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할복 (切腹, 1962)

2011.05.24 22:28

oldies 조회 수:7278

 조금 에둘러 가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만 수년 만에 이 영화 〈할복〉을 다시 본 것은 미이케 타카시 감독 덕분입니다. 미이케는 작년에 쿠도 에이이치 감독의 시대극 〈13인의 자객〉(十三人の刺客, 1963)을 "최대한 옛날에 영화를 만들었던 방식대로" 리메이크해서 '이 사람은 우리가 열광했던 그 컬트 감독은 아니지만 어쨌든 죽인다!'는 찬사를 받은 뒤, 차기작으로 〈할복〉의 3D 리메이크를 선택했습니다. 물론 산업 전체가 신들린 듯했던 5~70년대의 일본영화 걸작들을 리메이크하려는 최근 일본영화계의 시도를 볼 때면 조건 반사적으로 바보 아니냐는 말이 튀어나오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얼굴 예쁘장한 애들 대거 내세워서 조악한 CG를 시끌벅적하게 바르는 형태가 아니라 그래도 옛 대가들의 태도를 좇아 성심성의껏 영화를 만든다면 결과물이 설령 원본을 뛰어넘을 수는 없을지라도 장기적으로 일본영화계에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싶고, 마침 미이케가 그런 방향에 꽂힌 듯하니 긍정적으로 기다려보자는 심산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칸 국제영화제 출품을 맞아 공개된 〈일명〉(一命: 이것이 이번 리메이크의 제목)의 티저 예고편을 보니, 과연 좋은 의미에서 원작 생각이 나게 하는 예고편이었습니다. 해서, 예고편의 기대를 간직한 완성품을 기다리며 간만에 원작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벌써 리메이크로서는 좋은 일 하나 한 셈입니다.

 때는 칸에이 7년(1630년), 오랜 전란 끝에 전국 시대가 막을 내리고 권력의 장이 에도 막부를 중심으로 형성되면서 지방의 다이묘들이 몰락해가던 시절의 어느 봄날. 무가(武家)로 명성이 드높은 이이 가의 대문 앞에 과거 히로시마 후쿠시마 가의 가신이었다는 낭인 츠구모 한시로가 나타납니다. 그는 후쿠시마 가가 몰락한 뒤 에도로 와서 새 주인을 찾고자 노력했지만 이런 평화로운 시대에는 그 또한 쉽지 않은지라 천한 일을 하며 입에 간신히 풀칠하며 살 수밖에 없었고, 결국 이렇게 수치스럽게 사느니 차라리 사무라이답게 할복하여 명예롭게 최후를 맞이하기로 했다면서 할복 의식을 치를 수 있도록 마당을 빌려달라고 청합니다. 주군이 자리를 비운 사이 이이 가를 관장하고 있는 고문 사이토 카게유는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중얼거립니다. "또 인가……." 사정인즉, 그즈음 에도에서는 이렇게 할복하겠노라며 자신의 기백을 보여준 뒤 약간의 음식과 돈을 얻어 가는 할복사칭이 유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많은 모방이 그렇지만 이것도 처음에는 어느 가문에서 진심으로 할복하기 위해 찾아온 기개 있는 낭인을 고용해주었다는 "미담"에서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미담"이 전례로 남자 이제 다른 가문도 할복사칭자가 오면 마냥 쫓아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정말 죽으라고 하기도 뭐하고 하니 별수 없이 몇 푼 적당히 쥐여주고 달래서 보내게 된 판국입니다. 그런데 이이 가의 가솔들은 다른 가문들과는 달리 그런 사칭자에게 호락호락 넘어가 줄 생각이 없고, 이 츠구모라는 낭인 또한 뭔가 다른 속셈이 있어 찾아온 듯합니다.


