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함께 활동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류승완 감독과 정두홍 무술감독이 이번엔 아예 주연으로 나섰습니다. 액션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답게 <짝패>에는 90분동안 시원시원한 액션이 멈추질 않습니다. 류승완 감독과 정두홍 무술감독은 영화속에서 내내 뛰어다니거나, 때리거나, 맞거나를 반복합니다. 내용은 별거 없습니다. 한 때 친구였던 이들이 등을 돌리고 적으로 만난다는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조금은 식상하다고 할 수도 있겠죠.

 
아무리 액션 활극을 표방하고 있는 영화라해도 허술한 구조의 이야기가 주는 아쉬움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널리 알려졌듯이 류승완 감독의 액션에 대한 열정은 우리나라의 어느 감독보다도 뜨거운 편입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영화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오늘 날 주목받는 감독의 위치에 올라섰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그의 영화들을 보면 감독으로서 대중의 취향을 잡아내고 자신의 열정을 영화 속에 마음껏 풀어 놓는 능력은 보이지만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은 많이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짝패>도 그런 점에선 다를바가 없습니다. 류승완 감독이 직접 몸을 날리는 액션 연기를 소화해내며 지금까지 보아온 한국영화의 어떤 액션보다도 실감나는 액션을 보여줬지만 딱 그뿐입니다. 다섯 명의 고향 친구들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류승완 감독은 적어도 화려한 액션이외에 기억에 남는 뭔가를 더 보여줘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짝패>는 절친했던 고향 친구와 형제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액션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그들이 어쩌다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사이가 됐는지에 대한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데는 실패한것처럼 보입니다.


차라리 <킬 빌>처럼 애초에 쇼브라더스 영화사의 작품들에 대한 오마쥬를 표방하며 다분히 판타지다운 성격의 영화였다면 영화를 보며 더욱 액션에 몰입하며 엉성한 이야기에 대한 아쉬움은 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짝패>는 개발이익에 눈이 먼 친구의 배신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소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영화이면서도 액션 판타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둘 사이의 균형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한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짝패>는 액션 영화팬들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무척 반가운 작품입니다. 위에서 잠깐 말했지만 <짝패>에 등장하는 액션 장면들은 지금까지 본 우리 영화들중 단연 최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액션은 류승완 감독과 정두홍 무술감독이 만났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다만 영화팬으로서 욕심을 부리자면 그 멋진 액션 장면들이 카메라에 좀 더 폼나는 모습으로 담아졌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정두홍과 온성의 청소년 패거리들이 맞닥뜨리는 장면에선 그런 생각이 더 간절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영화는 물론이고 외국 영화에서도 쉽게 접해보지 못했던 브레이크 댄스, BMX 팀들의 액션이 펼쳐지지만 카메라는 그들의 색다른 액션을 너무나 평범한 모습으로 잡아내고 있었습니다. 자본과 기술력의 수준이 다른 헐리웃 영화와 단순히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알지만 <매트릭스>에서 키에누 리브스의 액션이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시도되지 않았던 카메라 워킹으로 인해 완전 새로운 장면으로 탄생해 전세계 영화팬들의 눈을 즐겁게 해줬던 점을 떠올려보면 그런 아쉬움이 더 커집니다. 적어도 액션 연출로만 본다면 정두홍 감독의 연출이 원화평의 그것보다 못할 것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죠.

 
참신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오는 아쉬움은 <짝패>의 대미를 장식하는 운당정에서의 액션씬에서도 이어집니다.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액션에 있어서는 국내 영화 최고의 장면들을 보여주지만 어디선가 보았던 이미지와 음악들로 인해 한껏 부풀어오른 기대치에 약간 못미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를 보신분들은 운당정에서의 액션씬들이 <킬 빌>의 녹엽정씬을 연상시킨다는 것을 느꼈을 겁니다. 류승완 감독은 쿠엔틴 타란티노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로 신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운당정의 액션씬이 녹엽정의 그것과 비슷한 분위기를 보인다고 해도 크게 새로울 것이 없는 얘기입니다. <킬 빌>은 타란티노 감독이 스스로 밝혔듯이 자신의 영화적 취향을 한껏 뽐낸 작품입니다. 70년대 홍콩 영화들과 일본의 야쿠자 영화들을 보고 얻은 영감을 그대로 표현해 낸 작품이죠. 류승완 감독은 <킬 빌>과의 연관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요즘 관객들이 <킬 빌>에서 봤던 것을 불과 2~3년 만에 <짝패>에서 다시 보고 느꼈다는 점은 류승완 감독이 그저 부인한다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사실 류승완 감독이 제도권 영화판에 들어와서 만들어낸 작품들은 독창성 시비에서 자유로웠던 적이 없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이>는 워쇼스키 형제의 <바운드>의 스토리와 가이 리치의 <스내치>의 스타일을 짬뽕한 영화라는 얘기를 들었었고, 동생을 주연으로 내세웠던 <아라한 장풍 대작전>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주성치의 <소림축구>의 설정을 각색해 만든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러한 지적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만 류승완 감독이 국내 액션 장르 영화에서 독보적인 지위와 열정으로 높게 평가받고 있는 만큼 그러한 모방 시비에서 벗어나 좀 더 독창적인 작품을 관객들에게 선보이면 좋겠습니다.







1. 이 영화는 요즘 나오는 영화치고 러닝타임이 90분 정도로 좀 짧은 편입니다. 그래서 혹시 빈약한 이야기 전개가 편집 과정에서 필름을 과도하게 들어냈기 때문에 그런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110분이 넘었던 <아라한 장풍 대작전>의 구성도 그다지 짜임새 있지 않았던걸 보면 류승완 감독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이 부족하다고 보는게 더 설득력 있는 것 같습니다. 각본이라도 전문 시나리오 작가에게 맡기면 어떨까 하는데 류승완 감독은 연출과 함께 각본도 거의 직접 맡아서 하는 스타일이더군요.

