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두 영화를 보았다. 류승완 감독의 7번째 장편 영화 [부당거래]와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8번째 장편 영화 [소셜 네트워크].(각본은 박훈정과 아론 소킨) 두 감독의 차기작에 거는 기대치가 같지는 않았기에 섣불리 기대가 충족되었는지를 이야기하기는 힘들지만, 두 영화가 모두 장르적 완성도에 있어 빼어난 세공술을 자랑하는 명품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씨네21의 별점평가 평자들 7명 중 6명이 [부당거래]에 4개의 별점을 부여했다. 이러한 만장일치에 가까운 지지는 [소셜 네트워크]에 대한 영미권 평론가들의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97%에서도 확인된다. 이처럼 두 영화는 각각 매우 빼어난 영화고 그 자체로 할 이야기가 많아 보인다.
 
그럼에도 두 영화를 관통하는 어떤 지점들이 이들을 한 데 엮어서 이야기하고 싶게끔 만든다. 롤링스톤즈의 평론가 피터 트레비스가 [소셜 네트워크]에 대해 “지난 10년을 정리하는 영화(defines the decade)”라고 했는데, 이 말은 어쩌면 [부당거래]에 고스란히 돌려 줄 수 있을듯하다. 물론 [소셜 네트워크]는 미국을, [부당거래]는 한국을. 
 


# 빠져나갈 수 없는 순환 구조 VS 잉여 혹은 과잉의 구조 
 
영화 자체만 놓고 보자면 두 영화는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많은 평자들이 지적했듯이 두 작품 모두 동시대의 충실한 묘사가 담겨 있다. [소셜 네트워크]는 실존하는 인물 마크 주커버그의 페이스북 ‘창업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부당거래]는 물론 허구에 기반하고 있지만, 농담 섞어 과장하자면 이 작품도 ‘PD 수첩’이 밝혀낸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실화’, 혹은 엄밀히 말해 ‘그런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사건’에 대한 감독의 태도다. [부당거래]와 [소셜 네트워크]는 한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영화가 아니다. 혹은 관객들이 한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것을 방해하고 싶어하는 영화다. 그들은 세계의 한 단면을 날카롭게 베어내 관객들에게 들이 밀고 시치미를 뚝 떼고 있다. 천의무봉의 솜씨로 관객을 홀릴 뿐이다.
 
먼저 [부당거래]를 보자. 영화는 아동 성폭행 살인범에 대한 뉴스로 시작한다. 형사들의 실수로 유력한 용의자가 사망하고 경찰 수뇌부는 특단의 대책을 원한다. 청와대가 이 사건을 주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때 최철기(황정민 분)가 등장한다. 그는 꽤 능력도 있고 부하 직원들도 잘 챙기는 의리파지만 경찰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연거푸 승진에서 물을 먹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자신의 매제(송새벽 분)가 장석기(유해진 분)에게 받은 돈 때문에 직위해제 될 위험에 처한다. 
 
이 때 강국장(천호진 분)이 최철기에게 은밀한 거래를 제안한다. 이번 유괴사건을 소위 ‘배우(가짜 범인)’를 써서 해결해 준다면 비행도 눈감아 주고 승진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한 것이다. 영화는 이 때부터 최철기의 타락 드라마를 그리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다른 축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장석기를 시켜서 가짜 범인을 만들어 낸 최철기는 이런저런 방식으로 장석기의 라이벌 김회장(조영진 분)을 건들게 된다. 장석기와 김회장이 신축빌딩의 입찰권을 놓고 목숨을 건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회장은 자신이 뒤를 봐주던 주양 검사(류승범 분)에게 재차 하소연을 하고 주 검사는 최철기의 뒤를 캐기 시작한다. 이제부터는 물고 물리는 게임이다. 

이제 [소셜 네트워크]로 건너와 보자. 영화는 마크(제시 아이젠버그 분)가 그의 여자친구 에리카(루니 마라 분)에게 차이면서 시작한다. 마크의 상류사회에 대한 열등감과 자신의 학교(하버드)에 대한 잘난 척이 그녀를 질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꽤 능력있는 해커인 마크는 그녀에 대한 복수심을 여성 일반으로 확장시켜, 기숙사 홈페이지를 해킹해 하버드 판 ‘이상형 월드컵’ 사이트를 개설한다. 그러나 그는 이 사건으로 학교에서 정학 당하고 학우들로부터 왕따 당한다.
 