 츠구모와 사이토 두 사람의 대화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플래시백이 들어오며 다양한 시간과 공간을 엮는 구조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언뜻 복잡한 이야기 같습니다만, 실상 〈할복〉의 줄거리는 상당히 단순합니다. 특히 츠구모의 과거사는 자칫하면 성의 없는 신파극으로 빠질 위험까지 있을 정도로 진부하다면 진부합니다. 이 이야기의 힘은 소재의 생경함보다도 그 소재를 풀어내는 방식에 있습니다. 각본가 하시모토 시노부는 거두절미하고 사건의 가운데로 뛰어든 다음 천천히 정보를 흘리는 구조를 취하면서 관객을 사로잡습니다. 가령 위에서 도입부의 줄거리를 요약하면서 밝힌 할복사칭자들에 관한 설정만 하더라도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들어보신 분들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밝히기는 했습니다만) 영화를 보면서 차근차근 "알아가는" 재미가 있는 대목입니다. 낭인이 할복하기 위해 남의 집 마당을 빌리러 왔다는 상황 자체만으로도 이미 생경하기 그지없어 관심이 쏠리는데, 한술 더 떠서 그 말을 들은 사람이 "또 인가……."라고 중얼거린다면, 대체 그전에는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랬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크라이테리언에서 출시한 DVD의 부가영상에서 하시모토는 플래시백은 이야기를 중단한 다음 뒤로 돌아가는 성격이 있기 때문에 꺼리기 마련인 수법이지만 자신은 플래시백을 통해서 이야기를 앞으로 가게 할 수 있다면 그건 플래시백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개의치 않았다고 말합니다. 과연 〈할복〉은 관객의 예상을 한 발 앞지르면서 결과를 먼저 던져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뒤 엇박자로 이유를 제시하고, 그 이유가 다시 새로운 국면을 낳게 하며 극을 끌고 갑니다. 츠구모와 사이토 사이뿐만 아니라 영화와 관객 사이에서도 벌어지는 그런 인지적 밀고 당기기 덕분에, 어쩌면 진부하게 흘러갈 수도 있었을 이야기가 매 순간 새롭게 와 닿습니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 영화의 상당 부분이 대화 장면입니다. 그것도 대게는 재기 넘치는 대사를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식도 아니고, 상대의 말을 끊임없이 곱씹은 뒤에 받아치는 식으로 이뤄지는 대화입니다. 그럼에도 전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까닭은 우선은 배우들에게서 찾아야 마땅합니다. 각각 츠구모와 사이토 역을 맡은 나카다이 타츠야와 미쿠니 렌타로는 대배우의 "포스"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두 사람 모두 갈등이 전면에 드러나고 폭발하는 대단원에 이르기 전까지는 언성을 높이지도, 거창한 몸짓을 하지도 않은 채 그저 가만히 앉아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일 뿐입니다. 그러나 미세한 표정 변화라든가 걸음걸이, 상대의 말을 듣고 받는 타이밍만으로도 이 두 고수가 자신의 패를 숨긴 채 상대의 수를 읽으려고 온몸의 신경을 팽팽히 일깨우고 있음이 전해집니다. 그들이 하는 말의 내용 자체도 흥미진진하지만, 무엇보다도 말을 하는 방식 때문에 끊임없이 그 저변에 깔린 의도를 파악하려고 애쓰게 됩니다. 특히 나카다이야 그나마 플래시백 장면을 통해서 츠구모의 다양한 모습을 연기할 수 있으니 그렇다 쳐도, 영화 내내 정말로 걷고, 앉고, 말하고, 듣는 게 전부일 뿐이건만 광대무변하다는 인상을 주는 미쿠니의 연기는 소름 끼칩니다. 그가 연기한 사이토는 무사도라는 허식 뒤에 숨은 단순한 위선자가 아니라, 무사도라는 이념이 만들어낸 세계를 너무 오랫동안 지켜왔기 때문에 그 허점을 지적당했을 때 필사적으로 자신을 합리화해내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는, 진지한 맹신자에 가깝습니다. 사실 츠구모가 자신의 비판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었던 이유도 사이토가 위선 뒤에 숨어 실리만을 취하는 인간이 아니라 무사도의 이념에 악착같이 매달려 엄격하게 구는 인간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는 동시에 그런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볼 능력 또한 갖추고 있기에, 자기가 저지르는 거짓을 완전히 무시하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미쿠니의 연기에서는 이 복잡다단한 심정이 모두 흘러나옵니다.


