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끼(2010) - 스포일러

2010.08.05 05:52

개소리월월 조회 수:4992

(아. 이미지 올리는 법 몰라서 완전 해맸네요. 확장 컴포넌트 만지작거리다가 안되니까 익스플로러 업글도해보고 결국 html이였군요)

 

 

먼저 '영화 이끼'를 영화로서 본 리뷰라는걸 밝힙니다.

 

-‘다시’라는 제스쳐-

 

 이끼는 강우석의 근작들의 연장선상에서 볼 때 꽤나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전작의 인물들의 요소들이 혹은 전(前) 한국영화의 인물들의 요소들이 이끼의 등장인물들과 어떤 근친성을 보이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그가 고수하던 관료제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떤 상통된 의미 같아 보입니다.

천용덕(정재영)은 <공공의 적 : 강철중 1-1>에서 강철중(캐릭터)과 이원술(배우)을 섞어 놓은거 같기도 하고(‘20년동안 형사생활을 했는데 잡으면 나오고 잡으면 나오고 신물이난다‘), 끝내 이상(금욕적인)만을 추구하고 장악하려는 천용덕에 반대하며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동등한 인격체로 생각했던 유목형(허준호)은 <실미도>에서 자신의 부하들을 인격체로 생각했던 '조 중사'의 일부분이 스며든거 같기도 합니다.

 ‘안될놈들,돌아갈곳도,돌아가서도 안될놈들’을 데리고 ‘최악’만은 막자는 천용덕, ‘다시 살고 싶은 사람들’과 ‘최선’을 추구하자는 유목형, 이들이 만나 새 세상을 꿈꾸면서 영화는 시작됩니다. 이 부분이 상당히 흥미로웠는데 강우석은 분명 ‘차악(?)관료제’를 고수해왔지만 지금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법권의 끔찍한 타락을 보면서 더 이상 그 포지션을 다룰 수 없게 된 것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현 체제에서(1978년, 혹은 박정희시대를 현 정권과 비유하는 기사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사실 그 폭력적 태도가 전두환에 가깝다고 하지만)떨어져 나가 천용덕과 유목형이라는 인물의 접점으로서의 세상이 펼쳐진다면 어떨까 하는 어떤 ‘방향성’을 제시하면서 시작된다는 점이 꽤 흥미롭습니다.

 또한 그 새 세상의 탐험하러 가는 인물들 또한 재밌는데 <살인의 추억>에서 많은 근거로 범죄자로 내몰리던 박현규(박해일)가 완벽히 '무죄'로 판명나 유해국으로 돌아온거 같기도 하고, 박민욱(류준상)은 '딱 보니 범죄자의 얼굴이야'라고 하며 직감에 의존하며 민주주의적 절차를 무시하고 수사를 하던 강철중이 처벌을 받은거 같기도 합니다. 마치 세상을 탐험하기 전에 인물들을 민주적 법절차에 따른 ‘제자리’로 돌려놓은거 같습니다.

 

-영화를 끌어가는 의문들-

 

목형의 죽음으로 인해 해국이 도착한 후로 한쪽(마을사람들)은 들키지말아야 할것이라도 있는마냥 해국을 감시하며 해국이 서울로 떠나길 바라고, 해국은 이런것들에 의문을 품고 조사를 하면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의혹이 점점 커져갑니다.

 그런데 가령 해국은 목형의 집에서 장부를 뒤적이던 석만의 존재를 모르고 지하창고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끝나지만, 우리는 이장의 허락으로 해국이 마을에 남게되자마자 무언가 급히 빼내야할것이 있는것처럼(혹은 누가 시켜서) 같이 식사를 하고도 재빨리 목형의 집 지하창고로 들어간 석만의 존재를 알고 있습니다. 혹은 용덕이 슈퍼에서 잘꺼냐고 물은 뒤, 자신의 험담을 하는 세명(석만,영지,성규) 때문에 할수없이 목형의 집에간 해국은 자신이 없는지 알고 목형의 집에 찾아온 덕천을 보게 됩니다. 덕천은 ‘오늘 거기 안갔어?’라고 하면서 용덕만 알고 있는 사실을 내뱉고 당황해 합니다. 해국의 자택 침입을 알고 찾아온 석만. 절대 목형의 죽음을 말하지 않으면서 뿜어져나오는 광기들(목형에 대한 신경질적 반응들 ‘너네 아버지는 뭐였을꺼 같냐?’,‘너희 아버지가 가해자라고 생각은 안 해봤나?), 그 소박한 물건들(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원고지, 추억이 담긴 사진들, 교과서,검정고시), 덕천의 말(우리 끼리 잘 살고 있었는데...성규형은 아니유?), 그리고 노골적으로 자신이 도움을 준 것을 밝히며 해국의 존재를 각성시키려는 영지,

