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Man Som Hatar Kvinnor, 2009) ☆☆☆1/2

 

최근 미국에선 [용 문신을 한 소녀]란 제목으로 소개 된 스웨덴 영화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우리가 자주 접할 수 없는 부류의 멋진 영화입니다. 영화 본 후의 기분은 비유를 하자면 좋은 추리 소설 한 편을 죽 읽고 난 후의 기분과 같았습니다. 영화는 좋은 추리물로써 관심을 계속 끄는 동안 한 꺼풀씩 벗겨가면서 진상에 도달하는 과정을 흥미만점으로 그려냈을 뿐만 아니라, 그 와중에서 세심하게 캐릭터들을 그려가는 만족스러운 추리 각색물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사건 자체만큼이나 흥미진진하기 짝이 없는 독특한 매력의 여주인공이 있습니다.

 

 

저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시사 월간지 [밀레니엄]의 편집장인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미카엘 뉘크비스트)는 곤란한 지경에 빠졌습니다. 한 막강한 기업인의 비리를 폭로하기 위해 기사를 썼다가 그만 명예훼손죄로 고발당해서 유죄 판결을 받은 그는 15만 크로넨의 벌금은 기본이고 앞으로 몇 개월 후 3개월 동안 감옥에 있어야 할 팔자인 가운데, 형을 다 치른다고 해도 그의 기자 경력은 종지부를 찍은 거나 다름없는지도 모릅니다. 주위 사람들을 항소를 고려해 보라고 하지만, 리처드 버튼이 연상되는 우울한 표정의 그는 이미 자신을 망친 일이 자신의 잡지까지 여파를 끼칠 것을 고려해 그러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그는 한 변호사를 통해 남은 시간 동안 어느 사건을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받고 동떨어진 분위기의 어떤 섬에 있는 대저택으로 불려옵니다. 의뢰인은 다름 아닌 명성 있는 기업 총수였지만 지금은 은퇴한 헨리크 반예르(스벤 버틸-타웁)인데, 미리 블롬크비스트를 뒷조사해서 그가 매우 신뢰할 만한 사람임을 확인 한 헨리크는 미카엘에게 상당한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조건 아래에 의문에 쌓인 과거의 한 사건을 맡깁니다. 40년 전에 그가 딸처럼 아꼈던 조카딸이 갑자기 실종되는 일이 발생했는데, 그 때 당시 수사를 통해 모여진 증거를 토대로 보면 그녀는 섬이 잠시 폐쇄된 동안 그 안에서 연기처럼 사라진 것 같이 보입니다.

 

 

그가 사랑하는 조카딸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 모르지만 헨리크는 그녀가 죽었다고 보고 있고 살인자는 그의 대가족 일원들 중 한 명일 거라고 확신하고 있는데 그에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나중에 그들 중 중요한 사람들 몇몇이 잠시 서재에 모여 있는 것만 봐도 반예르 가문 사람들이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 두 세 권쯤은 능히 채울 수 있다는 건 아주 확연하거든요. 다들 수상한 구석이 있을 뿐만 아니라 탐욕스럽거나 이기적이거나 추악한 인간들이기도 하고 몇몇은 2차 세계 대전과 관련된 별로 깨끗하지 못한 과거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저택에 따로 딸린 집에서 머무르는 동안 미카엘은 이 오래된 사건을 차근차근 살펴보면서 새로운 단서를 잡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당시 수사하던 사람들만큼이나 그도 역시 벽에 부딪히지만, 그러다가 그에게 한 조력자가 슬며시 다가옵니다. 그녀는 해커로 일하고 있는 젊은 여성인 리스베트 살란데르(누미 라파스)인데 그녀의 천재적 암호해독 능력으로 사건 수사 과정에서 큰 돌파구가 마련되지요. 이를 계기로 미카엘은 그녀와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단서들을 찾아가고 그런 동안 단순한 실종 사건은 더욱 더 무서운 일의 일각일지도 모른다는 점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 누군가는 이러한 진전을 결코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사건 수사 진행 과정뿐만 아니라 영화는 주인공들을 공들여 묘사하는 것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초반에 그들의 경로가 서서히 겹쳐가는 과정 속에서 살이 붙여지는 동안 미카엘과 리스베트는 윤곽이 뚜렷한 캐릭터들로 구축되는데, 특히 가면 갈수록 이야기의 중심을 차지해 가는 리스베트는 쿨한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가죽점퍼를 입고 다니면서 피어싱을 여러 개 한 차가운 얼굴의 소유지인 그녀는 사랑스럽기보다는 흥미로워서 더 다가가게 만드는 쌀쌀맞은 매력의 얼음공주입니다. 그다지 잘 설명되지 않은 불행한 과거를 있는 가운데 남자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그녀는 그 냉담한 외모 뒤에 약점들을 감추고 있는 듯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착취하려고 하는 새디스틱한 인간말종 법정 관리인 앞에서 물러설 여성은 절대 아닙니다. 이와 관련된 서브플롯은 처음엔 쓸데없이 사람 불편하게 만드는 듯하지만, 결국엔 중심 이야기에서 캐릭터 구축과 동기에 필수적 역할을 합니다.