이 때 윈클보스 형제(아미 해머 분)가 그에게 은밀한 거래를 제안한다. 자신들이 만들고 있는 ‘하버드 커넥션’이란 사이트 제작을 도와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마크는 자신의 친구 왈도(앤드류 가필드 분)에게 투자를 받아 따로 ‘더 페이스북’이라는 사이트를 제작한다. 그들의 아이디어를 차용한 이 사이트는 곧 하버드학생들의 주목을 끌기 시작하더니 이내 다른 아이비리그 학교들까지 점령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영화 역시 마크의 성공드라마는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관객은 영화가 과거의 ‘페이스북’ 창업스토리와 현재의 법정소송을 뒤섞으며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왈도, 윈클보스 형제 그리고 마크는 거액의 민사소송에 연루되어 있다. 윈클보스 형제는 마크가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훔쳐갔다고 주장하고, 왈도는 마크가 숀 파커(저스틴 팀버레이크 분)의 꾐에 넘어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주장하지만 마크는 모두 인정하지 않는다. 여기도 이제부터 물고 물리는 게임이 시작된다. 
 
중요한 건 이 두 감독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누구의 편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공평무사하게 묘사된다. [부당거래] 속 인물들은 모두 세속에 찌든 현실적 악인으로 묘사되고 [소셜 네트워크] 속 인물들은 모두 젊은 야망과 치기에 찌든 속물들로 묘사된다. 이들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는 그들이 속한 세대다! 그것이 이 글의 주제이기도 하다. 
 
두 감독은 각각의 인물들을 테두리에 박아 놓고 그들을 둘러싸매 버린다. 그 누구도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고 각자는 세계를 지탱하기 위해 그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감수해야 한다. 한 명이라도 빠지는 순간 모두가 무너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팽팽해진 세계의 단면을 면밀히 관찰하는 것이 두 영화를 감상하는 가장 즐거운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지점에서 둘은 전혀 다른 지점으로 나아간다. 사실은 진짜 범인이 바로 가짜 범인 이동석(우돈기 분)이었다는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오는 순간 영화를 끝냈다면, [부당거래]는 하나의 단단한 구조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소셜 네트워크]는 바로 그 지점에서 영화를 끝낸다. 마크가 헤어진 여자 친구에게 친구신청을 하고 ‘새로고침’을 무한 반복하는 그 순간. 거대한 허무를 지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그 순간. 
 
[부당거래]는 기어코 어떤 과잉 혹은 잉여의 결말을 만들어 내고야 만다. 부하들에게 처단당하는 최철기는 홍콩느와르의 과장된 비장미를 떠올리게 하고, 스폰서 혐의를 들킨 이후에도 반성할 줄 모르는 주양 검사는 과도한 직접적 비평으로 느껴진다. 무엇 때문에 류승완 감독은 이러한 결말을 찍은 것일까.    
 

# 한국식 자본주의 VS 미국식 자본주의
 
앞서 말했듯이 이 두 영화는 세계의 어떤 단면에 대한 영화다. 그러나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좀 더 범위를 좁혀본다면 두 영화는 각각의 자본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섬세한 풍경화처럼 느껴진다. 미국의 자본주의와 한국의 자본주의는 어떻게 다른가? 혹은 어떤 힘이 그들 각각의 자본주의를 작동시키는가?
 
물론 한국과 미국의 자본주의는 결코 분리시켜 분석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다. 가장 편의적으로는 1세계와 3세계의 역사적 문제가 있을 것이며, 미국이라는 패권국가가 갖는 특별한 함의도 살펴 보아야 하겠지만 여기서는 거기까지 논의를 확장시키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각각의 자본주의가 갖는 개별성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선 [부당거래]를 보자. 이 영화만큼 2010년 대한민국을 과감하게 묘사한 영화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한국식 자본주의에서 국가와 관료주의가 갖는 중요성이다. 
 
물론 지금은 60~70년대식 국가주도 경제개발계획이 통하는 시대는 아니다. 90년대 불어 닥친 신자유주의 광풍과 97년의 금융위기는 ‘민영화’로 대표되는 국가의 축소를 가져왔다. 그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관료제가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축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G20에서의 호들갑을 보라). 
 
간단하게 질문을 던져보자.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사람들은 누군가? [부당거래]에 나오는 인물들만 간추려 정리해보자면, 검찰, 언론, 재벌 회장, 건설사 사장, 조직폭력배, 그리고 이들보다는 조금 급이 떨어지는 경찰들이다. 물론 정점에는 청와대가 있다. 이들 사이엔 견제가 아니라 위계가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대한민국 주류 사회를 청와대를 정점으로 한 거대한 관료제로 묘사했다는 점이다.

경찰 최철기와 조폭 장석기 팀, 검사 주양과 건설사 김회장 팀의 갈등은 부서 간 갈등처럼 비친다. 이권과 자리를 놓고 다투는 모양새가 민관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관료제 자체가 아니라 관료제가 갖는 한 가지 핵심적인 속성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대가 계급을 가른다. 즉, 대한민국은 40~50대가 모든 의사결정의 중심에 있고 이들의 생각을 중심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어른들의 세상’(혹은 ‘꼰대들의 세상’)이다.
 
