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유령 여단(존 스칼지, SF)

2010.07.09 23:39

날개 조회 수:9303



제 The Ghost Brigades | 샘터 외국소설선 3
유령여단
존 스칼지 (지은이) | 이수현 (옮긴이) | 샘터사 | 2010-07-15
정가 : 13,000원


  소포모어 징크스(Sophomore Jinx)라는 말이 있다. 2년차 징크스라고도 하며, 성공적인 첫 작품에 비해 그에 이은 후속 작품이나 활동이 부진한 경우를 말한다. 영화에서 속편이 전편에 비해 성적이나 평론이 안 좋거나, 가수가 1집 음반의 성공에 비해 2집에서 인기가 떨어지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물론 영화 [터미네이터 2]처럼 소포모어 징크스를 깨트리는 경우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작년에 한국에 번역된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샘터)은 좋은 평을 받았다. 존 스칼지는 이미 영미 SF 팬들에게 사랑 받는 작가지만,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로 호평을 받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노인의 전쟁]은 여러 사람들의 호평을 받으며 재미있는 SF로 이름을 알렸고, 증쇄를 기록하면서 안정적인 판매량을 기록했다. 그리고 올해 드디어 [노인의 전쟁]의 후속작인 [유령 여단]이 출간되었다.
  [노인의 전쟁]이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손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흡인력일 것이다.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다른 소설들에 비해 엄청 빠르며, 계속 빠른 호흡으로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지구에서 죽음 밖에 남지 않은 75세 이상의 노인들을 지원병으로 받아 젊은 신체를 주고 2~10년간 복무하면 개척민이 되어 또 한 번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신선한 설정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장대한 우주에서 펼쳐지는 처절한 외계종과 인간의 싸움을 실감나게 묘사했으며, 위트 있는 존 페리(John Perry)라는 주인공을 설정하여 무겁지 않게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갔다. 대중성을 노린 장르 소설에 대한 최대의 찬사 중 하나는 밤새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는 소리일 것이다. [노인의 전쟁]은 바로 그러한 소설이었으며, SF를 잘 모르는 독자나, 혹은 조금의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에게 최고의 추천작 중 하나였다.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인 셈이다. 그렇다면 후속작인 [유령 여단]을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첫 번째 시리즈를 그토록 재미있게 읽은 독자라면, 후속작에 대한 기대치는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한편, 읽기 전에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소포모어 징크스를 생각하면, 전편이 놀라울 정도로 가독성 있으면서 흥미롭게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간 만큼, 후속작이 기대에 못 미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자연스레 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 책은 일말의 불안감을 잠재우고, 독자의 기대감을 충족시키고도 남는다. 그렇다. 놀랍게도 [유령 여단]은 전 편을 능가한다. 전 편보다 더 두꺼운 분량, 3인칭으로 바뀌면서 더 자세한 세계관 설명, 특수부대의 독특한 전투, 앞에 깔린 복선들이 적절하게 맞춰지는 쾌감, 여전히 읽는 속도를 손으로 넘기는 속도가 추월해버리고 마는 몰입도. 전편에서 그저 낯선 존재로만 여겨졌던, 죽은 자들의 DNA를 이용한 인간 병기 ‘유령 여단’의 시점에서 쓰인 이 소설은 관점을 달리하는 것만으로도 [노인의 전쟁]에서 보인 세계를 전혀 다른 세계로 만들고 있다.


△ 『노인의 전쟁』(샘터, 존 스칼지, 2009년 1월)과, 『유령 여단』(샘터, 존 스칼지, 2010년 7월)

  즉, [노인의 전쟁]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걱정할 필요 없다. [유령 여단]은 충분히 재미있다. 아니, 오히려 전편 보다 몇 배는 더 즐거운 경험을 시켜줄 것이다. 전편에서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을 따라가다보니, 세계관에 대한 세세한 설정이 드러날 여지가 적었고, 여러 과학기술에 대해서 고찰해볼 새도 없었다. [노인의 전쟁]의 근간을 이루는 설정인 ‘의식의 전이’에 대해서도 여러 철학적 질문이 제기되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가 깊게 다루어질 틈이 없었던 것이다. [유령 여단]에서는 이야기의 속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전편보다 더 상세하게 설정들이 설명되고, 사건의 중요 소재로 작용하면서 다양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이 점이 이 소설에 전편에 비해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요소 중 하나다.
  이 작품이 여전히 가독성이 높은 이유는, 늘어지는 장면이 하나도 없고, 빠른 장면 전환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호흡 조절이 능숙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각 장면들마다 긴장감을 부여하고 풀어주는 솜씨가 훌륭하다. 대사나 묘사도 필요한 곳에 적재적소에 들어가 있으며, 전체 구성 역시 앞과 뒤가 잘 들어맞게 조율되어 있다. 설정을 설명하는 과학지식 부분도 중복되거나 혼란스러운 부분이 없어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캐릭터들도 물론 매력적이다. 특수부대는 성인의 몸체를 가지고 ‘뇌도우미’를 통해 빠른 정보를 습득해서 한 두 살만 되도 뛰어난 전투 능력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들은 역시 SF 전통의 주제 중 하나인 인간성에 대한 생각부터, 자유의지에 관한 고찰까지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인물들이다. 읽으면서 혹시나 잠시라도 전작의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작가는 그런 기대를 완벽하게 배신한다. 이름은 언급되지만 단 한 번도 전작 주인공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주인공과 여러 인물들을 매력적으로 그려냈다. 따라서 과거 주인공을 잊어버리고 이번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해서 읽어나갈 수 있었다. 다양한 생각과 행동 방식을 가진 인물들을 잘 직조해냈으며, 이들이 서로 불화를 일으키거나 협력하는 등 여러 방식으로 얽히면서 이야기가 흥미롭게 진행된다.
  각 장면마다 짧은 반전을 주면서 이야기를 급박하게 이끌어가는 소설이기 때문에, 이왕이면 어떠한 정보도 없이 책을 읽기를 추천한다. 즉, 인터넷 서점에 올라와 있는 책소개나, 출판사 보도자료 정보를 보지 않고 바로 책을 읽기를 권한다. 그렇게 한다면,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이야기를 읽어나가면서 훨씬 더 작품에 몰입해서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계속 앞으로 어떻게 상황이 전개될지, 호기심이 일면서 한 번에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는 뛰어난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다. 이런 책을 읽으면 상쾌한 기분이 든다. 현재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영화, 드라마, 게임에서 줄 수 없는 오직 책만의 흥분과 재미를 줄 수 있는 책을 만나서 반가웠다. 활자로 그려진 광활한 우주를 유령 여단과 함께 누벼보시길. 몇 시간 동안 놀라운 인생과 삶, 우주를 경험하고 마침내 감동까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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