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Bedeviled

2010.09.05 03:31

Q 조회 수:8382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Bedeviled

 

한국, 2010.    ☆☆☆★★★

 

필마픽쳐즈/토리 픽쳐즈 제작, 보스톤 창업투자 제공, 스폰지이엔티 배급.   화면비 2.35:1, 1시간 55분.

 

감독: 장철수

각본: 최관영

캐스트: 서영희 (김복남), 지성원 (해원), 박정학 (만종), 배성우 (철종), 이지은 (연희), 백수련 (동호할매), 손영순, 김경애, 이명자 (이하 할매들), 채시현 (미란)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은 금년 최고의 한국제 호러영화이고 아마도 다른 여러가지 의미에서 역대 한국영화중 (이 표현은 뻥튀기가 아닙니다) 특수한 위치를 점할 자격이 있는 역작입니다만, 그 지극히 “비 예술영화적” 외연에도 불구하고 평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것을 보면 역시 뭔가 현대 한국 관객들의 신경을 정확하게 건드리는 힘이 있는 영화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 일부 평론가분들이나 저널리스트들이 자꾸 장철수감독이 김기덕감독의 ‘제자’ 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좀 자제해 줬으면 합니다. 이왕 김기덕영화의 조감독 출신이라는 것을 강조할 바에는 김감독이 최소한 자신 스스로의 기획으로는 전혀 만들 일이 없을 ‘개같은 남자들 찍어죽이는 영화’ (깊이 들어가서 심리분석이나 성정치학적 분석을 정밀하게 해본다면 물론 김기덕의 [섬] 이나 [사마리아] 같은 작품들과 의외로 연결점을 많이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별개의 문제입니다만) 를 만듦으로서 ‘오야붕’ 과 분명한 차별성을 과시했다고 그런 박감독의 오리지널한 부분을 선전해 주면 좋겠구만.

 

무엇보다도 [김복남 살인사건] 은 한국이라는 국적에 상관없이 날카로운 흉기로 사람을 찍어 죽이고 베어 죽이는 그런 슬래셔 호러 영화가 단순히 “매니아” 들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것 말고 과연 어떤 쓸모가 있느냐 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명쾌한 답변을 던져주는 작품중의 하나로서 지극히 희귀한 존재가치가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문학’ 과 ‘예술영화’ 심지어는 ‘주류 블록버스터’ 에서, 이런 식의 촌시러운 얘기는 차마 쪽팔려서 할 수 없으니까 좀 봐주슈라는 식으로, 또는 우리는 이렇게 소 (小)— 감각적- 장르적 쾌락?-- 를 위해 대 (大)— 별로 용기나 지적 판단력이 필요한 것도 아닌 수준의 사회비판이나 정치비판-- 를 희생하는 저열한 작품은 안 만들어요 라는 식의 먹물적 자만심 (겉으로야 멋있게 이론적이고 비판적인 색채를 띈 담론으로 포장되어 보여지지만) 에 의해 구석자리로 밀리고 쓸려 처박혀있을 만한 제재와 스토리를 가지고[김복남 살인사건] 은 한눈 팔지 않고, 뭔가 멋지게 냄새 안나는 누보 퀴진으로 뽑아낼 생각 안하고, 그냥 그릴에다가 연기를 굴뚝같이 피우면서 지글 지글 구워냅니다. 그런데 그 고기맛이 기차게 좋습니다.

 

