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스 코드 Source Code

2011.05.06 22:20

곽재식 조회 수:4724

영화 "소스 코드"가 재미난 대목은 긴박한 싸움과 첨단 기술이 중심이 되는 박진감 넘치는 영화이고, 수수께끼 풀이와 이리저리 굽이치는 줄거리가 계속 호기심을 이끄는 이야기면서도 영화가 다루는 배경은 통근열차를 타고 가는 보통 사람들에 계속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이 영화의 멋으로 잘 활용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위해서, 영화는 "중간에서 막바로 시작하기(in medias res)" 수법으로 꾸민 이야기를 정석으로 밀고가고 있습니다. 즉 영화가 시작하면, 주인공이 평범한 통근 열차에 타고 있는데, 갑자기 다짜고짜 이 사람은 자기가 여기에 왜 있는지 모르겠고,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다고 하면서, 자신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헬리콥터를 조종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게 어찌된 영문입니까? 무슨 순간이동이라도 일어난 겁니까? 도대체 무슨 사연일지, 궁금해하면서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왜 내가 이 열차안에 있는거야?)

이 렇게 수수께끼 같은 장면을 대뜸 들이대면서 시작하는 영화인만큼, 이 영화를 제맛 그대로 보는 방법은 도대체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지, 어떻게 흘러가는 이야기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영화를 보러 가서, 그 자리에서 놀라고 궁금해 하며 영화를 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제목 "소스 코드" 조차 이 영화 내용에 대해 알려주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아예 그렇게 보라고 만든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이 영화는 "소스 코드"하면 떠오르는 컴퓨터 프로그램, 해킹, 저작권 뭐 이런 이야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니 말입니다.

이 "중간에서 막바로 시작하기" 수법은 이 영화에서는 무척 잘 쓰여서, 한 가지 이상한 상황을 보여주고, 이 상황을 풀이해 줄 것 같은 다른 상황을 보여 주면서, 더 궁금한 정체불명의 인물을 등장시키면서 또 다음 상황을 궁금하게 만듭니다. 중반 이후가 되면, 드디어 관객은 이게 다 뭐하자는 것인지 알게 되고, 그러면 지금껏 궁금해하면서 봤던 상황이 정리가 되고, 이제는 "그래서 이런 복잡한 상황이 결말은 어떻게 맺어질까?"를 계속 궁금해 하면서 결말을 지켜 보게 될 것입니다. 저는 결국 이 영화는, 장중하고 우울한 분위기와 웃음이 서린 즐겁고 밝은 분위기를 잘 섞어 나가는 빠르고 재미난 영화라고 느꼈습니다.

이 영화의 특징 중에 처음으로 이야기 해 보고 싶은 것은, 전성기 알프레드 히치콕이 감독을 맡은 50년대 고전 영화의 요소 입니다. 평범한 남자가 갑자기 엄청난 사건에 말려 들고,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오해하는 정체불명의 무리들 때문에 일은 더 꼬이고, 이 이상한 상황의 진상이 무엇인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는 가운데, 그 사이에 열심히 뛰어다니며 활극을 펼치는 이야기들 말입니다. , "나는 비밀을 안다", "나는 결백하다", 같은 영화들을 꼽을만 할 것입니다.

사 실 이러한 알프레드 히치콕이 감독을 맡았던 영화들은 워낙에 이 바닥의 고전이라서, 한 사람의 용사가 거대한 작전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 치고, 여기에 직접/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은 영화가 없을 지경일 것입니다. 하다못해 작년에 나왔던 그저 성실하게만 만든 준작인
만 해도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작들의 영향은 무척 크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소스 코드"를 두고 굳이 이 점을 좀 더 이야기 해 보고 싶은 점은, 이 영화는 그 중에서도 아예 한 가지 요소를 잡아채서 확 한 번 끝까지 작정하고 밀어 붙인 것인 듯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영화 제작 이론에 대해 심심풀이로 읽을 수 있는 책 중에 가장 재미난 책으로 생각하고 있는 "히치콕과의 대화"를 읽다보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긴장감"에 대해 예시를 들어서 설명하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소개해 보면 이렇습니다.

