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잇 앤 데이 Knight & 데이

2010.06.30 21:01

곽재식 조회 수:5303

"나잇 앤 데이"는 비교적 평화롭게 살아가는 관객들이 호감을 가질만한 아름다운 금발머리 여자 주인공이 우연히 조금씩 일상에서 벗어난 사건에 휘말려가고, 얼마지나지 않아 어마어마한 국제적인 음모와 무시무시한 첩보전을 벌이는 일로 커져나가다가, 결국 막판에는 각지의 명승고적을 돌아다니는 대모험을 겪는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러니까, 알프레드 히치콕이 감독을 맡은 영화들이 40, 50년대에 정착시켜서 성공시켰던 것에 바탕을 둔 모양인데, 코미디 요소를 많이 불어 넣고, 여자 주인공의 귀여운 모양을 강조하기도 하는 약간 발전한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대충 비슷한 것들을 추려보자면, 80년대에 나온 셜리 롱이나 골디 혼이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들이나, 이 영화들에서 좀 더 재미난 연출 효과를 꾸며 넣은 90년대 후반의 "나인 야드" 시리즈와 닮은 명랑한 영화인 것입니다.


(왜 두 사람이 서서 찍은 포스터는 없는지 구슬프게 굳이 물어 보아야 겠는가?)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고 재미난 요소는 톰 크루즈가 연기하는 무적의 첩보원 인물입니다. 이 영화의 기본 구도는 관객들이 감정이입하는, 관객 입장에 서 있는 여자 주인공이 점차 괴이한 일에 휘말리면서, 그 괴이한 일의 중심에 서 있는 수수께끼 같은 남자 주인공을 관찰하는 형국입니다. 신비로운 남자 주인공은, 그 신비감에 어울리는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도통 숨기고 있는 것이 뭔지 수수께끼를 감추고 있는 것이 자꾸만 궁금하기도 한 인물입니다. 그러면서도 가끔 낭만적인 장면 연출에서는 심금을 울리는 끈적한 활약을 하기도 하고, 연기하는 배우 자체가 인기 많은 위대한 남자 배우가 맡고 있기도 합니다. 앞서 이야기 한 대로, 고전과 비겨보자면, "의혹(서스피션, Suspiction)"에 나온 남자 주인공 캐리 그란트와 비슷한 면이 있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그 남자 주인공을 톰 크루즈가 맡고 있는데, 그 신비로운 면이 잘 숨겨져 있어서 호기심을 팍팍 자아내는 초반부에는 재미를 이끌어내는 솜씨가 매우 위력적입니다. 이 영화에서 톰 크루즈는 어떠한 경우에도 겁을 먹지 않고 침착하게 일당백으로 싸우는 무시무시한 첩보원입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싸움잘하는 멋쟁이 용사"라는 고구려의 주몽에서부터, 뒷집 아저씨의 소시적 무용담에까지 언제나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 속의 주인공은 여기에 하나 더해서, 그렇게 엄청나게 무예가 출중하고 뭐든지 다 알고 있다는 자신감을, 언제나 여유만만한 모습으로 비추어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제임스 본드류의 영화나 첩보물, 사기꾼 영화에서 자주 찾아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 영화는 그리고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서 톰 크루즈가 도가 지나칠정도로 항상 친절한 공무원과 같은 기괴할 정도로 차분하게 예의를 갖춘 말투를 쓴다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보여주도록 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달리는 자동차 지붕 위에 매달려 있는 채로, 악당들이 뒤에서 총질을 하고 있고 앞에서는 트럭이 부딛히려고 하고 있고 차안에는 죽은 시체가 널려 있어서 운전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텔레마케팅 직원들이 메뉴얼 1페이지부터 보면서 "고객님"이라는 자에게 공짜라고 사기치고 핸드폰 하나 더 팔아제낄 때 쓰는 듯한 공손한 어조로 말을 하면서 자동차 운전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 해괴한 상황이 굉장히 웃기고 재미납니다. 특히, 이 웃음이 좀 더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톰 크루즈는 약간 성격이 이상하고 뭔가 정신이 나간 놈이라서 정상적인 감정과 성격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렇게 되어버린 것 아닌가 하는 인물 성격상의 이유를 살짝 깔아 놓았습니다.


(Hasta la vista.)