 물론 장면을 훌륭한 배우들에게만 맡겨둔다고 해서 그 배우들의 실력에 부끄럽지 않게 훌륭한 영화가 나와주지는 않습니다. 〈할복〉의 근본적인 힘은 숨 막힐 정도로 양식화된 영화적 설계에서 비롯합니다. 하시모토가 쓴 대사는 이것이 시대극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대단히 "문학적"입니다. (저는 일본어를 할 줄 모르지만 일본 영화를 영어 자막으로 보는 데에는 익숙한 편이고, 크라이테리언의 믿음직한 영어 자막, 그리고 나카다이의 발성법은 이 영화의 대사가 일상의 언어생활과는 거리가 있음을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해줍니다.) 마찬가지로 배우들의 연기 방식, 그중에서도 정(靜)과 동(動)을 섞어가며 몸을 움직이는 방식은 카부키나 노에서 빌려온 듯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배우들이 한정된 공간 내에서 어느 자리에 있느냐가 지극히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그 결과 큰소리를 치거나 몸을 격하게 움직여 다투지 않더라도 매 쇼트에서 각각의 인물들이 점하고 있는 자리와 그들의 자세가 일종의 활인화(活人畵)를 빚어내면서 긴장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인물들은 자리를 전혀 바꾸지 않은 채 카메라의 위치만 바뀌는데도 그 공간 내의 역학관계가 달라진 듯한 인상이 드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코바야시의 연출 방식이 무조건 조용히 감정을 억눌러 담는 방향으로만 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눈에 띄는" 테크닉이 속출하기로 따지자면 쿠로사와의 영화보다 훨씬 과격합니다. (두 사람이 연배는 비슷하나 영화계 경력으로 따지면 코바야시 쪽이 10년 정도 늦는데, 그래서인지 약간 더 후대의 영화 만들기 방식을 사용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았을까 추측도 해봅니다.) 빠른 줌-인이나 트랙-인을 쓴다든가 카메라를 갑자기 틀어 사선 구도를 만든다든가 하며 인물의 심리와 장면의 분위기를 카메라 테크닉을 통해 적극적으로 구현하는 대목이 많습니다. 자칫하면 과시에 그치기 쉬운 수법이지만, 〈할복〉은 그 테크닉을 구현해 내는 솜씨가 매끄러울 뿐만 아니라 워낙 평소에 분위기를 답답하게 짓누르며 가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감정이 터져 나오는 대목이 아예 없었더라면 지나치게 견디기 어려운 작품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엄정함을 기본으로 하되 간헐적으로 "폭발"을 일으키는 연출 태도는, 무사도라는 뻣뻣하고 비인간적인 이념을 무사도의 논리를 고스란히 역이용해서 내파해낸다는 이 영화의 주제와 긴밀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코바야시 마사키 감독은 〈할복〉을 만들 당시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시대극이 대인기였기 때문에 쿠로사와와는 다른 형태의 시대극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하는데, 과연 〈숨겨진 요새의 세 악인〉(隱し砦の三惡人, 1958), 〈요짐보〉(用心棒, 1961), 〈츠바키 산주로〉(椿三十郞, 1962)처럼 별난 인물 조성과 역동적인 영화 언어의 사용을 통해 봉건 세계의 뻣뻣함을 처음부터 한 방 까고 들어가는 같은 영화와는 대척점에 놓였다고 할 만합니다. (단, 쿠로사와는 이미 〈거미집의 성〉(蜘蛛巢城, 1957)이라는, 노의 양식을 적극적으로 빌려 나가면서 인물들을 무섭도록 눌러대는 영화를 만든 적이 있으므로 그의 "모든" 시대극과 구별된다고 하기는 망설여짐을 밝혀둬야겠습니다.) 영화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옭아매고 있는 이념의 막강함을 철저히 인정하면서 출발합니다. 심지어 그 권위에 항거하는 주인공조차도 어떤 면에서는 그 이념의 부산물입니다. 하나의 사상이 개개인의 세상을 철두철미하게 다스리려고 하면 반드시 그 안에서 모순이나 불합리가 나타나기 마련이고, 주인공은 그런 모순의 집합체일 뿐입니다. 대미를 장식하는 나카다이의 포스에 눌러 미처 되새기지 못할 수도 있지만, 〈할복〉의 탁월한 선택 중 하나는 츠구모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특별히 사상적으로 깨어 있던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는 다만 사회규범이 요구하는 제물이 되었을 뿐이고, 그 자리는 어쩔 수 없이 무사도의 허상을 깨달을 수밖에 없는 자리입니다. 결국 〈할복〉은 두 개의 상충하는 힘이 대결하는 구도라기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힘이 자기모순에 의해 무너지는 형상을 다룹니다. 인터뷰를 통해 "나는 모든 종류의 권위에 반대합니다."라고 말한 코바야시답다고 해야 할까요. 무사도의 매정함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은 츠구모가 사무라이에게 목숨보다 소중하다는 칼을 후려치며 탄식할 때 거의 세계가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도 당연합니다.