차 마시는 탁자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사실 그 밑에는 시한폭탄이 숨겨져 있어서 갑자기 뻥 터졌다고 칩시다. 영화를 보던 관객들은 깜짝 놀라겠지만, 한 번 놀라고 그 뿐입니다. 그런데, 시한폭탄을 장치한 사람을 보여 줍니다. 이 사람은 폭탄을 숨겨 두고 떠나려는데, 다른 사람들이 차나 한 잔 하자고 불러서 같이 앉아서 차를 마시게 됩니다. 관객들은 폭탄이 그 탁자 아래에 있고, 빨리 빠져 나오지 않으면 터져서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폭탄을 장치한 사람은 적당히 둘러대고 빠져 나오려는데, 이 사람들은 왠갖 잡담을 걸면서 자리를 자연스럽게 피할 기회를 안 주는 겁니다. 이런 장면이 나오면, 관객들은 "아, 빨리 안 도망치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하면서 그 장면이 끝날 때 까지 계속해서 아슬아슬함을 느끼고 영화에 빨려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 영화, "소스 코드"는 영화 첫 장면 부터 끝날 때까지 계속 해서, 이 탁자 밑에 시한 폭탄이 돌아가는 것을 관객들이 아는 가운데, 주인공이 우왕좌왕하는 것을 반복하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영화는 정말로 그 한 가지 내용을 열심히 끌어내서 이쪽 저쪽으로 다른 각도로 보여주면서 톡톡히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런 이야기의 모범이 될만하게 그런 연출을 재미나게 잘 해내고 있습니다. 아슬아슬한 상황, 이런저런 해결책을 떠올리는 주인공, 성공할 지 실패할 지 궁금하게 하는 이야기. 반복되는 "긴박한 시한 폭탄" 이야기 속에서, 관객들이 주인공의 고민과 대처에 더 빨려들도록 잘 꾸며 내고 있었다고 느꼈습니다.

이 외에, 이 영화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작 영화를 계승해서 잘 맞춰 놓았다는 생각이 든 것은 바로 저 유명한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금발 미녀" 였습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이 감독을 맡은 유명한 영화들을 보다보면, 종종 신비로운 의문의 금발 미녀가 여자 주인공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몇몇 영화들이 줄줄이 인기를 끌다보니, 사람들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금발 미녀"라고 이런 인물들을 뭉뚱그려서 부르고 있고, 이 영화 "소스 코드"에서는 주연 같은 조연 내지는 조연 같은 주연 쯤 되는 굿윈 대위가 바로 이 역할을 맡고 있는 것입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금발 미녀"의 특징을 잡아 본다면, 당연히 "아름답다"는 점이 첫번째 입니다. 개성적인 미인이나, 독특한 매력, 뭐 이런게 아니라 누가 봐도, 어디에 내어 놓아도 아름답다 싶은 아름다운 배우를 기용해서 내세웁니다. 그래서, 극중의 남자 주인공도,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도 동시에 이 아름다운 배우에게 매력을 느끼고 호감을 느끼게 합니다. 이 금발 미녀 배우는 우리에게 좀 가깝게 대할 것 같은 느낌도 줍니다. 그렇지만, 정체를 잘 알 수 없는, 숨긴 것이 있는 것 같은 그런 수수께끼 같은 면이 숨겨져 있습니다. 궁금해 집니다. 나를 도와주고, 내가 의지해야할 호감가는 미녀이지만, 숨겨진 신비로운 면이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 더 해서, 이런 인물들은 대체로 이지적이고 차갑고 우아해 보이게 기용한 경우가 많지 싶습니다. 그래서, 그만큼 더 쉽게 다가가기 어렵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면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 신비로운 느낌은 더 커집니다. 이상한 사건에 휘말린 낯선 느낌도 커지면서, 반면에 이 인물의 강한 면모가 강조되어 어쩐지 이 인물 옆에 꼭 붙어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