진행된 사건은 투명한데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행동하게 하는지 알 수 없기(목형은 도대체 이들에게 무슨짓을 했는지, 영지는 왜 해국을 돕는지)에 의문은 긴장감을 증폭시키며 영화를 끌어갑니다. 목형의 사인에 대한 의문까지 안고 말입니다.

 

- 용덕의 마을 -

 

용덕은 분명 석만의 죽음을 민욱과 논의하러 갑니다. 관할이라는 경계를 넘어서 왜 민욱에게 갔는가, 사적감정이 충만한 민욱에게 가서 수사의 협상을 실패한 후 왜 법적수사를 포기하는지, 분명 용덕은 해국이 민욱과 서로 협력하기로 한 것을 모르는데 왜 자신의 영향력 아래서 해국을 제거하지 못 하는걸까요?(혹은 실패하는걸까요?)

여기는 어떤 불안이 있습니다. 분명 이 마을이 어떻게 시작된건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현 체제에서 떨어져나가서 살아보자’ 분명 마을은 체제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석만의 죽음, 성규의 죽음(물론 이때는 민욱이 훼방을 놓아서 애매해져버립니다만), 마을의 증거자료의 불태움을 행할 때 언제나 있는건 ‘천순경’, 이장의 아들입니다. 용덕은 읍내에서 영향력이 있지만 읍내전체를 통제할 정도의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물론 영향력을 점점 늘려가려고 하지만, 그건 마을이라는 중심점을 두고서이지 다시 체제에 완전히 종속하려는 의지가 아닙니다. 사적감정을 가진 민욱이라면 해국을 손쉽게 제거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뒤 찾아가 실패한 후, 자신의 아들을 이용해 해국을 억지로 데려가려하며, 석만의 죽음과 성규의 죽음은 자신의 영향력(천순경)내에서 묻어버립니다. 마을내에 다른인물들이 등장하지 않는 것, ‘아무나 사는 데가?’라는 초반부의 용덕의 말은, 고스란히 마을의 시작점, ‘체제’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을의 남자들이 다 영지를 탐하는 것, 아내들이 아무도 없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마을밖의 사람에 대한 경계와 성욕사이의 대립에 의한 폭력적인 결과로 보이지요.

 

- 결국 영화속에 머문 결말 -

 

‘다시’라는 방향성을 제시한 것은 체제에 대한 강력한 불만으로 현시대의 시대정신인 것이 분명합니다.

전작까지만 해도 ‘올바른’ 지표를 세울 생각도 없이 ‘차악(?)관료’가 결말을 맺어버리면서 사회문제를 끌고들어온 것만으로써 강우석의 영화는 의미가 있었습니다.(물론 공공의적1편은 강철중이 마지막에 카메라를 향해 달려들면서 상황을 애매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만 이건 너무 결과론적인 해석입니다.)

 하지만 ‘이끼’가 지표를 세우지 않는 것은 조금 다릅니다. 다시라는 방향성에 제시된 두 세상은 우리의 바람과 먼 거리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최선의 금욕적 세상, 차악의 현 체제로서의 세상. 이 두가지가 제시되는 순간 당연히 어느쪽이 내가 바라는 세상과 가까울까 생각해보기 때문입니다.

