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니: 인류의 마지막 희망인 소녀 The Girl with All the Gifts  


영국-미국, 2016.      


A Creative England/Altitude Film Entertainment/Poison Chef/British Film Institute Film Fund Production. 화면비 2.00:1. 35mm, Redcode RAW. 1시간 51분. 

Director: Colm McCarthy. 

Screenplay: Mike Carey, based on the novel of the same name. 

Cinematography: Simon Dennis 

Production Design: Kristian Milsted 

Costume Design: Liza Bracey 

Music: Cristobal Tapier de Veer 

Editor: Matthew Cannings 

Special Makeup Effects: Melanie Doyle 

Visual Effects: Nick Rideout, Davey Ahern, Automatik-VFX 


CAST: Sennia Nanua (멜라니), Gemma Arterton (헬렌 쥐스티노), Glenn Close (캐롤라인 콜드웰 박사), Paddy Considine (파크스 상사), Dominique Tipper (데바니), 

Fisayo Akinade (키어난), Tessa Morris (쥐를 든 소녀), Anamaria Marinca (셀커크 박사), Anthony Welsh (딜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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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화제 상영작인 모양인데, 영국에서는 비까번쩍한 퀄리티의 블루 레이로 출시되었길래 구입해서 봤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겟 아웃]처럼 아예 그것이 본편의 주제인 것은 아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는 훨씬 흑백-인종문제에 사상적으로 연루된 한 편이라는 것을 알고 적지 않게 놀라고 감탄했다. 물론 "흑백 강아지" 의 사진을 사랑스럽게 들여다보는 흑인 소녀 (이름조차 "멜라니" 다. 참고로 흑인의 피부를 만드는 색소 "멜라닌" 은 검은색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melas 에서 기원함) 의 접사로 시작되는 이 한편의 경우, 영국 영화작가들이 자신들의 식민지 제국의 역사와 노예제도 (주로 카리브해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짐) 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이 미국인 영화작가들의 그것과는 미묘하게 다르고, 또한 이 한편에서는 존 윈덤 작가의 [트리피드의 날] 의 계보를 잇는, 인류 멸망에 관한 영국산 SF 장르의 영향이 주도적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인종적인 이슈를 건드리는 부위는 많지는 않은 편이다. 좀비들을 억류-관리하는 군인들의 반 이상도 흑인인데, 사실 이러한 "제국의 끄나풀" 적인 캐릭터가 "식민지화" 또는 "노예화" 된 인종의 구성원이라는 것은 현실 역사의 상황과도 부합되는 것이긴 하다. 


아무튼, 영화 내내 멜라니가 흑인이라는 사실은 어린 센니아 나누아 연기자의 낭랑하고 아름답지만 비주류적인 영어의 어투와, 깨물지 못하게 하니발 렉터 박사에게 씌웠던 종류와 비슷한 플라스틱 가면으로 싸여지고 손목이 묶인 채 이동을 해야 되는 멜라니의 뼈아픈 모습을 놓치지 않고 클로즈업으로 찍어내는 비주얼을 통해 지속적으로 환기되고 있으며, 이러한 접근 방식이 이 한편에 유니크한 인종적 긴장감을 부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대 좀비영화의 바이블적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살아있는 송장들의 밤]에서 조지 로메로가 주인공이 흑인이라는 설정을 아무런 코멘트 없이 "자연스럽게" 펼치는 것과는 대극적인 위치에 놓인 접근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머리와 손발을 움직이지 못하게 묶여있는 어린 초등학생 나이의 소년과 소녀들이 스트레스로 녹초가 된 헬렌 여선생 (의식적으로 성적 매력을 차단할 목적이었는지, 엄청 사이즈가 크고 굉장히 못생긴 스웨터에 빠져서 등장하는 젬마 아터튼. 나에게는 영어 관용구에서 말하듯이 "삼베자루를 뒤집어쓰고" 있어도 여전히 아름답기만 한 분이지만 ^ ^) 에게 얌전하게 영어 수업을 받는, 기괴하면서도 우리의 도덕관념을 심히 거스르는 시퀜스로부터 시작하는 이 한편의 설정이 의외로 신선했다는 평이 많은데, 그것은 관객들 또는 평론가분들이 "이러한 유형의 좀비영화를 본 적이 없다" 라고 느낄 만큼 좀비영화 서브장르의 상상력이 고갈되어 왔던 현상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트리피드의 날] 그리고 "특수한 조건" 에 놓인 어린이들이 종말에 다다른 세계의 운명의 중심에 놓인다는 설정이라는 관점에서, 같은 작가의 [번데기들 The Crysalids] (심지어는 논리적이면서도 일면 윤리적으로 사려가 부족하다고도 느껴질 수 있는 엔딩에 있어서도, 이 한편은 [번데기들]을 닮았다) 등의 고전적 "인류 종말" 주제의 SF 라는 시점에서 본다면 그렇게까지 오리지널한 착안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 않을까. 


