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화속으로](감독 이재한)는 한국전쟁 당시 학생의 신분으로 전쟁에 참가했던 학도병들의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특히 1950년 8월 11일 벌어진 포항여중 전투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이 전투에 71명의 학도병이 참가해 48명이 전사했다고 한다.
 
군인이 아닌 학생이었지만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48명의 안타까운 죽음. 그 속에는 분명 무수한 사연과 사건들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잊지 말고 기억하자고 이야기하는 [포화속으로]는 역설적이게도 철저하게 그들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단 두 명을 제외하고 말이다.
 
영화는 학도병 중대장인 오장범(최승현 분)과 고아출신 가짜 학도병 구갑조(권상우 분)의 갈등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전투경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중대장으로 발탁된 장범을 인정하지 않는 갑조 무리들의 시비가 이어지는 가운데 북한군 766부대 대장 박무랑(차승원 분)이 서서히 이들을 옥죄어 온다.
 
안타깝게도 영화는 극 중반을 지나며 심각한 결함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외부의 거대한 적에 대항하기 위해 내부의 대립자들이 단합한다는 이 익숙한 내러티브 구조가 캐릭터들을 좀먹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특히 오장범은 전반부와 후반부의 캐릭터가 전혀 다른 인물로 느껴진다. 장범은 처음엔 전쟁의 참혹함과 비극성에 눈을 떠가는 순수한 소년이자 전쟁의 고발자다. 실제 한국전쟁 당시 사망한 이우근 학도병의 편지를 기반으로 구축된 캐릭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가자, 포화속으로’라는 혈서를 쓰는 열혈 군인으로 변신한다. 아무 이유가 없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북한군의 위세에 눌려 진지를 이탈해 도망간 구갑조와 대립되는 선택을 한다는 점일 것이다.
 
이미 정해진 내러티브가 캐릭터를 도구적으로 활용한 결과다. 더군다나 박무랑은 이들에게 투항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장범은 북한군을 향해 선제포격을 한다. 갑자기 ‘안네’가 ‘람보’가 된 느낌이 든다.
 
구갑조가 동지들을 버리고 도망가다가 다시 돌아오는 이유 역시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오장범과 구갑조의 기관총 연사 장면을 위해서였을까? 영화는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을 철저히 몇몇 인물의 멜로드라마로 만들어 버린다. 결과는 망자에 대한 심각한 결례다.
 
가장 중심이 되는 두 인물의 내면에 생기는 변화가 표피적으로 다루어지는데 나머지 학도병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어린 소년들로 그려져 있을 뿐이다. 북한군을 다루는 방식도 굉장히 폭력적이다. 두 주인공의 화려한 액션을 위해 희생당하는 ‘머릿수’로만 존재한다.
 
실패한 이야기 구조를 떠받치고 있는 영상 미학은 공허하게 느껴진다. 슬로우 모션과 클로즈업, 서정적 음악의 전면적 배치가 어느 순간부터 거북함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연출의 통제력을 벗어난 듯 보인다.
 
반면 영화의 첫 장면인 시가전을 비롯해 대부분의 전투 장면들은 사실적으로 잘 묘사되어 있다. 113억이라는 제작비가 납득이 갈 만큼 스케일 큰 전투 장면들은 전쟁의 참혹함과 긴장감을 잘 묘사한다.
 
[포화속으로]의 이재한 감독은 “같은 피를 나눈 사람들끼리, 이념의 분단 속에서 전쟁터에 목숨을 내던지고 서로 총을 겨누는 어처구니 없는 비극을 영상에 담고 싶어요”라고 밝혔다.
 
문제는 그의 생각과 달리 이 영화가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분단 구도 속에서 이념적 혐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어쩌면 한국전쟁은 소수의 위정자들이 만든 ‘내러티브’에 수많은 민중들이 그들의 ‘캐릭터’를 희생해야만 했었다는 점에서 비극일지도 모른다. 그 점에 있어서 한국전쟁과 [포화속으로]는 모두 이념적이다. 

 

6월 1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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