 강우석은 의도적으로 용덕이 해국에게 들려주는 과거사를 들려준 후 삼덕기도원 사건의 결말을 얼버무립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습니다. 이상이 너무 높은 목형은 점점 마을밖 세상과 닮아가는 용덕에게 실망하여 살해하려했고, 만약 새로이 살곳을 찾으러 온 기도원 사람들의 배신(원장과의 타협)에 실망하여 목형이 그들을 몰살시켜버렸다면(당신은 이런곳에서 버틸 수 있는가)? 최악만은 막자는 신념으로 체제의 흐름을 어느정도 수용하자라는 용덕의 세상(광기로 진술을 하던 덕천은 끝내 시키는데로 ‘살인’을 했다고는 말하지 않고, 덕천을 개천에서 용덕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장면을 생략하고, 민욱이 영지에게 ‘이장이 사람을 죽였습니까?’라고 묻지만 영지의 대답을 우린 들을 수 없습니다), 어느쪽인가? 당신은 누가 사람들을 몰살시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결국 목형의 세상은 용덕에게 빼앗겼고, 용덕의 세상은 어쨌든 끝이 납니다. 그렇다고 현체제의 사법권(박민욱)으로 해결되지도 않습니다(자살을 해버리기 때문이죠). 또한 영화는 결국 목형의 죽음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후 민욱과 해국은 서로 화해를 한것처럼 통화를 합니다. 민욱이 ‘것봐, 받아들이면 되잖아’,‘당신은 죄가 없습니다’ 라고 말할 때 역시나 민주적 법절차를 무시한 수사를 하고도 서울행을 가게 되었을 때, 분명 직,간접적으로 살인에 관여되었음에도 ‘아직까지 아무일도 없는게 다행아닌가?’ 라고 물음에 웃어넘기는 해국을 볼때, 도대체 무엇이 변한것일까요?,

 

현대식건물들과, 교회, 그리고 많은 아이들, 그리고 그대로 남은 ‘영주들의 성’같은 용덕의 집.

‘아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새롭게’ ‘더 새롭게’

목형은 자신이 당하는 부당한 일들은 감내하지만, 자신 이외의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일들은 '심판'을 하려했었습니다.(영지를 위한 복수를 관료인 용덕을 빌어 했었죠) 영지는 이런 점((자신의 몸을 내어주는걸 끝내 감내하며 그것에 대해 문제를 삼지 않고 '심판'을 해국의 손을 빌려 한다는 점)에서 목형을 닮아 있습니다. 다만 영주의 성을 보존한 것은 용덕을 닮은 점이 될 것입니다.

영지가 앞으로 어떻게 새 세상을 용덕,목형 둘중 누구와 가깝게 하려는지 혹은 그 어딘가의 절충점인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강우석은 끝내 피해자였으며 그래도 결국 나은 핏덩이가 죽임을 당한 영지를 위해 새 세상을 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물론 영지가 모든 것을 계획했다는 해석은 너무 결과론적입니다.)

그런데 결국, 물음을 던진 후 처음으로 되돌아가고파 하는 그 구조. 결단의 회피.강우석은 사람들이 지표를 생각할만한 시간을 주었으니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고작 한걸음 더 나아간 강철중)

 

저는 사실 우리가 정말로 주목해야 할 것은 끝내 밝혀지지 않는 죽음을 쫓아가면서 강우석이 끝내 말하지 않은것이 무엇인가 묻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형의 이상적인, 아니 차라리 너무 금욕적인 이상은 ‘최악’만을 피하려는 용덕과 성규,석만,덕천에는 버거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을 초 목형의 주도아래 초식만을 꺼려하던 그들의 욕망이 점점 커지는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때문이 아니라 마을밖에 어른거리는 세상의 흐름 때문입니다.(지금 우리가 말하는 기본적인 욕구는 무엇으로부터 정해지는가?, 당연히 현 사회가 척도입니다) 세상의 흐름은 자꾸만 흘러들어오며 그것을 막기 위해선 완전히 고립되어야 합니다. 목형의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려는 의도는 사회적으로 자살을 해야하며, 용덕의 의도는 현 세상과 점점 닮아갑니다. 결국 순수한 피해자 영지와 타락한 관료 용덕, 이상사회를 꿈꾸는 목형, 순수한 가해자에 가까운 성규, 석만, (모리가기보다는)어중이떠중이 같은 방관자로서의 덕천이라는 인물들이 모여 다시 시작한거 같지만, 결국 그들은 체제의 피해자 였다는것 ‘최악’만을 피하려는 용덕이 목형을 밀어냈을때 과거로 영겁회귀하듯 닮아가는 것입니다. 석만과 성규 또한 해국의 존재만으로 과거(세상의 기억)가 어른거리어 결국 죽음을 맞이하고 맙니다. 영지의 ‘먼저 칼을 드는 사람이 죽는거다’는 말은 ‘이끼’로 산다는 것이 과거(세상의 기억)로부터 떨어지지 못하는 얼마나 불안한 삶인지 알 수 있습니다.

