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빌려드립니다 (Cold Souls, 2009) ☆☆☆

 

 

 

악마든 그 누구든 간에 다른 상대방에게 영혼을 넘기는 것에 대한 이야기들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는데, 소피 바르트의 [영혼을 빌려드립니다]에서의 영혼은 관념적이거나 초자연적 소재가 아닙니다. 그 세상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있다면 질량측정도 가능할 수 있을 정도로 영혼은 인간 신체의 실재하는 일부인 가운데, 원하면 떼어낼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걸로도 교체도 할 수 있습니다. 찰리 카우프만도 좋아할 만한 이런 기발한 설정을 갖고 영화는 영혼과 인간의 상관관계에 대해 형이하학적으로 신선하게 이야기합니다.

 

 

우리 세상에서 사람들은 영혼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오랫동안 질문해 왔고 누군가는 실제 그걸 질량측량하려는 시도를 해서 21그램이란 결론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한데 [영혼을 빌려드립니다]의 세상에서는 그 질량이 표준이 될 것 같지 않습니다. 인간 두뇌 속 그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는 기관이라는 영혼을 끄집어 내보면 사람마다 색상도 다른 건 기본이고(속이 시커멓다는 표현이 나올 법한 경우도 있지만 성격도 그와 같을지는 전 모르겠습니다) 크기마저도 다양합니다. 뉴욕에서 연극 준비 중인 배우 폴 자마티의 경우, 그의 영혼은 쬐그만 콩알만 하게 작습니다. 꽤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겠지요?

 

 

자마티가 영혼을 절개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최근 상당한 난관을 겪고 있는 체호프 연극 리허설 때문입니다. 반야 삼촌을 연기하려고 노력하는 동안 생기는 고민과 스트레스가 그의 영혼에게 부담을 주는 탓에 리허설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공연일은 얼마 남지 않아서 더 머리가 아플 지경이지요. 그러다가 그는 뉴요커의 기사에서 영혼을 제거할 수 있다는 기사를 접하게 되었고, 전화번호부에서 금방 찾을 수 있을 정도로 합법적으로 영업 중인(주일 영업 -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영혼 절개 클리닉으로 그는 발걸음을 옮깁니다.

 

 

플린스틴 박사(데이빗 스트래세언)은 무덤덤한 친절함과 함께 그에게 시술 과정과 어떻게 이 방법이 사람들의 심적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지 설명해 줍니다. 영혼 절개는 수술같이 들리지만 의외로 아주 간단합니다. 꽤 패셔너블하게 디자인된 MRI 기계에 누운 후 머리를 들어대기만 하면 영혼은 별다른 손상이나 부작용 없이 95% 정도가 간단히 뽑아져 나옵니다. 고객의 머리에서 영혼이 제거된 정도가 측정된 뒤 절개된 영혼은 나중에 필요할 때를 대비해서 저온 저장소에 보관되지요.

 

 

영혼을 절개한 결과 자마티는 이 시술에서 약속된 것들을 그대로 얻게 됩니다. 예전보다 그는 훨씬 고민도 적어지고 부담도 적어집니다. 그러니 그는 이제 리허설을 순조롭게 끝낼 수 있을 것 같지만, 이런, ‘영혼을 울리는 연기’라는 표현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전에는 연기하느라 고생하는 좋은 배우였는데, 이제는 나쁜 연기를 거침없이 하는 이류 배우가 되어 버렸습니다. 게다가 에밀리 왓슨 같이 생긴 그의 아내는 남편이 예전과 같지 않다고 느낍니다. 마음의 짐은 덜어졌지만 그 대신 상대방에게 무심한 사람이 되어버렸고 그는 공허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이러니 그는 부랴부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불행히도 그는 억세게 재수 없었습니다. 누군가 그의 영혼을 말 그대로 훔쳐가 가져가 버렸거든요.

 

 

영혼이 쉽사리 절개할 수 있는 장기라는 아이디어를 영화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재미있게 굴려나갑니다. 영화 속 세상에서는 영혼도 여느 장기들처럼 국제적인 암거래 시장이 존재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영혼을 팔곤 하고 원하면 거기서 수입된 영혼을 이식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명함을 돌리곤 하는 러시아 밀매 브로커 니나(디나 코르준)이 그녀가 공항에서 영혼을 밀수하는 방법은 한 마약 밀매 수법과 비슷합니다. 자신의 몸 속, 정확히는 머리 안에다 이식한 후 도착하면 또 뽑아내는 거는데 이를 위해 그녀의 영혼은 제거된 지 오래입니다. 보스의 지시로 유명배우의 영혼을 가져와야 하는 그녀는 클리닉에서 유일한 배우 고객인 폴 자마티의 영혼을 훔쳤고 그리하여 그의 영혼은 한 러시아 연속극 여배우(보스의 아내입니다)의 머리에 이식되었습니다.

 

 

단지 몸의 작은 일부분과 같아 보이고 그냥 쉽게 떼어버릴 수도 있는 영혼이 알고 보면 자신의 소중한 일부분이란 교훈이야 익숙하지만, 바르트의 각본은 한 걸음 더 나아가면서 사람들 관계에 대한 은유적 이야기를 합니다. 영혼을 뽑는 과정은 100% 추출은 아니기 때문에 잔여물이 남고 하는데 니나의 경우는 더 심각합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운반해 온 영혼들의 잔여물들이 쌓이고 쌓여서 영혼이 차지할 공간이 좁아져가고 있어서(컴퓨터 하드디스크와 달리 조각정리를 할 수가 없습니다) 좀만 있으면 그녀는 더 이상 일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최근엔 자마티의 영혼을 운반한 그녀는 그의 영혼의 아주 작은 일부를 나누어받음으로써 만나기도 전에 이미 친밀한 데이트를 한 거나 다름없게 되면서 그에게 관심을 가져가지요.

 

 

여러 버전의 자기 자신을 아주 심각하게 연기하면서 시치미 뗀 코미디를 한 폴 자마티는 보기 재미있습니다. 사람은 거의 변함없는 것 같아도 두뇌 회로의 칩 하나가 빠졌거나 혹은 바뀐 듯한 모습을 그는 교묘하게 표현합니다. 영혼을 빼는 걸 얼굴 점 빼는 양 태연히 말하곤 하는 데이빗 스트래세언과 진짜 영혼이 빠진듯한 모습의 디나 코르준도 진지한 모습으로 자마티와 함께 호흡을 잘 맞춥니다. 마지막에 가서 이야기를 너무 좀 안전하게 맺지 않았나 싶지만 전반적으로 영화는 독특한 아이디어를 영리하게 굴린 재미있는 코미디이고 생각할 거리들도 있습니다. 만일 한 커플이 결혼할 때 서로를 사랑한다는 의미에서 영혼을 잠시만 교환하고 나중에 가서 이혼한다면, 이거야 말로 정말 미련이 남는 게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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