 

 

영화 속 추리 과정의 경우, 무슨 깜짝 놀랄 결말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차근차근 밟아가는 맛이 상당합니다. 과거의 사건을 조사해야 하니 플래시백이 나올 법하겠지만, 우리는 미카엘과 리스베트과 똑같은 입장과 위치에서 사건의 실마리들을 추적하고 얻고 그들로부터 직관해야 합니다. 문제의 사건이 일어났을 법한 시점에서 찍혀진 영상 자료들을 이미지 프로그램을 통해 스캐닝하고 블로우 업하면서 그 당시 상황을 엿보려는 시도가 특히 인상적이 가운데, 어느 덧 여느 추리 영화들처럼 자초지정을 설명해야 하니 영화는 말하는 악당 신드롬에 근접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그를 위한 타당한 논리적 이유와 상황이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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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위해 누미 라파스는 촬영 전 상당 기간 동안 준비를 했고 그에 따른 성과는 영화에서 매우 확연하게 보입니다. 리스베트가 워낙 그녀만의 캐릭터로 깊숙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에, 이미 미국에서 준비 중인 리메이크 작이 과연 라파스의 그 독보적인 섹시함을 대변할 수 있는 미국 여배우를 구할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리스베트는 여느 재능 있는 젊은 여배우라면 탐낼 역이고 여기에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물망에 올랐다는 소문이 있지만, 로저 이버트와 제임스 베라디넬리의 지적대로 그냥 라파스를 영입해 오는 게 좋을 지도 모르지요. 상대역인 미카엘 뉘크비스트는 라파스와 동등한 위치에서 그녀를 보조하는 가운데 그녀에 비해 구식이어도 마찬가지로 단단한 성격의 능력 있는 조사관으로 좋은 가운데, 스벤 버틸-타웁은 헨리크를 나쁜 소식을 전달해 드리기에 미안해지는 노인장으로 연기합니다.

 

러닝 타임은 무려 150분이 넘지만, 감독 닐스 아르덴 오플레브는 전혀 지루하지 않은 미스터리 스릴러를 만들었습니다. 써늘하고 적막한 겨울 분위기로 가득한 화면에는 긴장감이 꾸준히 감도는 동 그 와중에서 보여 지는 사실적인 해킹 묘사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웬만한 영화 속 해킹은 가볍게 넘겨 볼 만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누군가 정말 제 컴퓨터를 엿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각본은 준비운동에서부터 성급히 굴지 않으면서 조용하고 능숙하게 판을 펼쳐나갈 뿐만 아니라 마무리까지 아주 착실하게 하면서 다음 편을 예고합니다.

 

 

본 영화는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을 쓰다가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국내에서도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첫 작품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작년에 본 영화에 이어서 속편들도 즉시 영화화되었는데, 보아하니 본 영화에 비해 두 속편들은 덜 좋게 평가 받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간에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그 자체로도 매우 좋은 편이고 그에 이어 다음 이야기들에 대한 관심이 생기게 하는 데에서도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함 멋진 캐릭터와 그녀를 연기한 좋은 배우 한 명을 소개시켜 준 점도 잊지 말아야 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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