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사는 신비롭고 놀라운 마술을 펼치면서 다양한 환상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그들의 모자속에 들어간 토끼는 비둘기로 바뀌어서 나오고, 상자에 들어간 사람의 몸을 자유롭게 분해하기도 하며, 그 자신이 갑자기 사라졌다가 어딘가에서 갑자기 나타나기도 한다. 마치 꿈을 꾸는것 같은 환상을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그런 마술사들을 나는 아주 오랫동안 동경해왔다.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소개하려는 이 작품에도 마술사가 등장한다.

 

미국 범죄 스릴러 소설의 대부라고 불리우는 윌리엄 베이어가 '데이비드 헌트'라는 익명으로 지난 1997년에 발표해 독자와 문단의 찬사를 받으며 권위 있는 람다 문학상을 수상한 [누가 큐피드의 동생을 쏘았는가]는 밝은 희망과 어두운 욕망을 동시에 품고 있는 도시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거리에서 토막난 시체로 발견된 어느 남창의 의문스러운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서 노력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어둠과 욕망이 꿈틀대는 범죄를 소재로 다루는 스릴러 소설이지만 그 안에는 우아함과 기품있는 아름다움이 존재하고 있다.

 

반짝이는 눈, 검은 눈썹, 작은 삼각형 얼굴, 한쪽에 가르마를 탄 중간 길이의 검은 머리를 지닌 주인공 케이 패로는 사진작가다. 그녀는 완전 색맹이다. 즉, 상염색체 퇴행성 색맹으로 세상의 색깔을 전혀 보지 못하고 빛에 대한 과민증도 있기 때문에 대낮에는 반드시 선글라스를 끼고 다녀야만 한다. 비록 그녀는 색깔을 못보는 색맹이지만 대신 세상을 다양한 회색으로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으며 어둠에도 쉽게 적응할 수가 있다.

 

케이는 자신의 프로젝트 '노출'을 위해서 어두운 밤에 포크 협곡을 거닐며 사람들의 사진을 찍는데, 그곳에서 레인이라는 별명을 지닌 영원하고 아름다운 소년이자 거리의 남창인 티모시 러브지' 팀을 만나게 된다. 둘은 곧 친구가 되고 케이는 팀을 모델로 많은 사진들을 찍는다. 어느 날, 팀이 누군가에게 살해 당해 시체로 발견되고 케이는 소중한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크게 분노한다. 범인을 밝히기 위해 사건을 조사하던 케이는 팀의 죽음이 과거 미해결된 T 사건과 연관성이 있는것을 발견하고, 뒤를 이어 새로운 진실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여성인지, 아니면 남성인지 정확한 성별을 구별하기가 어려운 마네킹이 공허한 눈빛으로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음 담은 표지가 매우 인상적인 이 작품의 원제는 [The Magician's Tale]이다. 처음에는 [누가 큐피드의 동생을 쏘았는가]라는 제목에 꽤 자극을 받았지만, 작품을 읽으면서 왠지 원제인 마술사의 이야기가 훨씬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을 했지만 실제로 팀의 주변 인물로 데이비드 드조프로이라는 영국인 마술사가 등장하고,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전체적인 내용들이 더욱 절묘하게 맞았기 때문이다.

 

서늘하고 회색을 띤 안개의 도시인 샌프란시스코는 작품의 배경으로서 아주 탁월한 공간이다. 더욱이 색맹인 주인공 케이가 그녀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는데 더욱 적합한 무대를 마련해준다. 케이의 세계에는 색이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흑과 백으로만 이뤄져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사물의 실체에 더 집중하고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실제로 케이의 그런 능력은 팀의 사건을 조사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주기도 한다.

 

콘택스 카메라를 들고 여러 사람들과 사물의 사진을 찍으며 팀의 죽음에 관련된 단서들을 하나 둘씩 찾아나가는 케이의 모습을 보면서 왠지 고독한 여성이 주인공인 느와르물의 탐정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그녀가 독자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아주 뛰어난 추리를 선보이는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데이비드 헌트가 창조한 케이의 세계에는 너무나도 탄탄하게 잘 짜여진 이야기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것은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야기는 이 작품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활을 한다. 마술사가 들려주는 팀과 애리앤, 이란성 쌍둥이 남매와 저맨서 마술에 관한 이야기와 케이의 아버지가 들려주는 T 사건에 대한 이야기들이 작품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으며, 헌트의 관능적이고 매혹적인 문장은 상당한 흡인력을 발휘하며 독자들을 이야기속에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그속에서 만나는 인물들도 무척 흥미로운데, 케이에게 사랑의 색을 전해주는 인도인 사샤 파텔과 그녀를 도와주는 착한 노숙자 드레이크, 야망 있는 레즈비언 형사 힐리와 듬직한 삼촌 같은 조얼이 바로 그들이다.

 

데이비드 헌트의 [누가 큐피드의 동생을 쏘았는가]는 아름답고 우아한 스릴러로 거기에는 다양한 의미를 지닌 매력적인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그것은 탐욕으로 얼룩진 범죄 이야기이자, 자신만의 색을 보는 용감한 여성의 이야기며, 거리에서 일하는 남창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치명적인 아모레토 애리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 쌍둥이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 저맨서 마술과, 그들이 꿈꾼 환상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은 흑과 백, 빛과 어둠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색조의 마술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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