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 - 매튜 본

 

 

 

새로운 엑스맨 시리즈가 나온다는 소식에 팬들은 여느때처럼 두 개의 감정을 품었을 겁니다. "이번엔 또 어떤 영화가 나올까? 어떤 캐릭터들이 나올까?"라는 두근거림. 그리고 "아 지난번 영화 같음 안될텐데"라는 불안감.

 

브라이언 싱어가 21세기 테크닉들로 이루어낸 영화판 엑스맨은 균형감각이 뛰어난 작품이었습니다. 캐릭터들의 안배에서도 그랬고 현대 헐리웃 영화적 감각과 원작 만화의 키치한 감각의 균형에 있어서도 그랬습니다. 좋은 작품은 좋은 평가를 받았고 그대로 좋은 흥행을 거두며 속편 제작에 들어갑니다. 엑스맨 2편에 대한 평들은 조금 갈리는 편이지만 그나마도 대체로 1편보다 훌륭한가 1편보다 뛰어난가의 논쟁이었으니 두 말할 필요는 없는 작품이었죠 (개인적으론 1편보다 2편을 더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 프렌차이즈에 망조가 스며들기 시작한 건 3편 부터입니다. 시리즈의 마감이네 어쩌네 하며 전작의 연장에서 제작된 3편은 브라이언 싱어가 빠지면서 불안불안 하더니 어중간한 퀄리티로 완성이 됩니다. 뭔가 이야기들은 완결되고 전작의 장점들이 여전히 이어지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뭔가 찜찜함을 벗어낼 수 없는 작품이었죠. 이걸로 부족했는지 시리즈의 인기 캐릭터인 휴 잭맨의 울버린의 이야기를 단독으로 뽑아내 만든 네 번째 작품 울버린이 나오고 결국 엑스맨 시리즈에도 망작의 기운이 스며들며 내리막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오죽했으면 이 영화를 '다니엘 해니'나오는 영화 정도로 기억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섯 번째 시리즈 격인 이번 '퍼스트 클래스'에 대해서도 불안한 감정이 더 앞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들리는 정보에 의하면 이번에도 '프리퀄'이라지 않습니까. 시리즈 작품들이 여차하면 선보이는 프리퀄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국 매력적이던 원작의 시작을 그러니까 '뒷 이야기'를 캐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얼핏 보면 매력적일 겁니다. 그럴듯한 캐릭터들은 이미 앞선 작품에서 다 만들어줬고 관객들은 그들의 과거사를 궁금해 하니까 간지러운 곳을 적당히 긁어주면 되겠지... 싶은 거지요.

 

동양화에 '여백의 미'란 게 있습니다. 그림 한 쪽의 아무 것도 그려넣지 않은 휑한 공간이 오히려 작품을 완성시킨다는 것이지요. 물론 회화적 균형감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보단 감상자로 하여금 '상상'하고 '몰입'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 큽니다. 덜렁 그림 한귀퉁이에 그려진 인물과 헛헛한 나머지 공간에서 감상자는 나름의 '스토리'를 연상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프리퀄은 이런 여백에 굳이 상황에 맞을 법한 무언가를 끼워 맞추는 작업이라는 겁니다. 수 백, 수 천가지의 상상이 가능하고 그래서 관객들 저마다의 입맛에 맞춰 자신들 만의 이야기를 그려 넣던 공간에 단 하나의 이야기를 척 들이미는 것이 얼마나 겁없는 행동인지 상상해 보세요. 천 가지 취향을 달랑 한 가지 맛으로 만족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때문인지 프리퀄 작품들은 기대 이하의 수준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엑스맨의 전작인 울버린이 그랬고, 한니발 렉터라는 캐릭터의 과거사랍시고 만들어진 한니발이 그랬으며,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스타워즈 밀레니엄 3부작이 그랬습니다.

 

다시 본 영화로 돌아와 보자면 이번 퍼스트 클래스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분명합니다. 지금의 프로페서X와 매그니토의 '과거사'가 어땠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거지요. 동시에 벌써 시들해져 가는 엑스맨 프랜차이즈에 힘을 불어넣어야 할 책임도 막중해 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영화는 은근 바쁩니다. 챨스 이그제비어의 이야기도 해줘야 하고, 에릭 랜셔의 이야기도 해야 합니다. 뿐입니까 이들과 얽혀 이전 엑스맨 시리즈에 나오거나 언급된 캐릭터들에 대해서도 설명해야 하고 이 두 캐릭터들의 각종 설정에 대해서도 설명해야 합니다. 얘들이 어떻게 처음 알게 됐는지, 어쩌다 숙적이 됐는지, 그들의 별명은 어쩌다 생겨난 것이고 괴상하게 생긴 매그니토의 투구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셀리브로는 어떻게 만들어졌으면 엑스맨 전투기나, 뮤턴트 학교에 대해서도 언급해야 합니다. 아차, 프로페서 X가 왜 휠체어 신세를 졌는지도 설명해야죠.

