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기는 블루레이로 봤는데 정작 제 컴퓨터에는 블루레이 드라이브가 없어서 캡처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시각적으로 빡빡한 글이 되어서 죄송합니다. 언젠가 여건이 된다면…….
 

 
 
 미주리 주의 서쪽 변경에서는, 남북전쟁이란 군대 간의 싸움이 아니라 이웃 간의 싸움이었다. 남부 토박이로 이루어진 비정규군인 “덤불치기”(bushwhackers)들은 주둔 중인 북군과 북군을 지지하는 “어치매”(jayhawkers)들을 상대로 필사적으로 피비린내나는 게릴라전을 벌였다.

 어느 편에 서든 위험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 중간에 끼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이었다…….



 남북전쟁을 노예 해방을 둘러싸고 북부와 남부 사이에서 벌어진 내전이라는 구도로만 알고 있던 감상자라면 이안 감독이 미국에서 만든 두 번째 영화 〈악마와 함께 말을 달려라〉를 보며 도입부에서부터 당혹감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전쟁의 기운이 스멀스멀 밀려오고 있지만 아직 본격화되지는 않은 상황의 미주리 주, 차일스 가문의 여식이 결혼을 하자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축하를 해주지만 축하연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습니다. 한 하객이 “검둥이 공화당원 에이브러햄 링컨이 백악관을 장악했”고 독일계 이민자들은 북부 연합의 편에 서서 민병대를 조직했다는 ‘흉흉한’ 소식을 언급하면서 우리도 양키에게 맞서 싸워야 한다는 주장을 폅니다. 다른 하객은 북부 연합이 장악한 로렌스 지역에 연고가 있다는 이유로 의심의 눈길을 받자 역정을 내며 남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피력하기도 합니다. 그런 와중에 독일계 이민 2세인 제이크 로델(토비 맥과이어)은 남부 토박이임을 자처하며 북군과 맞서 싸우겠다는 각오를 다지지만, 독일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확고한 데다 대장장이라는 직업 때문인지 지역 주민들과는 거리를 두며 살아가던 아버지는 아들을 세인트루이스로 보내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날 밤, 차일스 가는 정말로 로렌스 쪽 사람들의 공격을 받아 불타오르고, 이를 계기로 제이크는 가까스로 살아남은 차일스 가의 아들 잭 불(스킷 울리히)과 더불어 남부 토박이 게릴라, “덤불치기”가 됩니다.

 북부 연합에 속하면서도 노예제도를 유지했으며 경제 체제나 정서, 언어는 오히려 남부 쪽에 가까웠던 미주리 주의 정치-문화적 상황, 아직 언어와 혈통을 중심에 둔 민족적 기원이 특히 중요시되던 시절에 이민 1, 2세대가 마주해야만 했던 세대 차이와 정체성 문제, 그리고 경제적 배경을 바탕으로 형성된 계층 의식 등을 골고루 보여주는 이 도입부는 이후 두 시간 반 가까이 유지될 영화의 입장을 확실히 다집니다. 남북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고 또 그에 수반하는 시공간적 장대함을 무시하지 않는 대서사극의 풍모를 지니고 있음에도, 〈악마와 함께 말을 달려라〉의 초점은 거대담론, 정치적 적절함, 사회적 가치관과 정의만으로는 포괄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개인사의 참혹함을 담아내는 데에 맞춰져 있습니다.