 사무라이가 주인공인 일본 시대극이라고 하면 일단 칼싸움 장면을 떠올리게 되고, 이 영화에도 물론 그런 장면은 있습니다. 그러나 코바야시의 다른 시대극 〈하극상: 하사받은 아내의 전말〉(上意討ち 拝領妻始末, 1967)이 그러하듯, 〈할복〉 역시 칼싸움이 클라이맥스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행동이 곧 의지요 실천의 증거인 쿠로사와의 영화와는 달리 코바야시의 영화에서 물리적 충돌은 모든 가능한 논의가 산산이 부서지고 더는 권위를 정당화할 수 없을 때 벌어지는 폭력적인 입막음에 가깝습니다. 진짜 싸움은 이미 끝났고, 그걸로 권위가 뭉개질 대로 뭉개졌으니 이제라도 힘으로 찍어눌러 뒷수습을 하자는 식입니다. 권력의 비루함과 천박함, 그럼에도 어쨌든 권력이 그렇게 나오면 당할 수밖에 없는 개인의 피로와 절망이 가득 스며 나옵니다. 따라서 이 영화의 칼싸움 장면은 쿠로사와 영화에서처럼 호쾌하지 않으며, 호쾌해서도 안 됩니다. 코바야시는 정교하고 빠른 합을 짜서 액션을 연출하는 데에 골몰하는 대신 배우들에게 진짜 칼과 창을 쥐여줍니다. (나카다이 본인의 증언입니다.) 자연히 동작이 다른 검술 액션영화에 비해 느릴 수밖에 없고, 헛방이 많습니다. 물론 칼싸움 장면이 허술하고 못 찍었다는 이야기는 전혀 아닙니다. 다른 장면과 마찬가지로 〈할복〉의 액션은 인물의 동작 이전에 인물이 어디에 서 있는가를 통해 이루어지고, 끝없이 공간을 옮겨다니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포위당하고, 다시 그 포위를 뚫어내고, 쫓기고, 또 포위당하는 과정을 바라볼 때의 긴장감은 막대합니다. 다만 이 영화에서 액션의 최종 목표는 결국 짙은 피로를 전달하는 데에 있습니다. 천천히 말로 설명해서 모순점을 명백히 알려줬고 상대방도 그걸 이해했음이 뻔히 보이건만, 사과와 시정은커녕 여전히 억지를 부리고 무력에 의존해서 이편을 누르려 할 때 느끼게 되는 끝을 알 수 없는 피로감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세상의 무자비함을 보여주는 영화를 보더라도 다 보고 나서 "그래 신발 세상이 다 이렇지 뭐" 하면서 카악~ 퉤, 하고 씁쓸하게 뒤돌아서게 하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도리어 영화의 힘에 압도되면서 기운이 몸으로 들어오는 듯한 영화도 있습니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좋은가는 개인의 윤리로까지 이어지는 가치 판단의 영역이 되겠습니다만, 다만 코바야시의 영화가 후자라는 점만은 확언할 수 있습니다. 하도 무섭게 찍어누르기 때문에 다 보고 나면 넋이 빠져나갈 듯하건만, 그래도 이 영화를 보고 침울해지거나 가라앉는 관객은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한편으로는 나카다이의 연기를 통해 뿜어져 나오는 위력 때문일 겁니다. 결과가 어찌 되든, 그가 살기 등등한 무사들에게 둘러싸인 채 태연자약한 모습으로 상대의 논리를 하나하나 부숴가는 모습은 마음 깊이 남아 존경심을 불러 일으킬 만합니다. 허나 다른 한편으로 이는 또한 〈할복〉이 취하고 있는 대화극으로서의 성격이 그저 관객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사용된 장치 이상의 역할을 한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플래시백을 통해 피부로 와 닿는 경험과 사후에 이어지는 논의 양쪽 모두가 형식을 통해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관객은 양쪽의 시선을 모두 취합니다. 완전히 츠구모의 개인사에 몰입해서 절절한 파토스에만 빠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이 사건을 단지 역사책의 한 페이지 위에만 올려놓고 박제하는 시선도 아닌, "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뜨거운" 절묘한 균형점에 이르게 된다고나 할까요. 〈할복〉을 보노라면 새삼 그 낡은 표현, "살아 있는 역사"의 뜻을 되새기게 됩니다. 옛사람은 가고 없고 과거지사는 끝난 지 오래요, 어쩌면 남은 기록마저 부당하게 비틀려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그가 새긴 상흔은 여전히 남아 입을 통해 되풀이되고 실제로도 다른 모습으로 다시 반복되면서 지난 시간 속에만 고정되는 대신 지금 앞으로 살아가야 할 길을 비춰줍니다. 〈할복〉에는 역사를 그렇게 이해하고 살아가는 사람만이 품을 수 있는 각오가 담겨 있습니다.



















 아래는 미이케 타카시 감독의 리메이크 〈일명〉 티저 예고편입니다.



 이 글을 쓰는 도중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이번 7월에 "3인의 일본 거장전"이라는 제목으로 코바야시 마사키 감독, 키노시타 케이스케 감독, 키무라 타케오 미술감독의 작품 스물여섯 편을 모아 상영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할복〉도 상영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작년에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 회고전 때 왔던 나카다이 타츠야 배우가 다시 한 번 내한합니다. 정말로 생에 다시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를 기회이니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할복〉을 보고 새삼 감명받은 김에 코바야시 감독의 다른 영화인 〈하극상: 하사받은 아내의 전말〉과 〈인간의 조건〉(人間の條件, 1959-1961)에 관한 감상문도 써볼까 하고 있었는데 극장에서 필름으로 볼 수 있다니 아껴둬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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