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포머 3

 

 


쨔자잔, 드디어 트랜스포머 시리즈를 마감(아마도, 아니면 당분간)할 3편이 개봉했습니다. 여전히 마이클 베이가 메가폰을 쥐었고 그 뒤에 스티븐 스필버그가 버티고 섰습니다. 인간이던 로봇이던 전작의 주요 캐릭터들은 그대로 이어지는데 딱 하나 여주인공만 '우왁스런 소동과 소문' 끝에 금발머리 모델로 바뀌었고요.

러시아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할때만 해도 좋은 소문들이 들렸습니다. 몇몇 매체는 이 영화의 3D를 아바타에 비유했고. 2편에 실망한 관객들을 만족시킬만한 영화라고도 했습니다. 마이클 베이도 전작의 패착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이번엔 고쳤어요'라고 인터뷰 했고요.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여니 악평들이 쏟아졌습니다. 적어도 제가 극장으로 달려가기 전까지 접한 감상들은 '지루하다' '영화도 아니다' '2편보다 심하다' '마이클 베이 개XX'이었고 그나마 온건한 평이 '그래도 볼거리 많다' '2편의 확장이다' '마이클 베이 아놔...' 정도였어요.

 

일단, 기술을 다루는 법에 있어선 영리한 감독의 성향, 아바타 스탭의 참여 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거금을 주고 3D를 보았습니다. (사실은 모 극장 VIP쿠폰 중에 두 명이 가면 한 명 공짜가 있어서였습니다만)

 

1편 고딩, 2편 대학 신입생을 거쳐 이제 졸업하고 사회인이 된 윗위키는 두 번이나 세계를 구한 덕에 대통령에게 훈장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비리그 졸업생인 그의 현실은 잘 나가는 여자친구 집에 얹혀 사는 청년백수지요. 오토봇들이 세계평화(말 그대로입니다)를 위해 네스트 요원들과 동분서주 하는 사이 그는 사회의 쓴맛을 단단히 경험하며 자괴감에 빠져 있어요. 한편 체르노빌 폐허에서 발견된 오래 된 외계 우주선 부품을 통해 달 이면에 자신들에게 중요한 무엇인가가 있음을 알게 된 옵티머스 프라임 이하 오토봇들은 달로 향하고 거기엔 당연하겠지만 디셉티콘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고 가장 먼저 관객을 불편하게 하는 건 역시 주인공 샘 윗위키 캐릭터의 변화입니다. 너드에 가까웠던 1편의 순진한 고딩, 대학 신입생 분위기에 들떠있으면서도 지구와 오토봇의 운명을 위해 한 목숨 내던지던 2편의 순수 청년은 이제 자기 중심적이고 질투심 가득한 사내자식으로 자랐습니다. (아마도 대학 4년 동안 안좋은 친구들과 어울렸거나 미카엘라와의 이별 과정에서 심사가 뒤틀린 모양입니다)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경험을 했기 때문일까요 3편의 샘은 '좋은 시절'에 대한 기억만 붙들고 곱씹으며 세상을 씹어대는 미치광이 노병을 닮았어요. '씨X 내가 이 나라 위해 북한을 오가며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했는지 알아? 그런데 나를 이렇게 대접하고. 나라는 이꼴로 만들고...' 운운하며 요상한 집회를 벌이는 어버이분들 있잖아요...

물론 시리즈를 거치며 캐릭터가 변할 수 있습니다. 관객들도 항상 그자리에서 맴도는 주인공 보다는 뭔가 새로운 것을 원하니까요. 하지만 그건 '성장'이란 단어와 연결되어야 즐거운 것이지 '퇴행'이나 '퇴물'같은 단어와 이어붙이면 씁쓸하다 못해 불쾌합니다. 게다가 여자친구를 대하는 그의 태도를 보세요. '내가 널 사랑하니까 이러는 거야.'라며 미친 짓 하는 사내자식들하고 다를 게 뭔가요. 혹시 작가가 한국 신문이랑 막장 드라마 대본 몇개 들고가서 공부라도 한 건가요?