이것은 굉장히 훌륭하게 들어 맞은 기법이었고 톰 크루즈도 아주 훌륭하게 연기해냈다고 생각합니다. 여유만만하게 싸우는 주인공이 갑자기 발작해서 확 미쳐 돌아버릴 지도 모르는 듯한 오묘한 불안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무슨 사연으로 주인공은 저렇게 성격이 이상해져 버렸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때문에 이렇게 황당무계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인물에 입체감이 생기고 인물의 사연을 궁금하게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인물의 폭주하는 성격이 아슬아슬한 순간을 잡아낼 때가 있는가 하면,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연결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적절히 던져 놓은 복선들을 잘 이어붙여서, 이렇게 웃기기 위해 써먹으려고 마련한 소재를 이런 영화에서 쉽게 끼워 넣기 어려운 가슴 찡한 인간적인 아련한 순간으로 발전시키는 재주를 부리기도 합니다.


(활주로 옆에서 톰캣 전투기랑도 같이 달리며 폼 잡아 봤으니, 골목길에서 황소랑 같이 달리는 폼이야 못잡겠는가?)

톰 크루즈에 비하면 카메론 디아즈는 약간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아쉽다고는 하지만, 연기는 역시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귀여운 모습, 재미난 모습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모든 것을 완벽히 해결하는 톰 크루즈에 비하여, 계속 감정을 표현하며 어떡하나 어떡하나 하면서 소리지르고, 놀라고, 화내고, 좋아하고, 팔짝팔짝 뛰는 모습을 어떻게 보여주는 것인지, 영화에서만 나올만한 어색한 대사들, 영화 속이 아니면 도무지 할 수 없는 말이 되지 않는 행동들 따위의 해괴한 동작을 어떻게 그나마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면서 넘어가는 지, 잘 해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세월이 원수요, 시간이 역적이라. 어느새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버린 카메론 디아즈의 외모는 이렇게 어리광 부리는 듯이 깜짝 놀라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궁금해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사람들을 웃기면서, 사랑에 모든 걸 걸어버리는 순진함을 갑자기 보여주기도 하는데는 약간씩 어긋나 보일 때가 있습니다. 비록 표정과 대사, 몸동작이 딱 맞아 떨어지고 있지만, 그래도 더 깜찍하고 더 겉모습만으로도 "멋모르고 철모르는 어리광쟁이"처럼 보이는 다른 배우가 여자주인공을 맡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피부 관리의 비결이 뭘까...)

비교적 소박하게 출발한 초장에 비해서, 세계 이곳저곳의 다양한 풍광을 보여주면서 편안하게 낭만적이고 신나는 유람을 하게 하는 활극의 맛을 즐기게 해주는 구성은 충직하게 잘 짜여 있습니다. 지루하지 않게 아주 다양한 이곳저곳의 개성적인 풍경과 아름다운 모습을 빠르게 잘 연결해 나가고 있으며, 여자 주인공이 사는 동네 거리의 광경이나 별 것 아닌 파이 파는 가게의 모습 같은 것들도 꽤 그럴듯하게 보기 좋게 화면에 담아 놓은 정성스러운 소도구, 의상, 촬영의 배치가 마련되어 있어서, 모든 장면들을 부드럽게 보아 넘길 수 있는 구경거리로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열대의 섬에서)

코미디 요소가 크게 강조된 우스운 영화인만큼, 웃음을 키울 수 있는 재미나고 신기한 연출도 지켜볼만한 대목이 군데군데 있습니다. 앞서 말한, 세계 이곳저곳의 풍광을 왔다갔다하며 다양하게 보여준다는 것도, 여자주인공이 기절한 상태에서 질질 끌려 다니면서 잠깐잠깐 보는 방식으로 연출하는 기교와 결합시켰습니다. 짧은 시간 사이에 대조적인 풍경들을 더욱더 극단적으로 더 많이 나열할 수도 있었고, 이를 이용해서 웃긴 대사들의 대비감을 더 살리기도 했다고 생각합니다. 기절하여 헤롱대는 주인공의 시점을 표현하는 왜곡된 화면들이 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그런 모습들이 흘러가는 모양도 재미나게 느껴집니다.

그 외에도 장난스러운 느낌이 가득한 라틴 음악을 잘 사용한 모양이나, 비행기에서 악당을 톰 크루즈가 수십명씩 잡아 죽이고 있는데, 이것을 비행기 바깥 하늘 위에서 바라보는 관점에서 잠시 보여주어서, 줄줄이 살인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인데도 아주 멀리서 관조적으로 무심히 보면서 슬쩍 비웃는 듯한 느낌을 주는 맛을 쓰는 느낌도 짚어 볼만 합니다.