끝내 체제 내에서 투쟁해야 할 문제라고, ‘이끼’처럼 ‘다시’ 산다는것 자체가 실패를 전제로 한 것이라고. 우리는 완전히 ‘새롭게’ 시작할 수는 없다고 왜 강우석은 말하지 못했을까요.(왜 ‘국쇄’는 없다고 말하지 못하는가, 한반도가 어른거립니다) 끝내 피해자였던 영지는 시간의 문제일뿐 결국 용덕과 목형 중 선택을 해야 할것입니다. 이 얼마나 참담한 결과입니까.

 

-이끼 논란-

 

이끼는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강우석의 작품이라는 전제를 달면 그렇습니다. 다만 극찬하는 쪽은 강우석의 변화가 감흥을 일으킨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고(적어도 한걸음 더 나아갔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불평하는 쪽은 ‘원작’에 못 미쳐서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그런데 ‘원작’에서의 처음부터 그 끝장난 마을의 분위기, 무표정한 인물들, (영화보다 더한)장르적 긴장감 이라던가 내용이 많이 생략되어서 혹은 전개가 틀려서라는 의견에는 동의할 생각이 없습니다.

사실 영화는 영화로 봐야한다는 입장에서, 영화가 다른 예술이랑 차이를 두고 세상과 어떻게 관계하는지를 보고싶어하는 입장에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영화의 편에서서 ‘이끼’를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원작과 비교하면서 영화에서 생략되거나 바뀐점들(물론 이런점들이 강우석의 의도를 분명히 들어나긴 합니다만)을 무언가 엄청난 결단이라도 있는것처럼 포장하는것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끼를 본 주위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자꾸만 ‘영화 이끼’에 생략된 부분들을 ‘원작 이끼’에서 끌어들여 보충을 한다던가, ‘영화 이끼’와 ‘원작 이끼’를 짬뽕시켜서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사실 ‘호,불호’로 나뉜다기보다 거의 아수라장에 가까운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물론 이것이 ‘원작 이끼’를 봤기 때문에 벌어진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영화 이끼’를 먼저보고 ‘웹툰 이끼’를 보고나니 자꾸만 둘 사이에서 화학작용이 일어나는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2번째 볼때는 ‘영화 이끼’에 속았다고 생각도 했으며, 3번째는 아예 영화 첫 숏부터 끝까지 공책에 적으면서 외워버렸습니다. 그리고 4번째에 와서야 강우석이 ‘원작 이끼’를 보면서 작업을 하고 수정을 하느라 이미 예고된 아수라장이었단걸 깨달았습니다.

 

- 웹툰과 영화 -

 

저는 웹툰 이끼가 ‘회화’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 해괴한 선들의 조합으로서의 도시, 음산한 시골, 피로감이 만연한 민욱의 사무실 등등. 물론 컷의 연속성을 볼 때 스토리보드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랑은 분명 다른 장르입니다.

영화라는 예술이 카메라만 걷어내면 현실이 담긴다는 점에서 회화의 예술성(어찌되어도 주관성이 들어가는 선,채색,붓터치)에 못 미칠거라고 말한사람은 가장 위대한 영화인중 한명인 ‘앙드레 바쟁’이었습니다. 당연히 이말을 거꾸로 해석해보면 적어도 회화는 그 예술성 때문에 영화보다 객관적 세상, 현실의 그 직접성에 못 미친다는 말입니다.

씨네21 강우석 인터뷰를 보면서, 강우석은 적어도 영화적 입장에서 ‘이끼’를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강우석은 ‘원작 이끼’의 그 음산한 분위기를 ‘누아르적’이다라고 하며 ‘자신은 그렇게 찍을 방법’이 없다고 말합니다.

