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전에 사족을 먼저 달자면, 전 존 레논이나 그의 비틀즈에 아는것이 거의 없습니다. 고작 이름과 유명한 곡 서너개를 알 뿐이죠. 비틀즈나 마이클 잭슨이나 이들을 둘러싼 신화들이 워낙 많아서 마치 픽션속 인물처럼 느껴지곤 하는데 이 두 영화에 대한 감상은 레논과 비틀즈의 음악과 사생활들을 잘 아는 팬들과 상당히 다를 수 있습니다.

작년 개봉한 샘 테일러-우드 감독의 [노웨어보이, Nowhere Boy]와 최근 BBC에서 방영한 TV영화 [레논 네이키드, Lennon Naked]는 레논이 가지고 있는 동일한 기억(또는 트라우마)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다섯살때 부모가 헤어질때 어머니와 아버지 중 둘 중 누구와 함께 살겠냐는 질문에 아버지를 선택하고서도 결국 뒤돌아보지도 않고 떠나는 어머니를 보고 그녀를 따라 나섰지만, 아버지도 그를 붙잡지 않은, 즉 자신의 선택으로 한쪽 부모를 버렸거나, 또는 그를 애써 붙잡지 않은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기억말입니다. 두 영화 속에서 이 기억의 장소나 미미 이모와 함께 살게된 계기같은 디테일은 조금 다르긴합니다만, 그의 독집 중 Mother의 가사에 나오는 기억이라는 점은 같습니다

[노웨어보이]는 레논과 어머니(들), 보다 정확히는 낳아준 어머니 줄리아와 키워준 어머니 미미 이모와의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모부가 심장마비로 급사하고 장례식에 찾아온 생모를 보고, 지척에 살고있었지만 십여년 동안 얼굴한번 보지 못했던 어머니 줄리아를 찾아갑니다. 재혼해 딸 둘을 두고있는 줄리아는 존을 반갑게 받아들이고 그를 록큰롤 콘서트에 대려가기도하고, 벤조를 가르쳐주기도합니다. 엄격하고 완고한 이모 미미와 달리, 자유분방하고 음악적 재능이 있는 생모 줄리아가 레논에게 음악 세계로의 문을 열어준것처럼 묘사되고 있습니다.



존은 줄리아와의 만남 이후 하모니카와 벤조에서 기타로 옮겨가면서 친구들과 함께 쿼리멘을 조직하고, 폴 매카트니와 조지 해리슨도 만나게됩니다. 밴드활동으로 학업은 더 뒷전이 되고, 줄리아의 재혼 가정에 대한 묘한 질투감과 친부모가 싸우는 어렴풋한 어린시절 기억으로 줄리아에 대한 존의 원망은 커지고, 한편 십수년을 키워준 사실상의 어머니임에도 불구하고 친모를 만나 자신에게 소홀히하는 존에 대한 미미 이모의 원망이 커집니다. 이 삼각관계의 갈등이 폭발하는것은 존의 생일. 미미는 존의 어렴풋한 기억의 진실을 폭로합니다. 하지만, 이런 갈등 폭발이 종종 그렇듯이 이 사건은 줄리아-존-미미의 삼각관계에 균형을 가져옵니다. 소원했던 자매는 화해를 하고 줄리아가 사고로 죽은 뒤 함부르크로 떠나는 존의 모습으로 영화는 끝납니다.

[노웨어보이]는 전기영화라기보다는 존 레논과 주변 캐릭터들를 가지고 만든 성장영화라는 느낌이 더 강합니다. 이것은 존 레논에 대한 제 정보부족 때문일 수도있고, 십대의 그를 연기하는 애론 존슨이 사진으로 남아있는 레논의 외모와 그다지 닮지 않았기 때문일수도 있습니다.하지만 성장영화로도 얼마나 제 기능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엄마, 이모와의 삼각관계나 줄리아에 대한 외디프스적 욕망은 조금은 억지스럽고 억눌렸던 유년기 기억을 되찾는것이 청소년기를 접고, 다음 단계로 성장해 나가는데 영향을 미치는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고, 비틀즈 전신이라고 불릴만한 음악적 스타일을 찾아가는 과정도 보이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노웨어보이]는 전기영화도, 성장영화도 어중간한 영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노웨어보이]가 레논과 어머니(들)에 관한것이라면, 크리스토퍼 에클레스턴이 존 레논으로 출연하는 BBC의 [레논 네이키드]는 레논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레논에 대한 것입니다. 참고로, 이 영화는 아버지의 날을 맞아 BBC가 기획한 부성 주간(Fatherhood Season)에 편성되었습니다.

친모와의 만남으로 시작한 [노웨어보이]처럼 [레논 네이키드]역시 1964년 아버지를 17년만에 처음 만나는것으로 시작합니다. 카메라 앞에서 차갑게 대하고, 같이 살면서도 퉁명스럽게 대하면서도 어린 여자친구가 생긴 아버지가 분가를 한다니 또 다시 아버지에게 버림받은것처럼 서운해합니다. 이렇게 부정을 갈구한 그가 막상 그의 아들 줄리안에게는 눈길도 제대로 주지 않습니다. 놀아달라고 건낸 축구공을 멀리 차버리기까지하고, 결국 오노 요코와의 만남으로 아내 신시아와 줄리안을 매정하게 버립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면서 아버지로서의 사랑과 의무는 외면한 레논은 새로운 파트너 오노 요코의 임신에 흥분하고, 잇따른 유산에 크게 실망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레논의 태도는 이율배반적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아버지 없는 유년기를 지낸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런 복잡한 심정과 태도가 이해됩니다. 이 영화가 성공한점이라면 아버지 또는 부성을 소재로 레논이 얼마나 뒤틀린 인간이었는지를 보여주었다는것입니다.



부성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상대적으로 비틀즈 이야기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단체 인터뷰 장면이 몇번 나오고 매니저와의 미팅 장면이 나오지만 폴 매카트니만 몇 마디할 뿐 다른 멤버들은 잘 눈에 띄지도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레논 주변에서 뒤치닥거리를 했던것같은 피트 쇼튼이 자주 나오더군요. 오노 요코와 만남 뒤 끝까지 레논 곁에 머물렀던 이가 그였던것 같습니다.

40대 중반을 넘어선 에클레스턴은 1965년에서 1971년까지의 레논을 연기하기엔 지나치게 나이가 많고, 그의 리버풀 액센트는 과장된 성대묘사처럼 보이지만, 조금 지나면 에클레스턴식의 레논에 쉽게 익숙해집니다. 근사한 분장덕분에 옆모습은 상당히 레논과 닮아보이기도 하고요. 나오코 모리도 외모나, 분위기가 오노에 잘 어울리고, 저는 특히 존 레논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호감가는 보통사람처럼 보이는 아버지 프레디 역의 크리스토퍼 페어뱅크의 연기가 좋았습니다. 나머지는 배우나 이들이 연기하는 캐릭터의 존재감이 거의 없지만, 90분짜리 TV 영화에서 그 사람들 이야기를 다하는것은 불가능하죠.

레논 네이키드 마지막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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