이런 수법들은 첩보, 살인, 사기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지만, 이 영화의 이야기들이 아슬아슬하고 무시무시한 것이 아니라 가벼운 농담, 우스꽝스러운 소동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나인 야드"같은 영화에서 시작하자마자 거대한 칫솔을 보여주던 것처럼 이런 재미거리들이 충분히 짚어볼만큼 많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모범적으로 이런 웃긴 연출법이 잘 활용되어 기묘한 감격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의 웃긴 순간을 좀 더 살리고, 영화를 그저 진부한 그저 그런 활극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효과 정도는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 손가락으로 꾹 누르는 것이야말로 이연걸, 임청하등의 무리가 자주 하던 것 아니겠소?)

막판에 완벽한 해피엔딩을 만드는 수법이나, 톰 크루즈의 위기를 해결하는 방법 등등은 부드럽게 흘러가는 이야기라기보다는 활극 영화 특유의 마법과 같은 억지에 가까운 면이 있고, 카메론 디아즈와 톰 크루즈가 사랑에 빠지는 모습이 좀 더 정교해야 하지 않았나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로맨틱 코미디"라 하는 영화의 평균 수준보다 오히려 더 나을만하지 싶었던 이 영화의 시작 장면이나, 아주 깔금하고 멋지게 읊어주는 낭만적인 대사 몇 마디들은 좀 가짜 같고 좀 어림 없어도, 오히려 영화라서 더 동경할만한 꿈처럼 보이는 맛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저런 요소들이 균형을 이룬 "프렌치 키스" 정도의 영화까지는 아닐지라도, 총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저벅저벅 걸어가서 남녀 주인공이 긴 입맞춤을 화려하게 나누는 대목등은 볼만한 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림없긴 어림없지만, 그래도 제임스 본드와 비길만한 황당한 절대 안죽는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만의 특유한 멋을 한껏 과시하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 같지만 멋있어...)

정말 아쉬운 장면은 싸움장면, 부수고 터뜨리는 장면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이 보다보면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어마어마한 실력을 가진 인물인 만큼, 주인공의 실력이 강하다는 것을 피부에 와닿게 화려하게 보여줄 수 있는 아주 사실적인 싸움 장면, 실감나는 진짜 같은 동작이 잘 강조되었으면 좋지 않겠나 싶었습니다.

지금 이 영화는 주인공의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슈퍼맨과 같은 붕붕 날아다니는 듯한 모습으로 연출해서 컴퓨터 그래픽 효과를 무척 많이 활용했는데, 이 보다야, "본 아이덴티티" 시리즈나 몇몇 성룡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적당히 자제된 움직임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는 것이, 오히려 더 주인공의 실력이 치명적으로 대단하게 보이게 할 수 있지 싶습니다. 톰 크루즈가 싸우는 장면 중에서 비행기 안에서 싸우는 장면이 제일 흥미진진하고 그럴듯해 보이는 것도 아마 그래서 그렇겠지 생각해 봅니다. 좁은 비행기 안에서 비행기 안에 있는 도구들을 이용해서 악당과 처절한 싸움을 극한까지 보여준 왕년의 "예스마담"시리즈 양자경도 생각나고 말입니다.


그 밖에...

양자경 말이 나와서 말인데, 모터사이클 타고 가다가 카메론 디아즈가 총질하는 장면은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양자경이 싸우는 장면과 똑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인간성이 완전히 제거된 듯한 수수께끼의 인물이 나오고, 여자 주인공이 믿지 못해서 도망가고, 남자 주인공은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혼자서 다 박살내면서 싸우고 하는 톰 크루즈의 모습은 어째 아놀드 슈월츠제네거를 떠올리게 하는 데가 있었습니다. 연기하는 방식과 보여준 인물의 본체는 전혀 다릅니다만, 아놀드 슈월츠제네거 생각을 하다보니까, 주인공의 신분을 숨기고 여자 주인공과 함께 다니는 모습이 "트루 라이즈"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고, 여자 주인공이 자동소총들고 실수하는 장면이나, 적진을 배경으로 남녀주인공이 입맞춤을 하는 순간도 "트루 라이즈" 생각이 났습니다. "나잇 앤 데이"에서는 적의 총탄이 빗발치는 것을 배경으로 입을 맞추는데, 주지사님이 나오신 영화에서는 시시하게 총탄이 빗발치는 것이 아니라 남녀 주인공의 등뒤에서 배경으로 핵폭탄이 폭발하고 버섯구름이 마구 피어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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