사실 공공의적 시리즈부터 하여간 사람들이 ‘그냥 블랙 코미디’라고 하지 못하는건 분명 사회적 문제들, 체제의 문제들을 끌고 들어와 현실적으로 영화를 그려나갔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평론가분의 말씀을 빌리자면 ‘현실은 강우석의 방어선’이라는 말, 당시 평론가들이 ‘척’하지 말고 웃겨나 달라고 한 것을 보면, ‘척’한다는 전제는 적어도 그 보수적 해결을 현실에서 벌였다는 점이기 때문입니다.

플래시백에 관해서 강우석이 이야기를 하길 만화에선 플래시백이 언제든 이뤄질 수 있지만 영화는 그럴 수 없다고 합니다. ‘웹툰 이끼’의 경우 ‘화’가 나뉘어져 ‘화’마다 시작이며 끝인것입니다. 언제나 끝에 궁금증을 낳는 컷을 넣는건 이 ‘단편적’인 특성을 효율적으로 쓰는것이지요. 덕분에 ‘긴장감’이라는 장르적 성질이 붙어오는 것입니다. 강우석은 그 영화의 연속성을 고려했을 때 최대한 영화적으로 승부하고 싶었을 것이고 구조적인 변화가 필수 였을것입니다.

그렇다고 영화내에 ‘긴장감’ 이라는 장르적(?)요소가 없지 않습니다. 다만 현실과 맞 닿아있는만큼 웹툰보다 덜한것입니다.(아마 연재중에 보신분들은 ‘단편성’과 그 시간적 주기 때문에 다음회차의 기대감이 훨씬 더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원작’과 ‘영화’사이에 혼동을 한는 것은 둘 다 ‘이미지’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소설을 영화로 하였다면 사람들은 그렇게 ‘원작’을 따지고 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소설을 보며 연상되는 이미지들은 우리가 머릿속에서 직접 조합해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웹툰’과 ‘영화’는 컷 혹은 숏 하나하나가 분명히 작가 혹은 감독의 미장셴이며 표현입니다.

저는 분명 강우석을 ‘작가’로 보는 입장에서 ‘웹툰 이끼’를 선택한 것은 강우석의 분명한 의도(선택)이기 때문에 원작과 비교당하는건 감당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 적어도 영화를 좋아한다면 영화의 편에서서 ‘이끼’를 보는 것이 영화에 대한 지지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강우석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이야기라도 한 후에 그래도 ‘나는 원작이 좋던걸’ 이런부분은 이해할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왜 '영화 이끼'에 대해서 분명히 말하지 않고 처음부터 ‘회화적’이며 ‘단편적’인 웹툰의 입장에서서 이야기를 시작하는지, 만약 강우석이 원작을 최대한 그대로 살려냈다면 그는 예술의 장르를 매개한 ‘기술자’가 되었을 것이고 지금 상황을 보면 강우석은 ‘실패자’되어야 하는데 저는 강우석은 분명히 작가의식을 가진 ‘영화감독’이라는 믿음으로 다시 한번 '영화 이끼'를 보는건 어떨까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물론 '영화 이끼'는 영화 그대로 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원작을 참고하세요"는 영화를 부록쯤으로 폄하하는 것이니까요. 분명 '영화 이끼'를 보고 자체로 설명이 안되는 부분은 '영화 이끼'의 부족한점이고 강우석이 감당해야할 문제입니다.)

 

-예고된 아수라장-

 

앞에서 말했듯이 관객의 감상에 ‘웹툰 이끼’가 끼어들었기 때문에 ‘영화 이끼’를 영화자체의 텍스트로 읽는데 무리가 있는건 아닌 것 같습니다. 강우석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끼의 많은 부분을 끌어오면서 러닝타임 때문에 구성을 바꿨으며 구성을 바꾸지 않으면 ‘설명적인 영화가 될 것 같았고 2부작 혹은 4시간정도의 러닝타임이 되었어야 한다’ 라고 밝혔습니다. 단지 러닝타임 때문에 바꾼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해서 무리한 설정을 하게 되고 가끔 인물이 바보 같아보이거나, 전개상 뜬금없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읍내까지 영향력을 펼치며 철저한 보고체계를 가졌으며 어느 하나 그냥 넘어가지 않는 철두철미한 천용덕은 왜 유해국이 어떻게 유목형의 죽음을 알고 오게 되었는지 궁금해 하지 않습니다. 다만 언제 떠날지만 궁금해합니다.(아마 엔딩의 영지의 반전 때문이겠지요)

