괴상쩍은 가운데서도 배우들의 호연이 윤곽을 잘 그려냈습니다. 

로렌스를 제외한 젊은 배우들은 잘하긴 했지만 그냥저냥... 클로브 역을 맡은 이자벨 펄만 빼고는 뭐 적당히 다른 배우들이 해도 티도 안날거 같았습니다. 다만 루 역을 맡은 흑인 배우는 아주 인상이 강렬했습니다. 사실 루라는 캐릭터 자체가 영화나 소설에서 모두 아까운 캐릭터였죠.


다만... 2부 부터는 좀 더 기합을 주면서 만들어야 할 듯 합니다. 이야기 자체는 더 재미있게 뻗어나갈 여지가 많음에도, 원작이 많이 흔들리기 시작하거든요. 조금 진통이 있더라도 더 영화에 맞는 극적인 분위기로 내러티브 수술을 해야할 듯 합니다. 그리고 감독이 누가 되든... 좀 덜 지루하게 만들어 주면 좋겠고요.


그래도 만족스런 관람이었습니다. 소설 때도 느꼈지만, 이 작품을 '트와일라잇'류로 보는건 너무 가혹해요. 러닝 타임 내내 하품과 코웃음만 나왔던 [트와일라잇]과는 달리, 이 영화는 그래도 내내 긴장가운데서 봤거든요. 코웃음은 한 장면('Girl on Fire!')에서만 나왔습니다.

 

PS : iMDB를 보니 감독인 게리 로스는 두 번째 시리즈인 [캐칭 파이어]의 연출을 떠날 가능성이 많다고 하네요. 기쁩니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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