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케인 (Solomon Kane, 2009) ☆☆

 

판타지 액션이라고 하지만 [솔로몬 케인]은 유쾌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아주 불쾌한 건 아니지만 영화는 어둡고 미적지근하고, 엔드 크레딧이 올라갈 때 제게 남은 인상은 찌푸린 하늘과 우중충한 풍경, 그리고 은근히 머릿속에 각인되는 질척거리는 땅바닥밖에 없었습니다. 영화에서 많은 등장인물들이 그 진창 위를 돌아다니고 그 와중에 비가 샤워장 수준으로 내리기도 하면서 다들 흠뻑 젖기도 합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전 화면 안 캐릭터들보다 이들을 맡은 배우들과 엑스트라들에게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고 촬영장 근처에 좋은 샤워장이 설치되어 있길 바라게 되었습니다.

 

주인공 솔로몬 케인(제임스 퓨어포이)도 이런 배경 안에서 행복하지는 않고 그럴 만한 큰 이유가 있습니다. 때는 17세기 초반이고 프랜시스 드레이크와도 일한 적이 있는 그는 해적질하면서 약탈을 일삼다가 악마와 마주치는 통에 지옥행 티켓을 미리 배정받은 신세가 되었거든요. 이 일을 계기로 그는 고향인 영국으로 돌아가서 수도원에 은거해서 악마의 시선을 피하는 동안에 구원을 찾으려고 하지만, 자신의 전 재산을 수도원에 바쳤음에도 불구 얼마 되지 않아서 그곳을 나와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지요.

 

이리하여 환불도 받지 못한 가운데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 그는 황폐한 배경 속을 떠돌다 한 청교도 가족을 만난 후 그들과 동행합니다. 윌리엄 크로우쏜(피트 포슬스웨이트)는 자신의 가족을 이끌고 저 바다 너머의 신세계로 가려고 하는 중이었는데, 그들의 여정은 바다가 보이기 전에도 순탄치 않게 됩니다. 곧 그들은 주술사인 말라카이(제이슨 플레밍)가 이끄는 악의 세력들과 맞부딪히게 되고, 이러니 솔로몬은 남을 해치지 않겠다는 자신의 맹세를 깨뜨리고 다시 그 옛날처럼 다시 액션을 벌이면서 윌리엄의 딸 메레디스(레이첼 허드-우드)를 구하러 나서지요.

지금까지 많은 판타지 영화들에서 선과 악의 복잡하기 보다는 단순한 대결 구도는 자주 있어왔었는데, [솔로몬 케인]의 경우는 심심한 케이스에 속합니다. 감독 마이클 J. 바셋의 각본은 플래시백을 통해 솔로몬의 아버지 조시아(막스 폰 시도우)와 관련된 그의 과거를 얘기하면서 그를 심각한 캐릭터로 만들려는 시도를 하지만, 여전히 케인은 그냥 총 잘 쏘고 칼 잘 휘두르는 주인공이라는 점 외에는 흥미로울 게 없습니다. 암담한 운명이 정해졌다는 걸 아는 거야 정말 사람 죽을 맛으로 우울하겠지만, 마음속의 짐이 많다고 가뜩이나 둔중한 영화 분위기를 더 밑으로 가라앉힐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야기 전개는 평면적이고 밋밋합니다. 이런 단순한 선악 구도에서는 악당이 좋을수록 이야기가 사는 법이고 필요 이상으로 요란해지더라도 즐겁게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원작과 달리 기독교를 끌어들여 선악 대립을 분명하게 만들려고 해도 영화 속 악당들은 별로 많은 인상을 남기지 않습니다. 악당들을 이끄는 대장은 가면 갈수록 13일의 금요일 시리즈의 중세 버전 같은 모습으로 보이는 동안 가끔씩 사람들 영혼을 뺏어서 자기편으로 만듭니다. 양 손으로 상대방 머리를 꽉 쥐어 잡으면 이미 지저분한 얼굴상이 손자국을 포함해 약간 더 분장이 가해지고 목소리는 약간 더 저음을 띠게 된 답니다(“기분 좋은데.”). 마지막에 케인을 기다렸다는 양 진부하게 등장하는 말라카이는 싱거운 악당 두목이고 그의 오른쪽 얼굴에 새겨진 글들을 보면서 혹시 본 영화 만든 사람들이 작년에 나온 [잉크하트]의 책을 읽어서 빌려 오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케인이 악당들을 많이 해치워야 하니 액션 장면들은 나오지만 여기서 큰 재미를 기대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유럽에서 저예산으로 제작한 영화이니 B급 액션이고, 비록 영화는 19세 미만 관람 불가 판정을 받았지만 케인이 칼질이나 총질을 하는 동안 화면에서 제가 주로 본 건 빨간색이 아니라 검은색이었습니다. 케인에게 달려들곤 하는 좀비들 비슷한 작자들이나 더 멀쩡한 외관의 악당들은 대부분의 경우 CG는 아니고 진짜 배우들이겠지만 영화는 이들을 CG 캐릭터 정도로만 다룹니다. 이러니 영화는 그 다음 단계로 계속 이어지는 컴퓨터 게임 영화 같아지고 이야기 나중엔 지옥의 고물상에서 고철들 주어모아서 주조한 듯한 CG 캐릭터가 마지막 판을 위해 등장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컴퓨터 게임을 원작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솔로몬 케인은 코난을 비롯한 펄프 판타지로 잘 알려진 로버트 E. 하워드의 주인공들 중 하나입니다. 하워드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지만 여러 경로들을 통해 그의 작품들이 어떤 지는 대충 알고 있는 저는 몇 년 전에 운 좋게 케이블에서 빈센트 도노프리오와 르네 젤위거가 주연인 그에 관한 드라마 [세상의 모든 사랑]을 본 적 있습니다. 병약한 어머니에게 묶여 있는 수줍고 여러 문제 많은 덩치 큰 마마보이에게 그의 단순한 영웅 캐릭터들은 방에 틀어박히는 동안 자신의 대리충족 판타지를 마음껏 신나게 펼칠 수 있는 도구였고 그건 독자들에게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마 하워드는 이 영화를 봤다면, 머리에 든 게 많아서 우거지상으로 변한 자신의 캐릭터를 보고 많이 낙심한 채 또 방안으로 들어가서 타이프라이터를 두들겨 대었을 겁니다.

 

저예산인 영화이긴 하지만 그 우중충함을 기억에 남게 해 줄 정도로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허접하지 않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어두컴컴한 [반 헬싱]처럼 재미 볼 생각을 하지 않고 진지해지려는 동안 영화는 더욱 둔중해지고 생기를 잃었습니다. 적어도 영화는 피트 포슬스웨이트나 막스 폰 시도우와 같은 여러 실력 있는 배우들을 끌어 왔고 그들은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전에 TV 시리즈 [로마]에서 본 적이 있는 제임스 퓨어포이는 판타지 액션 주인공 감으로써 괜찮습니다. 듣자하니 3부작을 계획 중이라는데, 다음엔 그에게 더 재미있는 공간을 제공해주길 바래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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