유해국은 갑자기 나타난 라디오와, 송곳에 찔려 뻗어버렸음에도 일어났을때 치료와 놓여진 성경책에 대해서 궁금해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여기 있냐는 궁금해 하지 않고 그 안의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만 매달립니다. 이것이 원작에서 냉정 침착하며 분석적인 ‘류해국’을 좀 더 현실감있게 하고자 함을 의도한것이라면, 즉 영화라는 매체, 그 세상의 직접성이 담기는 매체로서의 활용을 위해 그러했다면 백번 양보해서 억지로라도 설명이 될지 모르겠지만, 냉정 침착하지 않더라도 마을의 모든 사람이 자신을 꺼려하는데 누군가 사건의 실마리를 놓고 간다면 누구라도 의문점이 들지 않을까요? 사실 여기서 유해국은 바보 같아 보입니다.

또한 그 라디오에 담긴 목소리가 이미지로 재현이 되는데, 분명 용덕의 목소리가 성규는 글을 모르니까 녹음을하고 석만이는 글로 써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석만의 사연까지 이미지로 재현된단 말입니까, 거기다가 그 녹음기에 목형의 등장과 뒤에 서 있던 영지, 그 대화들을 누가 중계하듯이 녹음을 했단 말일까요,

그리고 영화 후반부 천용덕의 집에서 살아있는 인물들이 모여 목숨을 걸고 자신이 원하는걸 강렬하게 내뿜습니다. 용덕은 목형이 어떤인간(기도원사람들을 몰살)인지 이야기하면서 결국 자신의 세계를 인정해달라고 악을 쓰는것 같고, 박민욱은 큰 그림을 완성하고자 민주적 법절차를 무시합니다. 영지는 결국 끝까지 피해자가 된 자신을 위해 혹은 자신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해국과 민욱을 빌어 용덕의 세상을 심판 하려 합니다. 그리고 해국은 그 자리에서 ‘아버지는 누구였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그런데 왜 용덕의 대답이 삼덕기도원까지 거슬러 가야하는걸까요, 뭐 당연히 그 장면이 없으면 강우석 감독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텅빈 지표에 대한 생각의 순간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장면이 어떤 결단력이 보여서 감흥을 일으키지만, 분명 그 등장이 전개상 잘 붙지 않는것은 사실입니다.

중간 중간 이야기에 전달에만 매달려서 전개상 따라오는 상식적인 부분을 놓칠 때 관객은 몰입에 방해를 받습니다. 카메라의 자의식이 ‘모던함’의 한 부분이라면,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며 현실의 자장아래서 동시대적 질문의 ‘모던함’으로 승부하는 강우석이라면 당연히 더 치밀해야 했습니다.

 

 

-소소한 재미들-

 

천용덕(정재영)과 유목형(정준호)를 제외하고도 인물들에게서 어떤 근친성이 느껴집니다.

김덕천(류해진)이라는 캐릭터를 보면, 사실 말하는 것이 <타짜>의 ‘고광렬’을 닮은 것 같습니다. 말했다가 눈치보고 말돌리고, 천용덕(정재영)이 ‘다른아들은 빨강색,파랑색,검은색이라서 어쩌구 저쩌구 니는 흰 도화지라 좋았다’라고 할 때 강철중 시리즈에서 나왔던 흰색의 상징인 ‘용만’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고광렬’, 사람들이 왜 도박을 하는지는 당연히 ‘돈’ 때문입니다. ‘이끼’에서 노골적으로 류해진이 ‘돈’(읍내 돌아다니면서 가방을 가리키며 ‘이게 쎄긴 쎄네유’,‘돈 싫어하는놈 못봤구만유’)할 때 가능한 한 겹쳐보이는게 재밌네요.

더 밀고나가면 천용덕(정재영)이 김덕천(류해진)을 살해하려는듯한 장면에서 강철중이 부려먹던 용만을 죽여버린다면(용만이 강철중 때문에 불법으로 시체를 만지작거렸었죠.)? 이라는 의문같기도 하구요.