 
2. 짧은 러닝타임 얘기를 했는데, 김서형이 연기한 캐릭터는 정두홍 감독이 연기한 캐릭터와 뭔가 썸씽이 있는 것처럼 보여졌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겉돌기만 합니다. 편집 과정에서 보여주지 못한 뭔가가 있을 듯.. 그밖에 위에서 얘기했듯이 친구와 형제 사이의 일인만큼 무언가 더 보여줬어야 한다고 했는데 석환이 어머니 환갑 날에 거울앞에서 형의 체면을 세워주는 대목은 좋았습니다. 그런 식으로 친구사이의 이야기도 좀 더 보여줬으면 했는데 그런건 더 이상 없었습니다.

 
3. 정두홍 감독은 개인적으로도 너무 좋아하는 분입니다. 그 분의 스턴트, 액션에 대한 열정도 대단하지만 그런 것보다 너무나 소탈한 인상과 말투가 너무 마음에 듭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무술감독이겠죠. 요즘은 종종 직접 영화에도 출연하는데, 이번 영화에서의 캐릭터는 <아라한>에서 연기했던 캐릭터와 달리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의 대사도 많아서 더욱 좋았습니다. 더 나이들기 전에 진짜 매력적인 작품에서 그분의 액션연출과 연기를 보면 좋겠는데 그럴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우리나라에서 류승완 감독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액션 장르를 연출할 감독이 나타날리는 없겠죠? 

 

4. 운당정 액션이 녹엽정 액션을 떠올린다고 했는데요, 재밌게도 <킬 빌>의 제작자가 칸 필름마켓에서 <짝패>의 미국 배급권을 사들였다고 하는군요. 비록 정교한 카메라 워킹 등은 찾아 보기 힘들어도 그들에게 동양의 액션은 여전히 매력적인 소재인가봅니다. 내친 김에 정두홍 무술감독이 원화평처럼 헐리웃으로 스카웃 돼 가면 좋겠습니다.

 

5. 이 영화를 얘기하면서 이범수의 악역 연기를 빼놓을 수 없겠죠. 단발 파마머리로 등장하는 모습은 흡사 <태양은 없다>에서 이정재를 쫓는 단발머리 사채업자(?)로 나왔던 모습을 연상케도 합니다. 솔직히 배우로서 이범수의 마스크는 그런 악역이 더 어울리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싱글즈>나 <슈퍼스타 감사용>에서는 좀 적응이 안되더군요. 배우가 너무 한쪽 이미지로만 굳혀지는 것도 경계해야 겠지만 자신의 이미지에 가장 어울리는 역할을 찾아서 연기하는 것을 무시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주연인 두 배우가 전문 연기자가 아니었던 만큼 이범수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인다고 할 수 있겠죠. 물론 캐릭터 설정은 좀 미흡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히 친구들이 자신에게 말할때만 명령조였다는 대사 하나로 그가 친구를 배신한 이유를 설명하기엔 그가 한 행동들이 너무 악랄했기 때문입니다.
 

6. 영화를 볼땐 몰랐는데 류승완 감독의 아역으로 나왔던 배우가 <친절한 금자씨>의 김시후였더군요. 곧 개봉할 <구타유발자들>에도 출연했던데 앞으로도 많은 활동이 기대됩니다. 김시후와 온주완이 등장하는 87년의 소풍씬에서 나오는 1리터짜리 유리병 콜라도 재밌습니다. 인터넷에 보니 우리나라에선 80년대 초반에 잠깐 발매되었다는데 필리핀인가 태국인가엔 아직도 팔리고 있다는군요. 87년이면 저도 기억할만한 때인데 전혀 기억이 안나네요. 1리터짜리 콜라가 언제까지 팔렸던 걸까요? 87년엔 없었다면 제가 기억못하는게 정상이고 류승완 감독이 실수한 것이겠죠.

 

7. 김효선의 발견은 <짝패>의 큰 수확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정두홍 감독이 운영하는 서울 액션스쿨에서 5년동안 각종 무술을 연마했다는 이 여배우는 <짝패>에서 매우 돋보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류승완 감독과 정두홍 감독이 시종일관 온 몸을 날리며 부상까지 당해가며 최고의 액션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내내 폼만 잡다가 마지막 운당정 씬에서나 액션연기를 펼치는 이 여배우의 액션이 돋보였다고 얘기하는건... 네. 이 여배우 얼굴까지 예쁩니다. -_-; 

 

8. 영화관에서 엔딩 크레딧을 보니 출연 배우중 정두홍 감독의 이름이 가장 먼저 올라가더군요. 별거 아니지만 정두홍 감독에 대한 류승완 감독의 존경(?)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작에 강혜정이란 이름이 눈에 띄어 찾아보니 영화사 마케터 출신인 류승완 감독의 아내이더군요. 자신과 아내의 성을 딴 외유내강이라는 영화사를 설립해 짝패를 제작했다고 합니다. 사랑으로만 이루어져도 더할나위 없이 좋을 부부인데, 좋아하는 일까지 함께 하다니 참 부럽네요.



2006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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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패> 개봉 때 썼던 리뷰입니다.
오랜만에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에 관한 리뷰를 쓰다가 생각나 뒤적거려봤는데 블로그에 안옮겨 놨더군요. 불과 4년 전인데 리뷰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집니다..;; 김시후는 위에서 언급한 <구타유발자들> 이후 몇 년 간 활동이 없었고, 예쁜 액션 여배우 김효선도 한 동안 별다른 활동이 없었네요. 제가 보는 눈이 없나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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