 

이제 프리퀄이란 작업이, 특히나 엄청난 캐릭터 공세를 퍼붓는 엑스맨 시리즈 같은 영화의 프리퀄이 얼마나 힘든 건지 분명해 졌을 겁니다. 여기에 또다른 장애가 있습니다. 프리퀄이라곤 하지만 이미 이전에 네 개 작품에서 어느 정도 캐릭터들의 과거사가 등장했다는 거지요. 울버린 같은 경우는 이미 독립적인 작품을 통해 소싯적부터 서술을 해줬고 그 외의 경우들도 다양한 형태로 과거가 언급 되었습니다. 이 역시 이번 영화의 제작에 있어 장점이 되기도 하고 결국 넘어서지 못한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매그니토의 어릴적 유태인 수용소의 이야기는 엑스맨 1편에서의 장면을 그대로 가져와 확장합니다. 프리퀄의 장점을 적극 활용한 거지요. 하지만 반대로 전작의 장면이 이번 영화와 충돌하는 케이스도 있습니다. 엑스맨 3편은 찰스와 에릭이 어린 진 그레이를 만나러 가는 장면을 삽입합니다. 나름 CG기술을 활용해 패트릭 스튜어트와 이언 맥캘런을 뽀송뽀송하게 만들긴 했지만 찰스가 멀쩡하고 둘이 친하게 지내며 뮤턴트를 인크루팅 하며 지냈다면 이번 영화의 중반부와 시기적으로 맞아들어간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좀 이상합니다. 일단 캐스팅의 문제로 나이대가 껑충 뛰어버린 두 캐릭터는 그렇다 치고. 2000년 즈음에 30대 후반 가량으로 보이는 진 그레이의 어릴적이라면 아무리 여유있게 잡아도 3편의 그 장면은 70년대 중후반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쿠바 미사일 사태가 벌어지고 JFK가 대통령인 60년대라는 거지요. 시기적으로 10여년이 어긋나버립니다. (굳이 진 그레이가 아니더라도 이번 영화에서 세리브로로 뮤턴트를 검색할때 어린 오로로 먼로가 나오기도 하지요) 그래도 영화는 어떻게든 이런 문제점들을 커버치려 노력합니다. 미스틱이 천천히 나이를 먹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던가. 그녀의 변신 모습에 은근 슬쩍 레베카 로미즌의 모습을 넣는다던가. 찰스가 연신 '대머리' 농담을 하는 식이지요.

 

프리퀄의 한계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늘어놓았고 덕분에 이번 작품도 망작이란 듯 보이는 이야기를 하게 됐지만 사실 그렇진 않습니다. 개인적으론 이번 퍼스트 클래스는 상당히 괜찮게 만들어진 오락영화라고 생각합니다. 1-2편으로 이어지는 싱어의 엑스맨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이야기와 연출이었고 시리즈에 새로운 동력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프리퀄의 한계를 넘지 못한 부분이 분명 있지만 그럼에도 독립적인 영화로서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일단 분위기 탓이 아닐까 싶어요. 뭔가 엄청난 엔딩을 연출하고픈 욕심이 산으로 가버린 3편이나. 어린이용 주말 만화영화 수준을 겨우 넘긴 듯 보이는 스토리의 울버린과는 달리 이번 영화는 꽤나 영리하게 엑스맨들과 시대 배경을 활용합니다. 종종 영화는 뮤턴트 히어로물이 아니라 어벤져나 007, 미션 임파서블 같은 첩보 시리즈를 연상시킵니다. 악당이 타고다니는 잠수함은 숀 코넬리 007하던 시절의 유물 같아 보이고 (케빈 베이컨의 옷차림도 그렇고...) 복수를 위해 유럽을 휘젓고 다니는 에릭을 볼때엔 제이슨 본이나 심지어 리플리가 떠오르기도 합니다.(어쩌면 당연한 건가...) 이전 시리즈와는 분명 차별화되는 이미지로 영화의 절반을 매우 효율적으로 이끌어가다 보니 지루할 여지가 없습니다. 개인적으론 거창한 이야기나 액션은 없을 지언정 영화의 전반부가 훨씬 흥미롭고 풍요로웠습니다. 프리퀄의 장점을 최대한 끌어냈다고 할까요.

