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바디스 파인 (Everybody's Fine, 2009) ☆☆1/2

 

어느 경우든 간에 시간이 흐르면 부모와 자식들과의 간격은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자식들에겐 각자만의 삶을 이끌어가는 동안 부모와 멀어져가고, 그런 동안 부모는 자신들이 자식들에 대해 생각보다 그리 많이 알지 못했다는 걸 알기도 합니다. 고레아다 히로카즈의 [걸어도 걸어도]를 비롯한 많은 영화들이 다루어 왔던 주제를 갖고 [에브리바디스 파인]은 진솔하게 이야기하려고 하고 거기서 좋은 의도는 선명하게 보이지만, 여러 모로 영화엔 부족하거나 혹은 잘 맞지 않는 면들이 있고 그 때문에 텅 빈 느낌이 생기기기도 합니다.

 

본 영화 제목을 전에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그건 본 영화가 주제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영화 [모두가 잘 지내고 있다오]의 리메이크 작이기 때문입니다. 원작에 비해 러닝 타임이 20분이나 짧은 리메이크 작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 지는 원작을 보지 않은 탓에 잘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줄거리는 같다고 합니다. 한 늙은 홀아버지가 장성한 자식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기 위해서 이곳저곳에 사는 자식들을 방문하는 여정을 떠난다는 똑같은 설정 아래에서 본 리메이크 작에서 주인공 직업 등 여러 것들을 바뀐 배경에 맞추어 바꾸었지요.

 

얼마 전에 아내와 사별한 주인공 프랭크 구드(로버트 드 니로)의 집은 안락해 보이지만 적적한 느낌이 감돌고 있습니다. 전화선을 PVC로 코팅하는 일로 가족을 부양해 온 그는 은퇴한 가운데 편한 노년을 보낼 수 있게 되었지만, 밖에서 잔디를 깎거나 아니면 집 안을 잘 정리하는 일은 본인에게 별다른 활력을 주지 않습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식들은 이미 다 장성해서 그를 떠났으니 집 안은 썰렁하고 그러니 그는 자식들이 방문할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자식들에게 좋은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그는 대형 마트에서 좋은 와인들도 찾는가 하면 품질 좋은 고기도 구입하고 이왕에 성능 좋은 바비큐 그릴도 같이 구매하지요.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의 기대는 무너지고 맙니다. 감감 무소식인 아들 한 명만 빼고(그는 영화 내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다들 전화로 아버지께 각각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고 하면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다음번에 방문하겠다고 말하지요. 프랭크는 이에 실망하지만 이를 계기로 자신이 직접 자식들을 방문해 봐야겠다고 마음먹습니다. 약을 끼고 사는 그의 몸에겐 장기 여행이 무리라는 주치의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습니다. 비행기는 탈 수 없지만 대신 기차와 버스가 있으니 그는 그걸 타고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고 그러니 우린 드넓은 미국 대륙 풍경과 도로들을 막간극으로써 대접받습니다.

 

작년 연말에 미국에서 개봉될 때 줄거리에서 크리스마스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음에도 불구 연말용 가족영화인 것처럼 홍보되었는데(DVD 커버와 달리 극장 개봉 때엔 포스터 뒤편엔 크리스마스 트리가 보입니다), 사실 줄거리를 돌아다보면 영화는 그 동네 연말용 가족영화 공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단지 한 자리에 모이지 않을 뿐이지, 자식들은 자신들의 각자 사정을 비롯해서 아버지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고 그러니 입 밖으로 꺼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들 인생의 중요한 부분인 아버지 앞에서 뭔가를 숨기는 건 쉬운 일은 아니고 당연히 프랭크는 나중에 가서 꿈 장면에서 보시다시피 진실들을 대부분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비록 그에게 신경 써줄 시간을 낼 수 없을지언정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앞에서 불편한 사실들을 털어놓기를 머뭇거려하는 자식들에게 그는 안타까워하지요.

 

뻔한 스토리여도 나름대로 만족스럽게 얘기할 수 있긴 하지만 영화는 밋밋한 편이고 짧은 상영 시간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느낌이 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케이트 베킨세일, 샘 록웰, 드류 배리모어와 같은 좋은 배우들에겐 윤곽이 잘 잡혀지지 않은 캐릭터들을 맡긴 점에서도 영화는 아쉽습니다. 이들은 각각 성공한 직장인인 딸 에이미, 아버지의 기대와 달리 대단치 않지만 잘 살아가고 있는 음악가인 로버트, 그리고 라스베가스에서 잘 나가고 있다는 다른 딸 로지를 맡았는데, 프랭크의 자식들로써 차례로 드 니로와 함께 잘 공연하는 이들 모습은 보기 좋습니다. 하지만 각본은 아버지를 정중 하는 게 대하면서 가능한 한 많이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 것 외에 별다른 할 일을 주지 않으니 인상이 깊게 남지는 않지요.

 

슬슬 드 니로의 연기에 대해서 평할 때가 되었군요. 좋은 아버지이긴 하지만 자식들을 키우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를 간과하고 실수들을 저질렀다는 걸 깨달아가는 평범한 주인공으로써 그는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드 니로는 평범함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어긋난 느낌이 듭니다. 원작의 주연인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가 주연이었던 [8과 1/2]의 리메이크나 다름없는 [나인]의 다니엘 데이-루이스처럼 드 니로에게도 똑같은 문제가 생긴 거지요.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마스토로얀니와 같은 배우들과 달리, 드 니로와 데이-루이스는 원래부터 자신들의 연기 뒤에서 들인 공을 티내지 않을 수가 없는 배우들이고 그러니 자신들 출연작에서 요구되는 가벼운 분위기를 의도치 않게 흩트리기도 합니다. 두 경우 모두 연기 질에 대해선 나무랄 건 없지만 미스캐스팅의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지요.

 

[에브리바디스 파인]은 그렇게 많은 인상을 남기지 않은 가운데 금세 쉽게 잊혀 질 기성품입니다. 앞에서 제가 미스캐스팅이라고 지적했지만 조용히 연기를 하려고 하는 드니로를 보는 건 많이는 어색하지는 않았고 다른 배우들이 할 만큼 하는 모습은 보기 좋긴 하지만, 이보다 더 잘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버리기엔 힘듭니다. 잔잔하게 하려고 했다가 이야기는 상당히 무르게 진행되고 여기에 '날 좀 보쇼' 상징주의 클리셰까지 끼어듭니다. 제가 앞에서 프랭크의 직업이 뭐였는지 얘기해드렸지요? 굳이 기억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본 영화에선 전화선들이 참 많이도 등장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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