 대니얼 우드렐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제임스 샤머스가 각본을 쓴 이 이야기는 거시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쉽사리 이해하기 힘든 아이러니로 가득합니다. 이론상으로는 남군이냐 북군이냐, 혹은 노예제도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에 따라 편이 갈리는 게 맞을 텐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일견 같은 편이어야 할 사람들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가 하면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지내야 할 사람들은 한 편에 섭니다. 개인의 입장이란 결코 하나의 정치적 판단에 의해서만 결정될 수가 없기 때문이죠.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지요. 이 영화에도 나오고. 하지만 복합적 현실을 하나의 가치관으로 재단하고 판결을 내리는 ‘순수한’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끔찍해지기 쉬운 법이기도 합니다.) 제프리 라이트가 연기한 흑인 대니얼 홀트가 단적인 예입니다. 그는 흑인 노예 출신임에도 “덤불치기”의 일원으로 노예 폐지론을 앞세우는 북군과 싸웁니다. 사정인즉, 그와 함께 다니는 조지 클라이드(사이먼 베이커)가 돈을 주고 노예였던 홀트를 사서 자유롭게 해주었는데, 이후 어느 날 북군이 쳐들어와 클라이드의 일가족을 몽땅 죽였고, 그때 홀트는 클라이드를 도왔다는 겁니다. 노예제 폐지론자 vs 노예제 지지자라는 대립이 생판 모르는 남 vs 평소 막역하게 지내던 친구이자 은인 간의 대립으로 변모한 셈인데, 그렇게 듣고 보면 홀트의 선택은 당연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흑인으로서 홀트의 자유는 남부 사회의 가치관뿐만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라는 이중의 감옥 속에 다시 갇히게 되고, 이는 단순히 흑인 노예가 해방되는 것보다 훨씬 더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복합적, 자기 분열적인 현실 안에 처한 인물들을 다뤄내기 위해 감독과 각본가가 (그리고 아마도 원작자가) 취한 가장 당연하면서도 적절한 선택 중 하나는 “옛날 사람들”을 현대적인 시각에 의지하여 정치적으로 좀 더 적절해 보이게끔 섣불리 윤색하거나 단순화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중세나 고대를 다룰 때조차도 모두 어딘가 인권 교육쯤은 제대로 받은 듯한 티를 내는 상당수 시대극과는 달리, (혹은 거꾸로 무식하게 억압적인 측면만 꾹꾹 눌러 강조하면서 ‘아, 저 시대는 저토록 야만적이고 오늘날의 우리와는 달랐도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공들은…….’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시대극과도 달리) 〈악마와 함께 말을 달려라〉의 등장인물들은 19세기 중반의 남부 사회가 사회 구성원에게 부여하는 가치관을 완전히 체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래도 개중에 좀 착한 주인공 역할’이라는 표식을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니는 듯한 제이크나 수 리 셸리(주엘)마저도 “검둥이가 총을 들다니, 아무래도 안심이 안 되는데요.”, “저 사람은 여기 집 안에서 뭐 하는 거래요? 밭에 나가서 쟁기를 드는 편이 더 도움되지 않나?” 같은 말을 정말 약간의 고민도 없이 내뱉으며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 지경이지요. 종국에는 거대한 정치적 흐름, 전쟁의 대세보다도 이렇게 평소 가까이 알고 지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툭툭 던져지고 취해지는 작은 말과 태도 하나하나가 갈등의 원류가 되고 있음을, 관객들도 등장인물들도 점차 깨달아갑니다. 분명 나는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고 행동했는데 점차 인생이 꼬이고 주위 사람과의 관계도 비틀리니 무언가 잘못 됐다는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지요. (이를테면 “덤불치기”들의 은신처에 어엿한 지주 가문의 숙녀가 왔을 때 소위 남부식 환대를 하는 장면 하나만 보더라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지내던 사람들 사이에서 인종과 계층에 대한 의식이 내비칠 때 모두의 사이가 얼마나 불안정해질 수 있는지가 드러납니다.) 한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문제는 굳이 다음 시대의 “원숙한” 눈으로 평가하고 토론하고 해석해야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시대 보통 사람들의 삶 안에까지 침투하여 자기모순을 만들어내며 곪은 종기처럼 나타나기 마련이라는 점을 이 영화는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지근거리에서 서너 인물의 개인사를 좇는 데에 만족하는 듯하던 이야기가 어느새 웬만한 역사책보다 더 생생하고 복합적인 텍스트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검둥이” 이야기가 나온 김에 참고로. 〈악마와 함께 말을 달려라〉에서 흑인을 지칭하는 어휘는 당연히 “nigger”입니다. 듣자하니 최근 미국의 NewSouth Books 출판사가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새로 출간하면서 모든 “nigger”라는 낱말을 “slave”로 바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던데, 황당했습니다. 오늘날 정치적으로 문제시되는 어휘를 거의 일상적으로 아무렇지 않게 썼다는 사실 자체가 시대정신의 일단을 드러내지 않나요. 역사와 문화를 표백하고 싶은 건가.)