 

이번 3편을 씹어대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주장이 '스토리가 엉망이다'입니다. 뭐, '메이드 인 마이클 베이' 버프가 크기도 하겠지만 왜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충분히 수긍이 갑니다. 일단 전작들을 통해 팬이 된 사람들에게 이번 이야기는 커다란 '구라' 입니다. 전작들과 아구가 맞지 않는 설정들이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열거하기 힘들 정도거든요. (사실 이건 2편에서도 있던 문제지만 그것이 이번에 더욱 커진 것 같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걸 꼽아보자면 '메가트론'과 '센티넬'이 언제 어떻게 만나서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는가 입니다. 1편에서 메가트론은 윗윅키 할아버지가 발견하기 전까지 극지방 얼음 밑에 빠져있었습니다. 그 후에도 1편 이야기 직전까지 비밀기지에 감금되어 있었고요. 오토봇 우주선이 달에 떨어진게 그보다 이전의 일이겠지...라고 할 수가 없지요. 우주선 추락이 60년대 우주개발의 진자 이유라고 영화 초반에 친절히 설명하잖아요. 뭐 그 전에 스타스크림 같은 똘마니가 먼저 쇼부보고 와서 전달한거다...라고 하기에도 2편 이야기랑 아구가 맞질 않아요. 그럼 2편에서 폴른이 그 난리를 쳐댈때 메가트론은 그를 말렸어야 할 입장이었던 겁니다. 가장 타당한 건 2편 이야기 이후 어찌어찌 몰래 달에 간 메가트론이 센티넬을 깨워서 합의보고 다시 재운 뒤 때를 기다렸다... 정도인데 그럼 굳이 함정을 파가며 옵티머스가 매트릭스를 이용해 센티넬을 깨우길 기다릴 이유가 없죠, 그보다 대사에서 수십년 전에 합의 본 사항이라고 했던것도 같고.

 

사실 전작과의 연결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관객 중 상당수는 전작을 보지 않았을 것이고 본 사람도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해서 티를 집어내며 피곤하게 영화를 보진 않을 테니까요. 그럼 일단 이 부분을 패스한다 쳐도 여전히 '스토리가 엉망이다'란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구성할 때 작가는 캐릭터를 만들고 배경을 만듭니다. 하지만 이건 준비과정입니다. 진자 '이야기' 그러니까 '스토리'를 만드는 건 바로 '갈등'입니다. 갈등과 반목은 이야기의 시작이고 클라이막스로 이어가는 원동력입니다.

 

1편에선 큐브가 있었습니다. '생명의 원천'인 큐브를 둘러싼 오토봇과 디셉디콘의 갈등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어요.

 

2편의 갈등 원인은 '매트릭스' 입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따지고 보면 매트릭스는 큐브의 원형이니 역시나 1편과 비슷한 갈등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다만 규모가 커졌고 폴른이라는 더 쎈 녀석이 추가된 거였죠.

 

그렇다면 3편은?

 

 

영화 초반 달 이면의 우주선과 센티넬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며 거기에 '매우 중요한' 무언가가 있음을 암시합니다. 게다가 나중에 알흠다운 평원을 보며 센티넬과 옵티머스가 나누는 이야기를 보면 그 '무언가'는 매트릭스의 존재따위 너나 가지셈이라고 할 만큼 어마무시하고 거창한 겁니다. 그런데 등장한 건? 고작해야 포탈 생성 장치입니다. 작가도 여기에 뜨끔한지 그것을 이용한 원대학 계획이란 밑밥을 던져봅니다. 하지만 그 밑밥 자체가 스토리에 재앙으로 작용합니다. 저 로봇들은 대체 무엇을 위해 저리 싸우는 건지 알 수가 없어져요. 이건 앞서 언급한 거대한 구라 문제와도 충돌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지구의 유일한 자원이 '인간'이라면 영화에서와 같은 거창한 쇼맨십은 필요 없습니다. 그냥 포털을 열어서 인간들을 전송하면 될 일이죠. 아니 그보다 1편에서 디셉디콘들이 열을 올리는 건 그냥 지구정복 아니었나요? 2편에선 아예 태양계를 박살내려 했고요. 대체 메가트론 자식은 바람에 일렁이는 갈대인 겁니까?

 

갈등이 빈약하고 이치에 맞지 않으니 이야기도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악당갑'인 메가트론이 이야기에 어울리지 못하고 다중이 짓이나 하고 있는 부분부터 문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영화 속 악당은 거창한 비쥬얼 뿐이지 전혀 존재감이 없어요. 그러니 갈등도 빈약하고 사람들과 로봇이 죽어나가고 거대한 외계 우주선이 둥둥 떠다니고 중요 캐릭터가 죽고 다른 중요 캐릭터는 몸이 절단나고 주인공은 개떡같은 꼴을 해가지고 이리저리 내던져지는 데도 전혀 긴장감이 없는 겁니다.

 

기술적인 측면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습니다. 일단 3D 효과의 경우 도드라지는 몇몇 장면들이 있었지만 그보다 점수를 주고 싶은 건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화면이었습니다. 3D 영화를 보면 늘 눈이 아프고 어지럼증이 있었는데 이번엔 그런 부분을 거의 느끼지 못했어요. 그리고 3D 효과가 없는 부분에서 화면이 어둡거나 이질감이 느껴지던 부분도 훨씬 덜했고요. 여지껏 3D영화를 보며 이런 느낌을 받은 건 '아바타' 한 편 뿐이었으니 거기에 비유하는 이유를 알겠더군요.

