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애 (2010) ☆1/2 

 

아마 각본을 쓸 때는 그 설정이 멋져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화면상에서는 그 설정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데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의도한 효과들조차도 제대로 이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영화는 금지된 불륜의 뜨거운 멜로드라마를 표방하는 것 같지만, 영화가 끝난 후 엉성한 줄거리를 되짚어 보는 동안 전 영화가 정말 그걸 목표로 했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화면 안에는 열기는커녕 감정은 전무했었고 캐릭터들은 종잇장보다 얄팍했고 이야기 전개는 정체된 가운데 영화는 뮤직 비디오나 찍으려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비밀애]는 설정 자체부터 우릴 설득시키는 데 실패했습니다. 여주인공인 연이(윤진서)는 진우(유지태)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불운을 당합니다. 사고로 인해서 진우가 혼수 상태에 빠지고 그런 남편을 간호하는 동안 연이는 적적한 나날을 보내지요. 그러다가 그녀는 귀국한 진우의 동생 진호를 맞이하러 공항에 가는데, 얘기만 들은 그의 인상착의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무작정 그를 찾으러 갑니다. 형제가 닮았으니 금방 알아볼 거라고(어이구...) 그녀는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진호는 금세 쉽게 알아볼 수 있었고 그를 보는 순간 그녀는 갑작스러운 혼란 상태에 빠져서 기절합니다. 유지태가 다른 헤어스타일을 한 채 연기하는 진호는 쌍둥이 동생이었거든요.

  한데 그 사실을 연이가 지금까지 알지 못하는 게 가능하기라도 한 겁니까? 진우가 이에 대해서 입을 다물었다고 칩시다. 하지만, 아무리 결혼생활이 짧아서 남편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다 해도 결혼 성사 전에 서로의 관계를 다져가는 동안 그녀는 진우의 친지들과 지인들을 분명 자주 만났을 텐데 그 사람들이 딱한 이유가 없는 이상 진우와 진호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이건 그들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각본상 설정만으로 그냥 해결되는 일이 아닙니다.

  연아와 진호의 극적 만난 이후로 이야기는 아주 쉽사리 예상할 수 있는 뻔한 방향으로 갑니다. 남편과 꼭 닮은 외모와 목소리를 가진 사람과 함께 있으니 뭐 별다른 게 있기나 하겠습니까? 그들은 집 안에 늘어지게 있거나 아니면 밖으로 나와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여기에다가 과장된 음향과 조용하다 싶으면 늘상 지겹게 삽입되는 음악이 들어가면서 이른바 묘한 감정의 순간을 자아내려고 하거나 아니면 호수 옆 민박집에서의 밤을 위한 뮤직 비디오 스타일의 낭만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자신이 사랑하는 게 정말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따라오지요.

  영화가 감정 선을 제대로 잡지 않으면서 그냥 무성의하게 이런 장면들을 밀어 붙이니 이야기가 제대로 진행될 리는 없습니다. 그러니 이 쌍둥이 형제들이 말하지 않은 게 있음이 드러날 뿐만 아니라 한 조연 캐릭터가 줄거리에 끼어들어가기도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된 효과를 내지 못합니다. 캐릭터들 간의 드라마는 거의 영점 수준에 가깝고, 각본은 필요할 때만 그들에게 언성을 높이게 하고 영화에 등장하는 네 개의 정사 장면들 외에는 다른 흥미로운 구석을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정사 장면들은 이야기에 봉사하기 보다는 주객이 바뀐 인상만 주니 나쁜 인상만 남겨줍니다. 윤진서도 아닌 어느 여배우의 상체를 굳이 노출시키지 않아도 전체적 인상은 크게 달라질 게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엉망진창 속에서 배우들이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고, 그리하여 윤진서와 유지태는 나쁜 각본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두 남자 사이에서 방황하는 여주인공이라지만, 윤진서는 각본이 무슨 요구를 하지 않는 이상 무표정한 표정으로 일관하고 있고 그녀의 대사 처리는 너무 평탄해서 감정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유지태는 1인 2역을 하고 있으니 흥미로울 법했지만, 헤어스타일 빼고는 두 캐릭터들은 구별되는 것도 없는 가운데 몰개성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나저나, 지난주에 [무법자]를 보고 제가 주인공을 이발소에 보내고 싶다고 툴툴거린 것에 대한 대답이었는지 몰라도 영화에서 형제들 중 하나는 미용실에 갑니다.

  마지막에 가서, 영화는 웬만하면 금방 알아볼 수 있는 대둔산의 구름다리에서 이야기 결말을 내려고 합니다. 보기만 해도 CG 티가 나는 것도 그렇지만 주인공들이 어떻게 되든 간 전 아예 상관하지 않아 한 지 오래였고, 슬프게도 영화는 결말에 대한 제 작은 바람 하나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박수 칠 기회도 강탈해 간 것도 모자라서, 그에 이어 정말 말이 안 나오는 억지스러움이 이어지니 제 눈이 믿겨지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보고 있던 도중 제 곁에서 '막장'이라는 단어가 튀어나기도 했었지만, 막장드라마가 아무리 황당하다 해도 이보다 더 재미있을 겁니다.

  제작 중에 감독이 도중에 바뀌기도 했다니 결과물이 잘 나오지 않는 게 그리 놀랄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영화는 그 점을 고려해도 형편없는 멜로드라마입니다. 연이 어머니와 신부님 간의 서브플롯은 정사 장면들만큼이나 본 이야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가운데 잡음만 내고, 이야기 분위기 밝히려는 양 끼워 넣은 영화 속 싸구려 개그들은 신경만 건드려 댑니다. 적어도, 이런 무능함의 수렁 속에서 그나마 전 음향과 음악을 적나라한 수준으로 어설프게 사용되는 방식에 웃을 여유를 가졌습니다. 분위기 잡으려고 주인공들은 알아서 CD도 틀고 레코드도 틀고... 이왕이면 아이팟도 트는 게 어떻겠습니까? 영화를 무작위 재생 모드로 틀어도 감상에 특별히 문제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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