이 ‘어른들의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바로 ‘부당거래’다. 협상이 아닌 거래인 이유는 알다시피 ‘좋은게 좋은 것’이기 때문이고, 피차 머리를 쓰기엔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중년 마초들이 지배하는 이런 세상에서 여성들이 술집 작부 아니면 남편 때문에 속 썩는 가정주부로 묘사되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젊은이들은 기껏해야 그들의 대장을 졸졸졸 따라다니며 시키는 짓만 한다.
 
[소셜 네트워크]의 마크는 아직 20대다. 그에게는 수완 좋은 어른처럼 보이는 숀 파커 역시 끽해야 30대로 보인다. 70~80년대 두 번의 오일쇼크로 최대의 위기에 빠진 미국 자본주의는 90년대 들어 다시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그 이유들 중 하나로 IT산업의 부흥을 꼽는다. 빌게이츠 혹은 스티브 잡스의 성공은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 빌게이츠와 스티브잡스 역시 20대에 자신들의 사업을 시작했다.
 
[부당거래]에서 가장 권위적인 인물이 대통령이라면 [소셜 네트워크]에선 ‘당연히’ 빌게이츠가 최고의 권위를 갖는다. 다시 [소셜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미국을 움직이는 키워드들을 정리해보자. 아이비리그, 젊은 IT 천재의 황당할 정도로 엄청난 성공, 변호사들 그리고 협상테이블, 클럽과 파티.    
 
[소셜 네트워크]를 보고 나면 허탈한 느낌이 든다. 결국 어린 꼬맹이(?)의 실연이 이런 엄청난 가치의 기업을 탄생시킨 것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미국은 ‘애들 세상’인가? 부분적으로는 성립한다. 아니 어쩌면 어디선가 나타난 애들의 성공담이 90년대 이후에 노회한 미국 자본주의를 지탱해 준 동력이 됐다고 봐도 될 것이다. 아이들의 ‘관계 맺기’에 대한 욕망을 구현한 것이 바로 ‘페이스북’ 아닌가. 
 
물론 미국 자본주의가 더 낫고 한국 자본주의가 더 못하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중요한 사실은 지금 각각의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것이 전혀 다른 세대라는 점이다. 한국은 ‘애 같은 어른’들이 움직이는 사회고 미국은 ‘애 같은 애들’이 움직이는 사회다. 
 
[부당거래]에서 최철기는 주류는 아니지만 어른들의 세계에 속한 사람이다. 애들(최철기의 부하들)은 어른들 중 한 명을 죽여야만 했다. 그것을 ‘88만원 세대’로 분류하든, ‘청년백수’로 분류하든 지금 우리 사회의 젊은 세대는 한국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울분을 삼키고 있다. 표출되지 못한 그 에너지가 이 영화 속에 과잉 혹은 잉여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 결말은 각본과 달리 류 감독이 직접 결정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 형사(김민재 분)가 최철기의 계급장을 떼면서 “왜 그랬어요? 이거 때문에 그랬어요?”라고 묻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다고 밝혔다. 어쩌면 이 영화는 그것을 묻기 위해 만든 하나의 세계일지도 모른다. 무너뜨리고 싶은 세계. 그러나 그들은 대상을 잘못 골랐다. 엔딩에서 주양은 반성할 줄 모르고 카메라는 대도시 서울을 비춘다. 세계는 견고하다. 

[소셜 네트워크]의 엔딩은 쿨하다. 영화의 시작과 끝이 완벽하게 대구를 이루며 하나의 매듭을 형성한다. 사실 페이스북의 성장 동력은 시종일관 에리카였다. 이 애들 장난 같은 성공 스토리가 어쩌면 미국식 고도 자본주의 사회의 실체일지도 모른다. 결국 페이스북이 해결해 주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어차피 사람들은 페이스북을 원한 게 아니라 ‘무언가 새로운 것’을 원했던 것이다.


***

그러나 한국식이든 미국식이든 결국 자본주의가 운영되는 방식은 하나로 귀결된다. 끝없는 욕망의 순환. ‘라캉’식으로 표현하자면 ‘주체는 결핍이고, 욕망은 환유된다.’는 이야기. 시스템은 견고하고 그 안에 사람만 바뀔 뿐이다. 두 영화에서 모두 윤리적 인간이 철저히 배제된 건 우연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윤리적 인간을 원하지 않는다. 멈춰 서서 생각하는 축이 많아지면 시스템이 순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영화가 확고한 장르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비평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동시대 한국인에게 [부당거래]의 엔딩은 좀 더 나쁜 소식으로 들린다. 혹은 [소셜 네트워크]의 엔딩은 미국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두 영화의 엔딩은 지극히 정치경제학적이다. 그렇게 류승완과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가 2010년 11월, 동시에 우리에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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