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노 아키라


 

짱구는 못말려란 제목으로 우리에게 더 친숙한 일본만화 '크레용 신짱'은 실질적으로 연재종료 상태입니다. 2009년 작가 우스이 요시토가 산행도중 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이지요. 사후 발견된 원고까지 2010년 3월 연재는 종료 되었지만 미디어 이전 작업은 여전히 활발한 것 같습니다. 좋은 작품은 언제나 작가보다 오래 살아남기 마련이니까요.

극장판으론 이미 18번째 시리즈인 이번 작품은 언제나처럼 일상에서 벗어난 짱구와 가족, 친구들이 새로운 세계에서 벌이는 모험활극인데요. 이전 작품과의 차별점이라면 '시간여행'이란 테마와 '어른 짱구'의 등장입니다.

사실 일본의 어린이 극영화/만화영화에서 시간여행 테마는 너무나 흔해서 일종의 쟝르를 형성하고 있다고 봐도 좋습니다. (그러니까 시간여행 쟝르...) 일본 사람들이 시간여행 어지간히 좋아하나보다 싶을 정도라니까요. 그리고 개중에는 과거나 미래의 자신과 만나는 이야기들도 당연히 많습니다. 이번 극장판은 이런 뻔한 설정을 차용했습니다. 운석 충돌로 폐허가 된 후 재건된 20년후 네오도쿄(ㅋㅋ)는 충돌후 생긴 구름층으로 햇빛을 보지 못하는 어둠의 세계입니다. 그리고 어둠을 몰아낼 수 있는 전기를 공급하는 전력회사 사장은 절대권력의 지배자로 군림했지요. 미래의 청년 짱구는 그런 세상을 변화시키려 모종의 작전을 수행하던 중 연인이자 사장 딸인 다미에게 5살의 나를 데려와달라는 말을 남긴채 사장에 의해 석상으로 변해버립니다. 마이크처럼 생긴 타임머신을 타고 20년전으로 돌아간 다미는 어린 짱구와 친구 4인방을 데리고 미래로 돌아오고 이러저러 여차저차 모험극 끝에 사장의 독재를 극복하고 세상에 자유를 선사하게 됩니다.

 

설정에서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장면들이 중반부를 채우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 처음 장면은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미래의 자신을 그리며 소꿉장난을 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미래로 간 아이들은 20년후 자신의 모습을 보는데 상상하던 것과 다른 모습과 대면하게 됩니다. 짱구네 가족의 미래도 재미를 선사합니다. 아버지는 햇빛을 보지 못해서인지 대머리가 되버리고 만날 살쪘다고 짱구에게 놀림당하던 엄마는 진짜 거구의 할머니가 되어있다는 식이지요. 좀 구질구질하게 세상에 찌든 미래의 인물을 전반부에 배치하고 후반부엔 의외의 모습을 한 인물들을 등장시켜 상황의 반전을 꾀하기도 하는데요. 꼬질찔이 맹구는 초천재 과학자가 되어서 거대 로봇과 등장하고 짱구 동생 짱아는 바이크를 타고 등장하는 섹쉬한 국제경찰이 되어 나타나는 식이지요. 약혼자 다미와 어린 짱구/청년 짱구간의 로맨스도 적절한 수준에서 이야기에 삽입되고요. (심지어 다미와 짱구 사이에 사랑의 장애물이자 삼각관계의 한축 역할로 철수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ㅋ)

 

곳곳에 소소한 패러디들도 여전합니다. 큐티하니나 웨딩피치를 연상시키는 여자군단이 사실은 시집못간 원한을 궁극기로 승화한 노처녀 용병들이고. 청년 짱구의 석화 장면이나 그를 석화시킨 것이 연인 다미의 악당 아버지란 설정은 스타워즈의 레아,한솔로 커플을 연상시킵니다. 맹구가 끌고온 로봇은 철인 28호의 패러디이고 폐허가 된 도쿄 모습은 아키라를 그리고 그 위를 날아다니는 비행선은 무려 블레이드 러너를 떠올리게 만들고요.

 

짱구 시리즈에 빠지지 않는 아이콘들도 여전히 등장해요. 짱구의 엉덩이 춤은 클라이맥스에서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하고 (아.. 지금도 이 생각만 하면 웃겨요) 미래의 짱구는 당연하게도 액션가면 복장으로 위장을 하고요. 흰둥이나 초코비과자도 미래에 변형되어 등장해 자잘한 재미를 줍니다.

작가 사망후 만들어진 극장판인 만큼 어쩔 수 없이 영화외적인 의미부여를 할 수밖에 없을 텐데요. 이전 작품에서 주로 어린이의 순수함이나 어른들만의 세계를 따로 분리해서 그리며 짱구를 비롯한 아이들은 관찰자 시점에 머무르게 만들던 엔딩에 비해서 이전 작품은 청년 짱구를 직접적으로 등장시키며 '훌륭한 어른이 되고 싶어'라는 결론을 내리는 어린 짱구의 모습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20년 가까이 5살에 머물던 짱구에게 이제 자라나 어른이 되고 싶어하는 의지를 심어주는 거죠. 거기에 힘을 실어주기라도 하려는 듯 미래의 짱구 모습은 여전하면서도 어른스럽고 매력적입니다. (일본 만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헐랭이인척 대의에 부응하지 않는척 하면서도 사실 중요한 문제는 혼자 다 해결하는 캐릭터죠) 게다가 아름다운 약혼녀까지 등장시켰어요 (다미의 그림체만 유독 기존 캐릭터들과 다르게 튄다는 생각 들지 않으셨나요?)

 


이제 짱구도 작가의 품에서 떠나 어른이 될 시간이 된거란 얘기일까요.


그외.

핵폭발 이후를 연상시키는 (운석충돌이나 핵폭발이나 결과물은 비슷하죠) 도쿄의 모습과 그것을 지배하는 '전력회사'라니. 요즘 일본 모습을 생각하면 거의 예언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쪽만화로 시작한 단순한 그림체의 만화가 일본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세계적인 캐릭터로 정착되어 함께 늙어가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만 합니다. 왜 한국엔 아톰이나 미키마우스, 틴틴이나 짱구가 없는 걸까 하는 뻔한 고민을 다시하게 됩니다. 물론 태권브이가 있고 둘리가 있고 까치가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작가 사후에도 여전히 일본 문화의 한축으로 그네들의 아이콘의 일부가 된 캐릭터들과 달리 제대로 평가받기도 전에 이미 나이가 들어버려 '역사'의 한켠으로 잊혀져가는 것만 같다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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