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BBC Sherlock 2, 7-7.

2012.02.09 14:23

lonegunman 조회 수:3399




7-7. 종곡 finale


우린 충분히 강해. '정의로운 싸움의 명분을 가진 자가 세 배는 강하도다.' 우린 경찰을 기다릴 여유가 없어. 그러니까 법이라는 사각의 링에 올라설 겨를이 없는 거야.

-셜록 홈즈 (프란시스 카팩스 여사의 실종)



시즌1 3화의 마지막 트릭-세 사람 모두를 날려버릴 폭탄-은 모리아티의 전화벨 소리로 농담처럼 저지되었습니다. 세 사람 사이에 엉킨 실을 푸는 문제는 그렇게 유예되었고, 그 덕에 시즌2는 스토리텔링의 시간적 여유를 얻었죠. 그러나 그 때문에 '그레잇 게임'에서 모리아티의 존재와 그의 악행과, 그것을 번번이 망치는 셜록 홈즈를 반드시 처단하겠다는 그의 의지를 모두 확인시킨 것은 오점이 돼버렸습니다. '그레잇 게임'에서 모든 것을 알게 된 셜록 홈즈는 시즌2에서 뭘 합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모리아티가 시즌1 3화 이후로 차근차근 마이크로프트에게 접근하고, 가짜 만능키를 선전하고, 살인자들을 베이커스트릿에 입주시키고, 리차드 브룩이 되어 신분 세탁하고, 모든 활로를 차단하여 셜록 홈즈의 숨통을 조이는 동안 셜록 홈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요. 1화의 결말에서 아이린 애들러가 모리아티를 언급하는 순간 깜짝 놀라는 그의 모습을 보고 인간이 한심해진 게 저 뿐만은 아닐 겁니다. 뭐야, 모리아티 잊고 있었니? 추론 안 해?


시즌1에서는 셜록 홈즈 현대화의 화려한 눈요기에 가려 단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셜록 홈즈의 둔함이 이쯤되면 거슬리기 시작합니다. '스터디 인 핑크'에서 셜록 홈즈가 모든 증거를 취합해 택시 기사를 지목하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늦었다는 데에 동의하실 겁니다. 단 몇 씬만, 몇 박자만 빨랐어도 나았을텐데, 그 깨달음의 순간을 멋지게 표현하려는 연출적인 장식들이 오히려 장르적 긴박감의 김을 빼버리지요. 가장 둔한 시청자보다도 셜록 홈즈가 더 늦게 범인을 눈치채다니 한심하지 않습니까. 시즌1이 장르적인 나태함을 거의 지적받지 않으며 너무 성공해버린 탓일까요. 시즌2는 이 부분에서 아예 손을 놓아버립니다. 1화에선 아이린 애들러에 질질 끌려다니다 추리다운 추리는 거의 하지 못하고, 마이크로프트가 준 힌트도 다 놓쳐버리고, 막판에 어거지로 'sher' 말장난을 때려맞추죠. 2화의 패스워드 'maggie'에 납득한 사람 있습니까? 원전 속 셜록 홈즈가 보여주던 추리도 크게 나을 것 없다 치더라도, 격세유전과 신분 세탁과 로맨스를 한 데 버무려 범인을 드러내던 원전 '바스커빌가의 개'에 비하자면 2화의 범인 밥 프랭클랜드를 그리는 작가의 표현법은 너무 안일하지 않습니까. 모리아티와의 대결은 다시 말하자면 입 아프고요.


그러니까 수사물, 추리물에서 이건 틀림없이 문제이긴 문제입니다. 에피소드가 끝난 뒤 주된 논점이 '어떻게'보다는 '왜'라는 것 말입니다. 어떻게 'sher'가 유추되지?에 대한 대답은 악의를 가지고 단순화시키자면 '아, 동공 확대 됐대잖아' 정도죠. 오히려 사랑했나, 안 했나, 레즈비언인가, 아닌가, 게이인가, 아닌가, 왜 사랑하는가, 왜 개입하는가, 왜 실수했나-하는 등장 인물간의 감정선이 퍼즐에 우선합니다. 모리아티는 왜 그랬나, 왜 셜록에 집착하나, 일에 방해된다는 이유라면 왜 죽기까지 하나, 셜록을 사랑하나? -악의를 가지고 단순화시키자면 말입니다.


