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녀 (1960)

2010.07.29 12:22

레옴 조회 수:6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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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 주연 2010년 리메이크 버젼의 『하녀』를 보기에 앞서 1960년판  『하녀』를 보았습니다.
 

1960년판 『하녀』는 아래 사이트에 가입한 후 무료로 관람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무려 고화질 HD로요. 정말 인터넷은 멋진 곳 입니다.

 

http://mubi.com/films/2039/watch

 

본격적으로 영화 이야기로 들어가서 1960년작 하녀는 매우 훌륭합니다. 80년대, 아니 90년대 중반 까지도 한국영화는 수준낮아서 안본다는 말을 자랑삼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1960년대 한국영화의 퀄리티가 이정도라는건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뭐 사실 이런 인식을 갖게 된데에는 1960년대 한국 영화가 문제가 아니라 제게 문제 있는 거겠지요. 사실 제가 1960년대 한국 영화를 보면 얼마나봤겠어요. 제대로 본것도 아니면서 편견을 가지고 함부로 판단한다는건 정말 위험한 일이죠. 하녀는 이런 편견의 위험성을 잘 일깨워주는 2000년대의 사람이 보기에도 잘 만든 훌륭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배경은 공장에서는 기숙학교를 다니며 일을 하는 여공들이 있고, 찬장에는 쥐가 돌아다니는 60년대 입니다. 제가 지금 살고있는 2010년과는 사실 조금 많이 동떨어진 시대이고 지금의 기준으로는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아내가 병이 걸릴 정도로 재봉틀을 돌려서 겨우 집을 마련했으면서 하녀를 들인다는 사실이 지금 기준으로는 모순되게 보이죠.  하지만 우리가 이야기를 받아들일때 중요한것은 그 안에서의 개연성이지 현실과의 일치가 아닙니다. 그러니 어찌보면 1960년대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죠. 영화의 배경인 1960년대에는 저정도 살림살이로도 집안 일을 도울 하녀를 둘 수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만 받아들이면 됩니다. 아니 오히려 이런 요소는 제가 잘 몰랐던 1960년대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고 따라서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욱 높여주기 까지 합니다.

 

영화는 액자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한 피아노 연주가인 가장이 신문 기사를 읽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하녀 한명이 집안을 풍지박산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의 기사인데 그 기사의 속이야기는 뭘까? 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그 속 이야기란 이런게 아닐까? 하고 보여주는 액자식 구성이죠. 뭐 이런 구성을 갖게 한것은 당시의 심의 규정을 피해가기 위해서 사실 이건 모두 가짜고 상상속의 이야기 라고 할 수있는 구실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사연이야 어찌되었든 결과적으로 매력적인 구성이 되어버렸습니다. 사실 누구에게나 가쉽이라고 불리는 싸구려 이야기에 대한 욕망 같은 것이 있는데 이런 액자식 구성이 그걸 일부분 만족시켜 주거든요. 하녀랑 바람난 주인양반 이야기. 가쉽의 소재로는 최고죠. 그리고 가쉽은 역시 뒤에서 쑥덕 대는 쪽이 더 재미있지요. 뻔뻔하게 드러내어놓고 어쩔꺼냐고 따지고 들면 가쉽의 맛은 다 사라지고 말죠. 액자식 구성은, 더군다나 가쉽성 신물 기사를 보고 상상에 빠지는 구성은 그런 쑥덕대는 분위기를 자극해 줍니다.

 

 