이 영화 속의 "굿윈"은 바로 이런 역을 그대로 살려서 보여 줍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이 감독을 맡았던, "현기증"의 킴 노박 이나, "나는 결백하다"의 그레이스 켈레,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에바 마리 세인트처럼 전설적인 매력을 자랑하는 배우라고 하기에, 이 영화의 "굿윈"을 맡은 베라 파미가는 조금 거리는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굿윈" 역시 매력은 누가 봐도 선명하고, 바로 이런 이유로 투입되는 수수께끼의 금발 미녀의 특성을 베라 파미가는 정확하게 연기해 내고 있습니다. 특히, 주인공이 자기도 잘 모르면서 저절로 따라가게 되는 마법의 주문과도 같은 "기억력 문구"를 숙력된 아나운서와 같이 읽어 주는 대목과 같은 곳은, 짧게 지나가는 것이기는 해도, 바로 이런 인물의 특징이 아주 잘 드러나는 멋진 연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금발 미녀)

이 영화는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 흔히 볼 수 있는 태도로 앉아 있는 보통 통근 열차를 배경으로 잡고 있습니다. 이 일상적인 상황을 유지합니다. "스피드"처럼 제복을 입은 특수 요원이 나오지도 않고, 헬리콥터들이 몰려 들어 "대사건"이 나타났다면서 호들갑을 떨지도 않습니다. 그냥 보통 열차가 별다를바 없이 무심한 가운데 지나가는 배경만 유지 됩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거기에 이런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작"스러운 특징적인 면들을 아주 많이 집어 넣어서 독특한 이야기로 끌고 간 것이 이 영화의 한 다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다리는 이렇게 대단한 사건과 일상적인 풍경이 버무려 진 채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도록 꾸며 놓은 "실존주의 우화" 요소 입니다. 실존주의에 대한 "우화"라고 할 때 단 번에 집어 낼 수 있는 영화는 그 소재를 이용한 영화들의 최걸작이자, 빌 머레이 전성기 연기의 표본으로 불리우기에 손색이 없는 "사랑의 블랙홀"일 것입니다. 이 영화, "소스 코드"는 바로 이 "사랑의 블랙홀"이 다루던 소재를 한 다리로 활용해서 이야기가 자리잡게 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 실 이 영화가 써먹고 있는 몇몇 소재들과 이야기에서 정말 비슷한 옛날 영화를 한 편 꼽으라면, "사랑의 블랙홀"보다는 그 후에 나온 "레트로액티브"를 꼽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영화 전체에서 차지한 위치나, 주제에 걸맞게 활용하는 수법을 따지자면, 역시 보다 잘 써먹은 "사랑이 블랙홀"을 다루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니체를 통해 널리 퍼진 "영겁회귀"는 따지고 보면 엄청나게 심각한 이야기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죽는 이야기도 우울하고 서글프기 쉬운 마당에, 대뜸 "신은 죽었다"라는 인용구로 유명한 사람이 니체이고 보면, 뭘 잘 따지기 전에도 이 "영겁회귀"라는 소재와 주제가 무겁고 진지하고 어찌보면 좀 무시무시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랑의 블랙홀"이라는 영화가 재밌는 이유를 따져 볼 때, 그런 소재를 가져다 이야기로 꾸몄는데, 아주 밝고 유쾌한 코미디로 깨끗하게 잘 풀어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즐거운 코미디로 소재를 다루면서도, 그 심각한 소재를 그냥 핵심 그대로 펑펑 잘 살리고 있었습니다.