지난 시즌 리뷰의 마지막 장에 저는 다음 시즌에 대한 소망들을 늘어놓았습니다. 이번 시즌을 보고 나니, 이제 제작진이 이 작품을 얼마나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지는 충분히 증명이 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소망은, 길게 말할 것도 없지요, 장르적으로 좀 더 성의있는 작품이 나왔으면 하는 것입니다.


다행한건지 당연한건지, 시리즈가 끝나고 셜록 홈즈의 귀환이 '어떻게' 가능했는지가 대두됩니다. 셜록 홈즈가 살아남은 트릭에 대해선 다양한 설이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제대로 된 건 없다는 작가 스티븐 모팻의 인터뷰도 읽었고요. 하지만 같은 작가가 쓴 '닥터후'에서 주요 트릭이었던 A의 정체에 대해 그가 취했던 자세를 떠올려보면 그 인터뷰에 크게 신경쓸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많은 시청자들이 A는 B일 거라고 추측했고, 스티븐 모팻은 계속 B가 아니라는 뉘앙스를 흘려서 사람들의 시선을 분산시켜 놓았죠. 결국 뚜껑을 열어보니 A는 B가 맞았고, 시청자의 성토에 그의 대답은 '당연한 거 아니야?'였습니다. 네, 원래 그런 인간이니 신경 끄고 나름대로의 논리를 펼치면 그만일 겁니다.


이미 방송이 끝난지 꽤나 시간이 흘렀고 다양한 추측들을 나열해봤자 동어반복만 될테니, 저는 제가 하던대로 원전에 입각하여 이야기하겠습니다. 비록 시즌2로 시리즈는 원전을 많이 벗어났지만 누군가가-제가- 태도를 고수한다고 해서 지나친 오독이 되진 않으리라 믿고 말이지요.


3화 '라이헨바흐 폴'의 결말까지 본 뒤 즉각 원전의 '빈 집'을 떠올리지 않은 원전의 팬은 없을 겁니다. 단순히 셜록 홈즈의 귀환 때문만은 아니죠. 3화 '라이헨바흐 폴'과 원전 '빈 집'의 세부 사항을 대응시켜보면 이렇습니다. 



서브 사건으로 등장한 밀실 미스테리 [부인과 딸이 돌아온 열한 시 20분까지 거실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부인은 굿나잇 인사를 하려고 아들 방에 들어가려 했는데, 문이 안에서 잠겨 있었다. 노크를 하고 소리를 질러도 응답이 없었다.], 

악당으로 인해 책(동화)으로 왜곡되거나 위장된 셜록 홈즈의 신분 [찾아온 사람은 바로 늙은 도서 수집가였다. 쭈글쭈글하고 날카로운 얼굴을 흰 머리칼과 구레나룻이 감싸고 있는 모습의 노인은 열 권이 넘어 보이는 귀중한 책을 오른쪽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 나는 고개를 돌려 내 뒤의 책장을 바라보았다. 다시 앞을 바라보자, 셜록 홈즈가 나를 향해 빙그레 웃고 서있었다.] 

베이커가에 등장한 낯익고도 수상한 이웃들 [바람이 긴 거리를 스산하게 쓸고 지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움직였고, 전에 한 두 번 본 적이 있는 사람이 눈에 띄기도 했는데, 거리에서 좀 떨어진 어느 집 문간에서 바람을 피하고 있는 듯한 두 남자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누군가에게 쫓기며 손을 잡고 베이커가의 샛길을 질주하는 두 주인공 [미행을 당하지 않았는지, 모든 거리의 모퉁이를 치밀하게 확인해본 것이다. 우리는 얄궂은 길로만 나아갔다. 런던의 샛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홈즈는 자신만만한 발걸음으로, 내가 전혀 모르는 그물같은 골목의 마구간들을 민첩하게 지나갔다. / 홈즈의 차갑고 가는 손가락이 내 손목을 감싸더니 나를 이끌고 긴 복도로 한참 나아갔다.]