 

컴퓨터 그래픽의 경우 전편에서 이미 검증된 로봇 구현인 만큼 딱 그만큼의 만족과 불만이었습니다. 수많은 오브젝트로 구성된 로봇들은 덕분에 리얼해보이긴 한데 이런 애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니까 누가 누군지 구분하기가 힘들어요. 엔간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기껏해야 '색깔있는 게 좋은 놈' '그냥 회색인게 나쁜 놈' 수준 아니겠어요. 그런 로봇들이 서로 싸우고 배반하는 이야기를 펼치니 '이놈이 저놈 같고 저놈이 이놈같은' 관객은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 지경일겁니다.

예고편에서 디워를 연상시킨다던 장면은 액션 시퀀스 적으로 흥미로웠습니다. 중력의 방향이 마구 바뀌며 다양한 하강의 이미지가 그려져요. 하지만 액션에도 스토리란게 필요한데 그런 부분에서 무척이나 나빠요. 사실 그 무리가 전부 우르르 올라갈 일이 아니었죠. 서너명만 올라가서 런쳐 발사하고 내려오면 될 일이었어요. 그 후엔 그냥 로봇 쳐들어오고 꺄악, 건물 기울어지고 꺄악, 건물 아예 동강나고 꺄악...의 연속이었죠.

 

스턴트에 상당부분 의존했을 윙슈트(? 플라잉슈트) 부대 장면은 흥미로웠습니다. 그런 침투 방식의 비논리성이나 현실성에 대해 미뤄놓는다면 상당히 즐길 요소가 많았어요. 3D의 심도를 구현하기 좋은 소재고 아이맥스에선 비행을 실감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고. 비쥬얼 적으로도 멋있다 못해 아름다울 지경이고.

결론적으로 뭔가 새로움으로 가득할 것 같던 트랜스포머3는 2편의 재탕이었습니다. 전편에서 아쉬웠던 스팩터클이 첨가되고 3D란 양념을 쳤을 뿐이에요. 거기에다 2편의 단점들마저 함께 거대해져 버렸으니 지금의 반응들이 쏟아지는 거죠. (앞서 언급한 갈등의 부재->스토리 부재의 문제와 함께 말입니다) 뉴스를 통해 국내에선 3편이 4D로도 상영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어쩌면 이제 트랜스포머는 극영화라기 보다는 첨단기술을 화려하게 접하는 어트랙션 같은 느낌입니다. 스토리 따위야 초등학교 저학년을 설득할 수 있을 레벨로 맞춰놓고 별다른 고민 없이 영상적 성찬을 선물하는 거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를 부여하고 즐거워할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2시간 30분에 달하는 어트랙션은 재미보다 지루함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작가와 감독은 조금이라도 더 '극영화'인척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p.s.

 

존 말코비치는 완전히 낭비되었어요. 그로선 용돈벌이 삼아 재미로 참여한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쇼크웨이브는 삼국지 관우의 배드보이 버젼 쯤으로 보여요. 적토마 대신 몽골리안 스웜을 닮은 괴물을 타고 적진을 누비며 다들 기죽게 만들다가 수백발의 화살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는 욜라 쎈 장수 말이에요.

 

센티널 디자인은 요즘 나오는 건담들 디자인을 연상시키더군요. 어깨 뽕하며 장식적인 방패나 검하며... 하긴 건담도 사무라이 + 중세기사의 이미지니 그냥 같은 조상때문에 정도로 설명 가능하겠네요.

 

메가트론은 바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1편에서 사람 후덜덜하게 만들던 그 포스는 다 어디다 버리고 왔나요? 애초에 2편에서 되살리는 게 아니었습니다. 이젠 원작 팬들의 원성은 하늘을 찌를 듯...

 

Q(^^)가 인간들을 위해 만든 무기는 좀더 그럴듯한 걸로 설정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니까 총질 말고 에이리언 2편에서 로더에 탄 리플리 마냥 로봇들과 동등하게 싸울 수 있는 기계 같은 식으로 말이에요.

 

로봇들의 고향별은 아작이 난게 아니라 불모지가 됐던 건가요? 전작에서 뭐라고 설명했는지 기억이 안나요. 아님 시간을 뛰어넘어 소환된 걸까요? 그리고 막판에 그냥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간 건가요. 그런거면 다행이지만 꼬라지가 소멸되거나 블랙홀이 되어버릴 기세던데... 이런 경우 로봇들 입장에서 옵티머스는 인간들과 붙어먹은 최악의 악당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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