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스포일러와 더불어서 다소 혐오스러운 느낌의 캡처 사진이 포함되어 있으니 조심하십시오.

 

(제목처럼 '여자의 곡성'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홀연히 나타나는 타이틀)

어느날 거의 망해가는 한 양반 집안에 200리 밖에서 팔려온 '옥분'이라는 처녀가 들어옵니다. 그동안
양반 집안은 원귀의 저주로 인하여 아들들이 혼인을 하여 첫날밤을 채 지내기도 전에 모두 죽어나갑니다.
덕분에 집안의 대가 끊어질 위기에 처하고 애꿎은 며느리들만 청상 과부로 늙어갑니다. 양반 집안의 시어
머니는 옥분이라는 처녀를 자신의 막내 아들로 위장시킨 머슴 '떡쇠'와 혼인시켜 귀신의 눈을 피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막내 아들이 절에서 가져온 신검으로 원귀를 퇴치하겠다며 객기를 부리는 바람에
결국 마지막 하나 남은 아들 마저 잃게 됩니다. 그러나, 옥분은 막내 아들과 보낸 하룻밤만에 불쑥 아기를

잉태하는 신기를 보입니다. 양반 집안의 대를 완전히 끊어 버려 몰락시키려 하는 원귀는 시어머니의 몸에

빙의하여 양반 가문을 초토화시키고 옥분과 그 뱃속에 남은 아기를 없애려 들지만 옥분의 가슴에 새겨진

卍자 때문에 조금 난처해 집니다.

 

(옥분의 가슴에 새겨진 卍자)

<여곡성>은 오늘날 한국 공포 영화계의 전설로 남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명성은 실로 대단하여
<월하의 공동묘지>와 함께 그쪽 분야의 쌍두마차로 손꼽히는 영화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그 명성
만큼 무시무시하고 재미있을까요? 물론 꼭 그렇다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어찌되었든 간에 이 영화
는 이미 제작된지 25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른 골동품 영화입니다. 본래 사람들의 영화나 그외 다른
여러 것에 대한 취향이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바뀌는 법. 오랜 옛날에는 사람들을 밤잠 설치게 만들
었던 밤의 제왕도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쇠락하여 어린 아이나 강아지 한마리도 건들지 못하게 됨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라 하겠습니다.

 

(며느리의 가슴에서 새어나오는 한줄기 빛에 처참하게 당하는 시어머니)

이 영화, <여곡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당한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이 영화를 보면 그 옛날, 온몸의 터럭
을 곤두서게 하는 짜릿한 공포스러운 장면보다는 일단  어설픔이 눈에 팍팍 띄게 됩니다. 영화가 후시녹음이

되어  있는 지라 자세히 살펴보면 배우들의 입모양과 대사는 잘 들어맞질 않고, 특수효과는 <우뢰매> 마냥 보
는 이들로 하여금 정신줄을 안드로메다로 보내게 만듭니다. 옛날 영화를 보면서 벌벌 떨게 만들었던 무서운
장면들도 조금 시큰둥하게 느끼지는 것이야 굳이 말할 것도 없습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시어머니 귀신과
며느리 옥분의 대결 장면은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 저렴한 특수 효과의 대향연입니다.

 

(시뻘건 배경을 뒤로 한채 출몰하는 원귀)

이 영화의 내용은 또 어떻습니까? 과거에 사모하던 선비에게 버림받고 살해당한 복수심에 가득 찬 원귀가
한 집안을 신나게 박살내다가 결국 불법(佛法)의 힘에 의하여 소멸당한다는 내용은 마치 <전설의 고향>의
한 에피소드를 보는 것 처럼 조금 뻔하다면 뻔한 이야기입니다. 결국 인간의 업보와 원한이 모든 사건의 원
훙이 된다는 것도 꽤 오랜 세월 동안 애용되었던 소재입니다. 또한, 영화를 좀 더 팔아보자는 의도에서 나온
발상인지는 몰라도 나름 80년대식 에로씬도 덧붙였으나 오히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잘 어울리지 않고
되려 엇박자스러운 느낌만 나게 합니다.

 

(무시무시한 시어머니 귀신)

그러나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 낡은 영화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이 영화가 지닌 힘을 무시하고 지나가기는 어
렵습니다. 지금 보면 영화가 조금 낡고 누추해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나 이 영화의 제작년도가 80년대
임을 감안하자면 파격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윈귀에게 빙의당하여 가족들을 하나 둘씩 잔인
하게 살해하는 시어머니를 연기한 석인수씨의 열연은 오늘날에 다시 봐도 귀기가 느껴질 정도로 섬뜩해 보입니다.
 


(원귀에게 속아 지렁이 국수를 맛나게 드시는 시아버지)

 

 

(지렁이 국수에 어찌 핏물 막거리가 빠질 쏘냐)

또한 대부분 이런 영화에서 검고 긴 생머리를 한 처녀 귀신들이 활약했던 것과는 달리 나이든 시어머니가
그로테스크한 표정과 분장으로 극중 인물들과 관객들을 놀래킨다는 것도 제법 참신하다면 참신하게 보입니다.
게다가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동시대의 다른 공포 영화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괴기스러운 장면들도 눈에

띄는데 이러한 연출에 나름 공을 들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른 공포영화들에서 젊은 여자가 얼굴에

분칠만 한채로 귀신 흉내를 내며 사람들을 겁주는 동안 이 영화는 나름대로 한발짝 더 나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영화의 감초 역할인 머슴 떡쇠 역으로 등장하신 젊은 날의 이계인씨)

오늘날 들어서 이 영화를 보고 있자면 다소 조잡하고 우스꽝스러운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제법 가치가 있으며 재평가될 여지도 있어 보입니다. 비록 시대를 뛰어넘는 위대한 걸작은
아닐지언정 조금 뻔한 클리셰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비슷한 시기의 공포영화들에 비하면 제법 여러가지 참신한

 아이디어로 새로운 공포 요소를 만들어내었던 제작진들의 노고는 인정받을 가치가 있을 겁니다.


그 외에

- 최근에 다시 보게 도니 옛날에 처음 보았을때 만큼 무섭지는 않았지만 나름 80년대 공포 영화의 향수를
 떠올리기에는 무난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옛날 영화 특유의 맛과 조악함을 즐길 수 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 극중 머슴인 '떡쇠'로 등장하는 이계인 씨가 반가웠습니다. 영화 내에서는 감초 역할을 하며 해학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었는데, 영화의 흐름을 크게 방해하지 않고서도 자연스럽게 영화 속에 녹아드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 이 영화는 상당한 저예산 영화이지만 몇개의 기괴한 음악과 특유의 곡성 소리, 그리고 조명빨로도 어지간히
  돈을 들인 공포 영화 만큼의 재미를 줍니다. 저예산으로도 이렇게 공포감을 조성하는 기법들은 왠만한 요즘

 공포영화 제작자들도 본받고 따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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