셜록의 파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모리아티 [그는 무기를 꺼내지 않고 그대로 내게 돌진해 와서, 긴 두 팔로 나를 감싸 안았지. 이제 게임이 끝난 것을 알고 오로지 내게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그랬던 거야.] 

세 명의 저격수 [복수를 하려는 인간이 적어도 세 명은 되었지] 

자살을 가장하였으나 자살이 아니었던 셜록 홈즈 [그 폭포에 대해 말해볼까? 거기서 빠져나오느라 곤란을 겪지는 않았어. 폭포에 빠진적이 없다는 간단한 이유에서 말이야.] 

셜록 홈즈로 인해 충격을 받고 정신을 잃는 존 [나는 화들짝 놀라서 후다닥 일어나 몇 초 동안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다음 순간 나는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절을 하고 말았다. 분명 내 안구에 흐린 안개가 핑 돈 듯 하다.] 

존에게 자살로 속일 수밖에 없었던 셜록 [만일 내가 죽었다고 확신하지 않았다면 자네는 불행한 내 종말 이야기를 그토록 설득력 있게 쓸 수 없었을 거야./ 나를 끔찍이도 생각하는 자네가 혹시라도 내 비밀을 누설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까봐 염려가 됐어.] 

221B에서 친구의 빈 의자를 마주하고 쓸쓸히 앉아있는 주인공 [옛 방의 옛 안락의자에 떡하니 앉았더니, 옛 친구 왓슨이 자주 애용한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애타게 보고 싶지 뭐야]



앞에서 저는 시즌1 3화가 원전의 '마지막 문제'를 거의 다 소비해버렸고, 그래서 시즌2 3화는 인용할 원전을 잃고 거의 창작 에피소드가 돼버렸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고, 어느 정도는 제 리뷰의 마지막 장에서 할 얘기를 남겨두기 위한 생략이었어요. 위에 정리했듯, '라이헨바흐 폴'의 외관은 원전의 '마지막 문제'에서 다루는 모리아티-셜록 두 적수의 대결을 담고 있지만 그 안의 세부 내용은 '빈 집'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셜록 홈즈가 살아돌아온 마지막 트릭 역시, 원전의 팬들은 즉각 '빈 집'의 트릭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거죠.



홈즈 : 여기가 어딘지 알겠어?

왓슨 : 여긴 분명 베이커 스트리트야

나는 살그머니 앞으로 다가가서 낯익은 창문을 건너다보았다. 눈길이 멎은 순간 나는 놀라서 헉 하는 소리를 내뱉었다. 방 안 의자에 앉은 한 남자의 그림자가 환한 은막같은 커튼에 검고 뚜렷하게 비쳤다. 고개 숙인 모습, 각진 어깨, 날카로운 이목구비를 보니 그게 누군지 분명했다. 얼굴 옆모습이 마치 우리의 조부모들이 즐겨 액자에 끼운 검은 실루엣의 초상화처럼 보였다. 그것은 영락없는 홈즈의 그림자였다. 

//

홈즈 : 밀납으로 만든 흉상이야

왓슨 : 누가 저 방을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한 거야?

홈즈 : 생각한 게 아니라, 안 거야. / 모리아티의 수하들은 조만간 내가 돌아올 거라고 믿었어. 그래서 줄곧 감시해왔고. 

 //

친구의 계획이 차츰 모습을 드러냈다. 이처럼 잠복하기 좋은 곳에서는 감시자를 감시하고, 추적자를 추적할 수 있었다. 건너편의 앙상한 그림자는 미끼였고, 우리가 사냥꾼이었다.

//

왓슨 : 그림자가 움직였어!

홈즈 : 물론 움직였지. 자네는 내가 그렇게 아둔한 줄 아나? 인형인 게 빤한 것을 세워놓고, 유럽에서 가장 예리한 사람 축에 드는 자들이 그것에 속기를 바랄 정도로? 우리가 이 방에 있은 지 두 시간 됐는데, 그 사이에 허드슨 부인이 인형의 모습을 여덟 번 바꾸었어. 15분에 한 번씩 자세를 바꿔놓은 거야. 자기 그림자가 비치지 않도록 몸을 숨기고서 말이야

