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듀나 게시판의 '쑤우'님이 제작하신 곽재식 단편선 '그녀를 만나다'에 실렸던 제가 쓴 감상평을 올립니다.

단편선을 미처 구입하지 못한 분들께도 보여드리고 싶어서요. 

최근 2년에 발표하신 나머지 단편들에 대한 얘기는 다음에 써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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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단편선 감상평

  

 

1.

곽재식이 누구야?”

곽재식이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길래 팬미팅을 해?”

 

곽재식에 대해 모르는 분들을 위해 곽 작가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하겠다. 곽재식은 환상문학웹진《거울》에서 필진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5년부터 지금까지 《거울》에 18개의 단편[1]을 썼다. 그 중 「판소리 수궁가 중에서, 토끼의 아리아 "맥주의 마음"」은 드라마 극본으로 채택되어 2006 4 26MBC 베스트 극장에 토끼의 아리아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그의 단편 「콘도르 날개」는 2008 7월 출간된 『한국 환상문학 단편선』에 수록되어 있다. 또한 올해 2월에 출간된 『U, ROBOT』에서는「박시은 특급」을 선보이고 있다. 최근의 공식적 행적으로는 2009 3, 조촐한 단독 팬미팅이 있었으며, 5월에는 SF도서관에서 『U, ROBOT』의 작가들과 함께 팬들과의 만남을 갖기도 하였다. 그 밖에 듀나의 영화낙서판의 리뷰 게시판에서 영화리뷰를 작성하기도 하고 게렉터 블로그에서 동서양 고전영화 리뷰, 고전문학 리뷰, 역사, 설화, 민담, 야담 등에 대한 연구 및 기묘한 이야기 등을 게재하고 있다.

패션 관련 업계의 종사자와 관련된 산업을 패션 씬 (fashion scene) 이라고 한다면, 곽재식의 이야기는 과학 씬 (science scene) 을 그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단편들에서 주인공은 과학자이거나 이공계와 관련된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내용이 딱딱하고 재미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실상 중심내용이 연애이거나, 주변부의 스토리에서라도 연인관계가 등장[2]하기 때문에 과학소설이라기보다는 연애소설로 분류해도 좋을 정도다.

 



2.

곽재식의 단편을 읽다 보면 몇 가지 특징을 포착할 수 있다. 우선, 거의 모든 소설이 1인칭 시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 1인칭 시점의 가 주인공이자 화자로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서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사건을 함께 겪는 것 같은 생생함을 독자들은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1인칭 시점의 한계가 드러나기도 한다. 「최악의 레이싱」의 경우에 같은 시간에 여러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을 생중계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 역시 1인칭 시점이기 때문에 주인공 가 같은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을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전개상의 허점이 있다.

여러 단편들에 걸쳐 주인공 의 이름은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제3의 등장인물이 주인공의 이름을 슬쩍 지나가듯이 거론한다[3]. 이렇게 해서 독자는 주인공의 이름을 알게 되는데, 이는 주로 작가 본인의 이름을 차용한 캐릭터이다. 그리고 주인공의 성격은 여러 작품에 걸쳐 일관성 있게 그려지는 편이다. 그리하여 주인공과 작가 사이의 관계에 대해 궁금증이 유발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주인공 곽재식과 작가 곽재식사이에 어떠한 연관성과 유사성이 있을지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소설 속의 곽재식의 성격과 취향이 글을 쓰는 곽재식과 비슷할 것이라고 추측하게 된다. 화자가 ''라는 점, 다양한 작품들에 걸친 의 성격의 일관성, 주인공과 작가 간의 유사점을 시사하는 면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 비슷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작가도 이에 대해 의식하고 있는지, 「콘도르 날개-완결편」, 「아더왕과 원탁의 탐정들」에서는 주인공 ''와는 별개로 작가의 이름을 차용한 다른 인물을 등장시켜 이러한 인식을 불식시키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와 작가와의 연관성을 지우기 힘들다.



 

3.