 

반대로 영화의 후반부로 넘어가면 단점들이 도드라집니다. 일단 프리퀄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시리즈가 깔아놓은 설정들을 가져가다 보니 손발이 오그라드는 순간들도 많고 캐릭터들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클라이맥스를 한 번 볼까요. 영화를 이끌어온 갈등들이 모두 튀어나오는 장면은 쿠바 미사일 사태를 두고 대립한 미소 양국의 해군정의 대치 상황을 배경으로 합니다. 여기서 조금만 삐끗하면 3차대전으로 이어져 악당 녀석의 소원대로 인류가 인생퇴갤 하게 생긴 판이라는 거죠. 상황 자체가 영화적으로 모순입니다. 캐릭터들은 어떻게든 액션을 취하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는데 영화는 클라이맥스를 위해 뭐라도 하나 터뜨려야 하는 거죠. 3차대전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뮤턴트들의 거창한 액션을 선보이려니 무리수들이 튀어나옵니다. 덕분에 희생되는 건 무뇌아가 아닌가 의심이 될만큼 NPC화 해버린 양국 함대의 함장 이하 군인들입니다. (뭐 냉전 시절 군부의 멍청함을 상징화한 거라면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런 와중에 매그니토는 나는 너가 싫지만 너가 하는 말은 옳다고 생각해 그래서 너를 돕고는 싶지만 그래선 이야기가 안되기도 하고 사실 나는 찰스한테 왠지 자꾸 끌리는데 너는 우리 엄마를 죽였어...라는 다중이 놀이나 하고 있고. 애들은 애들끼리 우리는 졸라 특수하고 강해서 싸우긴 하는데 3차 대전은 일으키고 싶지 않으니까 좀 조심할게 이러고 있습니다. 찰스가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 사연을 설명하는 장면에선 객석 여기저기서 헛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거 엑스맨이야 주말드라마야?)

 

 

장단점이 분명한 영화지만 전체적으론 그래도 예전의 균형감각을 많이 되찾은 것 같아서 좋습니다. 이번 프리퀄의 연장선에 있는 새로운 시리즈가 나온다면 환영할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예전부터 이언 맥캘런을 주연으로 한 매그니토의 스핀오프 이야기가 나오던데 그건 좀 걱정입니다. 이미 일그러질만큼 일그러진 시리즈의 타임라인과 인물 관계를 어찌 감당하려고... 아차 우리에겐 아직 '마블 유니버스'가 있었군요.

 

캐스팅이 좋습니다. 찰스 역의 제임스 맥어보이는 패트릭 스튜어트의 프로페서 X와 쉽게 연결되진 않지만 (저 청년이 어찌 대머리가 되겠습니까!!) 젊고 순수한 청년 찰스로선 제격입니다.
에릭 역의 마이클 패스밴더는 정말 적역이고요. 엑스맨 영화에서 이런 감정폭의 연기를 볼 수 있다니.. 아니, 보여주다니... 막판 허접한 매그니토의 감정선과 대사를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캐스팅 덕입니다.
미스틱/레이븐 역의 제니퍼 로렌스는... 이쁩니다. 그러니까... 이쁩니다. 뭔 설명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아, 푸른색 분장한 모습은 아무래도 레베카 로미즌 쪽에 손을 들어줘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분장이 그렇게 어울리는 배우를 찾기란 쉽지 않겠지요.
엠마 프로스트 역의 배우는 눈에는 익은데 어디서 봤더라 했더니 언노운에서 밉상스럽던 부인 역의 배우군요.
로즈 번은 얼마 전 보았던 인시디어스에서의 모습이 자꾸 겹쳐서 몰입이 되질 않았습니다. 영화 보는 순서를 잘 선택해야 하는데...
니콜라스 홀트....ㅠㅠ 제작진은 분명 그를 싫어하는 게 분명합니다.

 

사족1.

 

엔딩 쿠키는 없습니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저와 비슷한 기대를 가지고 (이거 마블이잖아!) 자리를 지키다가 허탈한 표정으로 극장을 나섰습니다.

 

사족2.

 

제가 처음 엑스맨 공부를 할때(이게 뭐라고 공부까지..) 프로페서x와 매그니토를 흑인 인권운동가들 캐릭터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온건파인 프로페서x는 마틴 루터 킹이고 매그니토는 말콤x라는 거죠(그런데 왜 x는 프로페서가 가져다 썼는지?) 이들의 과거사를 다루는 만큼 이번 영화는 그 어느때보다 뮤턴트로서 이들의 인류에 대한 태도에 집중합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아무래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건 에릭 쪽의 주장입니다. 멸종하겠는가 아니면 왕좌에 오르겠는가... 너무나도 당연한 선택이지요. 그만큼 '인간적인' 선택이고요. 그렇기에 찰스 같은 인물은 더욱 위대해 보이는 지도 모릅니다. 사실 능력만 두고 보자면 다크사이드로 빠지는 쪽은 찰스여야 할겁니다. 인간들의 추악한 내면을 대놓고 들여다본 인생 아닙니까. 어릴적부터 능력이 출중했던 모양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참하게 자라나다니... 진정한 능력자인 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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