 따라서 결국은 어떤 식으로든 좋게좋게 여러 문제가 해소되는 결말도 이 경우에는 도저히 “할리우드 엔딩”이라든가 정치적 적절함을 의식한 타협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의 미래가 그래도 희망차 보일 수 있는 이유는 각본가 하느님께서 불쌍한 꼭두각시 인간들을 귀히 여기사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내려주셔서도 아니고, 처음부터 주인공들이 남달리 싹수가 파래서 동시대에 만연한 잘못을 자기네만 요리조리 피해 갈 수 있어서도 아니고, 오로지 그네들이 온갖 말도 안 되는 모순을 직접 겪고 피를 흘리고 눈물을 집어삼키면서 ‘뭐여, 나는 내 판단이 당연하다고 믿었는데 어떻게 내 꼬락서니가 이렇게 될 수 있지? 애초에 잘못 들어선 길인가?’ 하는 자각에 이른 덕분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런 기회는 주인공들에게만 주어지는 게 아니라 대놓고 미친놈으로 나오는 악역이나 잠시 등장하는 단역급 조역들에게도 공평하게 제공됩니다. 선량한 마음과 명석한 두뇌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오래 고생한 끝에 찾아온 피로에 지쳤기 때문일지라도, 어쨌든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자신의 처지를 의식하고 다음 행동을 결정할 권리를 얻습니다. 개인을 시대적 가치관에 완전히 사로잡혀 절대 변할 수 없는 스테레오 타입으로만 다루지 않고 최소한 자신을 돌아보고 변화할 줄 아는 존재로 다뤘다는 점에서 오히려 〈악마와 함께 말을 달려라〉의 결말은 등장인물을 철저히 존중한 끝에 나온 결말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여기까지 말해놓고 보니 마치 울트라 빡센 정치영화처럼 들릴 법도 합니다만, 이안 감독은 묵직한 “주제 의식”을 위해 소재가 지닌 장르적인 매력이라든가 흥미로운 이야기 자체가 주는 즐거움을 도외시한 적이 없지요. 말 타고 총을 쏘아대는 액션의 활력, 대규모 전투의 스펙터클, 풋풋하고 영리한 대사로 점철된 로맨스, 폭소를 끌어내기에 충분한 유머 감각이 충만한 가운데 2시간 28분은 후딱 지나갑니다. 저는 특히 〈와호장룡〉(臥虎藏龍, 2000)과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 2005)을 본 이후 움직임을 다루는 이안의 실력에 주목하게 됐는데요, 〈악마와 함께 말을 달려라〉에서는 배우들이 숲을 뛰어다니고 말을 타고 내달릴 때의 힘이 감상자를 압도합니다. 화면을 수평으로 가로지를 때의 속도감에선 쿠로사와 아키라가 떠오르고 전경에서 후경으로 수직으로 내달릴 때의 박력은 존 포드를 연상케 할 지경입니다. (그냥 느낌이 그렇다는 정도가 아니라 장면의 구도나 촬영 방식이 두 감독과 무척 유사한 경우가 많습니다.) 제목 “악마와 함께 말을 달려라”부터가 실제로 “덤불치기”들이 귀신처럼 말을 잘 탔기 때문에 나온 표현임을 고려하면 더없이 적절한 접근이라 하겠습니다. 움직임의 쾌감을 한껏 드러내는 태도는 자칫하면 사람들이 죽고 죽이는 상황의 참혹함을 상쇄하여 구경거리로 만들어버릴 위험성도 있겠으나 이안은 오히려 화면의 역동성을 인물의 감정을 증폭하는 요소로 활용합니다. 〈와호장룡〉에서 사막에서 말을 달리며 창질과 활질을 하는 장쯔이와 장첸이 마치 데이트하는 청춘남녀처럼 표현되었듯, “덤불치기”들이 숲 속을 질주하는 광경은 때로는 북군을 보기 좋게 따돌렸다는 득의만면한 기분을 북돋고 또 때로는 비극적 상황에 대한 아픔을 일깨워주는 식으로 해당 장면의 정서와 조응합니다. 전투 중에 동료를 잃은 뒤 자신의 숙적을 향해 “너 이 자식 죽여 버린다!”라고 외치며 달려나가는 따위의 흔하디흔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눈앞의 적에 대한 격노뿐만 아니라 이런 상황에 부닥치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탄과 설움이 절절히 와 닿다 못해 눈물이 주르륵 흐르게 하는 영화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만 할 부분은 데이빗 린치, 짐 자무쉬 감독 등과 더불어 경력을 넓혀온 프레데릭 엘름스 촬영감독의 촬영입니다. 첫 장면에서부터 화면을 가득 채우는 찬란한 풀빛을 비롯하여 낙엽으로 뒤덮인 가을 숲과 하얗게 물든 겨울의 천지까지, 다양한 계절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넘쳐흐릅니다. 처음에는 평소에 보던 다른 영화들에 비해 색감이 너무 짙게 느껴져서 프로젝터 설정이 잘못됐나 살펴볼 정도였는데, 하지만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이 지나칠 정도로 생생한 자연의 빛깔이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일과 대비되며 자아내는 감흥이 있습니다. 북군의 총탄을 피해 짙푸른 언덕을 뛰어 내려가는 “덤불치기”들의 모습을 멀찍이서 담아내는 모습 같은 걸 보노라면 대체 저렇게 아름다운 땅에 살면서 지금 뭘 하는 건가, 하는 슬픔이 절로 들죠. 또는 반대로 인간들의 손에 의해 50년대 할리우드의 3색 테크니컬러 영화에서나 보았던 시뻘건 불길이 타오를 때의 섬뜩함도 잊을 수 없습니다. 이런 화면을 이안 감독과 엘름스 촬영감독이 직접 지휘 및 감수를 맡은 블루레이를 통해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머리를 조아릴 따름입니다.

