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끼](감독 강우석)를 원작인 만화 ‘이끼’(작가 윤태호)와 독립적으로 감상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강우석 감독 역시 이를 의식해서인지 “원작과 영화를 비교해보면 굉장히 같으면서도 굉장히 다른 얘기로 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영화 [이끼]는 만화와 같으면서도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은 원작의 팬들과 팬이 아닌 이들에게 굉장히 다른 작품으로 다가갈 것이다. 혹은 거꾸로 이야기 하자면,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 시리즈 팬들과 팬이 아닌 이들에게도 역시 다른 작품이 될 것이다.

 

강 감독은 만화 이끼를 ‘대중영화’로 만들기 위해 원작의 세련된 모호함을 없애고 본인의 장기인 구수한 유머를 덧 입혔다.

 

# 친절한 내러티브

 

만화와 달리 영화는 류해국(박해일 분)의 아버지 류씨 아저씨(허준호 분)와 천용덕 이장(정재영 분)의 젊은 시절 이야기로 시작한다. 사실 만화에서 이 시퀀스는 작품 후반부에 등장한다. 만화에서 해국이 끊임없이 파고들고자 하는 ‘마을의 비밀’ 전반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원작에서와 같은 서스펜스는 일정 부분 감소하지만, 이야기를 쫓아가는데 드는 수고스러움은 덜어진다.

 

또, 원작이 ‘마을의 비밀’ 후반부에 해당하는 전석만(김상호 분)과 하성규(김준배 분)의 과거이야기를 전반부보다 먼저 그린 데 비해, 영화는 이해하기 쉽게 시간의 순서를 따라간다. 여기에 더해 영화는 만화에 나오는 대부분의 플래쉬백(과거회상)들을 생략한다. 류해국의 아내와 어머니에 대한 기억, 김덕천(유해진 분)의 과거 이야기, 박민욱 검사(유준상 분)의 가족 이야기 등. 원작의 복잡한 시점(時點) 이동을 단순화 시킨 것이다.

 

강 감독은 “시종일관 말이 되는 영화를 만드는데 쫓겼다”며, “원작이 만화기 때문에 과거와 현실이 엄청 쉽게 넘어가는데 (중략) 왜 과거 회상으로 들어가는지에 대한 장치를 만드는게 힘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

 

영화는 감독의 의도대로 “말도 되고”, “왜 과거 회상으로 들어가는지”도 잘 설명된다. 원작 만화의 최대 매력이 ‘마을의 비밀’을 역 시간순으로 보여주면서 생기는 묘한 분위기였다면, 영화는 ‘류씨 아저씨의 비밀’에 더 초점을 맞춘다. 천용덕 이장과 류해국 혹은 천 이장과 박 검사 사이의 강한 대립각을 형성하기 위해서이다.

 

# 유머러스한 캐릭터

 

영화가 만화와 가장 차이나는 부분은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에 있다. 원작은 캐릭터의 상처를 철저하게 파헤친다. 꼭 전석만과 하석규처럼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 뿐만이 아니다. 류해국이나 박민욱 역시 그들 나름의 처절한 상처가 존재하고 영화에서 희화화 되는 김덕천 역시 아픔을 가지고 있다. 그 상처가 다시 캐릭터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고,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힘이 된다.

 

반면, 영화는 캐릭터를 단순화 시키거나 변형시킨다. 원작에서 할머니에 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김덕천의 과거는 영화에서 천 이장의 대사로 두리뭉실하게 넘어갈 뿐이다. 덕천은 유머러스한 캐릭터로서는 성공적이지만 원작에 비해 기능적 캐릭터로 전락했다.

 

류해국이나 박민욱 검사에 대한 묘사 역시 플래시백이 삭제되면서 깊이를 상실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우호적으로 변하면서 생기는 유머는 성공적이지만, 작품 마지막으로 갈수록 이야기가 천이장과의 선악구도로 기우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강우석 스타일

 

사실 영화 [이끼]는 ‘공공의 적’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원작의 복잡하고 미묘한 스토리와 캐릭터는 ‘공공의 적’ 시리즈의 공식에 맞춰 단순화 된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선 굵고 유머러스한 캐릭터들’, ‘절대적 악과 상대적 선의 강렬한 대립’이 이 영화의 뼈대다.

 

원작의 복잡한 내러티브가 가져다주는 강렬한 서스펜스와 깊이 있는 캐릭터를 기대했던 팬들에게는 이런 점들이 불만일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철저하게 친절하고 웃기는 강우석의 대중영화다. 원작을 보지 않고 영화를 보는 이들은 윤태호와 강우석의 시너지 효과를 느낄 수도 있지만, 원작 팬들에게는 다소 밋밋한 영화가 될 것 같다.

 

강 감독은 “감독으로서 나이가 들어가니까 너무 해왔던 작업, 잘할 수 있는 작업을 피하고 싶었고, 사람 이야기를 하니까 조금 깊어지고 싶었다.”고 말하며 영화를 소개했다. 그러면서도 “척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며 자신이 대중영화 감독임을 명확하게 했다. 영화 [이끼]는 강감독의 생각이 멈춘 바로 그 지점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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