-빈 집



원전에서 셜록 홈즈는 허드슨 부인의 조력을 받아 221B에 셜록 홈즈의 밀납 흉상을 세워두고 건너편 건물에서 모든 사태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드라마판에서 셜록 홈즈는 몰리의 조력을 받아 바츠 옥상에 셜록 홈즈 모습을 한 시신을 세워두고 다른 위치에서 모든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을까요? 셜록 홈즈와 존 왓슨의 전화 통화는 교차 편집으로 시청자를 속이는 트릭이었을까요? 원전을 따른다면 그것이 가장 유력한 해석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꼭 원전을 따르리란 법은 없죠. 셜록 홈즈와 존 왓슨을 다른 공간에 두고 교차 편집을 했다고 본다면, 통화하던 셜록 홈즈의 시선 처리나 시야각, 동작 등이 지나치게 억지스러워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옥상의 존재가 셜록 홈즈가 맞고, 뛰어내린 것도 셜록 홈즈이며, 교차 편집은 없었다고 가정하면 우리가 끌고 올 수 있는 원전의 에피소드는 '죽어가는 탐정' 정도가 될 것입니다. 셜록이 죽음을 가장하여 존을 기절초풍시키는 건 여기서도 마찬가지죠.



홈즈 : 허드슨 부인에게는 반드시 내가 병들었다는 인상을 줄 필요가 있었어. 그것을 그녀가 자네에게 전해야 하고. 자네는 또 그에게 전해야 하니까 말이야. 화내지 않을 거지, 왓슨? 자네는 재주가 많지만 속마음을 숨기는 재주는 없다는 것을 알 거야. 내 비밀을 알고 있으면 스미스에게 다급히 이리 와야 한다는 인상을 주지 못했겠지. 전체 계획 가운데 그게 가장 중요했어. 

//

왓슨 : 그런데 홈즈, 자네 모습, 이 핼쑥한 모습은 뭐지?

홈즈 : 사흘 동안 완전 단식을 하고서야 좋아 보일 수가 없지. 그 밖에 스펀지로 토닥거려서 고칠 수 없는 건 없어. 이마에 바셀린, 눈에는 벨라돈나(유독 식물, 환각제나 독으로 쓰임), 광대뼈에 연지를 바르고, 입술에 밀랍 부스러기를 붙이면 아주 만족스러운 효과를 자아낼 수 있지. 꾀병은 이따금 논문으로 쓰고 싶은 주제야. 

//

왓슨 : 그런데 왜 내가 자네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한 거야? 실제로 감염된 것도 아니면서 말야

홈즈 : 꼭 물어봐야 알겠어, 왓슨? 내가 자네의 의술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무리 허약하더라도, 맥박이나 체온에 이상이 없는 사람을 죽어가는 사람이라고 볼 만큼 자네의 판단력이 무디다고 내가 생각할 수 있겠어? / 그가 계획이 성공한 줄 착각하면 기습적으로 자백을 받아낼 수 있을 거라고 나는 확신했어. 나는 진짜 예술가처럼 철저하게 그런 연기를 해냈지.



'빈 집'이 옥상에서의 트릭이라면 '죽어가는 탐정'은 추락 이후 시신에서의 트릭을 가리키고 있죠. 맥박, 체온, 시체처럼 보이기 위한 수법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게 뜬금없이 등장한 고무공이나 원전에 등장하는 다양한 약물과 약초의 도움을 받은 건지, 존을 가까이 가지 못하게 했던 자전거와 행인들이 셜록의 조력자 였는지- 세부 사항은 작가가 선택하기 나름이므로 넘어갑시다. 사실 가장 유력해보이는 건 셜록은 쓰레기차 위에 착륙해 실려갔고, 몰리가 아이린 애들러 수법으로 변형시킨 시체를 던져놓았다, 정도의 깔끔한 해결이지만. 아무튼 마이크로프트가 존에게 했던 '미안하다'는 말, 셜록이 존에게 남긴 '이건 마술쇼야'라는 말 모두 중의적으로 읽힐 수 있다는 건 우리 모두가 알고 있으니까요.


