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에 올렸던 리뷰입니다.

 

오슬로의 이상한 밤 (O'Horten, 2007) ☆☆☆1/2

 

노르웨이 영화 [오슬로의 이상한 밤]은 '그저' 웃기는 코메디입니다. 하지만 그저 웃기는 코메디를 만드는 것에도 상당한 능력과 노력이 요구되는 법이고, 영화는 이를 매우 간단하고 쉽게 보일 정도로 해내기 때문에 더 칭찬할 만합니다. 주인공의 조용한 삶에 한 일이 생기고 이를 시작으로 영화는 주인공만큼이나 담담한 태도를 계속 유지하면서 그에 따른 일들을 지켜다 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새 우린 웃지 않을 수 없고, 주인공뿐만 아니라 영화에 절로 정이 가게 됩니다.

 

주인공 오드 호르텐(바아드 오웨)는 정년퇴임을 앞둔 기관사 할아버지입니다. 그는 40년 넘게 오슬로와 베르겐 사이를 오가는 한 선로에서만 계속 일해 왔었고, 은퇴할 날이 며칠 안 남았지만 평상시와 다름없이 그가 맡은 기차는 드넓은 눈밭과 많은 터널들을 지나면서 종점을 향해 달려갑니다. 종점에 도착하면 그는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아주머니 스베아(헤니 모안)가 운영하는 단골 여관에 하룻밤 묵고 다음날 아침에 그는 똑같은 기차를 몰고 돌아옵니다. 그는 집에서 오랫동안 혼자 살아온 독신자이고 요양소에 둔 어머니 외엔 가족이 없는 듯합니다.

 

 

 이렇게 얘기해드리면 많이 외로운 사람 같겠지만, 사실 호르텐은 자신의 삶에 별 불편을 느끼거나 갑갑해하지 않으면서 살아 온 사람이고 이에 익숙한 지 오래입니다. 은퇴를 해도 그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동료들이 별로 그립지 않을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냉정하고 성질 고약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은퇴할 날 직전에 다른 고참 및 후배 기관사들이 그를 기념하는 모임을 갖는데, 트로피도 주면서 기분을 북돋으려고 하는 그는 그들에게 조용히 감사해합니다. 그 후엔 단지 튀지 않고 주변에 앉아 있으면서 그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파이프 담배를 피우면서 느긋하게 바라다 볼 따름이지요.

 

이러니 그의 삶은 은퇴 이후로도 변함없을 듯하지만, 가면 갈수록 호르텐에게 여러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일단 은퇴 기념 모임이 끝난 후 동료들이 들어간 아파트 건물의 정문을 열 수 없어서 부득이 선택한 방식으로 인해 그는 어느 낯선 집 아이 잠자리를 지켜주는 신세가 되고 그 다음날 아침 기관사로써의 그의 마지막 날은 그리 좋지 않게 끝나게 됩니다. 습관이 몸이 밴 탓에 여전히 기관사 유니폼을 입고 다니는 그는 은퇴 이후에 어떻게 살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그러기 때문에 그는 이곳저곳을 둘러 다닙니다. 그는 그의 단골 파이프 가게가 앞으로는 예전 같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알게 되기도 합니다.

 

 

이를 지켜보다 보면, 호르텐은 무슈 윌로의 스칸디나비아 버전쯤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시를 계속 받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어느 새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지는 장면만 봐도 그렇지요. 우리는 그와 함께 그를 따라다니는 것 같은 여러 별난 일들과 상황들을 관조하면서 이에 희한해 하면서 웃을 뿐만 아니라 그가 뭘 하는지 보는 것에도 웃게 됩니다. 호르텐은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난 노인 스타이너(카이 레믈로)과 안면이 트이게 되는데, 자신이 눈을 가려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이 노인 덕분에 호르텐은 그와 함께 잊지 못할 심야의 드라이브를 하게 됩니다. 이는 위험하게 보이지만, 호르텐은 그의 곁에서 그저 담담하게 지켜봅니다.

 

 

자크 타티가 연상된다는 평을 받기도 한 바이드 오웨는 한 평범한 보통 사람을 소탈하게 연기하는 가운데 그가 맡은 오드 호르텐을 금세 정이 가게 만듭니다(주인공 이름 Odd는 그 동네에서 상당히 흔한 이름이라고 합니다). 말수가 적은 편이고 늘 변함없는 삶에 익숙해 와서 그 바깥으로 나갈 생각은커녕 그에 대해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할아버지이지만, 호르텐은 앞에서 언급한 무슈 윌로만큼이나 '그저' 사랑스럽고 재미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연거푸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는 듯 하고, 그런 동안 그는 정해진 길을 차츰 벗어나기 시작나면서 나이 드신 분들이 깨닫곤 하는 인생의 한 진실에 눈을 뜹니다.

 

벤트 해머의 그의 전작들 중 하나는 EBS에서 방영되기도 했던 [키친 스토리]입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는 동안 그 영화는 이들에게 정이 가게 만듭니다. 배경은 춥고 분위기는 덤덤하기 그지없지만 저절로 킬킬 웃음이 나오고 그러다 보면 어느 새 흐뭇해집니다. 그는 캐릭터들을 어떻게 지켜볼지 알고 있고, 그로부터 어떻게 작은 웃음들을 능숙하게 끌어내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살짝 우울한 분위기가 곁들여진 [오슬로의 이상한 밤]은 독특하게 재미있는 우아한 코메디이고, 그 느긋함에 기회를 주면 영화는 적지 않은 웃음으로 보상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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