영화는 일종의 복수극 입니다. 피아니스트인 집주인은 공장의 여공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의 아내는 재봉틀을 돌려 집안을 일으키고요. 그런데 어느날 공장의 여공들중 한명이 그들의 음악선생인 피아니스트에게 사랑 고백을 합니다. 하지만 음악선생은 고지식하게도 자신이 오해받을 것을 우려해 그 일을 사감선생에게 고자질하고 여공은 공장에서 쫓겨나고 맙니다. 게다가 이 여공은 집으로 돌아가 병까지 얻습니다. 사실 이 여공이 병에 걸린게 음악선생 잘못도 아니고 가정이 있는 남자로써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조금 냉정하게 처신한 것을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원래 복수라는건 이런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죠. 이건 다른 이야기에서도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영화 올드보이의 경우 수십년간 친구를 사설 감옥에 가둔 이유는 자신의 사랑을 입싼 녀석 때문에 잃었다는 무언가 조금 이상하지만 어쨋든 거창한 이유에서였죠. 하지만 원작인 만화 올드보이에서는 어떨까요. 수십년간 친구를 가둔 이유는 자신의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는 미칠듯이 사소한 이유에서 입니다. 얼마전에 나온 영화 드래그 미 투더 헬은 어떤가요. 대출 연장을 안해줬다는 이유로 할머니는 주인공을 무려 지옥에 끌고 가려합니다. 물론 친절한 금자씨처럼 진지하고 처절한 이유에서 복수를 시작하는 영화들도 많지만 이런 무언가 허술한 이유로 엄청난 복수가 이루어지는 영화들도 종종있습니다. 더 그럴듯한 이유도 얼마든지 꾸며댈 수 있을텐데 왜 굳이 이런 허무한 사건들을 이유로 복수를 시작하게 되는걸까요. 그 이유는 당신도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이런 엄청난 복수의 대상이 될수도 있다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겠죠. 악의를 갖고 있던 것도 아니고 무언가 심각한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지만 당신의 사소한 행동 하나가 상대방의 인생을 송두리채 빼앗았을 수 있고 당신도 이런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지 모른다는 불길한 상상을 자극합니다.
 
복수의 원인이야 그렇다 치고 과정은 어떤가요. 이 영화에서 집안을 풍지박산으로 만드는 것은 하녀 입니다. 그런데 이 하녀, 음악선생에게 거절당하고 결국 병까지 얻어 삶을 마감한 비련의 주인공도 아니고 그 주인공에게 사주를 받은것도 아니고 주인공의 친구인 것도 아닙니다. 비련의 여공과 절친한 친구사이였던 또다른 여공(엄앵란)에게 하녀로 소개받은 두다리 건너의 사람일 뿐이죠. 딱히 음악선생이나 이 집안에 원한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녀는 정의를 구현하겠다거나 하는 무슨 의도를 가지고 이 집안을 풍지박산으로 만든게 아니죠. 엄앵란이 연기한 친구 여공은 단지 질나쁜 아이를 하녀로 소개시켜주는 것 만으로 이 모든 비극을 기획하는데 아니 어찌 일이 이 지경이 될줄 알았을까요. 무슨 마리오네트 조종사도 아니고 대단할 따름입니다. 복수극이긴한데 복수를 하는 사람이 복수를 당하는 사람보다 더 질나쁜 사람으로 보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좀전에 이야기한 불길한 상상 - 당신도 얼마든지 이런 상황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 을 더욱 자극시켜줍니다.
 
우리는 김진규가 연기한 집주인에 감정이입해서 올바르게 행동하려고 했던것 뿐인데 저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빠질 수도 있구나 하고 답답해하면서 저 백치미 넘치면서 동시에 가증스러운 하녀를 보고 두려워할 수도 있습니다. 가정을 지키기위해 남편을 내어주고 하녀에게 밥까지 차려주는 조강지처를 보며 "그래, 그래도 저런 강인한 아내이자 어머니 덕분에 우리가 저 시대를 살아남았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또 한편으로는 우유부단하기 짝이없고 마누라 고생이나 시키는 못난 남편 때문에 속터지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며 저런 남자는 좀 당해도 싸다고 고소해 할 수도 있습니다. 단 내 남자가 나를 버리는 상황은 있을 수 없죠. 그러니 남편은 로멘틱한 피아니스트이고 몸이야 어디갔든 마음만은 아내에게 일편단심이어야합니다. 이런식으로 영화는 여러가지 주변인물의 감정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영화를 보는 재미를 높여줍니다. 그럴 수 있었던건 김진규, 이은심, 주증녀 이 세 중심인물의 뛰어난 연기와 긴장감을 높여주는 미장센 덕이 크죠. 다소 허술한 복수의 시작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신경쓰기보다 영화에 집중할 수 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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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뭔가 열심히 써보려고했는데 어느정도 쓰다보니 귀찮아져서 급 마무리;; 허접한 리뷰이지만 한번 올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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