문학이 아닌 영화로 한정해서 보더라도 그 이전의 작품들과 멜라니라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크게 차별화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좀비들과 그들의 확산으로 인한 인간 (영국) 사회의 붕괴에 대한 묘사는 [28일 이후] 가 제시한 영국적 모델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한 바는 없다고 본다. 물론, [멜라니] 에 대한 이와 같은 반응은, 현대의 좀비영화들이 얼마나 구태의연한 잔학묘사와 씨니시즘에 물든 캐릭터들에 찌들어 있는가를 반증하는 양태라고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멜라니] 는 주로 TV 드라마 제작진이 맡아서 만든 한편인데, 촬영과 프로덕션 디자인은 소규모이긴 하지만 중-고예산 헐리웃 작품을 능가하는 퀄리티를 보여준다. 사이먼 데니스의 황혼기의 오렌지 빛을 주로 원용한 나른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날카로운 색조의 촬영도 뛰어나고 (이분은 저예산 살인 로봇 영화 [킬 커맨드] 의 촬영감독도 맡으셨던데, [킬 커맨드]는 VOD 로 봐서 그런지 몰라도 [멜라니] 쪽이 훨씬 수려한 비주얼을 보여준다), 쓸데없이 참혹함을 강조하는 고어 효과 조작도 보이지 않으며, TV 시리즈 [Humans] 의 아방 가르드 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고전적인 전자음악 스코어로 깊은 인상을 남긴 크리스토발 타피아 데 베어가 맡은 앰비언트 "월드 뮤직" 적 음악도 효과적이다. 좀비들의 경우에도 인육 (또는 동물들의 생고기) 을 먹는 것 이외에는 병원체의 영향 때문인지 식물적인 행태를 보여주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멜라니와 수용되었던 어린 좀비들이 왜 지성을 유지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나름 SF적인 설명이 주어져 있으며, 그것을 일일이 설명해버리면 스포일러가 되겠다). 


그러나 [멜라니] 가 그냥 괜찮은 수준의 좀비 호러 영화에서, 훌륭하고 사려깊은 SF로 발돋움하고 있다고 인정한다면 (모든 면에서 그러한 시도가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대부분의 공적은 마이크 커리 작가의 캐릭터들의 구상, 특히 콜드웰 박사와 멜라니 두 캐릭터가 붙잡고 씨름하는 인류의 생존에 관한 사상적 대립의 진실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대배우지만 점차 "여성적" 인 역할에서 스스로 비껴가는 모습을 최근에 보여준 글렌 클로즈를 콜드웰 박사 역에 캐스팅한 것은 굉장히 좋은 한 수였다. 콜드웰 박사를 7,80년대의 이탈리아 호러 영화 같은 데서 볼 수 있었을 중진 연기파 배우들이 연기했더라면-- 예를 들자면 존 리처드슨 이라던가, 아서 케네디 등-- 이 역할은 관객들이 좀비들에게 잡혀 먹히기를 학수고대하는 종류의 짜증스러운 "악역"으로 자리매김 되었을 것이다. 


멜라니처럼 똑똑하고 삶에 대한 무구한 의지가 넘쳐나는 소녀를 생체 해부해서 뇌와 척추를 적출하겠다는 의도를 지닌 과학자 캐릭터를, 관객들이 "나름대로 수미일관 한 윤리적 논리를 지닌 사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사실 무척 어려운 주문일 것이다. 클로즈 연기자는 콜드웰 박사의 냉철함과 (맥락에 따라 해석하자면) 비인간성을 희생시킴이 없이, 그녀를 가감없이 "인류의 생존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는" "양심적인" 인물로 그려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클로즈 연기자는 또한 나누아 연기자의 미숙하지만 방울 소리처럼 또랑또랑한 연기를 그대로 능숙하게 받아서 증폭시킴으로써, 사상적으로 직접 대립되는 이 두 캐릭터 사이의 "대결" 로부터 강렬한 감정적 에너지를 발현시키고 있다. 클로즈와 나누아 사이의 대사의 주고 받음이 발산하는 울림이, 좀비들의 습격을 피해야 하는 액션 신의 긴장과 흥분을 정서적으로 능가한다는 것이 나의 느낌이었다. 


이 둘 사이의 스릴 넘치는 (연기적) 대립에 비하면 젬마 아터튼이 연기하는 헬렌의 궁극적 운명에 대해서는 나는 약간 불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헬렌에게 지나치게 잔인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아이러니를 강조한 나머지, 건실하고 진지한 클라이맥스까지의 영화의 톤을 왜곡시키는 선택이 아니었을지 (초기의 장면에 대한 댓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집착도 약간은 작용한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 흑인 소녀 캐릭터를 시종일관 영화의 중심에 놓고, 그녀의 지성 (머리가 너무나 좋다.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고, 주어진 과제에 대해 깊게 사색을 하기도 한다. 마블 수퍼 히어로 따위 주류 블록버스터 영화에 나오는 과학자들 내지 엘리트라는 작자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꼬라지를 보자면, 멜라니의 발톱이라도 고아 마셔야 할 듯), 행동력 (스포일러가 되므로 자세한 얘기는 안 하겠지만, 이 소녀는 정말 여러 면에서 능력자다. 인간들도 인간들이지만 다른 좀비들을 다룰 때 특히!) 과 매력 (때로는 월트 디즈니 실사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애처롭도록 예쁘게 보이기도 한다) 을 희생시키지 않은 채, 기승전결의 스토리를 끝낼 수 있도록 노력한 각본가 마이크 커리와 감독 콤 맥카시의 멜라니에 대한 존중심과 애정에 깊은 공감을 느낀다. 


호러영화 및 인류 종말 주제의 SF 영화로서의 능란함을 칭찬해 주고 싶은 한편인데, 그에 못지 않게, 멜라니 캐릭터를 무슨 거대한 사상적 담론이니 자본주의-제국주의 비판이니 이런 얘기를 한답시고 희생양으로 만들어버리는 우행을 범하지 않았다는 것이, 어쩌면 가장 중요한 미덕인 한편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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