그보다 '죽어가는 탐정'을 끌어오면 재미있어지는 지점은 '(악당으로 하여금) 그의 계획이 성공한 걸로 믿게 한 뒤 자백을 받아내려고, 나는 철저하게 (악당에게 당한) 연기를 했다'는 셜록 홈즈의 발언입니다. 이 단편에서 셜록 홈즈는 범인의 증언을 얻어내기 위해, 오히려 철저히 범인의 술수에 당한 척 '연기'를 하지요. 그러고보면, 3화에서 셜록 홈즈가 모리아티에게 당하는 면면에 의아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영국 정부 그 자체인 마이크로프트가 정말 있지도 않은 '만능키'에 속았고 셜록 역시 속았을까요?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이며 모리아티와 대면하는 순간에도 바흐의 소나타를 연주하고 있던 셜록이, 모리아티가 두드린게 'partita no.1'이라는 걸 정말 몰랐을까요? 어쩌면 '만능키'에 속았다는 것이 오히려 속임수이며, 마이크로프트 역시 어느 시점부터 정황을 알고 셜록과 공조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형에게는 필요한 도피 자금을 얻기 위해 사정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어. (빈 집)] 바츠에서 존이 책상을 두드리는데서 이진수를 유추하는 장면은 정말로 이진법 코드를 유추해낸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이미 셜록은 그 장단이 파르티타임을 간파하고 있었고, 다만 모리아티를 낚기 위해 그것을 이진법 코드로 착각하는 척하는 임기응변을 착상한 순간이었을지도 모르지요. [그가 내게 앙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자기 솜씨를 감상하러 올 거라고 확신하긴 했지. (죽어가는 탐정)]


키티의 집에서 리차드 브룩의 정체가 모리아티라는 것을 (그리고 아마도 동시에 그 이름이 '라이헨바흐'의 언어유희라는 것을) 눈치챈 직후, 셜록은 그 동화의 끝- 마지막 문제가 자신의 자살임을 깨달았을 겁니다. 그리고 곧장 몰리를 찾아가지요. 자살의 대비책으로서 말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옥상에서 모리아티를 대면할 때는, 마치 마지막 문제가 자신의 자살임을 전혀 몰랐다는 듯 '뭘 하라고? 뭘 하라는 거야? ...아, 그렇겠지. 나의 자살이로군.'- '연기'를 합니다. 죽음이 예정되어 있음을 알고 심지어 대비했음에도 모리아티 앞에선 모르는 척 당해주는 이 장면이, 어쩌면 옥상에서의 패배 전체가 모리아티의 진술을 얻어내기 위한 셜록의 연기라는 힌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옥상에서의 패배는 진짜 패배가 아니라기록을 위한 연극, 불명예를 씻기 위한 셜록 홈즈의 계책이었을 가능성에 대한 암시로써 말입니다. 사실 셜록 홈즈가 죽지 않았다는 것만으론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살아 돌아와봤자 그가 갈 곳은 감옥밖에 없으니까요. 모리아티를 죽음에 몰아넣고 쿨하게 귀환할 수 있었던 원전과 [홈즈는 이 사회에서 모리아티 교수를 확실히 제거할 수만 있다면 탐정 일은 흔쾌히 그만두겠다고 몇 번이나 되뇌었다. (마지막 문제)], 이미 오명을 쓰고 법 앞에 스스로의 무죄를 증명해야하는 드라마판에서 셜록 홈즈의 처지는 확실히 다르죠. 


그렇다면 패배를 가장한 연극으로 무엇을, 어떻게 기록한다는 거지요? 셜록은 마지막 순간 왓슨에게 전화가 'note', 기록을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셜록에겐 모리아티가 221B에 설치해놓고 자신을 감시하던 소형 카메라가 있지요. 그 아이템들이 바츠 옥상에서 셜록을 이겼다는 성공에 취해 스스로 범죄 행각을 떠벌리던 모리아티의 증언을 잘 기록해놓았을까요? 아니면 패배는 단지 패배일 뿐, 오명을 벗기 위한 또 한 번의 모험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까요. 어느 쪽이든 무슨 문제겠습니까. 이건 선한 자가 이기는 이야기이고, 우리는 우리 주인공들의 성공담을 기다리면 되는 걸요. 셜록 홈즈가 인용한 셰익스피어를 다시 인용해도 낭비는 아닐겁니다. '정의로운 싸움의 명분을 가진 자가 세 배는 강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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