 제목은 사실 별로 영화의 성격을 잘 설명해주고 있지는 않습니다. [원쑤를 한놈도 빼지 않고 각을 뜬 여자] 나 뭐 그런 정도는 되어야 이 작품의 강도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겠죠. [김복남 살인사건] 의 전반부에서는 마치 누군가 우리가 저렇게 당한 사람들을 하나 건너 또는 직접 알고 있을 것 같은, 현실보다 약간만 과장된 여성 박해적인 요소들을 전형성의 콘트라스트레벨을 확 높여놓은 것 같은 다소 판타지적인 공간에-- 간간히 삼입되는 눈이 확 하고 트이는 아름답고 엑조틱한 풍광을 감안하지 않더라도—심어놓고 조금씩 복남의 숨통을 조여가지요. 관객의 대변자이자 관찰자 역할을 하고 있는 해원의 경우, 복남과 어린 시절 친구이고 여전히 실질적으로는 그녀의 이해자 시점에서 그렇게 떨어져 있지 않는 데도 불구하고 사실상 두 사람이 사는 세계는 너무나 달라서 의사 소통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단, 그걸 다르게 만드는 것은 해원이 사는 세상의 “근대적 소원함” 만은 아닙니다. 한국인의 현대적 삶의 문제에 깊이있는 질문을 던지려면 필연적으로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과거의 공동체로 복귀하지 못하는 이유도 파악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 이유는 당연한 것 아니겠어요? 소위 “전근대” 의 “우리 선조들의 땅과 더불어 살아온 지혜로운 삶” 이라는 것도 실상 뚜껑을 열어놓고 보면 온갖 말도 안되는 비합리적이고 부조리하고 힘 가진 자들이 부당하게 해쳐먹는 세상이었을 진대, 여자건 어리건 뭐건 하여간에 기본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미래를 자기 좋은 대로 설계하고 독립해서 살고 싶은 (“독립” 이라는 말을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알고보면 “공동체” 의 “위계질서” 를 확립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들이 많죠. 그 사람들은 모든 이의 “독립” 이 아니고 자기의 혹은 자기가 속했다고 생각하는 집단의 “독립” 을 원할 뿐입니다) 욕망을 최소한으로 충족시켜주는 세상은 죄송하지만 “근대” 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그러나 물론 김복남이 처한 상황이 해원이 처한 현대 도시 한국 사회보다 덜 “근대적” 인 것은 아닙니다. 그런 착시 현상을 일으키도록 근현대사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비틀어져 있을 뿐이죠.

 

 전반부의 여성 수난사적인 묘사는 임권택감독이던 신상옥감독이던 얼마나 재능이 뛰어나고 사상적으로 앞서간 분들이 만들었다고 해도 반드시 그 귀결은 복남과 같은 캐릭터가 스스로를 희생시켜서 여성의 ‘고귀함’ 을 역설적으로 말하게 하던가 아니면 그런 제스처도 못해보고 그냥 얻어 터져서 스러져가는 모습을 에로티시즘에 기반을 둔 그럴듯한 비주얼로 포장해 보여주곤 했던 지난 시절의 한국영화의 모습과 분명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최관영 각본가와 장철수 감독은 복남을 여성 수난사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우리의 공감을 어거지로 불러 일으키려는 전략을 완전 방기함과 동시에 해원 캐릭터를 단순히 “현대인의 무관심” 을 대표하는 재수없는 방관자로 묘사하는 우를 범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이런 자세는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겉으로는 멀쩡한데 속내는 엄마가 결국 책임져! 식의 (저같은 관객이 보고 있노라면 숨이 꼴깍 넘어가는) 강철헬멧 보수적 관점으로 결판나는[6월의 일기] 같은 장르영화와 비교해보면 여실히 그 차이가 드러납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최관영-장철수 팀이 아주 대나무를 칼로 패서 두쪽 내듯이 가차없이 내지르는 스타일로 묘사하는 복남 주위의 참경들이 결코 “우직함” 의 결과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김복남] 에는 저로 하여금 가슴이 덜컹 내려앉게 만드는 “어이쿠 한국 영화에서 저런 비슷한 설정이 있었는데 이 영화는 확실히 다르구나” 장면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복남이 자신의 딸이 남편에게 성폭행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심증을 해원에게 하소연하는 신입니다. 복남이 “우리 서방이 연희랑…연희랑… x를 했나봐 (x 에 들어가는 말은 18의 앞의 바로 그 말)” 라고 읊조리자 해원은 복남이 묘사한 상황의 내용에 충격을 받았다기 보다도 그러한 언어가 욕지거리가 아닌 실제 상황에 적용되었다는 자체를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오히려 복남을 역비난합니다. 이러한 반응은 해원이 “세련된 도시인” 이라서 그런 게 아니고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사실을 입에 담았을 뿐 아니라 다 보라고 쏟아버렸을 때의 터부를 깨뜨린 존재에 대한 거의 무의식적인 사회적 제재 (censure) 에 가까와 보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디테일을 놓치지 않기 때문에 딸의 성폭행같은 설정이 단지 남편을 짐승같은 놈으로 보이게 하는 도구적 기능을 하는 데서 그치거나 눈물을 짜려는 멜로드라마가 막장으로 간 행태로 인식되는 대신에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정서적 리얼리티의 긴박함을 가지고 관객의 심장을 틀어 쥘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 예를 들자면 참고 참던 복남이 마침내 폭발하는 장면의 정말로 을씨년스럽고도 진득한 일종의 귀기 (鬼氣) 는 어떨까요. 호러영화로서도 모범적이지만, 이 장면의 일부러 착 가라앉은 불길한 음율을 만들어내는 스킬은 놀랍도록 세련되어 있습니다. 전 이 장면을 보면서 김동인의 [감자] 도 사실 결말이 다를 뿐이지 낫으로 목을 따 죽이는 고어설정이 버젓히 나오는 소설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상기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장면들의 축적된 효과가 저로 하여금 [김복남] 의 소위 “우직함” 이 실제로는 치밀하게 통제된, 작가들의 “의식”이 충분히 반영된 산물이라는 확신을 가져다 주게 만듭니다.