"소스 코드"에서는 "사랑의 블랙홀"이 웃음을 주기 위해 사용했던 몇몇 수법들을 거의 그대로 가져와서 사용하는 대목들이 있었습니다. "사랑의 블랙홀"에서 빌 머레이가 "내가 신이다"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식당 구석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 대해 중얼중얼 이야기를 읊어 대며 웃기는 장면은 조금 더 규모만 줄였을 뿐, 열차 안을 배경으로 거의 똑같이 구성되어 있을 지경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봐서 그렇겠지만, 이 영화에서 제이크 질렌홀이 기차 표를 들이미는 장면에서는 표정 마저 전성기 빌 머레이의 연기와 비슷하게 해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웃기는 장면을 짜는 것 이외에, "사랑의 블랙홀"이 내세우던, 주제도 잘 살아 납니다. 인생을 사는 의미나 행복이 어떤 거대한 목표도 중대한 과업을 달성하는 목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한 순간 한 순간 보통의 삶 자체에서 소박한 유쾌함을 찾아가며 보내는 도중의 일상에 있다는 부류의 이야기 말입니다. 옛날 작가는 이런 이야기를 두고 신화 속의 영웅이 형벌을 받으며 고통을 받는 극히 어두운 이야기로 꾸몄습니다만, "사랑의 블랙홀"은 빌 머레이가 여자한데 찝적거리다가 물 먹는 즐거운 이야기로 꾸몄고, 이 이야기는 대충 그 중간 즈음의 분위기로 주인공이 뛰어다니며 숨겨진 음모와 맞서 싸우는 활극으로 꾸몄습니다.

잘 짜여져 있는 덕분에 이런 모양새는 충분히 와닿게 나타나 있습니다. 일상 속의 풍경을 그대로 이야기 하면서 그 장면 자체가 사실은 절체절명의 대위기와 싸우는 활극이 된다는 전체 이야기 구조 자체도 그런 주제를 반영한다면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큰 시험에 합격하는 순간, 중대한 과제에 성공하는 순간, 그런 큰 순간이 인생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 통근 열차 타고 잡담하면서 출근하는 시간도 매우 중요한 인생의 한 점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구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은 연출도 꽤 잘 되어 있어서, 그런 거대한 싸움을 하는 "블록버스터" 분위기가 충분히 풍기고 있으면서도, 마음먹고 만들면 아주 저예산으로도 찍을 수 있도록 장면 장면들은 대부분 평범한 것들로만 가득차 있었습니다.

빠 르고 흥겨운 이야기 속에서, 심각한 철학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는 김에 엮일 수 있는 다른 철학적인 소재를 풍성하게 집어 넣어 놓은 점도 짚어 볼만합니다. 중심 소재로 드러나서 활용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영화는 "가상현실", "안락사 딜레마", "통 속의 뇌", "시간여행 역설"과 같은 영화 속에 단골로 나오는 철학상의 소재들을 조금씩 조금씩 이야기가 더 풍부해 지도록 군데군데 걸어 놓고 넘어가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이야기 거리들은
같은 영화가 중후한 이야기를 많이 하기 위해, 장엄하고 화려한 연출로 밀어 붙이면서도, 너무 큰 이야기, 대단한 장면만 연결하다보니 이야기와 감정선이 종종 어색해지는 틈이 있었던 것과 비교도 되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는 "인셉션"에서 심각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크게 일을 벌려서 힘겹게 이야기를 풀어 놓던 한계를 넘어서서, 간명한 이야기를 조촐하게 하면서도 무게는 잃지 않는 멋을 보여 줬다고 느꼈습니다. 반대 방향으로 보자면, 같은 영화가 지나치게 어둡고 신비로운 이야기로만 나아간 데 비하면, 이 영화는 신나고 밝은 이야기로 끌고 가면서도 이야기 앞뒤가 보다 선명하고, 보다 명백한 갈등이 좀 더 깨끗하게 결말을 맺는 보기 좋은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고도 느꼈습니다.