그밖에 사소하지만 몇 가지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점도 있다. 다문화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가 그 중 하나이다. 「달팽이와 다슬기」라든가, 「신비한 사랑의 묘약」에 나오는 우즈베키스탄 혼혈인 선배에 대한 묘사에 묻어져 나오는 태도에서 이런 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사랑이나 연애에 대한 이야기가 스토리라인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오히려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가 아닌 것[4]을 꼽는 게 쉬울 정도이다.

작가는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한다. 「독수리 머리」, 「판소리 수궁가 중에서, 토끼의 아리아 "맥주의 마음", 「백조 깃털」 등은 이공계 과학자와 연구원들의 이직을 제한한 산업기술보호법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다.



 

4.

곽재식의 많은 작품 가운데 「달과 육백만달러」, 「박시은 특급」, 「판소리 수궁가 중에서, 토끼의 아리아 "맥주의 마음", 「최악의 레이싱」 등의 이야기가 가장 널리 독자들의 사랑과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많이 읽히진 않았지만 숨겨진 재미난 작품 몇 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황야의 무직자」는 중단편으로, 작가의 작품 중에서 분량이 많은 편이다. 이 작품은 서울, 라스베거스, 그랜드 캐년을 아우르는 장대한 배경 속에서 압도적인 자연환경을 잘 묘사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도 4년 넘게 인연을 놓지 않고 결국에는 서로 만나게 되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영화 "시애틀에서 잠 못 이루는 밤"의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이 울고 갈 정도로 진진하다. 맨손으로 퓨마를 물리치는 사건은 액션영화로도 손색이 없고, 선인장으로 수분을 보충하는 장면은 서바이벌 모험 영화를 떠올리게 하며, 동굴 안에서 수줍게 잠드는 남녀의 모습은 알퐁스 도테의 ""에 감히 견줄 만하다. 「판소리 수궁가 중에서, 토끼의 아리아 "맥주의 마음"이 드라마화 된 것에 견주어 볼 때, 「황야의 무직자」는 영화화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정도로 장면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마녀의 피」는 장학금 후원자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단편이다. 그리고 기묘한 이야기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반영된 작품이다. 그저 그런 기묘한 이야기로 그칠 수 있었던 이야기에 환경오염과 염기성 진단 시약 등의 요소를 삽입함으로써 더욱 현실감 있게 만들었다. 특히 도입부에서 비를 맞으며 교외 논길을 걸어가는 주인공의 행색과 그의 눈에 비친 논밭 한복판에 있는 아파트의 모습이 교외 어느 지역에서 언젠가 봤던 것처럼 쉽게 형상화된다. 이는 블라디보스톡 공항에 내려 이름 모를 곳에서 이국적인 식사를 하는 장면이 들어있는 후반부의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 대조되어 더욱 그럴듯하게 다가온다.



 

5.

앞으로 나올 작품을 기대하고 있는 독자들, 그리고 출판되지 않은 작품들을 책으로 엮어서 읽고 싶은 열망에 이렇게 자비 출판을 하는 팬들이 있음을 감안할 때, 앞으로 곽재식의 단편집뿐 아니라 장편소설이 나올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환상문학/SF문학계의 기린아에서 아무런 수식 없는 그냥 문학계의 기린아로 발돋움하려는 천재작가 곽재식의 행보를 따뜻하게 지켜봐주시라. 혹시 아나, 먼 훗날 우리 손자들의 국어 교과서에 곽재식의 작품이 실릴지!

 

 

- 2009 7, 나리타 공항에서[5]




[1] 2009년 7월 기준.  

[2] 「흡혈귀의 여러 측면」에서는 도입부에 여자친구의 속옷을 구입하는 교수가 등장한다. 

[3] 「달과 육백만달러」에서 이원이의 곰인형 이름을 떠올려보시라.

[4] 「달팽이와 다슬기」, 「독수리 머리」, 「백조 깃털」, 「마녀의 피」 등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마녀의 피」에서도 여자친구 한별과의 얘기가 곁다리로 들어가 있어서 완전히 연애 얘기가 아니라고 보기 힘들다.

[5] 작가가 글을 끝맺을 때 쓰는 맺음말에 대한 오마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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