 

 

최근에없이 스타성이 완전히 배제된, 연기진들이 충실한 작품입니다. 서영희 연기자는 [질투는 나의 힘] 이나 [추격자] 등을 생각하면 타이프캐스팅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실제로 보면 복남 캐릭터는 위의 두 작품에서 서연기자가 맡았던 것 같이 섬세한 정신 구조를 가진 인물이 아니고 전혀 다른 형태의 연기가 필요했을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아무리 인격이 변했다 하더라도 거대한 망치로 중년남자의 머리통을 수박 깨듯이 빠개서 죽일 수 있는 모습도 같이 보여주어야 하는 역할이니까요. 서영희 연기자가 이 위험한 역할을 요요마가 첼로 연주하듯이 멋지게 풀어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해원 역의 지성원 연기자가 오히려 약간 도식적일 수도 있는 캐릭터를 맡았습니다만 내면적인 표현을 중시하는 전략이 잘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복남의 고생을 새삼 생각하고 울고불고 어쩌구 하는 시퀜스가 삼입되었더라면 영화 완전히 말아먹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조역진도 정말 좋습니다. 백수련 여사님이 맡은 “지옥에서 올라온 시어머니” 연기도 강렬했고 심지어는 파충류나 양서류를 연상시키는 남편 역의 박종학과 대뇌에 정액이 가득 차 있는 것 같은 추악한 시동생 배철우의 연기도 보통 드라마나 그런 데서 보여주는 “악역연기” 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진지하며 무엇보다도 겉보기의 인상과는 달리 엄청나게 절제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의 “악당”들은 “구제불능으로 미쳐버린 개사이코놈” 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짜 맨날 보고 사는 보통 한국 사람들의 더 악랄하고 더 감성이 메마른 버젼들이죠.

 

요번 여름의 실망작이었던 [악마를 보았다] 와 비교해서 아쉬운 점이랄까를 구태여 찾는다면 작가들의 훌륭한 균형감각에도 불구하고 완성도가 떨어지는 측면이 군데군데 보였다 정도일까요? 막판에 섬에서 뭍으로 무대가 옮겨오는 과정에서 마치 편집을 하다가 논리적인 과정을 설명한 부분을 일부 잘못해서 들어낸 것 처럼 뜬금없이 느껴지는 전개가 있었고, 또 도중에서 남편이 오입질하는 커피걸 캐릭터는 중반의 중요한 스토리 전개에 한몫을 하는데도 그 이후로는 사라져서 나타나지 않고, 그러한 소소한 불만들이 눈에 좀 띕니다만, 전체적으로 작품의 퀄리티를 깎아내리는 데 까지는 가지 않습니다.

 

추천드립니다. 제 한줄 감상은… 두뇌를 현관 신발장에 맡겨놓고 들어가지 않아도 “그놈 참 잘 죽었다!” 라는 카타르시스와 오싹하는 긴박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정말 (지구상에) 얼마 안되는 고급 호러 영화라는 것입니다.

 

 아 그리고 김기덕의 제자 어쩌구 하는 꼬리표에 신경쓰실 것 없습니다. 김감독이 이런 작품을 (자신의 기획으로) 실제로 만들어낼 가능성은… 음… 홍상수감독이 한국판 [스플라이스]를 만들 가능성보다도 제게는 더 적어보이니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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