 끝으로, 좋은 영화면 됐지 뭘 또 굳이 어느 범주에 집어넣고 말고 하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서부극 팬으로서는 〈악마와 함께 말을 달려라〉를 서부극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서부극이란 장르가 미국의 서부개척 역사와 깊은 관련을 맺기보다도 서부라는 신화적 공간을 통해 성립한다고 여기는 편인 저로서는 너무 사실적으로 역사를 다루는 작품 앞에서는 종종 난처한 기분을 느끼곤 합니다. 이게 진짜 미국 초기 (남)서부의 역사일지는 몰라도 장르로서의 서부극이 지닌 매력과는 무관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거든요. 분명히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말을 타고 황야를 질주하며 총을 쏘는 등 서부극의 도상은 있지만 이 영화도 남북전쟁의 한 대목을 진지하고 세밀하게 다루는 시대극의 풍모가 더 짙습니다. 물론 남북전쟁 역시 서부극에서 끌어들이는 중요한 소재 중 하나이긴 해도 그렇다고 게티즈버그 전투를 다룬 영화들이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 1939)까지 서부극이라고 부르기는 아무래도 곤란한 노릇입니다.

 하지만, 광활한 풍경의 활용이나 앞서 언급한 존 포드식 화면 구도의 감흥을 논외로 한다고 하더라도, 〈악마와 함께 말을 달려라〉에는 이안이 장르로서의 서부극을 향해 발언하고 있음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모든 환란을 뒤로 한 채 살아남은 사람들은 포장마차를 탄 채 미주리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향합니다. 그들 앞에는 앞으로 지나가야 할 끝없이 너른 대지가 펼쳐져 있습니다. 순간, 그동안 숱한 서부극에서 보아왔던, 새 삶을 찾아 서부에 도착한 포장마차를 탄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촐한 모습으로 서부에 도착하여 먼저 와서 땅을 차지하고 목장을 운영하고 있는 “토박이”들에게 핍박을 당한다거나 기타 등등의 이유로 시름을 앓다가 총잡이 주인공로부터 도움을 받고, 종국에는 새로 터를 닦아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런데 많은 서부극은 아직 인간 사회의 질서가 확고하지 않은 원초적 풍경 안에서 스스로 삶의 방식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 가운데, 그런 사람들이 두고 온 “동부”는 그 실체가 없는 또 하나의 신화화된 공간처럼 남겨두곤 합니다. 기억에만 간신히 남아 있는 과거와 실패의 공간으로 말입니다. 정말이지, 동쪽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서부극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저 역시 서부극을 보면서 등장인물들이 앞으로 여기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관해서만 생각을 했지 한 번도 그들이 떠나온 곳은 어디이고 어떤 사정이 있을까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어두운 과거를 지닌 서부 사나이는 많이 나오지만 그 과거는 대개 서부 공간이 제공하는 기회를 통해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개인사로 남지 동부라는 시공간에 대한 의식으로 확장되지는 않습니다.) 〈악마와 함께 말을 달려라〉은 그처럼 뿌옇게 백지상태로 남아 있던 서부인의 기원에 피와 살을 더해주었고, 덕분에 그간 장르적 관습에 의지하여 받아들이곤 했던, 서부극 속 서부인들의 간절함과 활기가 마침내 진심으로 되살아나는 듯했습니다. 모든 서부극에 대한 프리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악마와 함께 말을 달려라〉는 처음 공개 당시 10분 정도가 잘려나간 다음 영국 140개 상영관에서 먼저 제한적으로 상영된 뒤에 미국에서는 2000년 초에 아무런 홍보도 없이 단 8개 상영관에서 사흘 동안 상영하고 내렸다고 합니다. 이 삭제된 극장 개봉판도 현재 북미 유니버셜에서 출시한 DVD로 확인할 수는 있습니다. 영화의 감독판은 2009년에야 나올 수 있었습니다. 감독판이 완성된 후 링컨센터영화협회에서 있었던 GV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기에 첨부합니다.



 한편, 한국 개봉 당시 포스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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