또 언제나 선(?)한 편이었던 부장검사(강신일)이 타락한 관료로 바꾸어 시대의 흐름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고, 원작과 달리(한명을 거이 뺑이돌리지요) 많은 보좌관을 옆에 두고 일사천리로 수사를 하는 박민욱(류준상)은 <공공의 적2>의 강철중검사 같기도 합니다. 출동장면보면 강철중 시리즈를 아예 빼다 박았지요.

강우석이 ‘다시’라는 전제를 붙이면서 전작의 인물들을 여기저기 배치하고 전복시키고 변화시키면서 벤야민의 말처럼 ‘가능한 한’ 짝을 맞게 해서 요소들끼리 화학작용을 일으키게 만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인물들 또한 긴장감을 더해주는 것이 재밌었습니다. (특히 부장검사(강신일)가 타락한 관료로 나올 때 그동안의 이미지가 전복되면서 약간 경악했었습니다. 생각하면 사실 좀 끔찍하지요)

 

 

 

에, 저는 이끼가 아쉬운 영화라 생각합니다. 좀 더 정치적이되야 더 재밌을거라고 생각합니다만(계속 유명한 평론가님 말씀을 배껴쓰는거 같아서 좀 그렇네요),

분명 감독의 변화를 보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장르영화속에서 생각을 밀고나가는 ‘박찬욱’의 지지자인 김영진 평론가가 ‘이끼’를 극찬할만도 해보이고,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건 분명합니다. ‘이끼’를 처음보고 나왔을때도 강우석이 시대에 여전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것에 기분이 좋았던건 사실이라서 말이죠.

 

 

((반말로 적었다가 존칭으로 고치느라 이상한 부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왜 고쳤냐고 물으신다면, 그냥 듀게에서는 그래야 할것 같아서요. 하여간 그렇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회원 리뷰엔 사진이 필요합니다. [32] DJUNA 2010.06.28 82388
141 [영화] [초능력자] [페스티발] [이층의 악당] [1] [21] taijae 2010.11.17 5900
140 [영화] 베로니카 게린 [2] 무비스타 2010.11.16 4154
139 [소설] 누가 큐피드의 동생을 쏘았는가 - 데이비드 헌트 [1] 보쿠리코 2010.11.09 3800
138 [미드] E.R 8시즌 [11] [12] 브랫 2010.11.08 6808
137 [영화] 레드 RED [6] [1] 곽재식 2010.11.07 5022
136 [책] 독재자: "평형추"와 "낙하산"을 중심으로 [4] [208] 곽재식 2010.11.07 5343
135 [만화] 셀프 - 사쿠 유키조 [5] [18] 보쿠리코 2010.11.05 14272
134 [영화] OO7 뷰투어 킬 [3] [18] 무비스타 2010.11.04 5320
133 [영화]히치콕劇場 - 현기증(Vertigo1958년작) [2] [2] 무비스타 2010.11.03 6562
132 [영화] 부당거래(2010) [1] [22] 푸른새벽 2010.11.02 5503
131 [영화] 짝패, 신나거나 혹은 식상하거나 [2] [1] 푸른새벽 2010.11.02 4165
130 [영화] 영화인의 시네마천국 - 낭뜨의 자꼬 [1] 무비스타 2010.11.01 2982
129 [영화] 아네스 바르다의 행복 [2] 무비스타 2010.11.01 4444
128 [영화] 부당거래, 모두가 나쁜 사람들 [15] lonegunman 2010.10.28 6076
127 [영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 [대지진] [1] taijae 2010.10.27 4983
126 [영화] 로고스 없는 파토스, [심야의 FM] [8] [9] taijae 2010.10.13 5645
125 [영화]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 通天帝國之狄仁傑 [7] [2] 곽재식 2010.10.13 4777
124 [드라마] 동이 감동 2010.10.12 3925
123 [영화] 탈주자 (The One That Got Away, 1957) : 도망은 힘들어야 제 맛 [1] [11] oldies 2010.10.11 4506
122 [영화] 회색 벨벳위의 네마리 파리 Four Flies on Grey Velvet <유로호러-지알로 콜렉션> [6] Q 2010.10.11 624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