(남녀 주인공)

잠 깐 연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야기 연출도 깨끗하다고 생각 합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이 영화는 주인공이 첫번째 여자 주인공인 미셸 모나한과 나올 때는, 밝은 조명 속에서 밝은 배경 속에서 움직입니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있고 평범하고 넓게 탁 트인 철길을 기차가 달리는 곳이 배경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주인공이 두번째 여자 주인공인 베라 파미가와 나올 때는, 어두운 조명 속에서 어두운 배경 속에서 움직입니다. 주위에 사람이 거의 없이 주인공이 외롭게 있을 뿐이고, 좁고 답답한 곳에 주인공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상황은 말로 드러내 보여 주는 것 없이도, 이런 분위기의 대조만으로도 뚜렷하게 두 상황이 다른 시각, 다른 관점을 갖고 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 외에 복잡한 상황을 요약해서 보여주고, 작은 동작들을 선명하게 보여주지만 전반적인 흐름 속에서 어색하지 않게 화면에 담아낸 촬영도 보기에 편했습니다. 시작할 때 시카고 각지의 도시 풍경을 그럴듯한 구도로 주욱 돌아가며 화면에 담아내는 것 부터가 보기 좋았습니다. 음악은 타악기 소리가 군가처럼 울려퍼지는 도입부를 비롯해서, 영화 내내 이리저리 움직이는 오케스트라 음악이 많이 들어 가 있는 것이 약간 과하다 싶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오히려 이 영화에서는 이게 알프레드 히치콕의 감독작들이 나왔던 50년대나 그 직계 모방작 영화들의 고전스러운 영화 음악을 떠올리게 하는 맛도 있고 해서, 듣기 즐거웠습니다. 미쳐 돌아가는 상황의 복잡하게 변화하는 절박한 감정을 충분히 보여준 주인공 제이크 질렌홀이나 앞서 언급했던 베라 파미가 등의 연기도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간촐하게 나오고 넘어가서 별 심오한 내용이 되지는 못합니다만, "테러와의 전쟁"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생길 수 있는 병폐에 대해서 잠깐씩 드러내는 대목도 한 번 돌아보자면 돌아볼만 합니다. 역시 배경에 흐르는 짧은 이야기 거리입니다만, "테러와의 전쟁" 이후 어린 참전용사들 때문에 미국에서 부모-자식간의 애정이 새삼 자주 이야기 거리가 되는 면모도 눈에 뜨였습니다.

유일하게 좀 보기 어색했던 내용은 이 영화에서 기묘한 기술을 설명한답시고 "양자 물리학"을 들먹이면서 뭔가 SF스러운 신비로움을 까는 것이었습니다. "양자역학이 동양의 기공과 결합해서 우리 스승님께서는 공중부양을 할 줄 알아요" 따위의 사기꾼 헛소리가 워낙 많아서 그냥 심상 자체가 좀 가짜 같은 면이 있었습니다. 그냥 "정체불명의 최첨단 기술"정도로 별 무게를 두지 않고 넘어가가나, 다른 말로 이름을 붙여 봤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 밖에...

"양자(Quantum)"라는 것이 이야기 중에 나오고, 내용도 따져 볼 부분이 있고 해서, TV물 "광속인간 샘(Quantum Leap)"이 종종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언급되기는 하는데, 전체 이야기 구조나 재미의 면면을 따져보면, 거의 별 관계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제작과정이나 발상단계에서 이야기 자체에 영향을 끼친 부분은 분명히 있는 지, "광속인간 샘"의 주인공이 목소리로나마 잠깐 등장합니다.

알 프레드 히치콕 감독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하면, 유명한 "맥거핀" 역시 꽤나 많이 찾아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맥거핀"이란, 이야기 연결을 위해서 중요한 내용이라고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관객이 알 수 없는 허상과 같은 소재로 활용되는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서, 미셸 모나한과 주인공은 구체적으로 어디서 만나 어떻게 아는 관계였던 겁니까? 미셸 모나한이 들었던 "충고"의 구체적인 내용과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인공의 아버지와 주인공 사이에 생겼던 구체적인 갈등은 무엇입니까? 이들은 어디에 갔다가 왜 시카고로 가고 있는 것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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