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행복 (Frygtelig Lykkelig, 2008) ☆☆☆

 

 

도입부 자막에 따르면 실화에 바탕을 두었다는 [무서운 행복]의 설정은 약 10년 전에 살짝 개봉하고 잊혀 진 실패작인 국내영화 [얼굴]의 설정과 비슷합니다. 한 경찰관이 조용한 시골로 내려오게 되는데, 그가 맡은 마을이 처음 인상과 달리 그리 평범하지 않고 그 동네 깡패와 갈등을 일으키면서 그의 문제는 심각해져만 갑니다. 이 줄거리를 바탕으로 차분하게 배경을 조성하는 동안 영화는 배경과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을 것 같을 요소들을 섞어가고, 그 결과로 조용한 덴마크 농촌 풍경에 불편한 기운이 드리우면서 서부극적 요소가 살짝 가미되는 모습은 독특합니다.

 

경찰관 로버트(자콥 세데르그렌)은 어떤 사정으로 인해서 자신이 일하던 대도시를 떠나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로 근무처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본인은 그 일에 대해서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고 그를 새 근무처로 바래다주는 상사도 그에게 “그 누구에게라도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있었을 걸세.”라고만 말할 따름이지요. 무슨 일이었든 간에 그건 그의 경력에 완전 치명타는 아닌 것 같고 그가 다시 대도시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은 어느 정도 있어 보이 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게 언제인지 기약할 수 없는 가운데 그는 낯선 세상에 당분간 홀로 남겨진 신세이고 지금은 그를 떠난 아내와 같이 살고 있는 딸에게 전화 통화를 하려고 하지만(그는 딸에게 자신이 오스트레일리아에 갔다고 말했습니다) 응답기 메시지가 들려오는 경우가 더 빈번합니다.

 

 

외지인인 그에게 마을 사람들은 친절하지 않습니다. 동네 술집에 들어와서 맥주 대신 소다수를 주문하는 로버트를 그들은 처음부터 못마땅하게 바라다보고 로버트 본인도 자신이 이 동네에서 환영 받지 않는 존재임을 금방 감지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에워싼 이 어렴풋한 적대감에 대처하는 데에 있어서 그는 꽤 서투릅니다. 자신의 자전거를 수리 받으면 되냐고 정중하게 묻지만 수리하는 사람은 오래 전에 어디론가 가버렸다는 응답이 비웃음과 함께 돌아옵니다. 여느 닫힌 공동체 구성원들이 그렇듯이, 그들은 자신들이 알아서 오순도순 잘 살아가고 있다고 보고 있고 그들에게 있어서 로버트는 귀찮은 존재입니다.

 

이러니 자신의 한 지붕 이웃인 동네 의사 저렝(라르스 브리그만)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별 정이 안 가는 가운데 로버트는 그들의 문제에 관여하기 시작하고 그 결과 마을의 고요함에 그 누구도 원치 않은 불협화음이 끼어듭니다. 주민들이 가능한 한 성질 건드리고 싶지 않아 하는 동네 깡패인 외르겐(킴 보드니아)의 아내인 잉게리제(레네 마리아 크리스텐센)와 첫 근무일 아침에 우연히 만나게 된 계기를 시작으로 로버트와 그녀는 자주 대면하게 됩니다. 그녀가 폭력적인 남편에 자주 구타당하는 건 마을에서 비밀도 아닌 것 같은 가운데 그녀는 남편 때문에 생긴 멍과 상처를 그에게 보여 주면서 자신을 도와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혼란에 빠진 가련한 여인 같지만 변덕스러우니 그다지 믿을만한 사람은 아니고 나중에 외르겐은 그녀가 자해한 거라고 얘기합니다.

 

법 집행자로써의 위치를 확립하려고 애쓰는 주인공, 동네 깡패, 그들 사이에 놓인 여인, 그리고 심상치 않는 분위기의 고적한 마을과 같은 소재들이야 서부극 장르의 단골 재료들이고 감독 헨리크 루벤 겐즈는 이걸 굳이 부인하지 않으면서 장르의 영향을 살짝 끼워 놓기도 합니다. 주인공들은 부츠를 신고 다니는가 하면(고무 부츠입니다), 보잘 것 없는 외관의 마을 사람들과 달리 외르겐은 텍사스에 데려다 놓아도 그리 어색하지 않을 복장을 한 채 마을을 돌아다니지요.

 

동시에 영화엔 코엔 형제의 [블러드 심플]을 연상케 하는 냉정한 블랙 코미디 감각이 곁들여진 느와르적 분위기가 자욱하게 깔려 있습니다. 와이드 스크린 안에서 절도 있게 보여 지는 메마르고 황량한 느낌의 드넓은 들판은 적막함으로 가득합니다. 텅 빈 마을 밤거리는 차가운 조명과 대비되는 어둠이 깔려 있고 집안 사정이 험해진다하면 잉게리제의 딸이 밖에 나와 유모차를 밀고 돌아다니는 동안 나오는 소리는 반복을 통해 더욱 더 효과적으로 다가오는 장치입니다. 밝히고 싶지 않은 어두운 비밀이 있는 로버트는 자신의 결점으로 인해 이야기상의 팜므 파탈 쯤 되는 여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현명치 않은 짓을 저질렀고, 그로 인해 그는 꼬여가는 상황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신세가 됩니다.

한편, 초반부엔 꺼림칙하게 느껴졌던 그 무언가가 조금씩 우리 눈앞에서 실체를 잡아가기 시작합니다. 도입부에 나오는 내레이션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마을 사람들의 문제 해결 방식은 처음부터 영화에 음험한 기운을 드리우는데, 편치 않은 기분이 깔려 있는 마을 외곽의 수렁엔 단지 그 옛날의 머리 두 개 달린 송아지만이 그 아래서 잠자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좁은 동네에서는 비밀이란 건 없고 사람들은 단지 침묵하면서 방관할 따름입니다. 어느 정도 선에서까지만 말이지요.

 

세데르그렌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엔 마을 분위기에 빠져들면서 자신의 수동적 성향을 벗어나지 못하는 주인공을 맡았습니다. 상대를 너무 만만하게 보다가 그는 자업자득 신세에 빠지지만 그럼에도 그는 별 불평 없이 자신에게 강요된 카드들을 받아들이지요. 그의 반대편에서 킹콩만큼이나 포악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양껏 발산하면서 돌아다니기 때문에, 화면상에서 폭력은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보드니아는 충분히 위협적으로 다가오면서 이야기에 긴장감을 제공합니다. 두 배우들 사이에서 크리스텐센은 이야기의 발화점 역할로써 적절한 수수한 매력과 모호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서운 행복]은 굳은 자세를 유지하는 가운데서도 유머 감각을 발휘하는 여유를 부리기도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목도하게 될 지에 미리 살짝 예고해주고 나서 영화는 한 인상적인 분위기를 느긋하게 잡아가면서도 동시에 긴장감을 팽팽하게 쌓아 감을 통해 우리의 흥미를 자극합니다. 여러 장르들과 영화들이 연상되는 본 작품은 아마 영화들 자주 보시는 분들에게 더 재미있게 다가오겠지만, 다른 분들에게도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고 추천할 만합니다. 덴마크 시골에서 느와르와 서부극이 잘 만나는 풍경은 한 두 번 보는 일이 아니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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